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가 지었고 흥덕왕 때 진산조사가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리기 전에는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에서 가장 큰 절 중 하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후 대웅전과 천불전을 다시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 있는 천불전은 옛 건물을 1975년에 완전히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안쪽에는 목조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가섭과 아난존자를 모시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왼손가락끝으로 오른손가락을 덮어 누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세 불상 뒤로는 천불이 그려진 탱화 3점이 걸려 있었다.
이 탱화는 광덕사의 사적기가 제작된 조선 숙종6년(1680) 당시에도 오래된 듯 보여 그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였으나 1999년 12월 화재로 소실되었다.
김흥식의 첫 발령교인 천안 신사초등학교 근무시절
당시 소설가 정비석은 조선일보에 명비열전(名妃列傳)을 연재하고 있었다.
천안문인협회 회원인 김흥식은
정비석을 도와 소설속 명비 김부용의 무덤을 찾아보기로 했다.
풍세면과 광덕면사무소를 그리고 무연고 묘를 뒤져
결국 찾았다.
천안문인협회 여러명의 열성 회원들의 덕분이다.
당시 천안역 앞 '동방서림' 사장 김성열씨의 큰 도움으로
이 김부용시비를 세우게 되었다.
까마득히 잃어버릴 역사의 한줄기를 건져낸 셈이다
김복양 대감의 첩인 김부용은 대감이 묻힌 광덕사 가까이 붇혀있다고 이조실록에 적혀있다
조선시대 유명한 기생들은 술을 따르는 작부가 아니라, 당시 최고의 연예인이었다.
김부용은 황진이와 더불어 조선시대 3대 명비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