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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왕(商王) 여불위 1회
기화(奇貨) 가거(可居)-1
이 세상에는 별의별 장사꾼이 다 있다. 물건을 파는 건 하도 흔해서 말할 것 없고, 좀 특별하기로는 사람의 장기나 사람 자체를 팔기도 하고 따올 수 없는 하늘의 별을 팔기도 한다. 그런데 이 중에는 정치를 장사 수단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도 사고팔 수 있는 장사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나아가 한 나라를 팔고 사는 것이야말로 큰 장사 중의 장사가 된다.
정치를 물목(物目)으로 보자면 요즘 시대의 장관, 국영기업체 이사장 등 대통령이 임면권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자리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대통령 자리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저 전국(戰國)시대로 가면 대부, 삼경, 제후나 왕 등도 흥정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상왕은 제후나 제왕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정상(政商)이며, 정상으로서 왕이나 국(國)을 거래하거나 제조하여 파는 사람이라는 몹시 불경한 뜻이다. 왕이나 나라를 생산하여 팔고 산다는 이 발상이 좀 발칙한가.
이 소설의 주인공 여불위(呂不韋)가 누군지 근본부터 살펴보자. 성씨 여(呂)는 태공망 강여상(姜呂尙)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흔히 강태공이라고 불리는 이 인물의 성은 강이지만 씨는 여였던 것으로 보아 이미 여씨는 그 이전부터 존재한 유구한 씨족이다. 즉 강태공의 어머니는 강씨요, 아버지는 여씨라는 뜻이다. 이 여씨는 주나라 제후국 가운데 창업자의 씨인 희(姬)씨가 72제후국 중 55국을 차지할 때 그들도 17국을 차지할 만큼 세력이 대단했다. 그러니 여불위 일가는 주나라를 창업하는 데 공을 세운 여씨 일족의 후예라고 볼 수 있다.
여불위의 고향은 그런 중에도 하남의 양책이다. 하남은 주나라가 멸망시킨 상(商)나라의 수도 은허(이곳에서 갑골문자가 대량으로 발굴됐다)가 있던 자리고, 주나라 수도 낙양도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 하남은 나라를 잃은 상인들이 많이 살았다. 정치적으로 완전히 소외된 상인들은 나라가 없어진 뒤 천하를 떠돌면서 장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장사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상나라 사람이라는 뜻으로 상인이라고 불렀고, 오늘날과 같은 뜻으로 변했다. 마치 고려 수도 개경이 없어진 뒤 정치에서 소외된 개경 사람들이 상업에 종사하면서 개성상인이라는 말이 나온 것과 같다.
상나라가 망한 뒤 주나라를 세운 영희발은 국명까지 격하시켰는데, 상나라의 수도였던 은허로 비칭하여 이후 상나라를 기록할 때는 꼭 은(殷)나라로 부르게 만들었다. 이런 이유로 상(商)은 자연스럽게 장사하는 의미로 굳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여불위의 아버지도 장사를 했다니 장사는 여씨 집안의 가업이었던 듯하다.
또 하나, 여불위의 이름이 왜 하필 불위(不韋)일까. 여기서 불은 크다는 뜻이고, 위는 무두질한 가죽이라는 뜻이니 합쳐서 무두질한 큰 가죽이란 말이다. 짐승의 가죽이 비싸게 팔리던 시절로서는 귀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마치 훗날 청나라 시조가 된 누르하치가 곧 ‘멧돼지 가죽’이라는 뜻인 것처럼 둘다 비슷한 값어치를 지닌 셈이다.
여불위가 태어난 곳은 하남하고도 옛날 위(韋;여불위 이름이 여기서 왔을 수도 있다)나라의 땅이었던 복양(지금의 하남성 복양현), 거기서도 양책(지금의 하남성 우현)이라는 곳이었다. 이곳에 여씨 집안의 근거지가 있어서 여불위 형제들은 각지를 떠돌며 대상(隊商)으로 돈을 벌어들였다. 여불위가 태어날 때 하남 일대는 한(韓)나라에 속해 있었으므로 여불위의 국적은 한나라다.
상왕(商王) 여불위 2회
기화(奇貨) 가거(可居)-2
대상(大商)이나 거상(巨商), 나아가 여불위 같은 상왕이 나오려면 시대가 받쳐줘야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는 것하고 미국이나 일본, 영국, 중국에서 태어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빌 게이츠가 1955년의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칭기즈칸이 고려의 무인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상상해보라.
여불위의 고국 한(韓)나라는 과연 이런 상왕을 배출할 만한 나라였던가.
주나라 말기 전국칠웅의 하나로 등장한 한나라는 춘추시대의 강대국 진(晋)나라가 갈라져 생긴 조(趙) 위(魏) 한(韓) 3가(家) 중의 하나이다. 춘추시대를 주름잡던 진나라도 조씨와 위씨와 한씨의 세 가문이 번창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마침내 국(國)을 찢어 가(家)에게 나눠준 것이다.
하긴 국(國)이 가(家)에게 뒤집힌 것은 진이 처음은 아니다. 주나라를 세운 영희발(武王)도 일개 가였다가 은나라의 주왕을 쳐 엎어버리고 국으로 일어난 것이고, 역시 은나라 탕왕도 일개 가로 있던 중 하나라 걸왕을 쳐 무너뜨리고 국을 세웠다. 하긴 가에 이르려면 벌써 제후 정도의 지위에는 오른 것이므로 그 다음 국에 이르는 것은 그다지 꿈같은 얘기는 아니다.
국가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이때만 해도 가(家)란 국(國)에 버금가는 일종의 정치 집단이었다. 국왕이 세자를 세워 왕위를 이어나가는 것처럼 가의 주인, 흔히 무슨무슨 자(子)라고 했는데, 이들은 아들 중에서 사(嗣)를 세워 그에게 가의 재산과 운영권을 넘겨 번창하길 바랐다. 이 유습이 후대에 이어져 조선시대 후기의 안동김씨 세도가나 풍양조씨 세도가가 생겨났던 것이다. 요즈음에도 성을 물을 때 김가요, 박가요 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중을 정치집단쯤으로 여기던 봉건시대 발상이 남긴 잔재다.
