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권 섬 안내
@ 한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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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려수도의 풍광을 비춰주는 하늘의 태양. 그리고 성웅(聖雄) 이순신(李舜臣)장군의 구국 충절의 정신이 띄워 올리는 태양. 이렇게 두 개의 태양이 떠오르는 곳이 바로 한산도다. 그래서 한려 해상국립공원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지만 자연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한삼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되는 충무공의 우국심정이 담긴 시조로 더 잘 알려진 역사의 장이기도 하다.
통영항 에서 출발, 한산도 제승당을 향하다 만나게 되는 죽도(竹島)와 해갑도(解甲島). 「대섬」이라고도 하는 죽도는 장군이 화살을 만들기 위해 대밭을 육성하던 곳이며, 해갑도는 적을 무찌르고 갑옷을 벗은 채 더위를 식히며 피 묻은 칼을 씻었다는 섬이다. 충무공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의 중심지 다운 지명들이다. 그리고 거북등대. 암초 위에 거북선 모형으로 올라앉은 이 등대는 만조때 는 암초만 감쪽같이 잠겨 물위에 맨몸으로 뜬 거북선만 보이게 된다. 임진왜란 때는 이 암초 때문에 왜선의 파손이 잦았단다.
섬에 오르면 곧 바로 들어서게 되는 사적 제113호 충무공 유적지. 잘 생긴 노적송(老赤訟)과 동백나무의 환영을 받는다. 이 곳에는 임진왜란 당시 충청, 전라, 경상의 3도 수군을 거느리고 전투를 진두 지휘한 이순신 장군의 사령부였던 운주당(運籌堂) 자리에 세워진 제승당(制勝堂)과 망루 역할을 했던 수루(戍樓), 군사들이 활쏘기를 연마하던 한산정(閑山亭) 등이 깨끗하게 단장돼 있다. 수루에 오르면 제승당이 있는 한산만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죽도와 해갑도, 거북등대, 왼쪽 문어개 언덕에 있는 한산대첩비 까지 한 눈에 잡히고, 고동을 불어 이 곳 수루와 연락하던 염호리 의 고동산(해발 188m)도 마주 보인다.
한산만은 바닷물에 침수돼 형성된 골짜기인 익곡 만으로서, 움푹한 그 모양새가 마치 게의 집게다리 같다고 얘기들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의 입구는 아주 좁고 만의 안쪽은 넓은 것이 특징이다. 거기다 입구에는 죽도와 해갑도 가 가로막고 있어 바깥 바다인 통영만 에서 볼 때는 한산만의 크기나 모습은 물론, 만이 있는 지, 없는 지조차 알아보기 힘들다. 바로 이러한 지형조건이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의 해전에서 승리를 이끌어 낸 주요인이 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위인을 낳은 격전의 바다는 역사로만 남은 채, 지금 이 곳 바다는 맑고 푸른 물을 자랑하는 수산관광자원의 보고가 됐다. 미국 FDA가 인정하는 청정해역으로서 굴, 우렁쉥이, 미역, 진주패 양식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사철 끊이지 않는 관광객의 발길로 온기(溫氣)가 자욱하다.
그 옛날 승전고를 울리게 했던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은 갯바위 낚시꾼들로부터 전국 제일이란 호평을 들을 정도로 유명한 낚시터가 됐다. 한산도 앞바다까지 내려오는 통영과 거제도 사이의 견내량 해협은 노래미, 광어, 돔이 올라오는 천혜의 낚시터다. 연평균 기온도 14도 정도여서 섬 전체를 덮고 있는 잘 자란 난 온대성 수목의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제승당을 둘러보고 창좌리 입정포 마을 앞바다에 나와 서니, 한편의 그림처럼 떠있는 작은 섬이 눈길을 끈다. 여윈 해송 몇 그루, 그리고 그 푸른 가지마다 빈틈없이 둥지를 틀고 앉은 하얀색의 왜가리떼가 인상적인 섬, 장재도(藏財島)다. 재물이 감추어져 있다는 구전 대문에 붙이게 된 이름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거의가 「생이섬」으로 부른다. 가난한 효자 아들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지 못해 바다에 나와 울고 있을 때 이 섬이 떠 내려와 그렇게 부른다고도 하고, 흰 꽃으로 치장한 예쁜 꽃상여를 닮아서 그렇게 부른다고도 한다. 지금은 왜가리 떼의 번식이 섬의 수용 한계를 넘어서인지, 둥지를 받치고 있는 소나무가지들이 시들어 가고 있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매력 포인트> 제승당에서 내려 한산도를 운행하고 있는 버스로 섬을 일주할 수 있고 차를 싣고가 호수같은 바다를 감상하면서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또다른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 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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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남동쪽 뱃길로 18㎞ 해상에 위치한 이 섬은 한려수도 수많은 섬들 중 가장 부자(富者) 섬으로 알려져 있다. 멀리서 보면 우뚝 솟거나 움푹 파인 곳 없이 나즈막 하고 길쭉한 형태가 마치 반석 위에 엎드린 전복처럼 보인다.
옛 부터 대나무가 많아 죽도라 불리는 이 섬은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물리칠 때 병장기의 재료로 대나무가 사용될 때 병장기의 재료로 대나무가 사용될 만큼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는 마을 당산에서만 볼 수 있다. 그러나 죽도의 산속에는 아직도 야생 방풍등 약초가 무성하고 후박나무와 동백나무 등 각종 수목이 자생하고 있다.
