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떫고, 시고, 짜고, 달다. 다섯 가지 맛을 간직한 차(茶)는 오감으로 마신다. 찻물을 끓이고 따르면 소리를 듣고, 차반 위의 다구들과 여린 강아지풀의 속살처럼 맑고 투명한 잎찻물을 보며, 차가 전하는 은은한 향기를 맡는다. 차종과 다완이 전하는 고요한 감촉을 담담하고 조용한 자연을 닮은 차의 맛을 보는 일이다. 차를 마시는 사람은 차를 닮게 되며 곧 자연이 된다….
전북 일대 야산에는 한국 토종 차나무가 야생상태로 남아있는 곳이 많고, 차나무를 심고 가꾸는 곳도 많다. 순창의 적성면 일대와 구림면 만일사 주변, 정읍 두승산 중턱과 망상봉 일대, 부안 개암사 월정약수 오름길 주변과 내소사 주변 등 이 땅 여러 곳에서 군락 형태로 발견되는 자생차 흔적들이 그 증거다. 전주 오목대 아래에서도 야생 차나무밭이 발견되었으며, 전주 최명희문학관 뒷마당에는 고추, 토마토, 오이 등과 함께 차나무가 줄을 맞춰 심어 있다. 정읍과 고창, 익산, 부안은 특히 차나무가 싱싱하다.
정읍에서 고품질의 녹차가 생산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차나무가 생장할 수 있는 북방한계선 위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읍을 비롯한 전북 곳곳은 수백 년 전부터 고품질 차의 생산지였다. 『조선왕조실록』(세종지리지), 『신동국여지승람』등의 기록에 의하면 정읍현, 태인현, 고부군 등 정읍 각 지역은 주요 차 생산지였고, 나아가 그 뛰어난 품질이 인정돼 조선왕실에 진상되었다.
일제강점기 ‘오가와’라는 교사가 정읍 입암면 천원리 일대에서 자생차를 발견, 대규모 재배에 들어간 후 연 7천여 근의 차를 생산해 일본으로 수출했다는 기록도 있다. 익산은 국내 차밭으로 최북단(북위 36도3분)인 웅포면 함라산 일해사터에 차를 가꾼다. 이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찬바람을 막기에 온도 변화가 적고 다습하다. 기존 차나무 자생한계로 알려진 김제 금산사 일대(북위 35도13분)보다 30여km 북쪽에 위치해 있다.
매년 차를 앞세운 축제도 열린다. 익산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茶문화대회(10월)가 열리고, 전주한옥마을과 완주 모악산에서는 화전놀이(4월)가 열린다. 정읍에서는 매년 11월 정읍야생차문화축제가 개막된다. 전주 연꽃축제와 김제 하소백련축제, 익산 솜리낭산연꽃축제에서도 차는 뺄 수 없는 귀한 테마다.
신토불이의 이치를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이 땅의 기후와 토양에서 자란 차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 생산된 차보다 뛰어난 맛과 효능을 가지고 있다. 차는 성인병과 현대병 예방을 비롯해 노화방지, 피부미용, 술·담배 해독작용, 지방간 예방 등 효능과 효과들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체내중성 지방이나 콜레스테롤의 체외 배출을 촉진하는 녹차의 카테킨 성분은 다이어트와도 밀접하다.
분주한 일상. 녹초가 된 저녁 무렵 녹차 한 잔이 주는 여유. 굳이 야외나 고즈넉한 장소가 아니어도 좋다. 도심에서 전통차를 마시며 잠시 삶의 향기에 취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첫 잔을 조심스레 따라주는 주인의 눈망울에 비친 찻잔과 찻물을 바라보는 것도 찻집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여유다.
전주한옥마을에는 소담한 전통찻집들이 오종종 모여 있다. 공예품전시관 사거리에 있는 전통찻집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는 초미니 찻집이지만, 이곳의 대추차는 후덕한 주인 덕에 시장기를 면케 하는 미덕이 있다. 감로차·머루차·석류차·솔잎차 등 특이한 차도 만날 수 있다. <교동다원>은 한옥의 멋스러움을 음미할 수 있는 전통한옥 찻집이다. <차마당>은 주인장 입담이 최고다. 넉넉한 웃음과 함께 입맛을 깔끔하게 해 줄 감잎차를 내온다. 한옥마을에서 가장 현대적인 찻집인 <고신>은 녹차에 국화와 자스민을 피운 꽃차와 귤·사과·배 등 말린 과일로 만든 고신차가 화사한 빛깔로 찾는 이를 유혹한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지리산에서 나는 1백가지 약초를 5년 동안 숙성시킨 백초효소차를 추천한다. 녹차의 떫은 맛을 즐기고 싶다면 <다호>의 우전이 좋다. 장수 곱돌찻잔에 담긴 <오목대 가는 길>의 쌍화탕 마시는 방법 하나. ‘찻잔을 불에 가열함으로 뜨거우니 우선 수저로 밤, 은행, 대추, 잣을 떠먹으며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찻잔이 적당하게 식으면 편강(생강절임)을 먹으며 쌍화탕을 마십니다’.
이곳은 13가지 한약재가 고루 들어간 쌍화탕을 진안 손내마을에 사는 옹기쟁이 이현배 씨가 만든 옹기솥에 달여낸 다음, 장수곱돌 찻잔에 다시 끓여 낸다. 주인장의 세심한 배려가 더 곱다.
완주 비봉면 봉실산 자락의 <만가은>(滿佳隱)의 쌍화차도 한약재를 9시간 이상 끓여낸 차에 오곡다실을 아낌없이 담아낸다. 산과 들과 내(川)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그만이다. 남원 실상사 앞에 소탈하게 자리한 <다산방>은 지리산생명연대가 꾸린 찻집이다. 그저 소박한 살림집이었을 원래의 모습을 크게 손대지 않은 모습이 반갑고 친근하다. 우두커니 앉아 눈 대고 있기에 좋은 창도 있다. 액자같이 걸린 창틀에는 해바라기도 피고, 구름도 지나며, 비도 오고, 눈도 내린다.
완주 구이면 항가리의 <풍경소리>는 ‘거기에 있습니다/모악의 한 자락/꼭 그만큼의 자리에….’라는 시와 함께 박남준 시인의 이름을 붙였다. 해질녘 풍경소리 들으며 붉게 물드는 들녘을 바라보는 것은 이곳에서만 가질 수 있는 행복이다. 부안 변산반도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면 근사한 찻집이 여럿이다. 작당마을 왼편 언덕의 카페 <작당21>은 부안의 예술인들이 즐겨 모여 ‘작당'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을 소재로 한 시(詩)도 꽤 된다. <그림과 풍경>은 한지공예가 마진식 씨가 150년 된 흙집을 사서 전통찻집으로 꾸민 곳이다. 벽화와 공예품들을 구석구석 채웠다.
무주 덕유산 백련사와 고창 선운사, 부안 내소사 등에서는 그 절만의 맛을 보여준다. 찻잔을 씻고 약간의 시주를 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전통찻집들은 대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우연히 지나치다 만난 아름다운 찻집에서의 차 한 잔은 더 즐거우리라.
첫댓글 위 문제의 답은 여기 있었네요...정읍 - 수성동 <차생원> 063-532-1346
따라서.. 정답을 맞춘 분은 서해조님이네요.. 축하합니다!
해조님 축하 축하 ㅎㅎ
이제 쥔양반이랑 서해조님이랑 만나셔야겠네요...
세종실록지리지에 이런 것도 기록되어 있나봐요.. 저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만 적혀있는 줄 알았어요..^^
그나저나 마진식 군은 어디서 머하고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