여불위가 태어나서 자란 한나라는 망해가는 대제국 주나라의 바로 밑에 있었다. 비록 종주국 주나라는 이미 뇌사 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누군가 천하를 차지하기 전까지는 칠웅이 다같이 힘을 합쳐 숨을 연장시켜 놓아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전국의 모든 장사꾼들이 주나라 수도 낙양으로 몰려들고 정치인과 학자들이 자주 들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넘쳐 흘렀다. 저 북방의 연나라에 담비가죽이 많이 난다는 말에서부터 초나라에 값비싼 미인이 많아 그 미인들을 사다 파는 것도 큰 이문이 남는다는 등 온갖 정보가 다 모였다.
때는 기원전 262년, 왕인지 허수아빈지 모를 주나라 난왕이 53년째 왕위를 지키고 있던 해 여불위는 북방에 있는 조나라를 향해 장사를 떠났다. 조나라로 가자면 낙양을 지나 황하를 건너야 했다. 몇몇 장사꾼들은 진군이 위나라를 칠지 모른다고 걱정했지만, 여불위는 조나라만 다녀올 것이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위나라는 조나라 아래쪽에 붙어 있기는 하지만 서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고, 진나라는 멀고먼 서쪽에 있으니 여불위까지 나서서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조나라는 사실 전국칠웅 중에서도 가장 크고 힘이 센 나라였다. 그러다 보니 장사꾼들로서는 갖다 팔 것도 많아지고, 거기서 사다가 다른 나라에 팔 수 있는 물건도 많았다. 전쟁이 있다고 해도 조나라는 문제없었다. 조나라는 북쪽으로 흉노와 인접해 있어서 백성들 중에 유목민이 많았고, 기마군을 수십 만 명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조나라는 황하 북쪽에 자릴 잡아 오른쪽으로는 삼국시대의 유주요, 그뒤 고구려가 자사를 파견하여 통치했던 연나라와 경계가 닿았고,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씨가 싸웠다는 탁록이 남쪽에 있었다. 왼쪽으로는 역시 유목민 출신으로 기마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진나라와 국경을 맞댔는데, 이런 까닭으로 진과 조는 전국칠웅 중에서도 2강으로 위세를 부렸다.
商王 여불위 3회
기화(奇貨) 가거(可居) (3)
여불위는 대상(大商)이요, 대상(隊商)이기 때문에 무리가 꽤 컸다. 짐꾼도 많지만 짐과 일행을 지킬 사병까지 있고, 조나라 벼슬아치들에게 팔 초나라 미인도 몇 있었다. 짐을 끄는 말만 백여 마리나 되었다.
이 정도면 여불위가 누군지 대략 좌표는 정해진 것이니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자.
여불위를 표현한 말 중에 그간 대상, 대상인, 거상 등이 있었는데,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왕(王)과 국(國)마저 사고 파는 물목으로 삼은 그의 큰 배짱을 기려 상왕이라고 이름했다. 상왕의 작은 말은 정상(政商)이니 흔히 정상배(政商輩)라고 비하되는 인물들이다.
상왕은 좀 특별하지만 그 이전 단계인 정상은 별로 희소성이 없는 흔한 장사꾼이다. 눈만 뜨면 텔레비전 화면에 어른거리는 흔해빠진 족속들이니 말이다.
노무현이란 한 개인에게 투자하여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강금원 같은 이도 말하자면 최근의 정상이요, 중종을 끌어다 세운 박원종이나 인조를 세운 박유와 이괄 등, 또 줄기찬 로비와 거래로 아들을 왕으로 만든 이하응, 이성계란 장수를 끌어들여 고려를 차지한 정도전 같은 이는 흔히 볼 수 있는 역사 속의 정상이요, 상왕들이다. 박원종이나 박유, 이하응 같은 이는 큰 장사를 한 만큼 이문도 크게 보아 누릴 수 있는 한 부귀를 실컷 누렸지만, 정도전은 나중에 부려먹으려고 틈틈이 훈련시킨 이방원에게 죽고, 이괄은 지분을 더 받으려다 되레 죽었고, 강금원은 이문은커녕 원금도 못 건지고 감옥에 가 있다. 이들 상왕 가운데는 부패한 세력을 일소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소박한 뜻으로 투자한 사람도 있지만, 위험 부담이 큰 사업인 만큼 그 뜻이 관철되기는 쉽지 않다.
정상이 상왕으로 성공하면 상상할 수 없는 큰 이익을 보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크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을 받들어 평생을 바친 혁명 동지 수만 명은 부귀를 몇 년 누려보지도 못한 채 우수수 목이 떨어져나갔고, 월나라 왕 구천이 포로가 되자 그와 함께 힘든 포로 생활을 이겨내고, 초근목피로 간난신고를 견딘 범여라는 특등공신은 구천이 마침내 오나라를 쳐부수고 패자(覇者)가 되면서 전에 없이 오만하게 굴자 ‘환난은 함께 할 수 있어도 부귀는 같이 누릴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는 눈물을 흩뿌리며 도망쳐버렸다. 범여의 선배격으로 버림받은 공자 중이를 따라다니던 개자추도 수십 년간 공을 들인 주인이 제후의 자리에 앉자마자(진문공) 그 거만한 꼴이 보기 싫어 산으로 도망쳤다가 불에 타 죽었다. 뭐, 멀리 갈 것도 없이 범여나 개자추가 같은 인물은 지금도 서울구치소에 옹기종기 모여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탓이라고나 할까 이제 와서 누굴 원망하겠는가.
하지만 그들과 달리 여불위는 역사상 가장 크게 성공한 정상이요, 황제 시대를 연 상왕이다. 그는 그저 운이 좋기 때문에 저절로 상왕으로 입신한 건 아니다. 그에게도 수많은 고비가 있었고, 투자 품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중간에라도 도려내고 잘라냈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기왕 정치라는 종목에 투자할 것이라면 잘 보고 투자하고, 어설피 투자를 했다가 망신당하지 말고, 엉뚱한 데 투자해 패가망신하지 않는 눈을 얻기 바란다. 대선, 총선 시장에 잘못 투자해 곤욕을 치른 분들은 특히 유념하기 바란다.
