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그렇게 과거는 추억으로 사라진다
꿈 그리고 설렘으로 우리는 초등학교를 들어갔다. 왼쪽 가슴에는 이름표 대신 손수건을 달았다. 연신 흘러내리는 콧물을 닦기 위한 손수건이다. 코가 묻고 때가 찌들어 까맣게 된 손수건은 옷소매에 묻은 코딱지만큼이나 미끈거렸다. 흘러내리는 콧물이 콧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면 옷소매로 닦든가 가슴에 옷핀으로 매단 손수건으로 닦았다.
“스~윽”
그 순간 콧물은 길게 실을 만들며 치즈 늘어나듯 늘어났다가 코에서 떨어져 옷소매나 손수건으로 자리를 옮겼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다.
이런 추억은 생활에 찌들어 까맣게 잊었다가 세월의 먼 흔적으로 먼지처럼 기억에 달라붙는다. 그것도 아주 아련하게 마치 남의 얘기처럼 무성영화의 필름으로 한 컷 우리에게 다가온다. 동창회를 할 때 주고받는 단골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코 질질 흘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우리가 환갑이야.”
“그래 맞아. 순자 너 정말 코 많이 흘렸지.”
“순자도 그렇지만, 기순이는 지 코를 입으로 빨아 먹었잖아.”
“….”
동창들이나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이다. 1980년대 이전에 학교를 다닌 농산어촌의 학생들은 이런 추억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래도 이런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동창이라도 있으면 참 좋다. 세월은 다만 추억으로 아련하게 기억을 삼키며 흐르고 있었다. 학교가 사라진 추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더 이상 추억을 옭아 맬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고성군 토성면 성대리에 있던 신평국민학교가 그랬고, 동해시 천곡국민학교가 그랬다. 둘 다 1982년에 폐교가 된 학교이다. 신평국민학교는 화장실만 남아 있었다. 아이들의 낙서만 남긴 채 산속 소나무가 우거진 숲에 덮인 채로 말이다. 화장실 문짝이 떨어지고 거미줄이 여기저기 늘어져 있었다. 그래도 그곳에는 그 옛날 학생들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삼십 몇 년 전의 일이다. 화장실 귀신이 잡아간다는 옛 이야기와 같이 무엇인가 손으로 끌어들여 잡아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주변은 아주 황량하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신평국민학교는 현재 화장실이나마 있지만 천곡국민학교는 아예 시내가 되었다. 집들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즐비하다.
정말 그랬다. 신평국민학교와 천곡국민학교 출신들을 찾기에는 쉽지 않았다. 삼십 육년 전에 마지막 졸업생이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마당이다.
정말 ‘과거는 추억으로 사라진다.’는 말이 실감 났다. 학교는 참 중요한 우리의 역사이다. 그것도 초등학교는 정말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 한 사람의 역사이고, 그 마을의 역사이다. 나아가 나라의 역사가 되고 세계의 역사가 될 수 있다. 마치 초기 항일의병들이 중국과 소련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만들었던 우리의 민족학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