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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 저주하라 그래도 박근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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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박근혜는 안된다고 아우성치는 글을 주로 읽어본다. 반대하고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글의 수준을 알아야 박근혜를 해치려는 세력의 힘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를 비판한답시고 올려지는 글들을( 메이저 언론 및 좌파적 매체들에 실리는 칼럼은 물론 토로장에 등장하는 밑바닥 수준의 토물들까지 모두 포함한다) 칼에 비유한다면 강호에선 부엌칼로도 쓰지 않은 막칼에 불과하다는 데 필자는 계속 놀라고 있다. 언론에 활자화된 것이든 토론장에 기록 처리될 뿐인 것이든 그런 허접하고 수준 안되는 글질로 어떻게 박근혜를 막겠다는 것인지 한심하다.
칼은 칼 잡은 자가 지 기분 내키는대로 막 휘두르면 칼이 아니라 이수씨개에도 미치지 못하는 철 덩어리에 불과해진다. 적어도 상대를 노릴 때 칼은 공격의 포인트가 있어야한다. 치고 받는 수십 수백의 합이 이루어져도 칼을 쑤셔 넣을 곳은 단 한 곳이다. 만약 상대의 목을 노린다면 상대의 다리를 치는 것도 상대의 흉부를 향해 칼을 내지른 것도 다 목을 치기 위한 예비 동작이거나 페인트이어야한다. 다리를 노렸는데 목을 잘랐다고 우쭐된다면 그런 건 강호의 개돼지만도 못한 미물인 것이다. 개돼지에도 미치지 못하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똥만 싸대고는 마치 한 건 양 자기 만족에 빠지는 똥떵어리들이 우글거리면 거릴 수록 칼를 칼집에서 빼보지도 못하고 이기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칼잽이로서의 흥을 위해 똥떵어리들의 한심함을 정리해 주겠다.
첫째 박근혜가 박정희 딸이기때문에 불가하다는 연좌론: 박정희가 해방전 일본군 장교로서 친일의 민족 반역죄를 졌고 해방 당시에는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남로당 군책이었고 4.19로 들어선 민주정부를 5.16 구데타로 무너뜨리고 18년 장기 집권을 한 독재자이므로 박정희 딸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역사적 정당성이 없다.
우선 박정희는 만주국 장교였지 일본군 장교가 아니다. 일본 육사를 최우등으로 졸업해 일본국 장교가 될 수 있었음에도 박정희은 만주국 장교로 돌아갔고 일본 패망 후 만주국 장교 경력이 인정돼 당당히 독립군의 일원이 되어 귀국했다. 당시 조선인으로서 만주국 장교나 일본군 장교였던 자는 박정희 말고도 상당수였다. 그들 중 독립군이 되어 귀국한 사람은 박정희가 거의 유일하다. 당시 독립군들이 바보 멍청이어서 만주국 장교임을 뻔히 알면서도 박정희를 독립군의 일원으로 인정했을리는 없다. 누가 조선인을 괴롭힌 반역자인지를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해방 당시에도 만주국 장교는 곧 친일 분자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해방 당시의 정황을 기록으로 파악할 뿐인 지금 만주국 장교란 사실만으로 만주국 사관학교 입학을 위한 지원서 내용만으로 박정희를 친일의 민족 반역자 운운하는 것은 성립자체가 불가능한 허위 주장일뿐이다. 박정희가 친일 분자로서 조선인을 괴롭혔다는 물증이나 증언은 그 어디에도 없다.
5.16은 세계사에 그 유래가 없는 정변이다. 정변에 참여한 군대의 수가 성공 불가능한 소수였다. 그 열악한 소수로 유혈 사태 없이 반나절도 안돼 전국을 장악한 것은 기적이었다. 4.19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 정부가 진압을 명령하기만 했어도 절대 소수였던 박정희는 제압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대통령 윤보선은 올 것이 왔다라고 체념했고 내각 수반인 장면은 미군기지로 도망갔다. 왜? 4.19 덕에 정권을 쥔 민주당은 국민이 공분했던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를 일소하기는 커녕 그 부정부패를 인수받아 국민을 우롱하고 있었고 4.19를 일으킨 학생 지식인들은 개나 소나 북조선 공산당 정권과 손 잡고 통일하자며 6.25의 고통로 신음하는 국민을 배신하고 있었다. 1961년 대한민국 국민의 절대 다수가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국가를 변혁시키겠다고 목숨을 건 박정희에게 희망을 걸었고 5.16를 4.19와 같은 혁명으로 인정했기에 5.16를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하지 않았던 것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잘하고 있는 정권이 아니라 국민이 외면하고 없애주기를 소망하는 정권을 전복하는 것은 그 전복의 수단이 데모든 군대든 상관 없이 정당하다.