먹고살 길이 없어 시골 작은 절에 들어가 탁발다니던 중이 갑자기 명나라 창업자 태조(주원장)로 변신하는 것이 특이하긴 하지만 그런 일은 수백 년에 한번 있을까말까한 희유한 일이다. 그보다는 요즈음처럼 은행에도 다니고 식당도 하고 생수장사를 하던 이웃이 느닷없이 대통령이 되는 게 더 혁명적인 상황이다. 왕의 아들이 자라서 왕이 되는 건 큰 변화가 될 수 없지만 오늘날의 대통령 선거 제도는 옛날로 치면 왕조가 수백년마다 한번씩 바뀌는 것을 불과 5년마다 바꿔치우는 것만큼이나 큰 변화를 몰고온다. 그러니 저마다 여불위가 되겠다고 줄을 서지만 그중에는 여불위만큼 세상을 통찰하는 이도 없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투자하는 경우는 드물다.
商王 여불위 4회
기화(奇貨)가거(可居)-4
여불위는 기나긴 여행 끝에 조나라 수도 한단성 남문에 이르렀다. 한단성을 비롯한 각국의 서울은 여불위 같은 장사꾼에겐 더없이 중요한 일터다.
‘아이고, 이제 우리 불덩이를 만날 수 있게 됐구나.’
여불위는 작년에 한단성에 들어와 장사를 하다가 사들인 열다섯 살 가희 겸 무희를 떠올리며 벌써 흐뭇해했다.
‘아니지. 이제 열여섯, 좀 부드러워졌겠지. 작년엔 너무 불덩이 같았어.’
여불위가 불덩이라고 부르는 계집아이는 조나라에서도 북방 시골에 사는, 이름 없는 유목민 처녀였다. 담비 가죽이나 수달피 따위를 사러다니는 중에 눈에 번쩍 띄는 계집아이가 있어 담비 가죽 석 장 값을 쳐주고 샀는데, 어찌나 건강한지 서른 초반밖에 안되는 여불위로서도 감당이 되질 않았다. 매일같이 야생마를 타는 기분이어서 여간 현기증이 나는 게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돌아가는 길에 일부러 제나라에 들러 좋은 약재로 보신을 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어허, 어딜 장사꾼들이 함부로 드나들어? 그냥 가면 안되지!”
앞이 소란스러워 바라보니 남문을 지키는 군사들이 여불위 일행을 막아서고 있었다.
“도철 같은 놈들!”
도철은 상나라 시대의 상상의 동물로 탐욕스럽기가 하늘을 찌른다고 한다. 전국이라는 어수선한 시대인 만큼 창이든 칼이든 쳐든 놈은 죄다 도철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여불위에게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국경을 들락거릴 때마다 관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돈을 뜯기고, 시장에 들어가면 그곳 관리들에게 돈을 뜯겼다. 칠국이 늘 전쟁 상황에 있으니 뜯기는 돈도 굉장했다. 더구나 시장이 가장 큰 진나라와 조나라가 툭하면 전쟁을 벌이곤 하는 통에 그때마다 성문을 나서기도 어렵고 들어오기도 어려워 이래저래 뇌물로 출입국세를 대신했다.
하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장사를 나갈 때마다, 들어올 때마다 무지막지하게 뜯기다 보니 여불위도 화가 났다. 먹고사는 데야 지장 없지만 쥐새끼만 한, 이마에 피도 안마른 어린 병졸들까지 졸졸 따라다니며 뇌물을 요구하는 데는 진저리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행여 원하는 만큼 주질 않거나 아예 안주는 날이면 교묘하게 법을 엮어 골탕을 먹이고, 틈만 나면 죄를 덮어씌우잖는가.
여불위는 수하를 불러 병사들 머릿수대로 뇌물을 치라고 시켰다.
과연 금세 길이 틔었다. 길값으로 1금(金)을 낸 덕분이었다. 황금 16냥을 1금이라고 하는데 곡식으로는 6두(말)4승(되)에 해당되는 거액이다.
여불위는 불만이기는 하지만 하는 수 없이 한숨을 몰아쉬며 한단성으로 들어가 지점으로 마련한 그의 숙소를 향해 수레를 몰았다. 여불위는 대상인 만큼 나라마다 지점을 두었고, 지점마다 사람을 두어 관리를 맡겼다.
여불위가 다른 나라에 가 있는 동안에도 귀한 물품이 모이고 창고마다 쌓였다. 기화가거(奇貨可居), 이 넉 자가 여불위의 상술이었다. 그에게는 귀한 물건이라면 언젠가는 큰돈이 되므로 얼른 사두어야 한다는 철학이 있었다. 기화는 진기한 재물이나 보배를 말하지만 조나라에 흔한 것이 초나라에서는 기화가 될 수 있고, 초나라에 흔한 것이 조나라의 기화가 된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불위가 나타나기만 하면 그런 소문을 들어 알고 있는 현지 상인들이 몰려들어 다투어 물건을 내놓고 팔려 했다. 여불위로서는 물목만 잘 고르면 됐다. 그런 다음 그 물목을 나라별로 알맞게 나누어 유통시키면 큰돈이 저절로 굴러들어온다.
여불위가 한단에는 무슨 기화가 모였을까 잔뜩 기대하며 가고 있는데, 웬 거렁뱅이 하나가 수레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 바람에 말이 놀라서 수레가 크게 흔들렸다.
“별 거렁뱅이 새끼가 다 앞을 가로막는구나! 저런 놈은 돈푼은커녕 매질을 해서 쫓아라!”
남루한 옷에 몰골은 피죽도 못 먹는지 보기 민망할 만큼 앙상했다.
商王 여불위 4회
기화(奇貨)가거(可居)-4
여불위는 기나긴 여행 끝에 조나라 수도 한단성 남문에 이르렀다. 한단성을 비롯한 각국의 서울은 여불위 같은 장사꾼에겐 더없이 중요한 일터다.
‘아이고, 이제 우리 불덩이를 만날 수 있게 됐구나.’
여불위는 작년에 한단성에 들어와 장사를 하다가 사들인 열다섯 살 가희 겸 무희를 떠올리며 벌써 흐뭇해했다.
‘아니지. 이제 열여섯, 좀 부드러워졌겠지. 작년엔 너무 불덩이 같았어.’