추봉도 와 한산 본도를 바라보며 독불장군인양 홀로 버티고 서서 사납게 달려드는 파도와 대치하고 있는 죽도. 동으로 거제도 남부와 장사도, 남으로는 대덕도, 가왕도, 매물도 등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섬들과 어우러져 있다. 일반적으로 어촌이라면 바다로 쑥 내민 양쪽 치 사이 오목하게 들어간 갯가에 마을이 자리하지만 죽도 자림 마을은 가파른 산을 등지고 바다로 돌출된 곳에 위치한 탓에 선착장의 모습이 다른 마을과는 사뭇 다르다. 거친 파도를 막아 주는 방파제 역할의 바깥 선창과 배를 수리하고 정박하는 안 선창, 2중 구조로 돼 있어 태풍의 피해가 거의 없으며 주의보가 내릴 경우에는 인근에서 조업하던 선박들도 이 곳으로 대피한다.
여객선에서 내려 선창 둑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 얼핏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모양의 정자나무가 눈길을 끈다. 마치 동네 어귀에서 근엄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장승처럼 마을의 수문장이라도 되는 듯 방문객을 맞이한다. 둘레 1.5m, 높이 10m 남짓한 이 포구나무는 누가 언제 이 곳에다 심었는지 알 수 없지만 긴 세월동안 모진 바람과 거친 파도를 견디며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탓에 마을 주민들은 당산목(堂山木)으로 신봉하며 해마다 제를 올린다. 마을단위의 행사는 물론 특히 3년마다 풍어와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별신굿이 열릴 때면 이 곳 당산나무 아래에 굿청 을 마련한다. 마을 어른들이 말하길 안개가 자욱하게 낀 이른 새벽이면 연못에서 신비스런 서기(瑞氣)가 피어오르고 선녀(仙女)가 목욕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주민들은 아직도 이 연못을 신성시하며 당산제와 안택제를 이 곳 에서 지낸다.
마을 뒷산에는 수백년 수령을 자랑하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잣밤나무, 동백나무가 빼곡히 에워싸고 있다. 옛날 이곳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이 이 산을 진산(鎭山)으로 삼고 풍년과 풍어를 기원했다는 산신당이 자리하고 있다.
물 좋고 인심 좋아 축복받은 땅이라 불리는 죽도는 옛부터 부촌(富村)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이 자리한 산등성이를 제외하고 나면 섬 전체가 깍아 지른 듯한 벼랑으로 농토라야 산기슭에 일군 척박한 농토가 전부인 이 섬이 부촌이 된 것은 일찍부터 주민들이 눈을 돌려 어업이 성했기 때문이다. 특히 죽도 서해 해안과 호두 동쪽 같 설비사이인 좁은 해역인 성남도 는 삼치, 방어, 숭어, 농어 등 각종 어종 들의 이동통로를 황금어장이 형성돼 주민들은 물론 최근에는 낚시꾼들 에게도 각광받는 곳이다. 또한 미역, 우무가사리, 조개, 볼락, 감성돔 등 인근 해역의 풍부한 어족을 이용해 일찍부터 부촌을 이루었다.
먼 바다에서 굼실거리며 몰려오는 파도가 암벽에 부디 쳐 부서지는 소리가 우렁차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에는 어부들이 올린 만선의 깃발이 바람을 가르고 고깃배를 따라 어지럽게 춤추는 갈매기의군무(群舞)가 바다의 낭만을 더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질퍽한 삶을 자연 속에 묻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있는 죽도에 가고 싶다.
<매력 포인트> 죽도 서쪽 해안과 호두 동쪽 끝 설비사이인 좁은 해역인 성남도 는 삼치, 방어, 숭어, 농어 등 각종 어종 들이 이동통로로 황금어장이 형성 되 주민들은 물론 최근에는 낚시꾼들에게도 각광받는 곳이다. 또한 미역, 우무가사리, 조개, 볼락, 감성돔 등 인근 해역의 풍부한 어족을 이용해 일찍부터 부촌이 되었다.
@ 용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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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시 한산 면의 이 섬은 용이 모래밭에 내려앉았다는 전설과 나무보다는 풀이 많다고 해서 용초도 라 불린다.
1952년 5월경부터 54년 말까지 약 3년간 미군과 국군이 주둔하며 설치됐던 포로수용소 터가 남아 있다. 막사 사이 사이에 이중 철조망과 원형 철조망 벽이 설치될 정도로 삼엄한 경비가 이루어지던 수용소로, 지금은 30여 평에 3칸씩 마주보고 서있는 6칸 짜리 돌 시멘트 막사 흔적만이 남아 지난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이끼와 풀떼에 뒤덮인 채 전후 50여 년의 세월을 버텨 온 수용소 터는 그 음습한 기운 때문에 눈 앞에 펼쳐지는 따사로운 섬 풍경이 그만 무색해진다. 사람이 드나들기에는 너무 낮다 싶은 높이에, 폭격에도 끄덕 없을 듯한 30㎝ 가량의 칸막이 벽 두께가 「가장 악질적인」 포로를 수용하던 곳이란 기록을 실감나게 한다. 한낱 쓸모 없는 구덩이로 남아 섬 새들과 잡풀의 놀이터가 되고 있는 용초 마을 뒷산의 수용소 물탱크. 10m 지름에 5m가 넘을 것 같은 그 콘크리트 구덩이에서 지울 수 없는 우리역사의 상처를 본다.
