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사람: "오시우" <oshew45@hanmail.net> 받는사람 : "정영인" <jyi10@hanmail.net> 날짜: 2011년 11월 06일 일요일, 09시 39분 06초 +0900 제목: <수필> 어느 결혼식 / 정영인 ( 음악은 아래 "표시하기 " 클릭 하기 ! )
<수필>
<어느 결혼식>
어느 결혼식에 다녀왔다.
한국에서 이름난 호텔 결혼식이다.
나나 집사람이나 처음 가보는 유명 호텔 결혼식이다.
그 정도 되면 다들 마음속으로 저울질하게
되는 것은 솔직한 심정이다.
축하금을 얼마니 할 것인가.
적어도 내가 먹은 음식값 만큼은
해야 할 것이 아닌지…….
몇몇 친구들도 그런 속내를 내비친다.
부부 동반하면 또 다르고.
나의 기본적인 생각은 그렇다.
결혼식, 고희연 등은 당사자들이 기쁜 날이다.
축하해주는 마음을 담뿍 가지고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시골 동네에서는
어느 집에 잔칫집이 있으면 바로 온 동네 잔치였다.
온 동네 사람이 한 이틀을 그 집에 가서 비벼댔다.
그때는 돈 봉투를 가지고 가는 축하금이 아니라
자기 집의 분수에 맞게 개똥이네는 감주 한 동이,
순자네는 닭 한 마리, 국수 두어 관,
그도절도 안 되면 겨란 한 줄이라도 들고 갔다.
그러던 것이 어느 때부터 돈 주고
돈 받기식의 축하 문화가 되었으니…….
시골 잔칫집에서 끗발이 최고인
사람은 잔칫집 주인이 아니고,
고방 담당 아줌마였다.
즉, 잔칫상에 내갈 음식을 보기 좋게 엽엽하게
존절하게 썰고 차려서 내보내는 최고 책임자였다.
그 사람에는 한두 명의 보조가 꼭 붙었다.
또 고방에는 함부로 드나들 수가 없었다.
고방 책임자의 솜씨에 따라 음식이 모자라거나
남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음식의 플로리스트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녀는 음식을 만들지 않았다.
만든 음식을 가지고 차리는 담당이었으니깐.
물론 아무나 시키지 않았다.
경력과 연줄이 있어야 주인에게 지명되었으니깐.
아이들 중에 그 아이 엄마가 고방 책임자로 지명 되면
그 자식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후광이 비쳤다.
그 아들을 통해서 먹어보기 어려운 잔치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제나 저제나 그놈의 끈이 중요하다.
잔치 전후 날이면 진풍경이 벌어진다.
엄마들이 힐끔힐끔 눈치를 보아가며
행주치마 속에 떡이며 전이며 감주를 숨겨서
자기 자식들에게 몰래 가져다 먹였다.
혹은 장독대 뒤에서, 혹은 뒷간 옆에서라도.
예식장에 들어가니 벌써 분위기가 다르다.
도떼기시장 같은 일반 예식장에 비하여
분위기는 차분하게 가라 앉아있다.
전면에는 층층이 크고 작은 촛불이 밝혀져 있고,
식장 안에는 원탁이 수십 개 양식
차림으로 놓여 있다.
원탁에도 굵은 양초가 불빛을 밝히고 있다.
시끌벅적이라든지 그런 분위기와는 영 다르다.
그런 결혼문화에 길들여진 나는 약간
주눅이 들기도 한다.
클래식한 음악이 흐른다.
과연 신부가 음악가라서 다르다.
어리바리한 나는 친구들과 테이블에 앉는다.
축하금만 삐죽 디밀고 식당에 가서
음식과 술 등을 무진장 먹는
뷔페식 차림과는 다르다.
큰 접시 위에는 오늘의 메뉴가 적혀져 있다.
1) 관자올린 참치 프로슈트,
2) 애플망고 레몬 셔벳,
3) 겨자소스 블랙 앵거스 안심구이,
4) 잔치국수,
5) 오미자 소스 흑임자 케이크,
6) 아몬드 곁들인 아스파라거스 크림 수프,
7) 커피와 차, 그리고 주류는 적색 포도주이다.
식이 시작됐다.
친구가 딸을 데리고 들어온다.
신부는 많이 달라졌다.
어렸을 적에는 갸날갸날했는데
이젠 음악가의 기품이 흐른다.