여불위가 불덩이라고 부르는 계집아이는 조나라에서도 북방 시골에 사는, 이름 없는 유목민 처녀였다. 담비 가죽이나 수달피 따위를 사러다니는 중에 눈에 번쩍 띄는 계집아이가 있어 담비 가죽 석 장 값을 쳐주고 샀는데, 어찌나 건강한지 서른 초반밖에 안되는 여불위로서도 감당이 되질 않았다. 매일같이 야생마를 타는 기분이어서 여간 현기증이 나는 게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돌아가는 길에 일부러 제나라에 들러 좋은 약재로 보신을 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어허, 어딜 장사꾼들이 함부로 드나들어? 그냥 가면 안되지!”
앞이 소란스러워 바라보니 남문을 지키는 군사들이 여불위 일행을 막아서고 있었다.
“도철 같은 놈들!”
도철은 상나라 시대의 상상의 동물로 탐욕스럽기가 하늘을 찌른다고 한다. 전국이라는 어수선한 시대인 만큼 창이든 칼이든 쳐든 놈은 죄다 도철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여불위에게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국경을 들락거릴 때마다 관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돈을 뜯기고, 시장에 들어가면 그곳 관리들에게 돈을 뜯겼다. 칠국이 늘 전쟁 상황에 있으니 뜯기는 돈도 굉장했다. 더구나 시장이 가장 큰 진나라와 조나라가 툭하면 전쟁을 벌이곤 하는 통에 그때마다 성문을 나서기도 어렵고 들어오기도 어려워 이래저래 뇌물로 출입국세를 대신했다.
하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장사를 나갈 때마다, 들어올 때마다 무지막지하게 뜯기다 보니 여불위도 화가 났다. 먹고사는 데야 지장 없지만 쥐새끼만 한, 이마에 피도 안마른 어린 병졸들까지 졸졸 따라다니며 뇌물을 요구하는 데는 진저리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행여 원하는 만큼 주질 않거나 아예 안주는 날이면 교묘하게 법을 엮어 골탕을 먹이고, 틈만 나면 죄를 덮어씌우잖는가.
여불위는 수하를 불러 병사들 머릿수대로 뇌물을 치라고 시켰다.
과연 금세 길이 틔었다. 길값으로 1금(金)을 낸 덕분이었다. 황금 16냥을 1금이라고 하는데 곡식으로는 6두(말)4승(되)에 해당되는 거액이다.
여불위는 불만이기는 하지만 하는 수 없이 한숨을 몰아쉬며 한단성으로 들어가 지점으로 마련한 그의 숙소를 향해 수레를 몰았다. 여불위는 대상인 만큼 나라마다 지점을 두었고, 지점마다 사람을 두어 관리를 맡겼다.
여불위가 다른 나라에 가 있는 동안에도 귀한 물품이 모이고 창고마다 쌓였다. 기화가거(奇貨可居), 이 넉 자가 여불위의 상술이었다. 그에게는 귀한 물건이라면 언젠가는 큰돈이 되므로 얼른 사두어야 한다는 철학이 있었다. 기화는 진기한 재물이나 보배를 말하지만 조나라에 흔한 것이 초나라에서는 기화가 될 수 있고, 초나라에 흔한 것이 조나라의 기화가 된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불위가 나타나기만 하면 그런 소문을 들어 알고 있는 현지 상인들이 몰려들어 다투어 물건을 내놓고 팔려 했다. 여불위로서는 물목만 잘 고르면 됐다. 그런 다음 그 물목을 나라별로 알맞게 나누어 유통시키면 큰돈이 저절로 굴러들어온다.
여불위가 한단에는 무슨 기화가 모였을까 잔뜩 기대하며 가고 있는데, 웬 거렁뱅이 하나가 수레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 바람에 말이 놀라서 수레가 크게 흔들렸다.
“별 거렁뱅이 새끼가 다 앞을 가로막는구나! 저런 놈은 돈푼은커녕 매질을 해서 쫓아라!”
남루한 옷에 몰골은 피죽도 못 먹는지 보기 민망할 만큼 앙상했다.
商王 여불위 <5회>
기화(奇貨) 가거(可居) (5)
여불위를 좌우로 따르던 사병들이 냅다 소리를 지르자 그는 헐레벌떡 달아났다. 그런데 그 거렁뱅이 뒤를 군사 두 놈이 뒤따랐다. 창을 치켜들고 뒤를 따르는 게 심상치 않은 사람인 듯했다. 여불위는 거렁뱅이가 진귀한 기화일지 모른다고 직감했다.
“죄인이야 뭐야? 죄인이면 왜 질곡도 없이 제 맘대로 돌아다니게 두는 거야?”
찔러보는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군사 한 놈이 여불위가 혼잣말로 하는 소리를 듣고 휙 돌아다보며 말했다.
“죄는 지은 게 없지만 죄인보다 죄가 더 무겁고, 부귀를 타고난 몸이지만 거지보다 더 가난한 놈이지.”
“대체 무슨 말이오? 유죄면 유죄, 무죄면 무죄, 귀인이면 귀인, 거지면 거지지.”
호, 기화는 기화다. 이상한 건 무엇이든 사두면 돈이 되는 법이다. 여불위는 본능적으로 뇌물을 내어 그 군사에게 던졌다. 자세한 사정을 알고 싶을 땐 무조건 돈을 써야 된다는 걸 몸으로 익힌 여불위라서 그쯤은 거의 본능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 군사도 예외가 아니어서 개가 고기를 받아먹듯 날름 돈을 집어 제 주머니에 밀어넣었다. 그 다음에는 묻지 않아도 사연이 술술 나온다.
“진나라 인질인데, 말로는 진왕의 손자라오. 그런데 진나라 놈들은 인질을 주고도 우리 조나라하고 만날 전쟁이나 하니 인질 목숨이 언제 달아날지 저도 모르고 우리도 모르는 상황인지라 이렇게 반은 미쳐서 쏘다니고 있다오. 병들어 죽든지 지쳐 죽든지 죽는 거야 상관없지만 갑자기 칼에 찔려 죽거나 하는 날이면 큰일이지. 이놈이 비명에 죽으면 우리 목숨도 위험하거든. 진나라는 얼씨구나 좋다 하고 쳐들어올 거고,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전쟁하기 싫다며 혹 우리 목이라도 댕강 잘라다 줄지 누가 알겠소. 그러니 이런 시덥잖은 일이나마 하고 사는 거지. 에이, 저런 멍텅구리가 진나라의 공자라니.”
위아래 없이 저 살 궁리는 누구나 하는 법이다.
“진나라가 천하에서 제일 힘센 나라라는데 왕손을 이렇게 내팽개칠 리가….”
