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만의 노래
김양화
순해진 마음결처럼 바람이 잔잔한 날, 고흥만 물살이 멸치 떼로 보이
는 현상은 신비롭다. 방조제에 갇힌 물살이 바람결에 밀려 더 이상 멀리
움직이지 못한 채 잔잔하게 고여 있는 모습이 마치 멸치 떼를 보는 듯
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다. 무수한 멸치 떼가 고흥만에 몰려든 것처럼
보인다. 고요해진 바다 바람결이 고흥만 방조제를 멸치 떼 산실로 만든
다.
눈의 착각 현상일까. 눈을 감았다 뜨기를 몇 번씩 하며 또 다시 보아
도 고흥만 방조제의 물살은 영락없이 멸치 떼이다. 고흥만의 잔잔한 물
살 위로 멸치 떼의 함성이 우렁차다. 자잘한 멸치도 고흥만으로 밀려들
면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 고흥만은 멸치처럼 작은 것들을 넉넉하게
품어준다.
그리고 주어진 생명을 찬미하고 싶은 날, 고흥만 물살은 전어 떼로도
보인다. 벚꽃 잎같이 비늘을 반짝이며 고흥만으로 헤엄쳐 온 전어 떼가
낮게 엎드려 있다. 멸치 떼, 전어 떼가 무수하게 몰려든 고흥만에 햇살
이 강렬하게 꽂히면 여름바다는 푸른 등을 파닥인다. 멀리 보이는 섬으
로까지 고흥만의 생명력이 물결쳐 가도록 바다는 고등어같이 등을 시
퍼렇게 퍼덕거린다. 고흥만의 노래가 시작된다.
고흥만으로 들어가는 길목엔 벚나무가 여인숙 주인처럼 서 있다. 고흥
만을 찾아온 여행객이 편안하게 투숙하도록 알뜰하게 살펴주는 주인처
럼 벚나무는 가슴을 넓게 벌리고 서 있다. 가지가 축 늘어진 푸른 벚나
무 잎사귀에서 고흥만의 생명 노래가 충분히 예고된다. 고흥만의 갯바
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벚나무는 생명의 노래를 불러준다.
고흥만은 벚나무의 생명 노래로만은 부족하나 보다. 고흥만으로 접어
들기 위해서는 루즈베키아의 노래에도 귀기울여야 한다. 국화과 식물로
두상화의 중심에 있는 짙은 자주색 부분이 원추형인 루즈베키아(rudbec
kia)가 진노랑 머리를 흔들며 고흥만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원추천인국
이라고도 불리는 루즈베키아의 노란 행렬을 따라 가노라면 마음자리가
샛노래진다. 루즈베키아의 노랑색 노래가 고흥만으로 이어지고, 벚나무
터널은 고흥만까지 생명의 잎사귀를 나부껴준다.
고흥만을 찾아갈 때, 루즈베키아가 마음의 뜨락에서 꽃피는 소리를 들
어봄 직하다. 마음의 뜨락에서 루즈베키아를 샛노랗게 피워낼수록 고흥
만 방파제가 수평선으로 길을 낸다. 방파제를 달리며 내려다보는 차창
가의 고흥만 물살이 멸치 떼로 파닥인다. 고요한 고흥만에 전어 떼 비늘
이 반짝여 눈을 뜰 수 없다.
방파제 깊숙이 들어갔을 때, 어려서부터 바다를 가까이 보며 자란 사
람에게 고흥만은 말을 건넨다.
“바다가 고등어 푸른 등 같은 생명력으로 너를 키워왔음을 생각하라.”
“바다를 떠나 살아온 세월 중에도 바다는 너를 잊지 않았다.”
“너는 내내 바다의 부성애(父性愛) 안에 있었다.”
고흥만이 내 안에서 바다의 새 생명으로 되살아나는 순간을 맞는다.
나는 바다의 아기였던가. 멸치처럼 전어처럼 숭어처럼 나도 바다의 아
기였던가. 방파제를 끝까지 달리고 나오면 멸치 떼, 전어 떼가 나를 사
정없이 몰아대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바다를 뒤흔드는 강한 생명력이
내 몸속에 파도의 길을 열어 열정적인 삶을 꿈꾸게 하려는 듯하다. 미처
깨닫지 못한 부성애가 가슴 속에서 샘솟아 나는 새삼 전율을 느끼며 어
깨를 떨기도 한다.
또 고흥만 물살이 숭어 떼처럼 살아 숨 쉬는 날, 생명의 존귀함은 하늘
에 가 닿는다. 아직껏 자기 생명의 존엄성을 깊이 깨닫지 못한 사람일수
록 고흥만에서 들려오는 생명의 노래에 더 민감해질 수도 있다. 고흥만
의 그 생명 노래가 절절해 눈시울이 붉어진다. 소금 같은 고통에 절여
지낸 어둠의 나날들을 돌아보게 된다. 하얀 소금에 절여진 고통이 과히
나쁘지만은 않았음도 생각하게 된다.
고흥만의 물살이 멸치 떼, 전어 떼로 보이는 건 참생명에의 갈구 때문
인가. 고흥만의 물살이 고등어 떼, 숭어 떼로 보이는 것도 상대의 생명
력을 존중해주고 싶어서인가. 내 마음자리에 고흥만의 생명 노래를 가
득 녹음해 오고 싶다. 아니, 고흥만의 생명 노래를 내 안에 생생하게 담
아오고 싶다. 고흥만의 생명 노래가 가끔 죽어가는 것들을 오래 생각하
는 버릇이 있는 나에게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인가 보다.
상대를 존중하고 축복해 주고 싶으면 고흥만을 한 번 쯤 찾아가 볼 일
이다. 노란 루즈베키아의 노래를 듣고 벚나무 숲 터널을 지나 고흥만에
닿으면, 멸치 떼 생명력이 몸 안에 샘솟는다. 전어 떼처럼 파닥파닥 열
정적으로 숨쉬며 살고 싶게 한다. 숭어, 고등어의 시푸른 등을 타고 바
다의 원시적 생명력을 만나고 싶은 날, 고흥만 방파제를 시원하게 달려
볼 일이다. 고흥만의 생명 노래에 죽음같은 어둠과 절망을 겸허하게 씻
어내며 멸치 떼, 전어 떼를 고요히 응시해 볼 일이다.
첫댓글 나의 예쁜 제자, 김양화 작가의 수필을 읽는다. 툭 트인 바다와 수평선 앞에 선 기분이다.
시원의 생명력, 그 앞에 실핏줄이 꿈틀대는 기운을 느끼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