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응모부분: 단편동화
제목: 엄마의 고등어조림
원고지: 32.1/4매
이름: 이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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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화:010-8734-9815(김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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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da
엄마의 고등어조림
"생선 사이소! 오늘 물이 참 좋은 생선이 야요."
엄마 목소리가 골목 시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어요.
"씨! 오늘은 목소리가 더 크네."
세진이는 누가 뒤 따라오기라도 하듯이 가파른 골목길로 내뺐어요. 며칠 전 떠버리 찬이가 물었어요.
"반장! 넌 부모님은 안 계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안 계시긴 인마! 부모님은 사업차 늘 바쁘시지."
세진이는 거짓말을 했어요. 한 번 한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어요. 용돈을 타기 위해서 이모나 외삼촌한테는 예사롭게 했어요. 세진이는 이모 아들 동갑내기 승준이 보다 공부도 훨씬 잘하고 반장이라 세진이 말이라면 무조건 들어 주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승준이는 세진이를 못마땅하게 여겼어요.
"으윽! 생선 비린내. 용건 있으면 거기서 말하고 가."
승준이는 현관에 들어서는 세진이를 타박했어요. 세진이는 울컥했지만, 이모가 들으라는 듯이 한마디 했어요.
"안 승준! 형이 왔으면 안으로 모셔야지."
승준이보다 생일이 한 달 빠른 세진이는 늘 형이라고 큰소리쳤어요. 그러면 영락없이 이모가 쫓아 나오거든요.
"세진이 왔구나. 어서 들어와. 이그! 세진이처럼 공부나 좀 잘하지."
이모는 승준이 머리에 꿀밤을 주는 시늉을 했어요.
"메롱"!
세진이는 이모 등 뒤에서 혀를 쏙 내밀었어요. 승준이는 주먹을 치켜들었어요. 그런데 승준이는 언제부턴가 살이 찌기 시작했어요. 승준이의 작아진 명품 옷은 다 세진이 차지가 되었어요.
‘지금 입고 있는 저 명품 티셔츠도 곧 내 것이 되겠군!’
세진이가 일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이었어요. 한밤중에 엄마는 세진이를 깨워 황급히 옷을 입혔어요. 영문도 모르는 채 엄마 손에 이끌려 아파트에서 급히 나왔어요. 놀이터 쪽에서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빠는 엄마 손에 종이쪽지를 쥐여 주고 세진이 머리도 몇 번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세진아! 아빠 돌아올 때까지 엄마 잘 부탁해. 넌 사나이이니까 네가 이제 엄마 보호자야……"
"싫어! 가지 마."
아빠는 곧 돌아온다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지만, 세진이는 손가락을 걸지 않았어요. 아빠가 자꾸만 뒤돌아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어요.
"아빠, 가지 마."
아빠 뒤를 따라가려던 세진이를 엄마가 붙들었어요. 엄마는 놀이터 뒤쪽에서 택시를 잡았어요.
"아저씨, 이 주소대로 가주세요."
"엄마, 집에 안 가고 어딜 가?"
엄마가 세진이를 택시 안으로 밀어 넣었어요. 택시는 비탈길로 올라갔어요. 말로만 듣던 달동네 지하방 앞에 세진이와 엄마를 내려놓았어요. 방문을 열자 쾌쾌한 곰팡이냄새가 확 풍겼어요. 세진이는 코를 막았어요.
"이게 무슨 냄새야?"
한여름 창문도 없는 지하방은 푹푹 쪘어요.
"세진아.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
저녁때가 다 되어 들어 온 엄마 몸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확 풍겼어요.
"웩! 생선 비린내."
"고등어를 좀 사 왔어."
"나 고등어 싫어하잖아?"
"배고프겠다. 엄마가 고등어조림 맛있게 해 줄게 잠깐만 기다려."
엄마는 세진이 말에는 대답은 하지 않고 부엌으로 나갔어요.
그 뒤 엄마는 거의 매일 고등어조림을 했어요. 엄마가 외출하고 돌아오면 언제나 생선비린내가 났지만, 고등어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느 날 골목 시장 앞을 지나오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어요. 골목 시장에는 많은 사람이 붐비고 있었어요.
"생선 사세요."
소리 나는 쪽을 봤더니 엄마가 웅크리고 앉아 생선을 팔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세진이는 뒷걸음질을 쳤어요. 세진이는 믿기지 않았어요.
'차라리 큰소리를 지르지……'
근데 3년이 지난 지금은 엄마 목소리가 제일 크게 들렸어요. 엄마가 당당할수록 세진이의 거짓말은 더욱 늘어났어요.