동북 쪽으로 조망되는 추봉도 와 함께 설치됐던 포로수용소는 마을 주민들을 인근 섬지역으로 강제 소개(疏開)시키면서 세워져 당시 이 곳 원주민들에 많은 고통을 안겨 준 것으로 전해진다. 약 2천명을 수용했다고 하니 섬 전체가 수용소나 다름 없는 상당한 규모였음에 틀림없다. 이렇듯 쓰라린 역사를 지닌 이 섬에도 기분전환을 위한 아주 귀한 경관이 있다. 주민들이 「되머리」라 부르는 용항 마을에 우리 나라에는 하나뿐인 금빛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 금사장(金沙場)은 아무리 걸어도 길이 줄지 않는 것 같다 하여 「진발치」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모래밭 위에 한산초등학교 용호 분교가 아담하게 서있어 이국적인 정취를 풍긴다. 또 해변에 있는 삐죽삐죽한 너설 「굴강정」에는 이 곳 에서 불을 때면 용초 마을의 끝부분에 있는 푸른색 의 바위해안 모서리 「청동이치」에서 사흘 후에 연기가 나온다는 재미있는 구전이 있어 흥미롭다.
<매력 포인트> 1시간 남짓 걸리는 곳에 있는 섬으로 행정구역상으로 통영시 한산면 용호리로 불리는 용초도 는 위로는 한산도, 아래로는 비진도로 둘러싸여 있다. 비진도와 함께 감성돔 명당자리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섬 전역에 미역 양식장이 널려 있다.
@ 비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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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사투리로 뭍에서 툭 비져 나온 곳「비진 곳」이라 하여 비진도라고 불린다는 섬. 통영 항을 출발, 50분 바닷길을 달리면서 만나는 한려 해상국립공원의 맑은 풍취와 지루할 겨를 없이 수다거리를 제공해주는 장군바위, 복바위, 각시여 등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그러하고, 섬에 올라 맞는 일몰과 일출의 황홀함이 무딘 뭍 사람의 마음을 아름다움에 젖게 하기 때문이다.
옛부터 경치가 수려하고 섬 주변의 기암괴석과 진귀한 산야초, 해산물이 무진장으로 생산되어 보배에 견줄만 하다고 알려져 온 섬. 말 그대로, 이름 그대로인 섬, 비진도.
비진도는 내향봉(해발 203m) 아래 안비진 과 선유봉(311m) 능선을 따라 누운 바깥비진을 양쪽 무게중심으로 삼은, 전체면적 4.1㎢의 마치 아령같이 생긴 섬이다. 오목한 아령의 손잡이에 해당하는 해안이 바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비진도해수욕장. 양쪽 해안변 을 감아 돌아 보면 약 1㎞ 길이에 7천평 넓이의 백사장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바다를 바라보다 등 뒤에서 들리는 파도소리에 몸을 돌리면 또 거기, 흰 모래 해변과 바다가 있는 독특한 지형의 해수욕장이다. 이러한 섬 생김새 덕에 한자리에 앉은 채로 바다의 일출과 일몰을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거기다 연중 기온차가 심하지 않은 난온대 해양성 기후인 이 섬에는 생달나무, 동백나무, 후박나무, 참식나무, 마삭줄나무, 광나무, 해송 등이 1㏊의 숲을 이루고 있어 요산자(樂山者)들에게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나무 얘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비진도 팔손이나무다. 팔손이나무는 동아시아 난대기후 지역의 상록활엽수. 이곳 팔손이나무는 자생지로서는 북방한계선에 있다는 이유로, 지난 62년 천연기념물 제 63호로 지정돼 한때 통영군목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금은 비진도 해안서 무리 지어 자생하면서 수백 년 연륜의 자태를 뽐내고 있는 동백나무에 통여시목의 자리를 준 채 학술적 가치를 따져 보호받고 있다. 아무튼 동백나무와 더불어 한때 흔했다는 춘란, 석란, 풍란 등 희귀난을 찾아보거나 상투바위, 맷돌바위, 용바위 등 형상을 본떠 이름 붙인 해안 변 바위들의 모양새를 즐기면서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 재미도 만만찮다.
오래 전 고기잡이에 나섰던 일본인들이 표류하여 이 섬에 내리게 되었을 때 섬 여인들이 너무나 예뻐서 일본말로 미인을 일컫는 「비진」이란 이름을 붙여 부르게 되었다는 섬. 낚시든, 해수욕이든, 혹은 애인과의 데이트를 위해서든 무엇을 목적으로 했든 간에, 비진도 상륙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위의 두 가지 지명 유래 중 뭔가 모르게 미감(美感)이 실린 후자의 설을 믿고 싶어할 게다.
늦가을부터 음력2월 영등철까지 감성돔이 잘 올라오기로 소문난 남쪽 노루여 들머리 입구는 낚시꾼들이 자리 다툼하는 유명 포인트, 앞쪽의 긴출여와 오른편의 문둥여가 조화를 이루어 감성돔의 황금놀이터로 알려져 있다. 참돔, 혹돔, 돌돔, 볼락, 열기, 도다리, 광어, 노래미, 농어 등도 올라온다.
<매력 포인트> 비진도는 두 개의 섬을 잇는 천해의 해수욕장이 자랑거리다. 물이 맑기가 그지없고 은빛 모래는 부드럽다. 남북으로 나눠진 안 섬과 바깥 섬 사이에 곱게 쌓인 모래 톱에 송림까지 두른 비진도해수욕장은 남해안에서 최고의 걸작품이다. 이 곳은 맑은 바닷물과 자연경관이 좋아 강태공이 즐겨 찾는 곳으로 바다낚시는 물론 외항마을 앞 해변에서는 성게, 조개, 해삼 등을 잡을 수 있어서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놀이터로도 좋다.
