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5. 05. 16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은 1917년 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이 우리나라 역대 서화가의 사적과
평전을 수록한 사전이다.
1928년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에서 출판하였다.
▲책의 크기>21,5㎝(세로) x 155㎝(가로) / 필자 소장본
우리나라 서화가의 인명사전「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는 삼국시대에서 조선후기까지 서화가 총수 1천117명 중 서예가 576명, 화가 392명, 서화가 149명이 3권으로 수록되어있다.
이 책에 수록된 여성은 단 10명이다. 이 10명의 여성 서화가 중 기생 이름 2명과 첩의 이름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성씨로만 표기되어 있다. 근역서화징에 나타난 남녀구분의 실태는 대략 다음과 같다.
첫 여류화가로 표기된 고려시대 ‘이씨’의 기록에는 “본관은 慶州, 익재 이제현(益齋 李在賢)의 孫女이며 좌의정(左議政) 홍응(洪應,1428~1492)의 외조모”로 간단하게 기록하고, 손자 홍응이 김뉴(金紐, 安東人,1436~1490)가 소장한 팔경시(八景詩) 발문에 외조모의 그림과 서체에 관한 글을 인용해 이씨가 그림 솜씨에 능함을 적어두었다.
조선초기에는 인재 강희안의 딸, 교감 김맹강의 처 ‘강씨’가 기록되어있다. 또 한국미술사에도 중요하게 다루는 신사임당 역시 ‘신씨’로 표기되어 있다. “호는 사임당, 시임당, 임사재, 본관은 평산, 송정, 신명화의 딸이요 감찰 이원수의 아내며 율곡 이이의 어머니. 중종 7년 임신생, 죽은 나이는 48세”로 소개했다.
조선중기 ‘허씨’는 “호는 난설헌, 경번당, 본관은 양천, 초당 허엽의 딸, 서당 김성립의 처, 명종 18년생, 27세에 죽었으며, 7세에 시를 잘 써 여신동이라 일컬어졌으며 그림을 잘 그렸다”고 짧게 기록되었다.
또 이 시기 본관이 안동으로 경당 장흥효의 딸이며 석계 이시명의 처이며, 갈암 이현일의 어머니인 ‘장씨’가 소개되었고, 본관이 하동이고 육오재 정경흠의 누이며 현감 권육의 아내이고, 권경의 조모인 ‘정씨’는 그림의 품격이 뛰어났다고 짧게 한줄 묘사했다.
조선후기의 ‘김씨’는 본관이 경주, 강희맹의 10대 손부이며 강인환의 어머니, 영조 49년 6월에 어머니 월성 김씨가 그 아들 인환에게 그려주는 등 그림에 뛰어났으나 부녀자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맞지 않다고 절대로 그리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시기 ‘김경혜’로 기록된 권상신의 첩은 시와 그림, 거문고와 바둑에 뛰어났다고 되어있다. 정일당, 본관은 진주, 강희맹의 12대 손녀, 영조 48년생, 탄재 윤광연의 처 ‘강씨’는 초서와 해서를 잘 쓰고 시에도 능해 문집이 세상에 간행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평양기생‘죽향’은 낭간이라는 호와 난초,묵죽,난죽 등의 그림에 쓴 여러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이처럼 누구의 처,누구의 모,누구의 딸로 기록된 여류 작가 중 기생의 이름2명과 본명을 밝힌 첩1명을 제외하고 이름 없는 성씨로만 수록된 의미는 짐작된다.
글>영남일보 변미영 화가 칼럼에서 발췌
▲槿域書畵徵引
▲槿域書畵徵 凡例
▲槿域書畵徵 目錄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은 A5판. 324면으로.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년 8월 6일 ~ 1953년 4월 16일]이 1917년 편집하여, 1928년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에서 출판하였다.
기록에 나타난 역대서화가를 신라, 고려, 조선의 상·중·하 5편으로 나누고, 이를 출생연도순으로 배열하였다.
서술방법은 성명에 이어 자·호·본관·가세(家世)·출생연도·수학(受學)·관직·사망연도 등의 대강을 소개한 다음, 그의 예술에 대한 기록과 논평을 싣고 그 서목을 밝혔으며, 유전되는 작품의 명칭과 소재를 적었다.
비록 그 예술성은 뛰어나지 못하더라도 기록에 보이는 자는 모두 수록하였으며, 혹 성명은 전하지만 연대를 알 수 없거나 자 또는 호만 전하는 자도 ‘대고록(待考錄)’이라 하여 다음 기회를 기다리면서 부기(附記 : 본문에 덧붙여 적음.)하였다.