“왕손이 어디 이놈 한 놈뿐이겠소? 진나라왕은 손자만 스물여덟 명이랍디다. 지금도 임신한 며느리가 있겠지. 그러니 이런 놈 하나 인질로 내주고, 그 틈에 우리 조나라를 다 먹어버리겠다는 수작 아니겠소? 젠장, 보직이라고 이 따위를 맡다니 우리네 운도 어지간히 나쁘다니깐.”
“그래도 그 인질보다야 낫지 않소? 진나라도 버린 마당에 조나라에서도 여차하면 목을 베려고 할 것 아니오.”
“그러잖아도 진나라가 들썩거리면 그때마다 인질을 죽이자 살리자 조정이 시끄럽소. 죽이든 살리든 그거야 알 바 아니지만 이놈이 자살하거나 누구한테 맞아 죽는 것만은 안되오. 미치든 지랄하든 목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 이 말이오.”
“인질이 실성한 사람처럼 저리 쏘다니는 것도 무리는 아니군. 쯧쯧. 개돼지만도 못한 공자로군.”
기화는 기화로되 값이 나갈지 안 나갈지는 알 수 없다. 그럼 보류다.
여불위가 지점 삼아 마련한 대저택에 도착하자 그간 집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나와 읍을 한 채 늘어서서 그를 공손히 맞이했다. 그 가운데 여불위의 손길을 기다리는 첩 셋이 화장을 곱게 한 얼굴을 수그리고 있었고, 끄트머리에 유난히 볼이 붉은 애첩 불덩이가 서 있었다. 다른 나라에 팔려갈 조나라 시골 처녀들도 그새 많이 모여 있었다.
“수달피, 호피 같은 좋은 가죽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초원에서 사들인 명마가 스무 필이고, 좋은 청동검을 백여 자루 사들였습니다.”
“음, 좋아. 청동검은 진나라에 가면 아주 비싸게 팔 수 있으니까 잘 벼린 걸로 더 사들여. 진나라 사람들은 손잡이에 보석을 박은 걸 좋아하니까 초나라에서 사온 홍옥을 거기다 잔뜩 박아라. 자, 이만들 돌아가 일을 하게. 하루 쉬었다가 내일 보기로 하세.”
여불위는 물목을 일일이 살펴보고 싶었지만 불덩이를 보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사람들을 물리고 불덩이만 남게 했다. 문이 닫히는 순간 여불위는 불덩이를 힘껏 끌어안았다.
商王 여불위 <제6회>
기화(奇貨) 가거(可居) (6)
“아이코.”
불덩이의 가슴이 어찌나 탄력이 좋던지 힘있게 끌어안는다는 것이 그만 그 반동으로 몸이 휘청거렸다. 제나라 보약이 약한지 불덩이가 센지 아직도 여불위는 불덩이를 온전히 감당할 수가 없을 듯했다. 여불위는 다시 힘을 주어 불덩이를 끌어안고는 재빨리 입술을 훑고, 이어서 젖가슴을 파헤쳤다.
“아이고, 뜨거워라. 네 입술까지 불덩이구나. 내 혀가 다 녹겠구나.”
뿐인가. 늘 말을 타며 자란 탓인지 젖가슴은 우람하게 발달하여 두 손을 다 펴도 잡히질 않았다. 그러자니 두 손으로 이쪽저쪽을 번갈아가며 잡을 수밖에 없었다. 불덩이의 젖가슴은 드넓은 초원의 바람으로 다져졌는지 그 부드러움은 봄날의 미풍이었고, 막 피어난 꽃잎을 만지는 듯 상큼했다.
“널 데리고 우리 한나라 본가로 돌아갔으면 좋겠구나. 네가 그리워 하루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이 양근을 봐라. 물 만난 잉어처럼 펄떡이잖느냐.”
능숙한 여불위의 손길에 불덩이는 몸을 꿈틀거리며 어린애처럼 깔깔거리기나 할 뿐 별 대꾸가 없었다. 불덩이로서는 여불위가 싫지 않았다. 여불위가 치른 몸값 덕분에 그의 가족은 망아지와 송아지, 어린 양을 많이 사들였을 것이고 초원에서는 그만하면 신수가 훤해지는 돈이다. 게다가 여불위가 건네주는 돈을 모았다가 인편에 친정으로 보낼 수도 있다. 여불위한테서 배우는 음양의 도는 말하자면 보너스였다.
불덩이도 여불위의 여자가 저 하나만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어떻게 처신해야 살아남는지 눈치를 챘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란 언제나 처절하다. 그래서 여불위가 온몸을 비트는 동안에도 불덩이는 노래를 부르곤 했다. 여불위는 그런 사정에는 아랑곳없이 더 깊은 희락을 즐겼다.
‘불덩이는 참으로 보기 드문 기화로구나. 어디에 팔아야 가장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까?’
역시 여불위는 장사꾼이다. 불덩이의 몸을 더듬으면서도 그새 팔 생각부터 하는 것이다.
여불위는 보석, 상아, 짐승가죽, 청동검, 책 따위를 두루 취급하지만 그 가운데에 여자도 중요한 물목이었다. 초나라에는 얼굴이 희고 반반한 시골 처녀가 많았는데 이런 처녀들을 사다가 다른 나라의 고관들에게 팔면 이문이 아주 컸다. 처녀들을 팔아 비싼 값에 팔려면 얼굴도 예쁘고 교양도 있어야 하지만 중요한 건 방중술이었다.
여불위가 취급하는 처녀들은 대부분 첩으로 팔려나가기 때문에 무엇보다 방중술이 뛰어나야 했다. 처녀들 역시 자신들이 살아남으려면 그 길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여불위가 교육하는 대로 잘 따라 배웠다. 이번에 데려온 초나라 여자들은 며칠 안 가 한단성 안에서 다 팔려나갈 것이다. 여불위가 골라오는 처녀들은 믿을만 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미리부터 기다리는 작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원나라 때 마치 고관대작이며 장수들이 고려 출신 공녀를 다투어 첩으로 맞았던 것과 비슷한 일이다. 고려 출신 공녀들은 고려 조정에서 골라 바치는 여자들인 만큼 방중술만이 아니라 교양까지 뛰어나 금세 남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그중에는 황후로 승격된 기황후도 있고 본부인이 된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불덩이 같은 경우는 좀 특이했다. 원래 조나라나 진나라의 처녀들은 그다지 값이 높지 않은 법이었다. 조나라는 북방 유목민인 흉노들이 대부분이고, 진나라는 역시 유목민인 강족(오늘날의 티베트 계열)들이 많은 만큼 글 한줄 모르고 문화라고는 전혀 알지 못했다. 대신 남방의 초나라 미인들은 가장 잘 팔리는 물목으로 등장했고, 제나라 처녀들도 괜찮게 팔렸다.