@ 매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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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려 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움에 대미를 장식하는 섬. 바다와 섬이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해 그린들 이만한 그림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은 감흥에 벅찬 숨을 토하게 하는 곳이다. 경치가 아름다워 해금강 못지않다 해서 해금도라 불리기도 하는 섬.
한려 해상국립공원으로 이름 나기 전에,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가볼 수 있는 곳이 되기 이전에도 이미 이 섬의 경관은 소문나 있었던 모양이다. 명승지에 대한 중국제 인정마크처럼 「서불과차」란 글의 흔적이 남은 곳이기 때문이다. 서불과 차는 진시황의 신하 서불이 9척의 배에다 3천명의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데리고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러 왔다가 소매물도의 풍치에 반해 남겼다는 글귀다. 거제 해금강의 것과는 같은 전설을 지닌 셈이다. 선착장서부터 가파르게 난 마을 안길을 지나 섬 꼭대기인 망태봉에 오르면 해적의 동정을 살피던 무너진 망대와 폐교된 소매물도 분교가 나타난다. 방풍을 목적으로 조성됐을 빽빽한 동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작은 학교는 아름다운 비밀의 정원을 엿보는 기분을 갖게 한다.
이곳 서는 이웃한 대매물도의 옆구리와 어유도, 가왕도, 대덕도, 소덕도가 한눈에 잡힌다. 눈을 돌려 남쪽을 바라보면 한달음에 뛰어 건널 듯한 등대섬 그리고 구을비도, 국도, 대마도까지 조망해 볼 수 있다. 등대가 있는 섬중 가장 아름답다는 소매물도 등대섬은 열목개를 사이에 두고 소매물 본도와 떨어져 있다가 간조 때면 자갈밭을 물위로 드러내며 잠시 한 몸이 된다. 일광욕하듯 망태봉의 판판한 너덜겅에 자리잡고 앉아 옅어지는 물색과 함께 서서히 제 모습을 갖춰 가는 열목개를 감상하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다. 70m 열목개 자갈길은 여름철에는 해수욕장으로도 썩 호평을 받는다. 잔디로 뒤덮힌 초전(草田)의 등대섬은 그렇게 막 씻은 자갈로 길을 깔아 방문객을 맞는다.
해금강이 여성이라면, 소매물도 등대섬은 남성이라고 했던가. 깍아지른 절벽에 저마다 근육을 자랑하며 서있는 바위들, 고르고 섬세한 무늬로 이어붙인 바위병풍이다. 그 위에 형제바위, 용바위, 부처바위, 촛대바위 등 바위입상이 바다를 내려다 보고 섰다. 부처바위 옆에는 3개의 암벽 봉우리가 치솟아 있고 그 아래 높이 7m, 너비 5m 정도의 굴이 뚫려 있다. 바로 그 천장에 「서불과차」가 새겨졌다해서 글씽이굴이라 하고 세 암벽을 가리켜 글씽이벽 혹은 세글씽이라 한다. 그 외에도 가족 군상같이, 벗은 여인의 와상같이, 혹은 부처님의 반가상같이 보이는 화려하고 다양한 형상의 천연돌 조각들이 저마다 자랑을 한다. 더불어 부이를 띄우고 자맥질하는 해녀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곳 전복, 소라, 돌미역 등은 통영의 특산물로 귀하게 대접받는다.
소매물도나 등대섬은 어디랄 것도 없는 천혜의 갯바위 낚시터. 봄 여름에는 참돔, 농어, 볼락, 돌돔, 가을 겨울에는 삼치, 감성돔 등의 손맛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매력 포인트> 통영시 한산면에 위치한 섬으로 통영에서 20㎞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잘 알려져 있는 섬으로, 대매물도와 이웃해 있는데 두 섬은 거제도의 해금강에 버금가는 절경을 이룬다. 특히 인가가 몰려 있는 서북쪽을 제외한 삼면에 수 백m 높이의 기암절벽이 늘어서 있어 통영 유람선협회에서 운항하는 유람선을 타고 일주 유람하는 멋이 일품이다.
@ 연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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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 산양읍 연대도는 해수욕장과 낚시터로 유명한 총면적 1.4㎢의 섬이다. 산양읍의 남쪽 끝. 달아에서 배를 타면 15분만에 도착한다.
북쪽으로 병풍처럼 동서로 길게 떠있는 학림도와 저도, 송도가 보이고, 그 너머 달아공원이 자리잡고 있는 미륵도가 육지처럼 거대한 그림자로 떠있다. 동으로는 까마귀섬 오곡도와 비진도, 용초도, 한산도 등 한려 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섬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남쪽바다는 시원스레 뚫려있다. 내부지도(內夫支島)와 외부지도(外夫支島)가 바닷새들의 쉼터처럼 조그맣게 떠있는 정도다. 부지도(夫支島)란 알려지지 않은 섬이란 뜻의 부지도(不知島)에서 와전된 이름이라고 한다. 툭 트인만큼 서북쪽, 동쪽의 바다 풍경과는 다른 느낌이다. 거친 해변과 큰 파도가 아기자기한 북쪽 바다와는 대조적이다.
