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은 여름휴가를 진해에서 보냈다. 진해 앞바다에는 저도라는 섬이 있었다.
대통령은 낮에는 이 저도에 가서 쉬다가 진해로 돌아오곤 하였다.
그런 이동 중에 해군의 엄호가 따르는 등 여러 사람들이 수고하는 것을 본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여름에 박종규실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도에 있는 일제시대의 목조건물을 수리해서 잘 수 있도록 해놓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1973년 여름 박정희 대통령은 고속도로를 따라 진해에 도착하였다. 나도 수행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지방에 갈 때는 지만군을 옆에 앉히고 지나치는 마을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설명하곤 했다. 저 마을의 소득원은 무엇이고, 이 터널의 길이는 몇 미터라는 식으로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하게 짚어주곤 하였다.
그날 진해에 밤에 도착한 박정희 대통령일행은 밤늦게 저도에 상륙하였다. 거기에는 목조건물은 없어지고 새 돌집이 한 채 서 있었다. 일반주택만한 2층건물이었다. 호화주택으로 분류할 정도는 아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새집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실장을 불러』라고 했다. 박종규 경호실장이 나타나자 벼락치듯 꾸중을 했다.
『집수리하라고 했지 누가 새로 지으라고 했어? 너는 뭘 시키면 꼭 이렇게 하더라. 짐 내리지마! 도로 나가자』
김정렴 비서실장이 나서서 만류했다. 『오늘밤은 주무시고 가시지요. 진해 공관은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하룻밤을 머무는 사이에 측근들은 구수회의를 가졌다. 이 집을 지은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은 저도에 미리 와 대기하고 있었다. 측근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정회장이 직접 나서면 대통령이 화를 풀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에 측근에서 대통령에게 『정주영 회장이 와 계십니다』고 보고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정회장을 올라오라고 했다. 정회장은 『각하, 제가 새로 짓도록 했습니다. 각하께서 쓰시는데 저의 사재인들 아깝겠습니까. 돈이 많이 들지도 않았습니다』고 해명을 해 대통령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후 알려진 바로는 현대건설에서 실비 변상을 받았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성장의 수단으로 재벌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가진 자들의 호화판 생활이나 재벌의 횡포에 대해서는 체질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공화당 중진의 김모 의원은 신축한 자택에 박정희 대통령을 모셨다가 혼이 난 경우였다. 김의원은 『사실은 저의 형님이 도와주어 지은 것입니다』고 변명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형님은 차관 받아 집만 지었나?』고 쏘아주더란 것이다.
첫댓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