불덩이는 처음에는 한단성 저택에 두고 심부름이나 시킬 생각이었다. 얼굴이 곱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햇볕에 그을렸는지 피부가 검고, 머리칼도 거칠어 그다지 눈여겨보질 않았다. 그래서 불덩이하고는 몇 번 잠자리를 나눈 다음 적당히 일을 시키다가 싼 값에 하졸이나 장사치들에게 팔아치울 속셈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작년에 처음 잠자리를 해본 이래 적어도 한단성에서는 불덩이 말고는 다른 첩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불덩이의 능숙한 솜씨와 잘 다음어진 미모, 가무 솜씨 등을 보고는 여불위는 본능적으로 장삿속을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商王 여불위 7회
기화(奇貨) 가거(可居) - 7
“불덩이야, 내 말 잘 듣거라. 언제까지나 나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 네 나이 열여섯이니 내가 이삼년 안에는 네 짝을 지워줄 것이다. 그러니 문자도 공부하고 죽간도 구해다 읽어라. 예절을 잘 배워 대부나 경사들이 불러도 한 점 빠지지 않도록 너 자신을 잘 가꾸어라. 알겠지?”
“대인, 저는 대인 품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부디 저를 버리지 말아주소서.”
불덩이의 양 가슴에는 아직도 발그레한 열정의 자국이 남아 있었다. 좋은 옥에 박힌 신비한 무늬만 같다. 옥이라면 그 반점을 잘 다듬어 비싸게 팔 수 있다. 기인(奇人), 기화(奇貨), 기녀(奇女), 무슨 물건이든 기이하면 다 돈이 되는 것이다.
“고맙구나. 다른 애들은 다 잊어도 너만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널 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널 출세시키려고 하는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무리 봐도 불덩이는 좀체 보기 드문 여자였다.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방술이면 방술, 못하는 게 없었다. 원래 노래만 잘해도 값이 나가고, 춤만 잘 춰도 값이 나가고, 얼굴만 가지고도 값을 받는 법인데 불덩이는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싫어요, 제발 저를 거두어 주세요.”
“암, 그러고 말고. 하지만 인간은 언젠가는 누구나 죽는 법, 죽기 전에 할 수 있는 몸부림은 다 해봐야 한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으니 날 믿고 시키는 대로 하거라. 어떻게든지 해서 네게 희(姬) 자 이름을 붙여 주마.”
불덩이에게 희 자 이름을 붙여주려면 적어도 제후의 첩 이상은 돼야 한다. 말하자면 왕비는 돼야 그걸 붙일 수 있다. 그러자면 불덩이를 팔 대상은 전국 칠웅이거나 혹은 그들의 자식인 왕자들, 조금 더 내려와도 그 왕손쯤은 돼야 한다. 그러나 이런 거래는 나라와 나라 간에 외교적으로 맺는 것이라서 여불위 같은 장사꾼이 끼어들 여지가 많지 않은 법이다. 그러다 보니 여불위가 미끈한 초나라 미인들을 사 기르더라도 주로 대부나 거부들의 첩으로 파는 게 고작이다. 그 이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희망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여불위는 옥을 거래하면서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았다. 지난날 화씨벽이라는 초나라 산 옥이 천하를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지금은 조나라 왕실의 수장고에 있어서 전국 칠웅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데, 그걸 여불위가 제대로 베꼈다.
화씨벽이 초나라에서 발견된 이래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다치는 사람, 죽는 사람도 생기고, 환난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보석의 가치는 더 올라갔다. 실제로 화씨벽을 본 사람은 불과 몇 명 안되지만, 실은 대부분은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화씨벽을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옥이라고 무작정 치켜세우고, 시를 짓고, 노래하고, 글을 적는 것이다.
그걸 보고 여불위가 그냥 지나갈 리 없다. 양책의 본점에는 세공기술자, 전설을 만들고 퍼뜨리는 선비들이 식객으로 있었다. 그는 좋은 옥을 발견하면 솜씨 좋은 세공기술자더러 잘 다듬게 하고, 그런 다음 기가 막힌 전설을 붙이고 사연을 달고, 그 옥을 지니거나 소유하면 만사형통하고 부귀해진다는 점사까지 붙여 집 안에 잘 숨겨둔 다음 은근히 소문을 퍼뜨렸다.
그러면 장사꾼들이나 각국을 떠돌아다니는 사람들 입으로 저절로 그 소문이 퍼지고, 결국 사는 쪽에서 먼저 사람을 놓아 구매 의사를 밝히곤 했다. 여불위의 옥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 가치는 저절로 뛰어오르다가 마침내 구매자의 손으로 비싼 값에 넘어가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넘어간 뒤에도 옥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뒤탈도 없다.
이런 옥은 자주 팔아서는 안되고, 1년에 한번, 혹은 2년에 한번 팔면 그만이다. 그만큼 고가에 거래되므로 자주 팔지 못하는 걸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도 여불위는 가치를 높여가고 있는 옥이 세개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양환옥이었는데, 소문을 낸 지 1년이 지나도록 그는 팔 생각을 하지 않았다.
商王 여불위 8회
기화(奇貨) 가거(可居)-8
미인 또한 마찬가지다. 옥을 보는 눈이 밝은 만큼이나 여불위는 미인을 보는 눈이 탁월했다. 특히 초나라 출신 중에서는 보기만 해도 아찔한 미인이 많았다. 실제로 예쁜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미지였다. 하긴 요즘 세상에도 미모만으로 미인을 따지지는 않는다. 미모가 좀 부족해도 방송 사회를 볼 만큼 교양이 넘치거나 재치가 있거나, 음악이든 미술이든 혹은 하버드대학 같은 세계 일류대학에서 박사학위라도 딴다면 그 가치는 높이 솟구치고, 거기에 재벌의 자식이라거나 국회의원이나 장관, 혹은 대통령의 딸이라고 하면 값이 더 올라간다. 그러니까 현실 세상에서 대통령의 딸이 재벌 2세에게 시집가고, 유명한 탤런트가 벤처 갑부에게 시집가고, 그렇고 그렇게 짝을 지어가는 법이다. 이 이치를 여불위가 이용하는 것이다.
