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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주치의의 신분으로 100회 출전을 앞두고 있는 나영무 솔병원 원장. 1996년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회로 대표팀과 첫 인연을 맺은 지 어느새 15년의 시간이 흘렀다.
1996년 처음으로 대표팀 승선. 2002년 한일월드컵을 비롯해 청소년, 올림픽, 성인대표팀을 거치며 현재 99경기 출전. 오는 11월 11일 UAE와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4차전에서 대망의 100경기 기록 달성.
차범근, 홍명보, 황선홍, 박지성 등이 달성한 ‘센츄리 클럽’ 가입 선수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선수들의 부상 치료와 재활을 위해 대표팀 주치의의 신분으로 경기에 참가한 나영무(49) 솔병원 원장의 A매치 출전 횟수이다.
15년동안 대한축구협회로부터 비행기 티켓만 제공받고 별다른 보수없이 자원봉사에 나섰던 나영무 원장. 1996년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회 멤버로 대표팀과 첫 인연을 맺은 그는 축구대표팀 선수들 외에도 LG트윈스 주치의로 활동했었고, 피겨여왕 김연아의 개인 주치의이기도 하다.
스포츠 재활 치료 전문의 나영무 원장을 만나 그동안 치료를 맡았던 운동 선수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들어봤다.
대표팀 주치의=자원봉사
흔히 대표팀 주치의라고 할 때 일반인들은 축구협회로부터 엄청난 대우를 받는 걸로 착각한다. 대부분 유명 병원의 원장 또는 전문의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국제대회 참가를 위해 작게는 일주일, 많게는 한 달 이상씩 병원을 비운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표팀 주치의는 무보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항공권만을 제공받는 게 전부다. 그래서 대표팀 주치의는 ‘자원봉사’의 개념이 훨씬 강하다. 선수들에 대한 사랑과 축구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돈도 안 되는’ 일에 시간과 체력을 낭비할 수가 없는 것.
나 원장은 “국제대회가 열릴 경우 의무분과위원회에 소속된 닥터들이 돌아가면서 배정을 받게 된다. 모두 현업에 있기 때문에 시간을 빼기 힘들고 대학 병원이 아닌 개인 병원을 운영할 경우에는 더더욱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기가 어렵다”면서 “이 일은 자원봉사의 개념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선수들을 따라다니며 의료 활동을 하기가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한다.
주치의도 운동을?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그라운드 안에서 갑자기 우리 팀 선수가 쓰러졌다. 심판이 선수의 상태를 살핀 뒤 벤치를 향해 닥터를 불러들이면 나영무 원장은 선수가 있는 곳까지 전속력을 내 달려 나간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으면 달리기조차 버거울 수 있는 상황.
“주치의는 경기가 진행될 때 스코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선수들 움직임에만 시선이 가 있다. 선수들에게 가장 신속한 치료와 대응을 하기 위해선 빨리 달려가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평소에 운동을 해야 하고, 경기 전날에는 좀 더 강한 웨이트트레이닝을 실시한다. 시간이 없을 때는 선수들이 훈련할 때 볼보이를 자처하며 몸 관리에 나선다.”
1999년 나이지리아 청소년선수권대회에 주치의로 따라나선 나 원장은 김은중이 넘어진 걸 보고 그라운드로 뛰어가다가 발목을 접질리는 바람에 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그렇다고 절룩거리며 선수한테 달려갈 수는 없는 법. 고통을 참고 뛰어가서 치료를 마치고 벤치로 돌아온 그는 이후 한동안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감독의 고충
대표팀 주치의는 경기 중이나 훈련 중에 부상 선수가 발생할 경우 감독에게 선수의 부상 정도와 앞으로의 회복 가능성 등을 알려줘야 한다. 특히 중요한 국제대회를 앞둔 상태에서 주전 선수가 부상을 당했다면 그 선수가 언제쯤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있는 지를 결정해야 한다.