5.16이후 민정 이양의 대통령 선거가 1963년에 실시됐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윤보선은 공화당 후보인 박정희를 칠 회심카드로 당시 대중들이 잘모르고 있었던 박정희의 남로당 전력을 대대적으로 폭로했다. 당시 조선 동아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전 언론이 박정희의 남로당 전력을 문제삼았다. 그러나 6.25로 공산당을 철천지 원수로 여겼던 당시 국민들은 반공을 내세운 5.16 혁명 공약과 북조선이 남파한 형의 친구를 간첩으로 처형해버린 박정희가 설사 과거 공산주의자였다고 해도 이미 전향한 자유민주주의자임을 신뢰해 대통령으로 박정희를 선택했다. 국민들이 박정희의 남로당 전력을 모르고 박정희를 당선시킨게 아니다. 세월이 흘러 그 누구도 박정희의 전력으로 그를 공산주의자로 의심할 필요조차 없는 상황이 되면서 박정희의 남로당 전력에 관심두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반세기도 지난 지금 마치 몰랐던 사실이 밝혀진 양 박정희의 남로당 전력을 다시 끄집어내 박정희가 공산주의자였으니가 박근혜를 의심해봐야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는 마타도어일 뿐이다.
18년 장기 집권은 필연적으로 피해를 입은 정치 세력를 잉태한다. 민주주의 시스템은 장기 집권을 두고 보지 않는다. 당연히 장기 집권에 반동하는 정치 세력과 장기 집권을 유지하려는 세력간의 정권 쟁취의 충돌이 민주주의에선 당연히 발생한다. 그 충돌이 충돌의 모든 당사자를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다. 누군가는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민주 사회에서 역사의 정당성을 논할 때 기준은 과연 주권자인 국민이 장기 집권으로 해를 당했는가이지 정권 쟁취를 놓고 충돌한 정치 세력의 피해 유무는 아니다. 박정희의 18년 장기 집권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국민의 70~80%가 대통령 박정희를 긍정평가하고 있다. 박정희는 사후 30년이 지난 지금도 최고의 지지를 받고 있다. 국민에게 피해를 준 18년 장기 집권이라면 국민이 박정희를 이렇게 지지할리 없다. 값싼 노동력과 지하자원이나 팔아 먹고 살던 최빈국의 나라를 중화학 공업으로 경제 구조를 바꿔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만든 박정희를 18년 장기 집권했다고 독재자라 침 뱉은 국민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 박정희를 공격해 박근혜를 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도 어리석은 바보짓이다. 오히려 박정희를 이슈로 삼지 않아 박정희를 국민 관심으로부터 떼어내 국민이 박정희에게 무관심해질 수 있게 해야 박근혜를 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박정희가 아니어도 대한민국이 지금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는 주장은 IMF로 종말을 고한 김영삼, 빚으로 생활하게 만든 카드대란으로 대한민국을 신용불량자 공화국으로 만든 김대중, 국가 성장 잠재력을 갉아 먹은 노무현, 소득 분배의 외곡과 신뢰 상실로 공분의 대상이 된 이명박등을 겪은 대한민국 국민에겐 귀신 씻나라가 까먹는 소리에 불과하다. 물론 필자는 박근혜라면 이를 가는 족속들이 줄창 박정희를 들먹이기를 바란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되면 필자같은 사람이 너무 심심해진다는 것이다.
추신: 박정희의 아랫도리 이야기로 어떻게 해보려는 수작이 늘 있어왔다. 그러나 아랫도리라면 김대중 김영삼 심지어 노무현까지 그렇게 맑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박정희는 적어도 혼외 자식을 낳은 적 없고 숨겨놓은 자식이 나타나지도 않은 걸 보면 아랫도리도 그 누구보다 깨긋하면 했지 추잡했던 것은 아니다. 소문이 무성하던 연예인들 중 누구 하나 박정희와 그렇고 그랬다고 고백하지도 않는다. 김재규가 총으로 쏘던 날 박정희가 누린 만찬장은 당시의 요정집 풍경에 비하면 족적지혈에도 미치지 못한다. 일국의 대통령이 그렇게 초라한 술상에 무영 가수를 병풍 뒤에 두고 만찬을 할 줄 상상도 못했다. 소문대로라면 그야말로 주지육림의 몬도가네풍 사육제가 벌어져야했다. 달랑 알바 한 명이 술 시중드는 만찬에서 아랫도리 풀 흥조차 나올리 없었다.
추신: 오늘은 여러가지 제약으로 박정희 연좌론에 대해선만 글을 쓰겠다. 다음 테제를 기대해주시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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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포토맨님,늦게보았지만 정말 의미있는 글입니다 잘보고 갑니다,,감사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