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북면 백악산(百岳山 856m)을 가다.
글 쓴 이 都 寅 高 枓 永
11월 28일, 일어나니 지다남은 반달이 처마위에 걸려있고 주위는 어둑 어둑한데... 날씨는 차고 스산한 겨울 바람이 불어 소맷속으로 선득 선득함이 느껴진다!
차에 오르니 동참인원(同參人員)이 많이도 부족하다.(38명) 잔치가 많아서 인가...? 차례 차례로 인사를 드리니 이해수(전회장)님과 정의석(전부회장)님께서 모처럼만에 참석(參席)하셨다.
두분은 얼마전 부모(父母)님 상(喪)을 당하신 이후 한동안 공허(空虛)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는지, 무척이나 상심(喪心)해 있었는데... 어서 훌 훌 털고 예전과 같이 밝게 지내시길 바람니다.
칠곡 휴게소에서 간단한 조반(朝飯)을 드시고는 아포(芽浦)에서 다시 중부내륙고속도를 타고 상주로 달림니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 연변(沿邊)에는 다가오는 산천초목(山川草木)들이 을씨년 스럽게 느껴진다.
그새 낙엽(落葉)은 지고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 채 겨울 맞을 채비를 하고 있으니... 시절인연(時節因緣)이 어찌 이리도 빠르신가!
차내(車內) TV에서는 서해바다 “한미합동훈련”을 오늘부터 시작한다고 “뉴스특보”를 하시니... 그 어느때 보다 남북간의 긴장감이 고조(高調)돼 있다. 11월23일, 북한 개머리 해안(海岸) 포대(砲隊)가 대한민국의 연평도(延坪島)에 무력도발(武力挑發)을 해 와서 주민들과 우리 병사들에게 많은 사상자(死傷者)를 냈다.
천인(天人)이 공노(共怒)할 일이며, 얼마전 “남북이산가족” 만남(11월초)을 주선했던 사이가 아니던가? “천안함 사태”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 다시 호전적(好戰的)으로 나오는 저들을 강력한 응징(膺懲)만이 해결의 방법일 것이야!
6.25 남침(南侵) 이후 얼마나 많은 인적(人的) 물적(物的) 피해를 가해 왔던가? ‘칼기폭파사건(1988), 랭군 테러사태(1983), 1.21 남파간첩 청와대 습격사건(1968), 울진 삼척공비 침투사건(1968), 금강산 관광여인 피격사건(2009) 및 최근의 도발사태까지...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겠는가?
성서(聖書)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듯이... 참는데도 한계가 있지... 더는 참지 말아야 한다. 병법(兵法)에도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하지 않았던가! “불의(不義)에는 정의(正義)”로 맞서야 하제!
차는 어느새 화북면(化北面)을 지나 눌재를 넘어서고 있으며, 마을 주변 화북천변(化北川邊)에는 방풍림(防風林)으로 많은 소나무가 심어져 있어 깊은 山中임을 알겠도다! 출발기점인 입석리(立石里)마을에 도착하니 시계는 거의 10시가 다되어 간다.
최대장의 구호에 맞춰 간단한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옥량폭포(玉梁瀑布) 입구로 오르니... 오늘도 선두는 최연식 산대장이, 중간은 최형달 부대장이, 후미는 황부회장님과 필자가 진행을 도와 질서가 정연하다.
10여 분을 올랐을까? 가파른 우측 계곡에는 거대한 ‘옥량폭포(玉梁瀑布)’가 나타난다. 가을 가뭄에 수량(水量)이 줄어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 나리니... 그 웅장(雄壯)함이 반감되어 아쉽다!
가운데는 천연적인 석교(石橋)가 놓여져 있고, 그 밑으로 폭포수(瀑布水)가 솥아지면 참으로 장관(壯觀)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등산개념도’상에 “보굴”이 있으나 일정상 가볼 수 없슴이 아쉬울 뿐이다.
“보굴”에는 아름다운 전설(傳說)이 전해오시니... 잠시 옮겨볼까 합니다.
조선 제7대 세조임금이 수양대군(首陽大君) 시절에 왕위찬탈(王位簒奪)을 목적으로 “계유정난(癸酉靖難)”을 계획하고 있을 때 대군의 딸인 공주가 이를 누설(漏泄)해서 아버지로부터 쫒겨나와 이 곳 “보굴”에 숨어 들었다는 것이다.
수양대군(1417~1468)은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대군시절 영민(英敏)하고 무예도 뛰어났으며, 처음에 진평대군(晉平大君), 함평대군(咸平大君), 진양대군(晉陽大君)으로 하다가 마지막에 수양대군으로 고쳤다.