"친구가 교통사고로 큰 병원에 입원해서 다녀와야 해. 위로 선물 사고 교통비하고……"
"안됐구나. 그러니까 늘 차 조심해야 해. 얼마면 되니?"
"많을수록…… 명색이 반장인데."
세진이는 그렇게라도 해서 자신의 신분을 숨겨야 했기 때문이에요. 세진이는 학교에서 언제나 명랑하고 친절했어요. 집에 오면 반 친구들을 만날까 두려워 바깥에는 절대 나가지 않았어요.
"다들 모여. 반장이 발표한다. 토욜 날 내 귀빠진 날 모두를 초대한다. 선물은 사양이다."
그렇게 말해도 당연히 선물은 가지고 오니까요.
"역시 사장님 아들이라 달라."
떠버리 찬이가 또 떠들어댔어요. 그날은 승준이가 입던 최고급 옷을 입고 나갔어요. 그 옷은 새것이나 다름없었거든요.
"와, 이거 되게 비싼 옷이네."
"글쎄? 아빠가 생일선물로 미국에서 보내 왔어."
그리고 친구들이랑 헤어질 때는 꼭 승준이네 고급 빌라까지 가서 헤어졌어요. 다행히 승준이는 세진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지 않았어요.
그날도 엄마는 팔다 남은 생선을 가지고 와서 고등어조림을 했어요.
"에이, 또 고등어조림이잖아?"
"등 푸른 생선 고등어가 얼마나 몸에 좋은데. 세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도 순전히 이 고등어 덕분이야. 감사해야지."
"먹기 싫단 말이야. 이제 질렸어."
다음 날 점심시간에 친구들한테 둘러싸여 급식 식당으로 갔어요. 식당 앞에 오늘의 특별 메뉴판에 <고등어조림>이라고 붙어 있었어요. 세진이는 고등어조림이라면 머리가 절레절레 흔들렸어요. 옆에 붙은 메모에 눈길이 갔어요. <오늘의 초대 요리사 김혜선 선생님>
‘어, 우리 엄마 이름이랑 똑같네.’
하지만 엄마가 요리사일 리는 없어요. 친구들이랑 배식구에 식판을 내밀었어요. 세진이는 하마터면 식판을 떨어뜨릴 뻔했어요. 엄마는 놀라는 세진이를 보고도 아는 체하지 않았어요. 안도의 숨이 후유! 하고 나왔어요.
"반장, 오늘 특별 요리사로 초대되신 분이야. 우리 엄마가 초대했어."
떠버리 찬이 엄마는 자모 회장이라 거만을 떨며 말했어요. 세진이는 순간 어지럼증을 느꼈어요. 엄마가 고등어조림을 세진이 식판에 담아주었어요. 세진이는 아이들한테 들킬까 봐 신경이 곤두섰어요.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고등어조림이 맛있다고 난리였어요.
"아줌마, 고등어조림 더 주세요."
찬이가 배식구로 가더니 고등어조림을 듬뿍 가지고 왔어요. 찬이가 혜린이한테 하는 말이 귀에 크게 들렸어요.
"저 요리사 선생님 우리 동네 골목 시장에서 생선 장사하는 아줌마야."
"캑캑!"
"왜 그래?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렸어?"
혜린이가 놀라서 물었어요. 그때 엄마가 주방에서 달려 나왔어요.
"왜 그러니?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거니?"
엄마는 물 컵을 세진이 입에 갔다 대며 등을 두드려주었어요.
"저리 비켜요. 아줌마 고등어 때문이란 말이에요."
물 컵의 물이 엄마 얼굴에 튀었어요. 세진이 얼굴이 울상이 되었어요.
"반장, 요리사 선생님께 너무하는 거 아니야? 너답지 않게."
혜린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어요.
"너 고등어 먹지도 않았는데 고등어 때문이라고 했어?”
찬이도 한마디 했어요.
"그, 그랬어. 미안해."
"야, 나보고 사과할 게 아니라 요리사 선생님께 해야지."
"싫어! 내가 왜?"
놀란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세진이 주변에 몰려왔어요. 세진이는 사태 수습을 위해서 얼른 배식구로 달려갔어요.
"죄, 죄송합니다.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줄 알고 놀라서 그만……"
세진이는 서러움이 복받쳤어요.
"그, 그래. 괜찮다. 너만 할 때는 예민해서 그런 거란다. 착하구나."
세진이는 입술을 깨물고 울음을 참았어요.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몰려와 손뼉을 쳤어요.
"역시 세진이야."