마을 등 너머에는 해수욕장으로 소문난 몽돌 해변이 펼쳐져 있다. 까만색 몽돌은 신경통에 좋다고 하여 여름철이면 햇빛에 달궈진 몽돌에 몸을 눕히려고 찾는 피서객으로 북적댄다.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 위하 수군들이 왜적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섬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 봉화를 올렸다고 해서 연대도란 이름이 붙게됐다. 해발 220m 가량의 섬 정상은 보통 연대봉이라고 하는데, 삐죽삐죽 연꽃잎처럼 생긴 봉우리 탓에 연화봉(蓮華峰)이라고도 부른다.
연대봉에 서면 섬 주변의 경관을 환히 볼 수 있다. 우선 서북쪽으로 한 몸처럼 가까이 떠있는 만지도가 보인다. 두섬 사이의 좁다란 해협은 아무리 기세 좋은 파도도 기가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조아 붙여져 있다. 자라목처럼 갑자기 잘록해진 이곳 자단목은 낚시꾼들의 아지트가 됐다. 연대봉을 뒷산 삼아 둥지 틀고 앉은 마을에는 섬지역에서는 드물게 보는 비석 「서경돌효행비(徐慶乭孝行碑)」가 있어 흥미롭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패총도 발굴된 바 있다. 해변 경작지에서 패각과 함께 토기파편이 출토되면서 섬 전체에 유적이 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을 남서쪽 500m 거리에 있는 딴여는 물이 빠지는 썰물때면 사람이 건너다닐 수도 있어 배 없이도 드나들 수 있는 천연의 바위섬 낚시터다.
<매력 포인트>통영에서 1시간거리. 한려페리호를 타고 달리면 다가오는 섬의 색깔과 모습이 여느 섬과는 다르게 다가선다. 흑갈색 몽돌 해수욕장을 허리에 끼고 짙은 잉크색 바다가 달려온다. 이 섬은 한산도의 문지기 섬으로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투를 알려 준 섬이다. 섬 주위에 전복, 해삼 등 좋은 수산물이 많다.
@ 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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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 있는 소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해서 소섬, 즉 우도란 이름을 달게 됐다. 행정구역상 통영시 욕지면 연화리, 해상 5백m 거리에 있는 이웃 연화도가 가진 불교적 색채 탓인지 언뜻 불화에 등장하는 소를 떠올리게 한다.
우도의 첫인상은 바람이다. 강한 바람 탓에 높이 친 돌담이 우선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섬 전체를 뒤덮고 있는 소나무도 거센 바람을 피해 다들 나즈막한 키를 가졌다. 그나마 천연기념물 제 344호로 지정돼 있는 마을 옆의 생달나무 세 그루와 후박나무 한 그루가 15~20m의 키를 자랑하며 신목(神木)으로서 대접에 걸맞는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상록활엽수로서 길고 둥근 잎을 가지고 있는 두 나무는 거의 닯은 꼴일 정보로 구분이 잘 안간다. 게다가 후박나무는 4백년쯤 수령이 되었을 것으로 알려진 제일 큰 생달나무에 엉키다 시피해서 자라고 있다.
껍질이 한약재로 쓰인다는 후박나무는 서낭림 이었기에 겨우 몸을 보전할수 있을 정도로 훼손이 심하며 요즘 육지에서는 보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곁의 생달나무와 엉켜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수백년의 신고(辛苦)를 겪은 생달나무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전체 수관은 15m 정도. 전남 보길도의 후박나무와 함께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에 속한다.
우도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구멍섬이다. 한자말로 혈도(穴島)라고도 하는 이 바위섬은 마을 뒤편으로 돌아가면 보인다. 섬전체로 보면 소의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곳으로 구멍은 가로 세로 4m정도로 네모 반듯하게 잘 짜여진 분할로 빚은 자연의 솜씨다. 거기 또 하나의 재미는 그 각진 틈을 통해 보는 바다 원경. 어느 능숙한 카메라맨이 그런 구도를잡아낼 수 있을까?
구멍섬은 돌돔의 갯바위 낚시터로도 알려져 있어 고기뿐 아니라 풍취도 즐길 줄 안다고 자부하는 조사(釣師)라면 한번쯤 찾아볼 만하다.
<매력 포인트> 민박을 하면서 선착장에서 가볍게 낚시를 해도 재미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볼락도 잘 낚이며 흐린 날 주간에는 벵에돔 입질도 잦은 편이다. 구멍섬은 돌돔의 갯바위 낚시터로도 알려져 있어 고기뿐 아니라 풍취도 즐길 줄안다고 자부하는 조사(釣師)라면 한번쯤 찾아볼 만하다..
