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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리남중12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화구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순천만 갈대밭에서 그려본 가을동화
우리는 가끔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장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가 남긴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말을 많이 인용한다. 그렇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죽을 때까지 매순간 수많은 선택(Choice)을 하며 살아간다.
이번에 순천에서 1박2일의 여정을 함께한 친구들은 고등학교 동창생으로 당시 이리에서 전주로 함께 열차통학을 했던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은 중학교를 졸업하자 진학할 상급학교인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했었다. 당시 적어도 익산 소재 중학교에서 전교 20-30등 안에 들어야 호남인재벌판의 명문 전주고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친구들은 익산에도 남성고라는 명문학교가 있었는데도 더 나은 선택을 위해 전주고에 도전하였다. 그러나 실패하여 후기로 전라고를 다닌 친구들이다. 그 당시 더 나은 선택에는 반드시 Risk가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했는데 어려서 그런지 그런 걸 몰랐다. 그리고 당시 학교 선생님들은 전주고에 많이 진학시켜 학교의 명예만 내세우는 데 급급했지 어린 제자들이 실패해서 받게 될 상처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인생이란 어차피 수많은 도전을 하면서 성공을 하면 좋지만 때론 실패를 하면서도 그러한 과정에서 실패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면 오히려 값진 교훈을 얻을 수도 있는 게 인생살이인 것이다. 지나고 보니 열악한 환경에서 먼 거리를 열차로 통학하느라 힘든 점도 많았지만 통학하면서 많은 추억도 만들 수 있었고 또한 이리라는 도시에서 좀 더 넓은 전주라는 도시로 나아가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인생을 살아오면서 실패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항상 부족한 나를 담금질해가면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얼마 전 ‘JTBC’의 ‘썰전’이란 프로그램에서 전원책 변호사가 ⌜전기에 S대학에 떨어져 후기 대학에 갔는데 S대학 졸업생하고 후기대학 졸업생하고 똑같이 노력해도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없으며 “그건 불가능하다”.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면서 똑같은 결과에 이르려면 S대학 출신보다 2배, 3배, 4배 더 노력을 해야 하고, 더 많이 조심해야 하고, 더 많은 어려운 길을 가야한다며 “왜 이러한 불합리한 제도가 있어야 합니까?”⌟하면서 설전(舌戰)을 퍼부은 적이 있었는데 많은 부분 공감이 갔다. 그런데 부산의 명문 부산고를 나오고 비록 후기대학을 다녔지만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분이 그럴 정도인데 나같이 대학도 못가고 후기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의 길로 들어선 사람은 어졌겠는가!
⌜사람들은 내가 고향이 익산이라고 말하면 열이면 열 남성고를 나왔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내가 전주에서 다녔다고 말하면 다시 사람들은 전주고를 나왔느냐고 다시 묻는다.
어디 세상에 남성고와 전주고만 있단 말인가! 익산에는 이리고도 있고, 원광고도 있고, 전주에는 신흥고도 있고 해성고도 있고, 그리고 전라고도 있는데 말이다.
집요한 물음에 내가 전라고를 나왔다고 하면 상대방 표정에서 나에 대한 실망이 엿보이네. 그러면 다시 나를 위한 변명을 구구절절 늘어놓으려면 난 뭘 크게 잘못한 어린아이처럼 얼굴 빨개졌다네. 그래도 나를 명문출신으로 봐줬던 분들께 감사해야지.⌟
나는 그동안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 사람이 분명히 그 학교(명문)를 나오지 않았는데 그 학교를 나왔다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많이 봐왔다. 오죽하면 그랬겠냐만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나름대로 자신이 잘나간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았다. 자기들처럼 잘난 사람들이 자기 모교를 빛내야 그 학교가 명문학교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싶다. 하기야 대학에 가지도 않고 뻔뻔하게 연세대나 고려대 나왔다고 하는 연예인들도 있지 않았는가! 세상을 있는 그래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지 감추고 살 필요는 없다. 가을동화를 그리려 했는데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다. 얼른 가을동화로 돌아가야겠다.
우리들 가슴에는 언제나 떠나고 싶은 충동이 있다. 그리고 우리 가슴속에 머물고 있던 방랑의 기질이 밖으로 나타나면 우리는 방랑자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적당한 수준의 방랑기질은 우리 삶에 자극이 되어 삶을 윤택하게 하기도 하고 스스로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친구들은 어느 가을의 끝자락에서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황금빛 갈대밭에서 바람에 넘실거리며 서걱서걱 울어대는 갈대의 노래를 들으며 쉼과 비움의 미학을 배우고자 바람처럼 도시를 떠나 순천만으로 향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S’ 자 형태로 도도하게 흐르는 순천만의 물결 위를 'ㅅ'자 대형을 갖추고 붉은 석양빛을 받으며 날아가는 철새를 바라보며 순천만 갈대밭에서 황금빛 갈대 물결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 만든 익산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끝으로 아직도 학창시절 불렀던 귓가를 맴도는 모교의 응원가를 올려본다.
당시 전주시 인후동에 소재한 전라고 뒤로는 복숭아밭 과수원들이 많아 응원가에도 복사꽃 이야기가 나온다. 현대시조의 태두라고 불리는 가람 이병기 선생의 수제자이셨던 시조시인 구름재 박병순 선생께서 당시 모교에 계실 때 만들어주신 노래인데 처음에는 가사가 “복사꽃 피고 지는”이었는데 은사님께서 전라고의 복사꽃이 지며는 안 된다며 가사를 “복사꽃 피고 피는”이라고 바꿔서 부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제자들을 사랑하셨던 훌륭하신 은사님이셨다.
전라고 응원가
♪♪모악산 정기어린 비사벌 머리 힘차게 자라나는 삼천 꽃사내 ♪♬ ♪♪날래고 씩씩함이 우리의 으뜸 싸워라! ~ 싸워라! ~ 우리 선수들 ♪♬ ♪♪복사꽃 피고 피는 전라야 고교 월계관은 나의 것 ~ 우리의 자랑! ♪♬
이화구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