“감독들 입장에선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부상 당한 선수가 하루 빨리 복귀하길 바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선수들은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됐을 때 뛰기를 원한다. 그런 상황에서 주치의가 어떤 결정을 내린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번은 2000년 올림픽대표팀을 맡았던 허정무 감독과 설전을 벌인 적도 있었다. 선수 부상과 관련해서다. 돌이켜보면 감독 입장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부상을 참고 뛰려고 한다. 그런데 그런 행동은 선수 생활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나영무 원장은 지도자들의 의식 변화가 선수들한테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참는 게 능사?
나 원장은 선수들을 치료하며 두 가지 유형의 선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든 고통을 참고 이를 악물며 뛰는 선수와 자신의 몸을 끔찍이 아끼는 선수이다. 감독은 첫 번째 유형의 선수에게 후한 점수를 주겠지만, 나 원장은 길게 봐선 두 번째 유형의 선수가 선수 생활을 오래 이어갈 수 있다고 한다.
“이용수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청소년대표팀 선수들 중에서 성인대표팀에 합류하는 선수가 50%를 넘지 못한다고. 이유는 부상 때문이다. 내가 처음 대표팀 주치의를 맡았을 때 시행착오를 겪었던 부분이 선수들의 인내심이었다. 선수들이 아픔을 참고 뛴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내가 봤을 땐 분명 부상 정도가 큰 데, 선수는 뛸 수 있다고 우긴다. 감독도 선수가 뛸 수 있다고 하는데, 왜 자꾸 뛰지 말라고 하느냐며 펄펄 화를 낸다. 결국 선수는 경기에 출전을 하게 되고, 그 경기 이후 오랫동안 그라운드를 떠나 있어야만 했다. 선수가 아파도 참고 뛴다는 걸 그때 제대로 알게 됐다. 운동선수들한테는 참는 게 능사는 아니다.”
히딩크와 홍명보 감독의 공통점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선수 관리에 적잖은 실망을 안고 있었던 나 원장은 히딩크 감독을 만나면서 외국인 감독의 지도법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박지성도 영국에서 연골 수술하고 9개월가량 재활에 매달렸다. 이청용도 부상 후 거의 9개월을 재활하는 데에 집중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부상을 당했더라면 3개월 후에는 그라운드에 복귀해야 한다. 즉 팀의 핵심 선수한테 한 시즌을 통째로 쉬게끔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외국은 선수들에 대한 몸 관리가 철저하다. 감독 또한 부상 선수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팀 닥터의 진단을 존중해준다. 그런 점에선 2002년 월드컵대표팀 주치의를 맡았을 당시 히딩크 감독이 보여준 부상에 대한 이해와 수용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히딩크 감독은 주치의의 의견을 100% 존중해줬다고 한다. 외국에선 의사의 진단을 무시하고 선수를 뛰게 했다가 선수 생명에 지장을 초래할 경우, 선수가 감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한다. 나 원장은 앞으로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몇몇 감독들은 선수들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고 지금 당장의 성적내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만약 자신의 아들이 몸이 망가지는 걸 뻔히 알면서도 혹사를 당한다고 가정한다면, 아들에게 참고 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국은 심할 정도로 선수들의 혹사를 방치하다시피 한다. 내가 본 지도자들 중에선 단 한 사람만 히딩크 감독의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바로 올림픽대표팀의 홍명보 감독이었다.”
나 원장이 본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을 존중해주는 감독이다. 부상 한 선수가 있을 때는 아무리 그 선수의 경기력이 필요한 절박한 상황이라고 해도 철저히 선수를 보호해주고 부상이 완쾌될 때까지 기다려준다.
“U-20청소년월드컵대회에서 8강 신화를 이룬 선수들이 경기 후 절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절은 관중들이 아닌 홍명보 감독을 향한 절이었다. 선수들이 홍 감독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홍 감독이 선수들을 이끄는 모습 속에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선수들에 대한 사랑이 포함돼 있었다.”
여우같은 박지성
몸 관리를 잘 하는 선수가 머리가 좋다? 적어도 나 원장은 임상 경험을 통해 그런 확신을 갖고 있다. 경기장에 들어간 선수가 집중력이 떨어져 있거나 쉽게 흥분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행동을 할 경우 부상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항상 침착한 플레이로 영리하게 경기를 풀어가는 선수는 부상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머리를 쓰면서 넘어진다는 것.