@ 연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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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핀 연꽃이라는 뜻의 연화도. 북쪽바다에서 바라보는 섬의 모습은 꽃잎 한잎한잎 겹겹이 봉오리 진 연꽃 같다. 매끄러운 구석이라곤 없이 풍성한 입체감을 자아내며 섬 풍경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아니나다를까, 동머리 혹은 네 개의 바위가 어울린 곳이라 하여 「네바위」라고도 하는 섬 동쪽은 제멋대로의 자연만을 익히 알고 있는 육지사람들의 넋을 빼앗기에 충분할 정도다. 기암괴석이 길게 연달아 우뚝우뚝 솟아 있는 절경이 파도치고 갈매기 날 때는 더욱 장관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구름을 가르며 위용을 자랑하는 바위 장도(長刀). 그 단애의 꼭대기에 날카로운 자존심처럼 서있는 낙락장송 한 그루가 기이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부동(不動)의 바위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절경의 조건을 채우는 완벽한 조화다. 반대편 서쪽 끝머리에는 먼 바다에서 보면 순풍에 돛을 달고 가는 배 모양이라 해서 돛여라고도 하는 촛대바위가 눈길을 끈다. 이윽고 섬에 내려 정상 연화봉(해발 210m)에 올라 내려다 보면 섬은 마치 커다란 용이 물을 뿜으며 승천하려 하는 형상을 하고 있어 부용같아 보이던 원경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연화도에는 섬이름과 관련, 실제 기록이 남은 옛날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4백여년전 연산군의 억불(抑佛)정책이 심해지자 서울의 실리암의 고승이었던 연화도인은 자신을 따르던 비구니 3명과 함께 이 섬에 은둔하게 된다. 다시 이곳에 실리암을 짓고 수도하던 연화도인은 입적하면서 자신의 시신을 수장(水葬)할것을 유언하는데, 바다에 버린 도인의 몸이 한 송이 연꽃으로 변하더라는 것. 그로부터 섬의 이름은 연화도가 됐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때마침 해탈을 위한 길을 찾던 호국승 사명대사와 그를 찾아 전국을 헤매던 대사의 누이 보운, 약혼녀 보연, 대사를 사모하던 보월 등 세명의 여승이 섬으로 건너오게 된다. 그러나 사명대사는 뛰어난 예지로 닥쳐올 임진왜란에 대비, 남해의 섬들을 두루 살피고 서산대사를 만나러 묘향산으로 떠난다. 그가 떠난 후에도 계속 섬에 남아 있던 세 여승은 신출귀몰한 신통력을 지닌 「해상사호」라는 도인을 만나 심오한 비법을 배우게 되고, 해상에서 우연히 만난 이순신장군에게 조선법, 해상지리법, 천풍기상법 등을 가르쳐 준다.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장군은 비범한 이들 세 여승을 일컬어 자운선사라 부르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지난 75년 전남 순천 문화원이 발간한 「순천승주향토지」에 상세히 수록돼 전한다. 섬 정상인 연화봉에는 그 옛날 연화도인이 수도하던 실리암 자리와 사명대사가 수도했다는 토굴(높이 2m, 너비 2m)이 남아 있어 기록을 뒷받침하고 있다.
암자 자리에는 섬주민이 정월 초하루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동제를 지내는 서낭당이 세워져 있으나 여전히「실리암」이라 불리기도 한다. 서낭당 안에는 당신처럼 모시는 둥근 돌이 한점 있는데, 우리나라 어디서도 볼수 없는 경우여서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다. 이 섬의 부두 맞은편 낮은 언덕에 있는 서낭당은 「군장패」라 일컬어지고 있는 민속법정이다. 여기서 죄의 혐의자를 심문하고 자백을 받아 내었다. 또한 토굴 옆 넙적바위에는 어느 고승이 섬의 번창을 위해 손가락으로 썼다는 부(富), 길(吉), 재(財) 등 세글자가 뚜렷이 남아 있다. 이래 저래 불교와는 인연이 깊은 섬이다.
전체변적 3.41㎢의 제법 큰 섬인 연화도는 집집마다 우물이 있을 정도로 물이 흔한데다 전국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멸치와 전복, 해삼 등 특산물로 수확을 올리고 있어 그 고승의 기원도 헛되지는 않은 셈이다.
소엽풍란의 자생지이기도 하며 네바위가 있는 동머리 주변과 서쪽 촛대바위는 소문난 갯바위 낚시터, 돌돔, 감성돔, 볼락, 망상어, 광어, 노래미, 농어, 열기 등의 다양한 손맛을 즐길수 있다.
<매력 포인트> 바위 일대의 경치가 좋고, 기암괴석과 어울린 모습이 절경이다. 연화도 역시 통영에서 가깝고 주변 여건이 좋다. 남동쪽 연안이 모두 포인트 구실을 한다. 촛대바위 일대는 물속 여가 발달해 있으면서도 수심이 깊고 조류가 빠른 덕분에 낚이는 어종의 씨알이 굵다.
@ 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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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삼덕이나 산양 관광도로에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추도는 먼 옛날 화산의 용암이 분출돼 형성된 기암괴석으로 뒤덮여 있다. 2.5㎢의 면적에 희망봉이라고도 하는 큰 산과 작은 산 등 2개의 산을 축으로 대항, 미조, 샛개, 물개 등의 마을이 터를 잡고 있는 추도는 섬지역에서는 귀하디 귀한 논이 있어 이 섬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아무데나 구덩이를 파면 물이 나올정도로 수원이 풍부한 탓에 자연스럽게 논을 일구어 농사를 짓게 된 것이다. 특히 산 중턱에는 지하수량이 더 많아 논은 모두 산중에 있는 셈이다. 또 큰산과 작은 산 사이의 골짜기에는 물이 마를 날이 없다.
섬의 서쪽 끝 미조마을 앞 바닷가에는 천연기념물 제 345호로 지정된 수령 3백년의 후박나무 한 그루가 민가의 담장을 등지고 서 있다. 바다를 향한 언덕 위에는 수평으로 자라다 한 가지가 위로 자라고 있는 상태라 마을사람들은 「사대부나무」라고 높여 부르며 서낭으로 숭배하고 있다. 굵은 자갈이 깔린 바다쪽으로 동백나무, 느티나무, 돈나무, 꾸지나무, 그리고 보리똥나무, 개머루, 하늘타리 등의 덩굴들이 이리저리 엉켜 자라면서 지체높은 후박나무의 바람막이 역활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나무 구경을 끝낸 후 숲을 빠져나와 해안으로 나서면 용암이 분출 됐음이 증명되는 볼거리가 나타난다. 얼금숨숨 얽은 자국을 드러놓고 있는 섬의 옆얼굴은 해안선을 따라 흔들바위, 오지바위, 농바위, 가마바위, 북바위, 수리바위 등 그 이름에 걸맞게 기암괴석의 인물들이 가지가지다. 용암이 땅속의 바위와 바위 사이에 들어가 굳어져 만들어진다는 관입암이 해변에서 마치 용머리 같은 형상으로 서 있는 것을 보고 나면 미조마을 앞이 해안을 용머릿개, 용두포라고 부른 것이 이해될 것이다.
