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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
누가복음 강해(47)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2022.06.27 월)
본문 : 누가복음 8:18
몇 년 전(2019.11. 29) 방영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라는 프로그램에서,
‘개 구충제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암 환자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는 펜벤다졸의 효능을
검증하는 내용을 방영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미국의 조 티펜스라는 사람이 2016년 8월
소세포폐암으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었는데,....
2017년 5월 암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자신이 개 구충제인
펜벤다졸을 일주일 복용했더니
치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튜브를 통해 이 소식이 전 세계로 퍼지자......
암환자들이 너도 나도 개 구충제를 구입해
복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제작진은 조 티펜스를 직접 만났고
암 완치 결과와 의무기록을 단독으로 공개했는데,.....
그가 새로운 항암체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개 구충제를 일주일 먹고
완치되었다는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
많은 암환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개 구충제를 구입해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품귀현상까지 발생했다고 합니다.
조 티펜스의 영상을 계기로
펜벤다졸을 복용하기 시작한 폐암 말기의 .....
개그맨 김철민 씨의 사례를 두고 김 씨의 주치의는
"간 수치 등이 좋아진 건 펜벤다졸 효과가 아니라
표적 항암제 효과"라고 경계했습니다.
한편 식약처는 "펜벤다졸을 장기간 투약할 경우 ...
혈액·신경·간 등에 심각한 손상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뉴스나 정보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유튜브 등을 통해 검증도 되지 않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도 가짜인 것을 알면서도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가짜뉴스를 흘리는 것입니다.
‘팩트 체크’를 통해 진위를 가리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이제는 제3자가 단순히 ‘그랬다더라’고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
당사자가 직접 가짜 뉴스를 말하는 동영상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딥페이크 기술’이라고 합니다.
이 기술을 이용하여 대통령이나 유명 정치인의
동영상 발언을 얼마든지 조작해 낼 수 있습니다.
이 딥페이크를 만들어 내는 담당자는
AI(인공지능)입니다.
인간이 필요한 데이터만 제공하면 AI는
아주 빠르고 수월하게 딥페이크 영상을
제공해 줍니다. 딥페이크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중요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음성변조 기술과 영상변조 기술입니다.
성우가 원고 내용을 읽어 AI에 전달해주면
‘스피치 투 스피치(speech-to-speech)’라는 ..
음성 합성 기술을 사용하여 어떤 사람의
음성이든 그대로 변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영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딥페이크가 잘못 사용될 우려는 매우 큽니다.
여론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 선거를 생각해보십시오.
누군가가 후보 A에게 치명적인 딥페이크 동영상을 만들어
유세기간 막판에 터뜨립니다.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선이 확실시 되던
A 후보는 이로 인해 낙선하고 맙니다.
뒤늦게 이 동영상이 딥페이크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지만,...
이미 선거는 끝났고 낙선은 낙선일 뿐입니다.
이토록 앞으로 우리가 사는 시대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진실의 세계와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가 뒤섞여
공존할 수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진실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설령 진실을 안다 하더라도, 이미 돌이킬 수 없거나...
혹은 또 다른 가짜와 뒤범벅이 되어 끝내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계시로서의 말씀>
그러나 만물이 변하고, 세상은 혼란스러워져 가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사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먼저 기독교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떻게 여겨야 하는지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는 관점에 따라 구원의 주체에 따라
자력종교와 타력종교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에 이를 수 있기에....
타력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또 계시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종교와
계시종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연종교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자연적인 본성을 통해
진리(신)를 알아갈 수 있다는 입장이고,
계시 종교는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진리(신)를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알려 주셔야만 알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기독교는 계시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계시하여 주셔야만 알 수 있습니다.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I am who I am”(“나는 나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자신을 밝혀주셨습니다.
또 계시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신비한 자연현상을 통해 인간이 신적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것을 일반계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계시로는 신의 성품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인간은 하나님의 내적 계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이나 의도, 섭리 등을 알게 됩니다.
우리 기독교는 성경을 하나님께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성품이신지,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계시해 주신
특별계시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말씀의 종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은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길이 비록 좁은 길이라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등블의 비유>....