“박지성은 모범적인 생활 습관이 부상 당할 확률이 적다는 의료계 속설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선수다. 훈련과 대표팀 생활을 규칙적으로, 정확히 지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상대와 몸싸움을 할 때 넘어지는 요령을 잘 알고 있다. 보통 선수들은 넘어지면 무릎이 꺾여 부상을 당하지만 박지성은 온몸을 이용해 넘어지면서 충격을 최대한 분산시켜 특정 부위에 무리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부상을 피하는 요령과 부상 후의 몸 관리에 대해서도 개념 정립이 확실히 서 있는 선수였다. 의사 입장에선 정말 바람직한 선수다.”
대표팀 주치의로 활동하면서 여러 명의 국가대표 감독을 만난 나영무 원장. 그는 선수들의 부상과 선수생활에 대해 걱정해주고 배려해주는 홍명보 올림픽대표팀의 마인드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부상에 선수의 인생이 보인다
스포츠 재활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2000여명의 운동 선수들을 치료해온 나 원장은 선수들의 부상 부위를 촬영한 X-레이 검사를 보면 그 선수의 인생이 그 부상에 올곧이 담겨져 있다고 말한다.
오래전 이민성 선수의 발목을 촬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 원장은 그 X-레이 검사 후 가슴이 아파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거의 발목이 너덜너덜해졌을 정도로 많은 뼛조각들이 돌아다녔다. 관절염까지 있어서 도저히 발목이라고 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황선홍도 마찬가지였다. 한 마디로 옛날 선수들 중에는 골병 든 선수들이 꽤 많았다. 이동국도 지금까지 내가 봤던 선수들 중에서 가장 몸이 좋은 선수였다. 그런데 부상 후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무리하게 뛰다가 재발되는 일이 반복되며 몸이 망가졌다. 염기훈도 부상이 잦은 선수 중 한 명이다. 이쪽 일을 오래하다 보니 이젠 선수의 부상 정도만 봐도 그가 어떻게 운동을 해왔는지, 그의 몸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읽을 수가 있다. 운동선수한테 생명과도 같은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과오가 조기 은퇴로 이어지는 일이 수두룩하다.”
나 원장은 얼마 전 ‘위대한 탄생 2’에 출연한 구자명의 방송을 보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고 토로한다.
“2007년 청소년대표팀 때 인연을 맺은 선수였다. 정말 축구를 잘 하는 선수였고, 2006년 수원컵 국제청소년클럽 축구대회 MVP를 받을 만큼 미래가 촉망된 예비 스타였다. 그랬던 선수가 결국 허리 부상으로 조기 은퇴하고 배달 일을 하며 지냈다고 하더라.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땀을 흘리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니 너무 마음이 시렸다. 선수들은 어린나이에 축구를 그만두면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공부를 하지도 못했고, 사회 경험도 없고, 결국엔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하게 된다. 구자명도 그런 케이스였다. 지도자가 조금이라도 선수의 장래를 생각해줬더라면 지금쯤 프로리그를 누비는 선수가 됐을 것이다.”
“당신 자식이라면 그럴 수 있어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거나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는 나 원장도 선수 부상 문제로 감독과 크게 언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선수가 부상으로 병원을 찾아왔는데 진찰 결과 대퇴부 골절이었다. 그래서 치료를 한 뒤 깁스를 해서 돌려보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그 선수가 속해 있는 팀 감독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멀쩡한 애를 왜 깁스를 해서 보냈냐며 버럭 화를 내더라. 그래서 골절이기 때문에 지금 뛰게 하면 절대로 안 된다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그 감독은 전화기를 통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면서 소리를 질러대기에, 내가 ‘당신이 정말 감독 맞느냐? 감독이란 사람이 어떻게 선수 생명이 위험한 상태인데도 신경조차 쓰지 않느냐’고 맞받아쳤다. 그 후론 그 감독 얼굴을 두 번 다시 보지 않았다. 선수를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감독이었다.”
선수들도 변했다!
15년동안 축구대표팀 주치의로 활동하면서 나 원장도 선수들의 태도에 변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체감한다고 털어놓았다. 예전 같으면 머리에서 피가 나도, 발목이 다쳐도 붕대를 감거나 참고 뛰겠다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안 뛰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한다는 것.