그는 1453년(단종1년)에 한명회, 권남, 홍윤성 등과 정권을 잡을 목적으로, 안평대군(安平大君)이 황보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 이양, 조극관 등과 역모를 꾀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죽이고(안평대군도 강화에서 사사賜死함) 일으킨 정변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이다.
이후 그는 스스로 영의정(領議政)이 되어 병마(兵馬)의 실권(實權)을 장악하여 1455년에 왕위를 강탈하였으며, 1460년 신숙주(申叔舟)를 보내 모련위야인(毛憐衛野人)을 정벌하였고,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亂)을 평정, 명(明)나라에 호응(呼應)하여 건주위(建州衛)를 토벌하였다.
말년에는 그의 인간적(人間的) 고뇌(苦惱)가 컸던지 1465년에는 대원각사(大圓覺寺)를 창건하여, 간경도감(刊經都監)을 두어 불전(佛典)을 간행하였으며, 1468년 9월 왕위를 예종에게 넘기고 죽어 광릉(光陵)에 묻히었다.
또 정희왕후(貞熹王后)와의 사이에 2남1녀(二男一女)를 두었으니, 장남 덕종(德宗:추존)은 20세에 요절하고, 예종 또한 18살에 등극하여 1년 2개월 만에 돌아 가셨으며, 슬하에 의숙공주가 있었는데... 그 가 이 “보굴”로 숨어 들었다고 하시니... 믿을 수도 안믿을 수도 없는 일이라!
진실(眞實) 여부(與否)는 확인할 길이 없으니... 아쉬움을 뒤로하고 10여 분을 오르니, 암자나 다름없는 석문사(石門寺)가 반갑게 맞아 주심니다. 맞은편에 극락보전(極樂寶殿)이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형식으로 진좌(鎭坐)하고 있으며, 그 왼편 뒤로 산신각(山神閣)이 모셔져 있고, 입구에 요사채가 전부다.
우측으로 몇걸음을 더 오르니 거대한 “눈썹바위”아래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어, 아름다운 대자연을 슬기롭게 잘 활용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선두는 얼마쯤 갔는지 알 수가 없고, 후미(後尾)에 몇 몇 분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호젓한 山길을 터벅 터벅 걸어 오름니다.
낙엽은 지고 앙상한 나목(裸木)에 바람소리만 윙~ 윙~ 들릴뿐... 그 고적(孤寂)함은 극(極)에 달하는 구나!
대지(大地)는 마사토여서 소나무가 잘 자라 많으며, 낙엽수(落葉樹)들의 앙상한 가지 사이로 햇볕을 받으며 오르니... 기이(奇異)한 바위들이 도처(到處)에 흔하여서 모두들 탄성(歎聲)을 지르신다!
거대한 바위들이 수려(秀麗)하고, 미끈 미끈하여 보는 눈이 다 즐겁도다! 일기예보(日氣豫報)에 올들어 제일 춥다드니... 빈말이 아님을 느끼겠으며, 1시간 여를 올라도 땀이 나지를 않는다.
오를수록 시야(視野)는 점 점 넓어져 주위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오니... 막혔던 가슴이 후련해 지며, 거대한 전망 바위들은 넓고도 평평해서 마음에 평온까지 느껴진다. 후미에 김해진님, 황재덕님, 구윤서님, 행복님 등은 “이 맛에 산에 오른다!”고 하면서... 무척이나 밝은 표정들이시다!
또 등산로 중간에는 괴이한 바위가 있어... “공룡머리 같다!”, “뱀머리 같다!”, “강아지다!” 등 등 여러 가지 이름들을 붙여주며 저마다 한마디씩 하신다! 저 모양을 오래 오래 간직하여서 보는님들 마다 즐거움을 주어야 할 텐대...
그럭 저럭 헬기장(820고지)에 이르니, 동으로는 속리산의 연봉(連峰)들이 한낮의 태양빛에 찬란히 빛나서 장엄한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사방으로 이어지는 산들은 그야말로 중중첩첩(重重疊疊)하다!
후미와 중간팀들이 만나 가져온 과일과 떡을 나눠드시며 여담(餘談)으로 얼마를 쉬다가, 다시 30여 분을 걸어 백악산(百岳山 856m) 정상에 이르니... 까만 빗돌에 조그마한 정상표석(頂上標石)이 앙증스럽게 세워져 있다. 단체로 기념촬영을 마치고 잠시 주위를 조망(眺望)합니다.
백악산(856m)은 백두대간상의 대야산(931m), 조항산(954m), 청화산(984m)을 거쳐 눌재와 밤재 사이에서 서쪽으로 한 지맥이 뻗어나와 이곳 백악산에 이르고, 다시 낙영산(681m), 신산(528m)을 지나 상봉산(404m)에서 그 맥을 박대천에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백악지맥이라 한다.