앞서 예수님은 ‘등불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우리 성도들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16절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이(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드러내는
‘등불’이 되어 세상의 어두운 그늘을 밝히고,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사명자들이
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그러면 ‘더욱 빛(등불)을 발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18절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앞의 말씀과
‘그러므로’라는 전치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등불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한 조건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특별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무엇을 들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는 말씀입니다.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듣는 자의 태도가 문제입니다.
‘스스로 삼가라’는 말
은 ‘스스로 식별하라’는 뜻입니다.
지난 시간 말씀 드렸듯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많았습니다.
각 성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 곧 “네 종류의 밭의 비유”를
전하시면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땅이 많지 않음을 아신 것입니다.
‘씨앗’이 문제가 아니라 그 씨앗을
받아들이는 ‘땅’이 문제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듣느냐’가 아닙니다.
‘어떻게 듣느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니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잘 표현된 내용이 있습니다.
<요10:25-26>
25절 (자신을 선한 목자에, 유대인들을 양에 비유)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26절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이적을 행하시고 진리를 가르치셨지만
오히려 대적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향하여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6)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목자 되신 예수님에게는 양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순종하여 주인의 부름에 순종하지 않는 양은
결국 버림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음성을 듣고 따르지 않는 양을
“내 양이 아니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가장 행복한 하늘 백성이었지만 ...
그들 스스로 그 선택을 버리고 세상에 속하여
마귀를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다면
그들의 삶이 정말 달라졌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구원에서 제외된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의 양이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선한목자되신 주님의 음성을 무시하고
따르지 않은 양은 더 이상 주님의 양이 아닌 것입니다.
스스로 구원에서 제외된 것입니다.
정말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살전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말씀 받는 자세가 달랐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개역 성경에는 구분되어 있지 않지만
영어 성경에는 “받다”라는 동사가 다른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 received(받다 ).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 accepted(받아들이다 ).
“받다”와 “받아들이다”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전자는 겉으로 무언가를 받는 것이고...
후자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나타냅니다.
즉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너무도 감사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떠나 베뢰아에 이르러
말씀을 전했는데 이 사람들의 반응도 놀라웠습니다.
행 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예,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간절한’이라는 형용사가 더 붙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말씀을 날마다 상고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무엇을 들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들을까’가 더 중요합니다.
어떤 태도를 가지는가 하는 것이 그 일생을 좌우합니다.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던 진대제 씨가 한번은
강연을 하기 전, ‘100% 인생을 만드는 법’이라는
영어식 유머를 말하였습니다.
영어 알파벳에 순서대로 1∼26까지 번호를 붙여.....
단어의 숫자를 더해서 100이 되면
100점짜리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Hard Work)은 98점, 지식(Knowledge)은 96점,
사랑(Love)은 54점, 행운(Luck)은 47점,
돈 (Money)은 72점, 리더십 (Leadership)은 89점인데,
태도(Attitude)만이 100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유머이지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말씀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그 인생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태도에 따른 결과>
그 말씀을 듣는 태도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다릅니다.
눅 8: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있는 자’란 말씀을 듣고
믿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없는 자’란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는 자를 가리킵니다.
‘영적 부익부 빈익빈’은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달란트 비유(마25:14-30)나 므나 비유(눅19:11-27)의
결론 부분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25;28-30>
28절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영적인 세계에서 평등은 없습니다.
말씀을 주의 깊게 받아 들여
그 말씀대로 열매를 맺고......
빛을 발하는 삶을 산 사람은
천국에서 영원한 영생을 누리고.......
말씀을 업신여기고 소홀히 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고
빛 된 삶을 살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진리마저 헛된 것으로 드러나고
결국 불행하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성도님들이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는지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자신은 압니다.
다른 사람은 판단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교정해야 합니다.
바라기는 저와 성도님들이 !
하나님(주님)의 말씀을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처럼,
베뢰아의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
풍성한 결실을 맺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등불이 되어 빛을 비추고.......
우리의 빛을 보고
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