<매력 포인트> 통영시 남서쪽에 위치한 섬이다. 서쪽에 용의 머리를 닯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용두암이 있는데 본 섬과 붙듯이 떨어진 곳으로 감성돔과 볼락 자원이 풍부해서 가을부터 이듬 해 봄까지 어종을 달리하면서 낚시꾼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특히 추도에는 물메기가 많이 잡혀 싱싱한 물메기회를 맛볼 수 있다.
@ 두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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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 욕지면을 이루는 섬 무리 중 가장 북쪽에 떠있는 섬 두미도. 4.43㎢ 넓이로 꽤 큰편이어서 근방의 섬 중에서는 우두머리격에 속하는 섬이다.
불교색을 띤 두미라는 섬 이름은 불가의 「극락세계 연화대의 두미를 욕지코자 하거든 문어세존하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단지 구전일뿐 그 근거가 알려진 바는 없다. 아무튼 욕지면이란 동일 행정구역내 이웃에 떠 있는 욕지도, 연화도, 우도 등과 얽혀 경전의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종교적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임에는 틀림없다.
이 섬에는 남쪽과 북쪽 해안을 따라 4~5개씩의 뜸이 형성돼 있는데 크게는 꿀밭기미와 절개 등 2개 마을로 나누어 진다. 투구봉, 독메, 당산, 사다리봉 등 크고 작은 산이 섬 전체에 두루 널려 있어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한 섬마을 분위기를 낸다. 섬 주위를 둘러보면 욕지도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동남쪽 바다를 점점이 메우고 있는 가운데 북쪽으로 사량도의 지리산 옥녀봉이 연하게 보인다. 멀리 감 잡을 듯 말듯 흐릿하게 보이는 옥녀봉 탓에 두미도의 혼례에도 사량도와 같이 대례를 생략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대례를 치른 부부는 처녀로 죽은 옥녀의 분노를 사 금실이 나빠진다고 믿기 때문.
두미도의 자랑거리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기로 유명한 이 섬의 샘물은 꿀밭기미와 절개쪽에 각각 한곳씩 있다. 꿀밭기미에 있는 감로수는 바위틈은 흘러내리는 석간수로, 이 샘터 아래에서 높이 약 30cm의 금부처가 발견돼 섬 이름이 주는 불교색을 더하고 있다.
절개의 샘은 장군수로 불리는데 통영섬지역 전설속에 자주 등장하는 설영장군이 마신 물이라 하여 갖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섬 남동쪽의 용머리, 삼각바위 주위는 씨알 굵은 감성돔과 볼락이 올라오는 포인트로 알려져있다.
<매력 포인트) 사실 남해 미조에서 거리가 가까운 두미도는 전국 낚시대회가 열릴만큼 유명포인트가 산재한 섬이다. 감성돔을 비롯해서 농어, 망상어, 볼락, 돌돔, 혹돔, 벵에돔 등이 많이 낚이는데, 밤낚시를 하면 볼락 떼를 만날 수 있다. 감성돔을 노릴 경우에는 섬 서남쪽 일대가 유명한 곳이다.
@ 노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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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 욕지면 북쪽에 자리잡은 노대도는 120~450m 폭의 자라목 같은 해협을 끼고 상노대와 하노대로 나뉘어져있다. 옛날 해오라기가 서식하고 있었다하여 노대도(鷺垈島)라 하였으나 일제때 쓰기 편한대로 지금의 한자(老大島)로 표기하게 됐다고 한다.
노대도 주변 바다는 온통 양식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해안 굽이굽이마다 동네가 하나씩 들어앉았다고 할 정도로 사람살이가 풍성해 보인다. 연평균 14.7도의 기온에 동백나무, 차나무, 탱자나무, 대나무 등 상록수가 짙은 숲을 이루고 있는 외형만으로도 궁벽해 보이지는 않는다.
상노대의 깃대봉(해발 182m)에 오르면 노대도 주변의 경치를 둘러 볼 수 있다. 동으로 천막처럼 생겼다는 막섬과 이름 그대로 파도를 차고 날아오를 듯한 모양새를 한 비상도가 보이고, 그 뒤로 귤섬인 납도가 어렴풋이 보인다.
서남쪽 해상에는 흡사 고래가 물을 뿜고 있는 듯한 상깡여가 있다. 어선이 출어할때 이 암초에 충돌하거나 가라앉으면 그 해는 대풍어 한다는 구전이 있어 배가 부딪히기를 바라야 할지, 말아야할지 아리송한 기분을 자아내는 바위 암초다. 툭 트인 북쪽 바다 한켠에 옆으로 누운 여인의 모습을 닮았다는 두미도가 있고, 그 앞으로 내·외거칠리고가 조그맣게 떠있다.
거칠리도는 욕지도에서 남해나 사량도쪽으로 항해하는 선박들이 이 곳을 지나칠 때 항상 걸리적 거린다하여 붙인 재미있는 지명이다. 하지만 걸리적 거리던 이 섬도 세월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환영을 받는 섬이 됐다. 갯바위 낚시의 황금어장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남해군쪽으로 거침없이 펼쳐진 망망바다 탓에 바람 많은 궂은 날만 피하면 만족할만한 조과를 올릴 수 있다고 한다.
