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정신은 전사이 가도난(戰死易假道難)이다. 길을 내어 주느니 차라리 죽겠다이다. 지킬 건 지키겠다이다. 전사이 가도난 부산정신을 부산 안팎에 천명한 이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 공. 부산진성을 거쳐 동래성에 도착한 왜군이 살고 싶으면 길을 내어 놓으라 다그치자 죽기는 쉬워도 길을 내어 주기는 어렵다며 죽기를 각오하고 버틴다. 송공을 비롯해 제사를 치를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군민이 동래성전투에서 전사했지만 그 정신은 오롯이 남아 부산을 깐깐하게 하고 딴딴하게 한다.
부산정신이 서면 일대에 재현된다. 양정 송상현 동상이 있는 송공삼거리에서 범전동 삼전교차로까지 너른 공간에 송상현광장을 조성한 것이다. 개장은 6월 12일께. 보름여 남은 지금은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광장은 도시의 품격. 어떤 정신을 담고 어떤 내용을 담느냐에 따라 광장의 품격이 달라지고 도시의 품격이 달라진다. 그러기에 송상현광장은 그 자체로서 서면의 품격을 돋보이게 하고 부산의 품격을 돋보이게 한다.
송상현광장은 규모에서도 국내 최고다. 서울 광화문광장 두 배에 이른다. 송상현광장은 길이가 700m, 전체면적이 3만4천여㎡인데 반해 광화문광장은 길이 550m, 전체면적 1만8천㎡이다. 광장은 거리응원, 시민행사, 축제 등 시민을 위한 시민공간으로 쓰인다. 산책길과 실내외 공연장, 바닥분수, 실개천, 역사체험 공간 등 다양하며 특히 부산 옛 모습을 새긴 고지도 바닥분수와 송공 삼거리의 역사를 담은 모너머고개 재현 숲은 인기를 끌지 싶다.
모너머고개는 못 넘을 고개. 경사가 가팔라 못 넘고 숲이 울창해 못 넘고 도적이 우글거려 못 넘는 고개로 송공 삼거리 일대를 말한다. 지금은 평지지만 90년 전만 하더라도 꽤 험한 고개였다고 한다. 다음은 향토사학자 최해군 소설가 증언이다. 제법 험했던 모너머고개는 일제가 4차례나 깎아 냈다. 일제는 한일합방 직후 부산∼울산 국도를 만들면서 제일 먼저 그 꼭대기를 깎았고, 다음으로 1915년 부산진∼동래 전차를 놓으면서 한층 더 깎았다. 이후 1930년 동해남부선을 부설할 때 더욱 파냈다. 마지막으로 해방 직전 아스팔트 포장을 할 때 더 깎아 내 오늘날과 같은 완만한 고개를 만들었다.?
메타세쿼이아 산책길은 있어 보인다. 산책길을 옹위하듯 늘어선 메타세쿼이아는 키가 하늘에 닿을 듯 높아 멀리서 봐도 있어 보이고 다가가서 봐도 있어 보인다. 개장은 보름 남았지만 손님 맞을 채비를 다 한 듯 활짝 편 이파리가 느긋하다. 자귀나무처럼 마주 보며 펴는 이파리는 부부 금슬을 좋게 하고 부산사람 금슬을 좋게 할 듯. 금슬 좋은 나무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산책길에서 사랑은 이루어지려니. 사랑은 깊어지려니.
송상현광장 또 다른 자랑은 잔디. 질 좋은 양잔디를 심어 광장 바닥을 파릇하게 했고 촉촉하게 했다. 잔디 아래 망 형태 특수입자를 넣어 넘어져도 다칠 염려가 적다. 시민과 관광객을 배려해 광장 주변에는 카페, 패션, 공연, 애견, 음식 등 일곱 가지 특화거리가 꾸려진다. 도심 한가운데 광장은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다. 도심이 직선이라면 광장은 곡선. 곡선은 직선을 품어 직선을 동그랗게 하고 보드랍게 한다.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부산시민공원과 부산에 하나뿐인 동물원 더 파크와 더불어 송상현광장은 부산과 서면을 나날이 동그랗게 하고 나날이 보드랍게 할 전망이다.
찾아가는 길 도시철도 1호선 부전역 양정동 방면 출구. 시내버스(5-1, 20, 57, 62, 86, 87, 99, 110-1, 141, 1002) 송공삼거리 정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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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지금 송상현 광장에서 공연도 하네요 앞으로 시민들이 많이 찿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