“내가 보기엔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국가대표에 대한 의식이 이전과는 큰 차이가 생긴 것이다. 즉 요즘 선수들은 태극마크에 대한 감정적인 접근이나 정신력에 의존하기 보단 현실적인 문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대표팀 소집 후 부상을 당하기라도 하면 결국 자신만 손해라는 생각이다. 소속팀에 돌아가서 부상으로 뛰지 못해 벤치 신세로 전락하면 그 공백을 회복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손흥민 선수의 대표팀 차출 논란도 그런 차원에서 불거진 게 아닌가 싶다. 선수들의 의식 변화를 탓할 게 아니라 대표팀 관계자들이 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선수단을 운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희생정신만을 강요하는 시대는 지나간 것 같다.”
김연아의 개인 주치의이기도 한 나 원장은 김연아의 시원스런 성격과 치료를 받을 때 고통을 참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점프를 하고 착지할 때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척추가 틀어지고 골반이 비틀어지는 부상이 있었지만 지금은 개인 트레이너 고용 후 거의 부상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사진=연합뉴스)
김연아와의 만남
어느날 나 원장한테 특별한 환자가 찾아왔다. 바로 ‘피겨여왕’ 김연아였다. 나 원장이 본 김연아의 몸 상태는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특성상 허리와 골반, 발목에 문제가 있었다. 오른 발로 뛰고 착지도 오른발로 하다 보니 몸이 휘면서 전체적인 균형이 깨진 상태였다.
“당시 김연아 선수의 몸 상태가 심각하진 않았지만 점프 후 엉덩방아를 자주 찧게 되면서 척추 골반이 틀어지고 자세가 망가지면서 통증을 유발시키고 있었다. 더욱이 한창 성장을 하는 과정이라 그 통증이 더욱 심했다. 그런데 김연아 선수의 인내성이 대단했다. 워낙 의지가 강하고 소탈한 성격이라 치료를 받으며 통증을 많이 느꼈을 텐데도 별다른 불평없이 잘 감당해내더라. 그 후론 우리 병원에서 보낸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하고 꾸준히 몸 관리를 해왔다. 지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새 스케이트화를 신는 바람에 발목에 무리가 있었던 것 외엔 개인 트레이너 고용 이후 부상없이 올림픽을 치러냈다.”
인성이 좋은 선수가 성공한다!
수많은 선수들의 재활치료를 담당하면서 나 원장은 조심스럽게 이런 결론을 내린다.
“인성이 좋은 선수가 운동선수로서도 성공한다!”
나 원장은 박지성처럼 모범적인 사생활을 영위하고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적극적인 관리에 들어가는 선수들, 그리고 인성이 훌륭한 선수가 운동선수로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흔히 스포츠계에서 ‘문제아’로 꼽히는 선수들은 몸 관리에도 문제가 많은 편이다. 소위 스타플레이어들한테는 은연 중에 특권 의식이 있다. 내가 제일 잘 났다는 VIP의식을 갖고 있다. 가끔은 그런 선수를 볼 때마다 선수인지, 연예인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운동선수는 자신의 인생을 운동 하나에 ‘올인’하지 않았나. 그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남들보다 더욱 피나는 노력과 인내와 극기 등이 필요하다. 부상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만난 선수들을 통해 그가 선수생활에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얼마 절박한 심정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런 선수를 만날 때는 의사도 뭔가 하나라도 더 잘 치료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재활의학? 재활용의학?
나 원장이 원래 하고 싶었던 과목은 정신과였다고 한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들 대부분이 말년에 ‘직업병’을 앓게 되는 걸 보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연세대 본과 2학년 때 아주대의 이일영 재활의학과 교수의 강의를 들은 이후 결심을 굳히게 됐다. 재활 의학을 통해 아픈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신념이 생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 또한 많아질 것 같았다고 한다.
“당시 연세대에 재활센터가 있다보니 재활의학과의 커트라인이 상당히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의 의식에는 재활의학과에 대한 개념 정립이 거의 안 된 상황이었다. 무슨 과를 전공하느냐고 해서 재활의학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재활용과요?’라고 되물은 적도 있었다(웃음).”
