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정말 기뻤다/백천봉
2005년 10월 30일 일요일 아침, 며칠 전 일기예보는 분명 기온이 뚝 떨어져 싸늘한 날씨에다 약간의 비구름을 동반할 것이라 했다. 하지만 예보는 빗나갔다. 늘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머피의 법칙’이 이날만큼은 다행히도 비켜갔다. 수필을 사랑하는 문우들의 문운이 하늘을 지배한 것일까. 맑고 상쾌한 가을향이 기행의 시발을 흥분으로 자극하고 있었다.
이후 채색한 현수막이 차창을 휘덮는가 싶더니 꼬빡 하루를 마음으로 조리한 음식들과 행장들이 쏙쏙 도착했다. 예정된 시각에 예비한 물건들이 빈틈없이 자리를 잡아가고 수필이란 이름하나로 이미 지면을 통해 익숙해진 얼굴들이 하나 둘 포옹하기 시작했다. 08시 30분, 탑승인원을 훌쩍 넘긴 45인승 객실은 ‘대구수필가협회- 대구의 수필, 창간 연간집’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수필가협회장-정 혜 옥, 그녀는 정확히 말해서 창간집이 나오기 하루 전날까지도 표지의 장정을 두고 고심했다. 마지막 OK를 던지는 순간 창간집, 그 순백의 표지엔 평생을 바쳐 온 그녀의 예술혼이 불탔다. 그녀는 중후한 중견수필가이자 동시에 미술을 전공한 예인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스스로의 격이란 우선은 입성과 맵시가 좌우한다. 그녀가 지극정성으로 마무리를 한 순백의 표지가 차장에 스며든 아침볕에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만족했다. 표지가 마음에 들고 그 속에 실린 116편의 글이 좋았다. 책을 받아 든 문우들의 밝은 표정, 일단은 성공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 ‘책이 잘 나왔네요’. 그렇다. 그녀는 정말 기뻤다. 비로소 그녀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번졌고 창간집을 높이 치켜든 문협회장-박 해 수의 손은 떨렸다. 그리 길지 않은 환송사, 두툼한 책의 무게만큼이나 지역수필가들의 결집된 모습에 압도된 듯 그의 목소리도 흥분되어 있었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일단의 목적지는 포항 보경사 경내에 자리 잡은 한흑구의 문학비다.
10시30분, 미리 안내된 여정에 따라 차는 보경사 입구를 파고들었다. 간간이 찾았던 절의 곁담을 돌아 한흑구의 문학비를 찾았다. 검은 갈매기 형상을 한 그의 문학비, 그 속엔 '보리'가 가득했다. ‘보리, 너는 항상 그 순박하고 억세고 참을성이 많은 농부들과 함께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는 갔지만 그의 글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몇 번이고 읽어 본 수필, ‘보리’는 아직도 설익은 나의 글재주를 따끔거리게 했다. 포항을 대변하는 한 지역수필가의 문필, 그 족적을 닮고 싶은 마음이랄까. 문학비에 새겨진 그의 필력을 나는 영상으로 내리 담고 있었다. 영원히 떨칠 수 없는 나의 수필, 그 엉성하니 흩뿌려진 내 수필의 씨앗도 언제나 사라지지 않는 생명력을 지닐 수 있다면... 조심스레 문학비를 몇 차례 휘돌아 본 내 마음은 가없는 동경으로 흑구를 쫒고 있었다.
시월의 마지막을 치닫는 산사의 본당, 아직은 겨울이 멀어만 보이지만 만산 홍록은 이미 절정을 지나 고개를 떨치고 있다. 곧 불어 닥칠 산상의 겨울밤이 지레 두려운지 서둘러 모자를 짓눌러 쓴 스님의 머리가 이채롭다. 예불이 이어지는 본당, 입시를 눈앞에 둔 때문인지 독경 속엔 대학입시를 기원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빌고 비는 소청의 눈빛들, 어차피 짐지고 갈 이승의 길이 왜 이리들 무거울까. 주불을 향한 중생들의 기원이 끝이 없다. ‘내 밖의 나를 두려워하지 말고 내 안의 나를 두려워 할지어다’-잠시 나는 내 마음의 안과 밖을 생각해 보았다.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은 ‘내 밖의 나가 아니라 내 안의 나임’을 말이다. 나무관세음보살, 아재아재 바라아재...