친구 부부는 그런 딸을 뒷바라지하느라고
애를 많이 썼다.
고생한 보람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딸에 대한 뒷바라지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결혼 후 A/S가 기다린다.
맞벌이를 하면 손주들의 육아까지
책임져야 하는 노인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친구들 몇몇도 우스갯소리로 가정에다
유아원을 차린 집이 몇 집이 된다.
문제는 부모가 골병들기 쉽다는데 있다.
주례사에서는 이 말이 인상적이다. ‘
사랑하는데 우물쭈물하지 말라’
영국의 문호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 있다고 한다.
사실 어찌 보면 인생이란 우물쭈물하다가
여기까지 온지도 모른다.
축가도 전문인들의 클래식한 3중주이다.
이젠 결혼문화도 날로 진화한다.
주례가 없는 결혼식, 신랑이 축가를 부르고,
웨딩마치로 영화 미션의 ‘넬라 판타지아’가 흐르고,
축가를 신랑 친구가 색소폰으로 흑인 맹인 가수 레이 찰스의
‘I can′t stop loving you'가 연주되기도 한다.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신선함이 자라를 한다.
음식이 나온다. 우선 떡 몇 개가 나온다.
한 사람이 한 개꼴이다.
양식을 먹어본지도 오래고,
또 내가 아는 양식을 먹는 방법은 딱 세 가지다.
냅킨은 무릎 위에, 왼랐이 포크 오른랐이 나이프, 그
리고 좌빵우물이다.
양식에서 나의 왼쪽에 있는 것이
내 빵이고 오른쪽에 있는 것이
내 물이라는 것이다.
다음에 나온 것이 딱 두 조각의
참치구이와 레드와인이다.
아마 안주인가 보다.
웨이터가 와인 잔에다 1/3쯤 따라주는 주법에
감질나나보다. 염치불구하고
아주 병째 주문하여 마신다.
웨이터가 우아하게 웃는다.
아마 네댓 병을 마셨을 거다.
촌로(村老)들의 치기(稚氣)이기도 하다.
아마 테이블 중에서 우리가 제일
소란하기도 했을 게다.
안주가 없다고 투덜거리고…….
수프가 나오고 메일 메뉴인 부드러운
스테이크가 나왔다.
나의 입맛에 제일 맛깔스러운 것은 ‘
아몬드를 곁들인 그린아스파라거스 크림수프
(Green Asparagus Cream Soup with Roastel Amonnds)가 참 맛있다.
웨에터에게 더 달라고 했던,
주문요이라 없다고 한다.
참 창피하다.
생각을 해보니, 그 나라의 문화를 아는 첩경(捷徑) 중에는
그 나라의 식문화를 아는 것이 아닌가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듯이…….
우선 세계화, 다문화 시대에 그 나라의
식문화의 기본쯤은 알아야 하겠다.
불란서의 어느 유명한 식당 주인은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음식을 팔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 관광객들은 너무나 재촉하고
빨리 먹기 때문에 느긋하게 자가 요리를
감상하면서 먹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오른손으로 먹는 중동권의 케밥을
왼손으로 먹으면 대단한 모욕이다.
그들은 왼손으로 배변 후 뒤처리를 하기 때문에….
이는 마차 우리가 수저로 음식을
먹는 문화와 같은 맥락이다.
참 좋은 경험을 했다.
나중에 양식을 먹는 기본을 배워야 하겠다.
크리 인디언의 「창조주가 우리에게 준 4가지 과제」가 생각난다.
‘하루에 한 가지씩 배우고, 가르치고,
남을 위해 일하고, 생명체를 사랑하라’는 것!
집에 오는 전철 안, 젊은 연인이
내 눈에 거슬릴 정도로 드러내놓고 스킨십이다.
옆에서 빌려온 도서관 책을 보던
아줌마가 눈을 치켜뜨고 못마땅한 눈치다.
백안시(白眼視)한다. 나도 많이 늙어가는가 보다.
시대의 트렌드를 잘 모르니 말이다.
박원순이 서울 시장이 되고,
안철수가 대통령감이 되듯이….
‘
왜 저리도 좋아서죽겠다는
젊은이들이 이혼을 많이 하는지….’
어리바리한 노인네들이 포도주에 취했는가,
수원 가는 전철을 타서
급히 내려 인천행으로 바꿔탔다.
친구의 딸도 새로운 인생으로 바꿔탔다.
그들에게는 인생의 제2막이 기다린다.
행복을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