떠버리 찬이가 떠들어댔어요. 다행히 아이들이 눈치를 채지 못 했어요. 집에 와서 세진이는 엄마를 원망하며 화를 냈어요.
"친구들이 알면 어쩌려고?"
"엄마가 고등어조림으로 요리사 자격증을 땄어.“
"그래서 맨날 고등어조림을 한 거였어?"
"단골손님이 너희 학교 자모 회장님이셔. 그분의 소개로 가게 되었어."
"그분? 찬이 엄마 말이야? 생선장사 아줌마가 반장 엄마인 줄 떠버리 찬이가 알면?"
세진이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어요. 순간 고등어조림이 목에서 올라오는 지 헛구역질을 했어요.
엄마는 한숨만 쉬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 엄마가 더 미웠어요.
"차라리 회초리로 때려. 이 못된 놈아! 하면서……"
세진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속이 후련하지 않았어요. 식당에서 당당하지 못한 자신이 미워 더 화가 났어요.
"우리 아들 마음고생이 심하구나. 이제 세진이도 다 컸으니 말해도 되겠네."
세진이가 아빠에 대해 간혹 물어도 대답도 하지 않던 엄마가 처음으로 아빠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어요.
"아빠 친구 회사가 어려워 보증을 섰는데 부도가 났어."
"그럼 경찰에 신고했으면 됐잖아? 그 아저씨 되게 나빠. 우리를 망하게 했잖아."
"그 아저씨도 그러고 싶었겠어. 사업을 하다 보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거란다. 아빠는 친구를 도와 드린 거고. 그래서 아빠가 자수하셨어."
"그러면 아빠 미국 있는 게 아니었어?"
"미안하다. 네가 놀랄까 봐 말 못 했어."
어느 날 오후, 엄마가 아직 집에 올 시간이 아닌데 엄마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들렸어요.
"세, 세진아!"
세진이는 방문을 박차고 나갔어요.
"엄마 손이 왜 그래?"
엄마는 온통 피 묻은 수건으로 손을 감싸고 있었어요.
"응, 조금 베었어."
"조금 베인 게 이렇게 피가 많이 났어?"
"괜찮아. 연고 발랐으니 며칠 지나면 나을 거야."
"엄마 어서 병원 가자. 내가 엄마 보호자잖아. 보호자 말 들어. 응?"
엄마는 세진이를 와락 품속에 안았어요. 엄마 품에서 나는 생선 비린내가 고소했어요. 그렇게 한참을 세진이는 엄마 품에 안겨 있었어요. 얼마 만인지 몰라요.
"요리사님, 오늘은 제가 특별 메뉴로 저녁을 해 올리겠습니다.“
오랜만에 엄마랑 마주 보고 웃었어요.
다음 날은 일요일이었어요. 엄마가 새벽시장을 가려고 일어났어요. 그동안 알아도 모르는 척했거든요.
"엄마 손가락 아픈데 시장 가?"
"일찍 수산시장 가야 물 좋은 생선을 골라 오지."
"나도 따라갈래."
엄마는 이불을 덮어주며 더 자라고 했지만, 따라나섰어요. 엄마 손수레를 세진이가 끌었어요.
"생선 사세요. 생선! 물 좋은 생선이 야요."
세진이는 엄마 흉내를 내며 큰소리로 외쳤어요.
"얘가 세진이인 겨? 엄마 닮아 착하기도 하지."
채소가게 할머니가 세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어요.
며칠 있으면 어린이날이에요. 월요일 조회 시간에 선생님이 세진이를 불러 세웠어요.
"이번에도 어린이날 세진이가 선행 상을 받게 되었어."
"이번엔 제가 양보할래요.”
"어? 상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애가 웬일이야?"
떠버리 찬이가 또 떠들고 나섰어요.
"반장! 이번 상이야말로 진짜 네 상이야."
선생님이 말씀하시자 아이들이 휘파람을 불고 책상을 두드리며 일제히 손나발을 불었어요.
"생선 사이소! 물 좋은 생선이 야요."
"자자, 이 녀석들 조용히 하지 못해!"
세진이는 뒷머리를 긁었어요. 혜린이가 보이지 않았어요.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식당에 갔어요. 배식구에 엄마가 하얀 가운을 입고 배식을 하고 있었어요.
"엄마!“
세진이는 달려가서 엄마 품에 안겼어요. 아이들과 선생님이 에워싸고 손뼉을 쳤어요.
세진이는 엄마와 어깨동무를 했어요. 아이들이 셀카를 찍고 난리였어요.
혜린이가 뒤쪽에서 캠코더를 찍으며 말했어요.
"지금까지 고등어 초등학교 김혜린 PD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