하(夏) 왕조를 망하게 한 말희, 은(殷) 왕조를 망하게 한 달기, 서주(西周)를 망하게 한 포사, 오나라를 망하게 한 서시, 남편 세 명과 제후 두 명, 아들 하나, 대신 두 명을 패가망신시킨 하희가 그때까지 쩌르르 유명세를 탄 천하의 절색들이다. 하지만 하나 같은 공통점은 실제로 이 미인들을 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이게 여불위가 본 틈새였다. 옥은 더러 주변 사람에게 자랑삼아 구경시킬 수도 있는 물건이지만 미인이란 자식에게조차 구경시키지 않는 은밀한 보물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자랑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여불위는 미인을 구하면 그대로 되파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 살 때부터 미인의 부모들이 놀라 자빠질 만큼 큰돈을 주는 건 물론이요, 옥돌을 사다가 세공을 하여 갖가지 이미지 작업을 한 다음 고가에 팔듯이 미인에게도 마찬가지 공을 들였다. 그는 미인을 구하여 노래도 가르치고 춤도 가르치고 글도 가르쳤다. 신선술을 하는 사람을 구해 방중술도 가르쳤다. 먹고 입는 것은 제후의 부인들이나 그 딸이 부럽지 않도록 돈을 퍼부었다. 그래 놓고 미인들의 출생에서 미모에 이르기까지 신비한 이야기를 만들어 붙이고, 역시 귀한 옥처럼 소문을 냈다. 그러면 구매자가 나타나고, 값이 맞으면 거래를 했다. 비밀이 유지되는 것으로 치면 옥보다 훨씬 안전하다.
또 여불위가 미인을 주요 물목으로 취급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여불위는 그가 산 미인들을 미래의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갖가지 명품을 가려쓰는 안목을 길러주고 사치스럽게 살도록 바람을 잔뜩 넣고, 어떻게든지 자신에 대한 호감을 갖도록 한 다음 거래를 걸었다. 그러면 이 미인들은 대부의 첩이 되든 공자의 첩이 되든 두고두고 값비싼 물품을 사들이는 단골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꿩먹고 알먹고 아닌가.
이 미인 거래로 얻어지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손을 통해 거래되는 이 미인들이 여러 나라의 권세가들을 휘어잡아 그들과 결탁할 수 있고, 그들을 통해 높은 벼슬아치들과 닿을 수 있었다. 그쯤은 돼야 전국(戰國) 시대를 버틸 수 있는 대상(大商)이 될 수 있다고 여불위는 굳게 믿었다.
그런 그가 초원에서 얻은 불덩이 같은 기화를 언제까지나 즐기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언제고 비싸게 시집 보낼 궁리를 한 여불위는 불덩이의 젖가슴을 끼고 기분 좋게 잠들었다.
이튿날, 여불위는 집사와 함께 조나라에서 사들인 물목을 점검했다. 다른 물건들은 그와 함께 다니는 일꾼들에게 지시를 내려 짐을 꾸리게 하고, 보석과 미인만은 본인이 직접 챙겼다. 조나라에는 보석은 많이 나지 않지만 특이한 미인이 약간 나는 편이었다. 불덩이처럼 기름진 초원에서 말을 타며 자란 유목민 처녀들 중에서는 뜻밖의 보석 같은 미인이 이따금 있었다. 말을 자주 타면 단전이 발달되어 체력이 강하고 골반이 잘 벌어져 아이를 잘 생산하고, 하체 근육이 발달하여 방중술에는 그만이었다. 그러니까 초나라 미인들처럼 은밀하고 아득한 환락을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초원의 미인들은 격렬하고 기운찬 특별한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
商王 여불위 <제9회>
기화(奇貨) 가거(可居) (9)
하루 종일 물목을 검토하면서도 여불위는 어제 한단성으로 들어오면서 우연히 마주쳤던 진나라 인질을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화는 기화인데, 어떻게 가공해야 할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여불위는 좋은 옥이나 뛰어난 미인을 보면 일단 어떻게 가공해 얼마나 비싼 값에 팔 수 있는가부터 연구했다. 그래서 팔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구매에 나서는 것이다.
“진나라 인질이라, 인질이라….”
여불위는 한단의 집사를 불렀다.
“이보게. 자네가 나가서 진나라 인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오게.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조사를 하란 말이야.”
“그런 거렁뱅이 같은 놈은 무슨 일로 조사를 해요? 진나라 왕에게 상이라도 타내시려구요?”
“상은 무슨 상이냐? 장사꾼이 돈이나 벌면 그만이지.”
“아이, 대인. 그러려면 다른 나라 인질한테나 투자하세요. 연나라나 위나라 인질은 세자래요. 곧 왕이 될 재목들이라구요. 그런데 진나라 인질은 진나라에서도 내팽개쳐서 왕성에서 내놨다잖아요.”
“짜식아, 돈이 되고 안되고는 내가 판단할 테니 가서 정보나 물어와. 가는 길에 연나라 태자도 조사하면 될 거 아니야. 다른 나라 인질도 있으면 알아보고.”
집사는 툴툴거리며 나갔다. 손에 1금을 쥐어 주었으니 그 돈을 써서 떠도는 정보를 수집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때 가서 계획을 세우면 된다.
여불위는 이번에 조나라에서 그가 직접 팔 물건으로 양환옥과 호안벽과 초나라산 미인 아침이슬과 여름무지개, 그리고 제나라 출신 미인 푸른물결 한 명을 골랐다.(이 무렵에는 성씨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많아서 그럴 듯한 이름보다는 사물이나 자연현상 따위를 이름으로 불렀다. 조약돌, 버드나무, 원추리꽃처럼. 우리나라도 통일신라 이전까지는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지었고 미 대륙의 인디언, 몽골 유목민이나 러시아의 유목민들은 지금도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 이 특별한 물건들은 지점으로 쓰는 대저택에서도 은밀한 후원에 비장해 두고, 그 누구도 접촉할 수 없도록 철저히 은폐했다. 그 대신 일하는 사람들을 저자거리에 풀어 소문을 퍼뜨렸다. 마케팅 기술이랄 것도 없었다.