또한 1917년 탈고한 뒤 1928년 간행되기까지 수집된 서화가는 ‘증록(增錄)’으로 덧붙였다. 열람에 편리하도록 성명과 호의 색인을 마련하였다. 권두에는 채용서목과 인명목록을 실었다. 채용한 서목은 270종으로 이밖에 읍지·족보·비명·서화제발(書?題跋)이 있으며, 수록된 인명수는 1,117인이다.
이와 같이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서화가들에 대한 편자의 품평을 피하여 객관적으로 서술한 오세창의 업적은 높게 평가된다. 또한, 오세창은 서화에 해박한 지식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중국어 역관으로 초기 개화파의 한 사람이었던 그의 아버지 경석(慶錫)으로부터, 가업이라 할 만큼 이 방면의 연구에 대하여 물려받은바 많았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높다.
그 뒤 우리나라 역대의 서화가를 평가하는 가장 권위 있는 문헌으로 한국서화가연구의 기본서가 되었으며, 광복이후 출간된 『한국서화인명사전』 등은 모두 『근역서화징』을 인용하게 되었다.
인용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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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역서화징』은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1,117명의 서화가들에 관한 옛 사서(史書)나 문집 등 고문헌의 기록을 발췌, 시대순으로 엮은 사료이다. 열전(列傳)을 편년체식으로 기술한 이 책은 최초로 한국 서화사의 통사적 개관을 정립한 것에 그 사료적 가치가 크다.
저자 오세창은 선대부터 이어받은 컬렉션을 바탕으로 1890년대부터 본격적인 서화수집을 시작하였으며, 만해 한용운의 증언에 의하면, 1910년경부터의 사료수집은 『근역서화징』의 편집을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서화의 3일’, <매일신보> 1916.12.7-15). 원고는 1917년에 상, 중, 하 3책의 필사본이 완성되었으며,『서화협회회보』창간호(1921년 10월)에 연재되면서 활자화되었다.
처음에는 ‘서가열전(書家列傳)’과 ‘화가열전(畵家列傳)’으로 제목을 분류하여 동시에 연재하였으나, 이듬해 제2호를 마지막으로 회보가 중단되면서 연재도 중단되었다. 이후, 민족계몽과 문화연구 단체로 설립된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에서 1928년 5월 15일 정식 출판되었다. 전문이 한문으로 작성되어 일반인들의 접근이 제한적이었던 점을 보완, 2007년에 시공사에서 국역본이 전3권(국역2권, 영인1권)으로 출간되었다.
책의 구성은 서문에 해당하는 ①인(引)/ ②일러두기인 범례(凡例)/ ③연대편람(年代便覽)/ ④인용한 서적을 수록한 채용군서목(採用群書目)/ ⑤인명목록(人名總目)/ ⑥대고록(待考錄)/ ⑦증록(增錄)/ ⑧색인에 해당하는 <씨명자음검색(氏名字音檢索)>, <씨명자획검색(氏名字劃檢索)>, <별호자음검색(別號字音檢索)>, <별호자획검색(別號字劃檢索)> 순으로 구성되었다.
책의 본문에 해당하는 인명목록은 <권1, 나대편(羅代編: 신라-통일신라)>, <권2, 여대편(麗代編: 고려)>, <권3, 선대편 상기(鮮代編 上期: 태조-인종)>, <권4, 선대편 중기(中期: 명종-현종)>, <권5, 선대편 하기(下期: 숙종-철종)>로 구분되었고, 총 1,117명(서예가 392/ 화가 576/ 서화가 149)의 서화가가 수록되었다.
이들에 대한 사항은 성명·자·호·본관·출생연도·수학(受學)·관직·사망연도 등을 소개한 후, 해당 작가의 예술 세계에 대한 기록과 논평을 싣고 그 서목을 밝히고 있다. 또한 대고록에는 이름은 전하지만 연대를 알 수 없거나 자 또는 호만 전하는 인물을 수록하는 한편, 1917년 탈고한 뒤, 1928년 간행되기까지 수집된 서화가를 증록에서 추가 수록하였다.
▲필자 소장본
저 자 :오세창
출판사 : 시공사 전재국
간행일 : 1998. 08. 15
형 태 : 판형 B5 | 페이지 수 11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