선수한테 최고의 ‘의사’는 지도자
재활 중인 선수가 있다고 하자. 재활이 길어질수록 그 선수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선수는 재활 기간이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의학 분야라고 해도 의학적인 관점에서 100%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심리다. 그때 만약 감독이 그 선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부상 치료 잘 하고 돌아와서 다시 시작해보자”라며 용기를 불어넣어주면 그 선수의 몸 상태는 눈에 띄게 호전된다.
“실제로 있었던 사례이다. 부상당한 선수는 자신의 자리에 대해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때 그의 지도자가 선수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심어준다면 선수의 회복 속도는 굉장히 빨라진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지도자를 만났을 때는 회복 속도가 더디다. 그래서 치료라는 건 물리적인 치료도 중요하지만 심리적인 치료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여자축구대표팀의 지도자들을 보면 대부분 온화한 유형의 감독들이다. 여자 선수들 자체가 윽박지르고 강하게 몰아친다고 해서 경기력 향상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들한테는 스파르타식의 훈련보다는 ‘오빠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지도자들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이 바로 선수들 심리다.”
치료와 재활을 통해 충분히 회복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선호하는 선수와 지도자를 만날 때 나 원장은 안타까움을 갖게 된다. 사진은 대표팀과 울산현대에서 활약 중인 곽태휘를 치료하고 있는 나 원장의 모습.
수술이 능사는 아니다!
나 원장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선수들은 충분히 치료를 통해 회복될 수 있는 부상인데, 수술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일찌감치 수술을 받고 나 원장을 찾아온 선수들이다.
“야구 선수들은 어깨 수술을 받을 경우 자신이 갖고 있던 기량의 2,30%가 떨어진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혹사당한 선수가 어깨 수술을 받고 프로 입단한 이후 전성기 때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또한 선수들은 한국보다 외국에 나가서 수술받는 걸 선호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사들의 손기술은 외국 의료진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섬세하고 정밀하다. 한국에서 수술한 선수들의 예후가 외국에서 수술받고 온 선수들보다 훨씬 더 좋다는 건 이미 통계로 나타나 있다.”
나 원장은 바쁜 진료 일정 중에도 스포츠 재활을 위한 강연이 마련된 자리라면 장소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간다. 축구지도자들을 위한 강연, 태릉선수촌 지도자들을 위한 교육 등을 통해 선수의 부상을 미리 예방하고 수술보다는 치료를 통해 선수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내용들을 거듭 강조한다.
인터뷰 말미에 나 원장과 대표팀에서 선수와 주치의로 만났다가 지금은 친분이 두터운 관계로 발전했다는 이영표의 선수 생활 연장에 대해 물어봤다.
“이영표 선수는 박지성 선수 못지 않게 몸 관리를 잘 하는 선수이다. 지금 잠시 쉬고 있는 중이지만, 본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선수 생활을 더 오래 할 수 있는 건강한 신체를 갖고 있다. 그가 선수생활을 더 하고 싶어 한다는 기사를 보고 개인적으로 내심 반가웠다.”
나 원장은 위에서 축구선수들 중 역대 최고의 몸으로 이동국을 꼽은 바 있다. 그렇다면 현재 대표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중, 최고의 ‘몸짱’은 누굴까.
“기성용이 최고다. 체력, 신체 비율, 얼라인먼트, 모두 훌륭하다. 그래서 그 거친 스코틀랜드리그에서 생존하는 게 아닌가 싶다.”
![]() 재활 치료 교육을 통해 선수들이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나 원장은 축구를 좋아한 나머지 일산에 축구장을 만들고 병원 직원들을 위주로한 축구단까지 창단했다. 이름은 '솔FC'라고. |
첫댓글 엘리트 체육에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죠. 운동이 직업이 아닌데 몸을 너무 혹사 시켜서 큰 부상을 당하시는 분들을 여러번 보았습니다. 진정한 건강에 대해 생각해 볼수 있는 좋은 내용이네요.
좋은글 잘보았습니다^^ㄳ
좋은글 좋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