여불위는 사업이 아무리 커져도 옥과 미인 두 가지 품목만은 직접 고르고, 직접 거래하는 기본원칙을 놓지 않았다. 안 그러면 감을 놓쳐 결국 시장에서 도태된다는 아버지의 교훈을 새긴 탓이다.
그날이 채 가기 전에 소문은 돌고 돌아 여불위의 귀에 들어왔다. 작년에 여불위한테서 옥을 하나 구한 적이 있는 대부 조획이 만나자는 것이었다. 조나라 조씨인 만큼 왕실과도 가깝고 그런 만큼 세도깨나 부리는 위인이었다. 한단성에서 누가 세도 있고, 누가 돈이 있는지쯤은 이미 다 파악이 돼 있는 것이다.
“양환옥과 호안벽에 관한 소문은 진작부터 들었소만 이번에 여 대인이 한단성에 들어왔다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왔소. 우리 조나라 효성왕이 즉위하신 지 올해로 4년째인데, 내가 대부만 10년째요. 왕에게 진상할 귀한 옥을 구하고 있소.”
임자가 나타났지만 여불위의 답은 얼른 나가지 않는다. 그 대신 값을 띄우는 대사를 준비했다가 천천히 풀었다.
“상나라가 망할 때 왕비인 달기가 가지고 있던 양환옥을 추천하겠습니다. 희씨 군사들이 궁성으로 쳐들어오자 달기는 목숨을 부지하고자 이 양환옥을 뇌물로 쓰려고 했지요. 하지만 희씨를 따르는 주나라 군사들은 달기의 미모에 현혹될까봐 삼베보자기로 달기의 머리를 덮어씌우고는 목을 베어버렸답니다. 준비했던 양환옥은 쓰지도 못했지요. 달기가 죽자 이 옥을 지키던 시비가 멀리 달아났다가 여러 귀인들의 손을 거쳐 지금은 초나라의 대부 오경이란 분에게 머물러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아, 그럼 물건이 여기 없단 말인가?”
商王 여불위 10회
기화(奇貨) 가거(可居) - 10
“없는 게 아니라 제가 사질 못했으므로 보여드릴 수 없단 거지요. 사려거든 5백금을 내라는데 그 큰 돈을 낼 수가 있어야지요. 하는 수 없이 신용으로 제가 받아들고 주인을 찾아 거래를 주선해 보겠다고 한 거지요. 하도 비싸서 사라고 권하지는 못하고 혹시라도 도둑맞을까, 깨질까, 흠이 날까 비단 주머니에 몇 겹으로 싸고 또 싸서 목합 깊이 감추어 두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초나라에 있는 우리 지점은 물론이고 한나라 양책에 있는 우리 본점까지 날아갈지 모릅니다.”
“허, 이런.”
양환옥인지 뭔지 옥은 보지도 못했는데, 값은 최하 5백금이란 말 아닌가. 거기에 여불위는 제 몫을 적당히 얹어 달라는 눈치이니 하다못해 1백금은 더 붙여야 거래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1금짜리 옥도 좋은 게 널린 세상인데, 무려 5백금에 1백금을 더해 6백금이라니.
대부는 입맛을 다시더니 하는 수 없이 물건을 보자고 했다. 보자는 건 살 의사가 있다는 말이다. 흥정은 시작되었다. 찌가 흔들리잖는가.
여불위는 초나라 미인 아침이슬을 불러들였다. 벌써 6개월이 넘도록 갖은 교육을 다 받은 미인인 아침이슬은 사뿐사뿐 걸어와 여불위와 대부 조획에게 공손하게 절을 한 다음 읍을 하고 섰다.
“가서 양환옥을 가져오너라.”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딱 그 한마디를 했다. 그러면서 아침이슬은 뒷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대부 조획은 옥을 보러왔다가 초나라 미인을 보고는 또 딴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걸 여불위가 놓칠 리 없다. 또 찌가 흔들린다.
“사실 저 아이는 초나라 대부 오경이 영성을 뒤져 얻은 미인이랍니다. 이 대부는 좀 특이한 취미가 있어서 양환옥을 지키는 처녀를 대를 이어 두는데, 저 아이 아침이슬이 여섯번째라고 들었습니다. 양환옥을 지키는 처녀를 뽑을 때는 원래 주인인 말희에 버금가는 미모가 돼야 한다면서 어찌나 까다롭게 구는지 초나라 왕도 늘 탐을 내곤 했답니다. 뭐, 그때마다 왕이 윽박지르면 하는 수 없이 처녀를 바치지만 그럴 때마다 어디서 귀신 같은 솜씨로 새 미인을 구해오는데, 영성의 세도가들이 다투어 구경하러 오곤 한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먼 조나라까지?”
“아침이슬 저 아이는 양환옥과 한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양환옥이 어디 웬만한 보옥이래야 말이지요. 사람들은 아침이슬을 가리켜 전생의 말희가 틀림없다며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저는 원래 장사꾼이라 미모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거래를 위해 데리고 있을 뿐이지요.”
“흠, 보기 드문 미인이오.”
“안 그러면 제가 양환옥을 지키라고 시켰겠습니까? 어지간한 미인이라면 양환옥의 기가 빠져나갈까봐 감히 맡기지 못하지요.”
그러니까 양환옥과 초나라 미인 아침이슬은 한 세트란 말이다.
잠시 뒤 비단옷을 갈아입은 아침이슬이 금실로 몇 겹이나 둘러싼 금갑을 들고 다시 나왔다. 그 고운 손으로 비단 매듭을 풀고 나니 검은 옻칠을 한 목갑이 나왔다. 여불위는 아침이슬이 건네는 목갑을 받아 조심조심 뚜껑을 열었다.
옥빛이 잘 비치도록 대부와 촛불 중간쯤에서 살그머니 목합을 여니 거기서 영롱한 빛깔이 확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말희의 손을 떠난 지 무려 7백년, 양환옥 한쌍이 고이 잠들어 있었다. 세공이 어찌나 정교한지 금세라도 날아갈 듯한 봉(鳳)과 용(龍)이 꿈틀거렸다.
“호.”
대부 조획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여불위는 목합을 닫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