또한 동북, 동남으로는 웅장한 “백두대간”의 산맥들이 연이어져 달리고 있어 참으로 장관이며, 속리산 천황봉(天皇峰)을 기점으로 그 물길은 동으로는 낙동강으로, 서남으로는 금강으로, 북서방향으로는 남한강으로 흘러드니... 과시(果是) 중원(中原)의 중심지(中心地)라 하겠도다!
게다가 속리산 정상부근에서 서북쪽으로 장구봉, 탁주봉, 선도산, 좌구산, 보현산으로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이 천상의 용마(龍馬)처럼 이어져 달리시니... 보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도다!
선발대는 805고지 부근에서 점심을 드신다고 빨리 오라신다. 20여 분을 더 걸어 선발대와 합류하니 식사자리가 마땅치 않아, 몇걸음을 더 올라 거대한 암반(巖盤)의 평평한 곳에 자리하여 김해진님, 황부회장님, 구윤서님, 행복님, 허여사님, 무량덕보살님 등이 한곳에 모여앉아 맛있는 점심을 드심니다.
한 낮에는 평상의 기온을 회복하였는지, 고요하고도 따사로운 햇살이 등을 쪼여 주시니 산행의 즐거움이 배가되는 것 같으며, 식사를 하면서도 주위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곳이라 신선(神仙)이 된 기분이다!
점심후 20여 분을 걸어 “보조삼각점”에 이르니 “대왕봉 5분거리”라고 적혀 있어 대왕봉으로 향합니다. 거대한 바위봉 옆에는 앙상한 “소나무고목”이 한 그루가 서 있어 대왕봉의 신비감을 더해 주시고, 행복님은 ‘곡예사’처럼 겨우 겨우 힘들게 고목을 타고 “대왕봉”에 오르신다.
대왕봉(大王峰 819m) 정상에는 전국 여러곳에서 주어 온 돌들로 탑을 쌓아 놓았으며, 주위의 조망(眺望) 또한 일품이다! 간단한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뒤쪽으로 나려와서 보니 바위 옆면에는 평평하고 넓적한 공간이 있어, 무속인(巫俗人)들의 영험한 기도처(祈禱處)일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30여 분을 더 걸어 “수안재”에서 다시 입석초교(立石初校) 방향으로 하산하니... 계곡은 길어서 그 여유로움이 예사롭지 않슴니다.
1시간 여를 걸어 나렸을까? 평온한 개울가에는 “마음을 닦는곳”이라는 팻말과 함께 외부인은 들어오지도 말라시니... 이래 저래 진퇴양난(進退兩難)이로다!
마음도 그릇처럼 닦는 것인가...!
청산(靑山)은 닦지 않아도 푸르고
창공(蒼空)은 물들이지 않아도 푸른데
오욕(五慾)에 찌든 때를 씻을 것이지
형체도 없는 마음을 어찌 닦겠노!
단기 4343년(서기 2010년) 11월 28일
상주시 화북면(化北面) 백악산(856m)을 가다.
|
첫댓글 구구절절 추억이 되 살아나고 등산의 묘미를 만끽하였고...산행 후기가 겯들이니 금상첨화라 하겠다..
황까페지기님! 당일 추운날씨에 후미에서 진행을 도우시느라 수고 많았슴다! 늘 보이지 않게 산악회 발전을 위해서 수고하심에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황까페지기님, 매산님, 취산님 세분의 사진 자료를 많이 활용하였으며 이점 깊이 감사드림니다.
회장님의 산행후기를 읽는것은 백악산을 또한번 오르는듯 합니다.감사드립니다.
매산님의 격려가 큰힘이 됨니다! 앞으로도 좋은사진 많이 올려주시길 바라오며, 산행 협조에 늘 감사드림니다.
고회장님 오랜만에 시간이되어 산행 후기를보니 지난산행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갑니다. 산행후기까지 마무리 하시는 훌륭하신 고회장님 정말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새해도 건강하시고 복많이 받으시고 좋은일만 많이많이 있기를 기원드릴니다,
최대장님! 진작 안부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그동안 가사일로 바쁘기도 했고, 또 컴퓨터가 고장을 일으켜 한동안 남산카페에 들리지 못했슴니다. 이점 널리 이해를 구하면서... 앞으로도 남산의 발전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 주실것을 당부드립니다.
사진과 함께 후기 감사합니다...
별이님! 너무 오래간만에 뵙슴니다. 건강은 좋아지셨는지요? 6월 산행때는 뵐수 있었으면 좋겠슴니다. 내내 평안하시길 바람니다.(별이님! "학"자를 "두"자로 바꿔 올렸으니... 이해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