노대도 앞바다는 양식업뿐 아니라 고기도 잘 잡히는 편이다. 돔, 볼락, 망상어, 농어, 방어, 고등어, 전갱어, 문어 등 여러 어종이 상·하노대도를 가르는 해협을 따라 어군을 형성한다. 7천~9천년전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패총이 상노대도 남쪽 해안마을 상리에서 발굴돼 인근 욕지도, 연화도 패총 등과 함께 선사시대 주요유적으로 꼽히고 있다. 노대도는 1905년경까지만 해도 나라에 진상하는 사슴을 길렀다고 전해지는데 사슴을 잡고, 녹용을 장만하던 포수들이 머물렀던 「사냥막터」라는 곳이 지금도 상노대도 한가운데 남아 있다.
(매력 포인트> 통영항에서 뱃길로 1시간이면 닿는 연화열도의 한모퉁이에 자리잡은 노대도는 상,하 노대도 두 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있다. 해도상으로는 두미도와 욕지도 사이에 끼어 있지만 행정구역상 통영시 욕지면 노대리다.
@ 욕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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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가 갖는 매력은 여러가지다. 우선 남해 먼바다에서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에 형성된 절벽해안의 풍광이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삼여 마을 해안도로 고갯마루에서 보는 일출은 욕지가 품은 깨달음의 불덩이를 보듯 붉고 아름답다. 해안에 바싹 붙어 있는 한쌍의 촛대바위, 3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삼여도와 아침햇살을 받아 선명하게 드러나는 좌사리도, 국도, 갈도, 홍도 등이 원경을 꽉채우며 눈에 잡힌다.
삼여 고개를 넘어 들어서는 서산리 유동마을은 가파른 바위해안이 안고 있는 몽돌개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곳이다. 바람막이 없이 한바다의 파도를 맞상대해야 하는 이 곳 해안의 자갈밭은 모래알 하나 없이 깔끔하다. 유동은 갯마위 낚시꾼에게도 인기가 높다. 해수욕장으로 이름 난 덕동은 유동의 북쪽에 자리잡은 해안에 있다. 3백m 가량의 까만 몽돌밭에, 보고 있으면 눈이 시릴 정도로 맑은 물이 있는 해수욕장이다. 여름철이면 해수욕을 겸한 낚시 인파로 북적댄다.
늦가을의 요기도는 남빛 바다와 대조를 띤 불그레한 고구마밭 풍경이 있어 이채를 띤다. 건조하고 염분이 많은 토질 덕에 이 곳 고구마는 맛이 뛰어나다. 통영의 새터시장이나 중앙시장등서 「욕지 고매」 라는 이름을 달고 좋은 값에 팔린다. 또 삼삼오오 갯바위나 벼랑, 초지를 누비고 다니는 염소떼도 흠히 볼 수 있는 욕지도 풍경. 주인도 그 숫자를 모를 정도로 야성화돼 인적이 뜸한 나무그늘 아래서 젖을 먹이고 있는 어미염소의 여유로운 모습이 눈에 띈다. 사람살이와 짐승살이가 뒤섞인 자연의 모습 그 자체다. 섬에서 자생하는 삼지구엽초로 기른 사슴을 왕에게 바쳤다고 전해지는 옛이야기를 실감할 수 있는 꽃사슴농장도 논골에 가면 구경할 수 있다.
선착장이 있는 동항리 뒷산에는 천연 기념물 제343호로 지정된 모밀잣밤나무숲이 있는데, 대략 20m 키의 나무가 1백여 그루 자라고 있다. 이 곳서 자라는 나무는 모밀잣밤나무가 아니라 구실잣밤나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 천연기념물이기 이전에 어부림과 방풍림의 역활도 하고 있어 마을 주민들이 각별히 신경 쓰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욕지도 앞바다 볼개섬은 붉고, 자주빛 도는 조약돌이 있어 수석산지다. 해석 특유의 추상석과 원산석 등이 수석 수집꾼들의 발길을 잡아맨다. 경남도 지정 기념물 제27호인 욕지도 패총이 발굴된 곳도 이 곳 동향리다. 한국전력공사 욕지출장소 신축공사중에 발굴된 이 패총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인골이 묻힌 돌무지와 유물이 묻힌 돌무지와 유물이 출토돼 인접한 상노대도, 연대도 패총 등과 함께 남해안지역 신석기문화의 내용을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일본이 한반도 강점 이전에 이미 어장을 차지하고 설친 곳으로 그러나 그 슬픈 역사를 딛고 섬사람들은 우리의 영해를 오늘에 까지 지켜온 섬으로 안개가 엷게 끼인 날 욕지 뒤편 신작로를 걸어보면 신선이 된 듯한 것을 느낄 수 있다.
<매력 포인트> 욕지도 주변에는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크고 작은 섬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이곳에는 2개의 해수욕장이 있어 수영과 낚시가 가능하다. 동항리에 있는 목과자갈해수욕장은 300m쯤 되는 해안이 흰 자갈로 형성되어 있어 일명 흰작살해수욕장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주위에는 갯바위 낚시를 할 수 있는 바위가 즐비하다. 서선리에 있는 덕동해수욕장은 자갈밭인데 남쪽을 향하고 있어서 창망대해를 마주하는 1급 휴양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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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성현씨 유익한 글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