강경 기행
강경의 근대문화 유산이 많다는건 알지만, 이렇게 많을 줄이야 나도 몰랐다.
많은걸 담고 싶었지만 사진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강경...
군산은 쌀의 수탈의 도시로 기억되고, 강경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기 위한 도시로 기억된다.
군산이 쌀의 도시인 위성도시로 성장하면서 강경은 큰 타격을 받은 도시이다.
군산 개항과 철도 개통, 전주군산간 도로 개통과 동시에 강경은 서서히 잠든 도시로 변해 갔을 것이다.
어쩜 강경사람들은 일제시대에 군산사람을 싫어 했을지도 모른다...
위로는 공주, 아래로는 전주를 이은 교중의 중심지 였다. 말대로 조선시대 3대 시장, 2대포구이었던 것이다.
일제시대 일본은 강경의 상권을 그대로 두지 않았을 것이다. 말그대로 탐을 낼만한 도시 였을 것이다.
상권 장악... 그와중에 상인간의 세력다툼... 일본과 우리 상인간 다툼... 불보듯 뻔하다.
강경에는 교회가 많다. 둘러보면 교회다.
김대건 신부의 천주교 최초 전교지 나바위성당과 한국 최초의 교회인 침례교회, 강경 성결교회는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강경의 근대건물은 군산과 달리 한옥, 또는 한옥과 일식(서양식)건물 등이 있어 절충적이었다.
* 한옥: 강경노동조합, 북옥감리교회
* 한옥+일식: 남일당 한약방
* 서양식: 한일은행
강경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강경 근대문화유산 및 기타 건물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자세한 사항은 네이버검색, 다음 검색 등을 활용해 보세요.^^
제가 본 느낌으로만 적을게요.
▶ 구한일은행
1905년, 강경 상권을 대변하는 대표적 금융시설.
저 위에 지붕은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일부 다시 복원한 거랍니다.
내부안을 놨더니 금고가 있었고요.
강경 젓갈시장에 관광온 사람이 주차 할 때가 없어 하는 말,
'옛날 건물들 좀 때려 부셔서 주차장 좀 만들어 주지... 사람도 안 사는구먼...'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여러분들이라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요?
▶구강경노동조합
1925년에 신축,
본래 2층 건물이었는데
현재는 1층만 남아 있답니다.
1층은 사무공간, 2층은 방 2개 있었고요.
강경 근대시기 '흥망성쇠'를 볼 수가 있는 상징적인 건물.
뒤쪽에는 공원 같은 곳이 있습니다.
거기서 잠깐 쉬었다 갔지요.
▶구강경화교 교사사택
<사진출처: 네이버 홈페이지>(깜빡 해서 이곳은 가보지 못함)
1956년에 지음.
사택은 부부교사가 지냈던 공간과
독신교사가 지냈던 공간이 따로 나누워 있습니다.
▶강경읍 주변 근대건물
사진 속 건물보다 저 농기계 값이 더 나갈까요?
강경읍 한적한 곳에 주차를 한 후 함참을 걸었어요.
보는 곳 마다 근대건물들, 일제가옥들...
사진 찍은 것만해도 무수히 많아요. 못올린 것도 많답니다.
그중 몇 개만 올리지요.
민물고기 문 옆 오른쪽에 가옥같은게 있는데
할머니 두분이서 병과 박스를 모아 그 안으로 들어가더군요.
이제는 일식 가옥이 아니고
병과 박스만 있는 창고로 변했더군요.
화신양복점(和信洋服店), 신광양화점(新光洋靴店)
화신이라는 단어는 낮설지 않게 다가오더군요.
글자 하나하나 읽으면서
왜그리 내마음은 기쁜지 알 수가 없어군요.
자기 가게에 방해가 되는 것은 모두 지워 버리고 페인트 칠하고...
어쩌면 당연한 듯 보였어요.
대동전기상회(大同電氣商會),
마치 강경읍을 지날때 세트장을 보는 듯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영화 장군의 아들 촬영 때 여기서 잠깐 찍었다고 합니다.
저기 저 마크가 상징하는게 무엇일까요?
골목길 사이사이로 들어가다보면
집이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집안에서 노인 한분이 나와서 라면 찌꺼기를 마당에 뿌리더군요.
아마 저 불이 나곳도 전기 합선이나 주방에서 무엇을 하려다가 불이 난것으로 보이네요.
강경읍내에는 불이 난 곳을 그대로 방치한 곳이 서너군데 있더군요.
이글을 쓰는 동안 창문 밖에 보이는 저 아파트들과
사진속의 건물들을 보니
내가 몇 십년을 타이머신을 타고 왔다갔다 하는것 같아 보이네요.
저 안으로 들어가면 시장이 나옵니다.
마치 옛날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골목시장을 누비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더군요.
저 건물에 사시는 할머니는 아직도 일제 건물에서 사시고,
4~50십년 대에 담배파는 곳을 연상시키는 자리에
김구 선생님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를 전시에 놓고 담배를 파시더군요.
문틀 안에 창문이 있는 자리에서
추워서 문틀 밖으로만 나오는 할머니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사람들이 집을 지을때 일제 건물들이 있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알수 있네요.
▶구남일당한약방
1923년 건축
한식 목조 건물이지만, 일본 건축분위기가 물신 풍기네요.
남일당 한약방 ->연수당 건재 대약방으로 상호 변경
후대 자손이 현재 관리하고 있다네요.
개인적으로 이건물도 NT운동 이 필요하겠네요.
▶강경중앙초교강당
1937년 준공된 강당
앞 뒤로 2개의 출입구가 있어요.
강당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고 있어 역사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창문이 많은 걸로 보아 자연광을 많이 이용한 것 같더군요.
창문을 여닫 때 위 아래로 열고 닫고 하네요.
그런데 이학교는 아직도 국민교육헌장이 있더군요.
재 생각엔 일제 잔재 청산보다 이 교육헌장을 빨이 없애야 할 듯싶네요.
국민앞에 썬그라스 쓰고 나타나 우리에게 교육시켰던 헌장입니다.
학교다닐때 못외워서 무지 맞은 기억이 나네요...
▶구강경공립상업고등학교관사
1920~30년대 주택에 근대적 기술을 적용해 주택사적 가치가 있답니다.
내부안은 마치 동국사 안에 있는 것처럼 느꼈고
다다니방이 간간히 보였습니다.
그리고 보일러도 보였다는...^^
▶ 강경북옥감리교회
역시 전통양식으로 지었어요
내부 안은 남녀신자를 구분하여 앉았고
강단쪽에 충분한 공간을 만든 점에 감주법? 구조라네요.
뭔지 몰라도 암튼 내부안 천정은 자연의 것을 그대로 살렸더군요.
▶강경침례교회
최초의 교회 라니 믿기지 않네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기타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옥녀봉
<미내다리, 나바위 성당 등은 일단 생략>
일제가 남기고간 자리에
인천, 목포, 부산 등은 새마을 운동을 거쳐 70~80년 대에 개발 바람이 불며 일제 잔재 건물들이 많이 없어 졌지만,
군산, 강경은 광복이후 건물들을 보며 일제 생활상이 현재까지 멈췄음을 알 수가 있죠.
군산의 영화동 길을 걸으면 일제시대 건물들, 미군 들이 남기고 간 유흥자리들, 현재 자본주의가 키워온 유흥업소들 뿐이죠.
이에 강경은 무너져가는 창고 건물들, 일제 건물에 덧붙인 건물들, 불에 타서 앙상하게 남은 건물들, 낡은 간판들을 보이 보인답니다.
강경 우리가 한번 꼭 가볼만한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