포말을 일으키며 사라지는 파도를 여유롭게 바라보며 해변을 스치는 낭만은 언제나 즐겁다. 탁 트인 동해안 솔밭, 소나무는 모두가 하나같이 바다를 향해 있다. 끝없는 원시의 동경, 그 속엔 하고 많은 세월을 이어온 파도의 비밀이 있다. 가고오고 오고가는 세상사, 그 밀리고 치닫는 파도, 그 평탄과 굴곡의 너울이 곧 우리의 인생임을 소나무는 아는지 모르는지 오독하니 침묵으로 서 있다. 마음이 출렁이고 바다가 일렁인다. 바다를 바라보는 문우들의 얼굴들, 잠시의 숙연으로 경배를 올리듯 찰라의 침묵은 묘하게 절경을 이룬 바다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해변 스케치, 이미 대구수필가협회란 이름으로 한 지붕 한 가족이 되어 버린 우리들은 함께 국을 마시고 술을 들었다. ‘대구수필가협회’의 발전을 기원하는 건배 선창, ‘대구의 수필’은 그렇게 출렁이는 파도를 타고 힘찬 돛을 올린 채 거침없는 항해를 하고 있었다. ‘대구의 수필, 자 떠나자 저 푸른 바다로...’
아직도 파도는 출렁이는데 차는 이미 돌아 원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모두들 환한 모습, ‘제1회 대구수필가협회 문학기행 겸 연간집 창간호’를 기념하는 ‘수건’은 이제 막 동해를 향해 처음 닻을 올린 그 흥분의 찌꺼기를 훔치고 있었다. 순탄한 항해, 그 출발의 선상에서 가슴 조렸던 협회장-정 혜 옥, 그녀는 그녀의 손으로 날밤을 지새운 창간호를 부여잡고 기도를 올렸다. ‘자, 가자, 동해 바다로.... 영원할 대구수필가협회여!’. 눈가로 스친 그녀의 묵상,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서는 마지막 여정에서 나는 기어이 그녀의 행복한 미소를 훔치고 말았다.■
첫댓글 대구 수필 창간호 출간을 축하 합니다. 창간호를 부여잡고 기도 하는 회장님의 애정어린 마음도 헤아려 집니다. 청솔 선생님의 글을 읽노라니 행사에 참석 한 듯 선 하구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열과 성을 아낌없이 쏟아부으신 회장님과 임원진들, 그리고 힘차게 성원해주신 회원 선생님들이 성원해 주셨기에 아름답고 가슴 벅찬 오늘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사무국장님의 글을 읽고 있노라니 가슴이 뭉클해옵니다.백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
<대구의 수필> 창간호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행사를 위하여 준비하시고 애쓰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백천봉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홈피 자주 갈게요.
대구수필가협회 창간호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회원입니다만, 그날 불가피 사정이 생겨 못 갔는데 부러움으로 그림이 그려지네요. 사무국장님, 문학기행에 참석 못한 사람에게도 창간호 책 한 권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가는 버스에서는 재치를, 기행지 곳곳에서는 앞장서서 일을 맡아 동해 바다의 푸르름이 온몸에 넘치던 남자, 해변에서 손 흔들던 억새처럼 가을 향기를 흩 날리던 남자... 그 많은 일을 하고도. 기행 후기까지 문협 카페에 올려준 부지런한 남자...... 한 남자는 멋졌습니다. ^^*
사랑과 채치를 가지고 열심히 앞장선 한 남자 없으면 우리수필가 협회가 움직이기 힘들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