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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사이공(완결편)
작가: 백화 문상희
이 소설은 옛날에 맹호부대 장병으로 월남전쟁에
참전했던 삼촌의 얘기를 들은 근거로 쓴 소설이며
소설 속의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임을 알려드립니다.
(1) 장똘뱅이
오정태는 1946년 2월 문경시 가은읍 왕릉리에서 태어났다.
정태가 가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아버지
오근수는 은척탄광 막장이 매몰되는 바람에
돌아가셨고
어머니 유순자는 나이 사십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받은 보상금으로 어머니는
왕릉리 근처에 밭뙈기 두 마지기를 샀다.
어머니와 정태 두 모자는 참깨와 고추농사를 지어
장에 내다 팔아 근근이 입에 풀칠을 했다.
정태는 부지런한 근성을 가지 아이였다.
반공일인 토요일 오후엔 족대질로 물고기를 잡아서
어머니에게 같다 드려 반찬을 해서 함께 먹었다.
학교를 가지 않는 일요일엔 늘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가서 나무를 해다가 헛간에 쌓아두었고
어머니는 땔거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정태는 계절마다 뒷산에서 머루와 다래를 따다가
어머니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정태의 몸도 커가면서 조금씩 근육질로
바뀌고 있었다.
정태의 언제나 호롱불을 켜고 밤이 되어서야
숙제를 했으나 벼락공부로 시험을 봐도 성적은 언제나
상위권을 맴돌았으니 머리도 꾀나 좋은 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나서부터 집안일을 정태가 도맡아
하는 효자였다.
정태 어머니는 혼자 청상과부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도 젊은 나이었다.
장날이면 정태 집에 항상 들르는 주성남이라는
중년 남자가 있었다.
주성남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자 유순자 남편의
삼년상이 끝나도록 기다렸다.
혼자 사는 성남이 아저씨는 아버지의 삼년상이
끝난 후 수시로 어머니 방에서 자고 가는 사람이었다.
주성남 역시 정태 아버지가 다녔던 광산의 광부였다.
주성남은 장날 물건을 살 때면 꼭 두 개의
보따리를 싸가지고 왔다.
하나는 어머니에게 주셨고 또 하나는 아저씨가 가져가셨다.
성남은 올 때마다 정태에게 용돈도 주면서
정태를 귀여워해 주었다.
성남이 아저씨가 집으로 오는 날 정태는 주전자를
들고 아자개 장터로 막걸리 심부름을 가야 했다.
정태가 술 심부름이 싫지 않았던 것은 잔돈을
심부름 값으로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남이 아저씨가 오는 날 정태는 아랫채에
군불을 때고 자야만 했고
그래도 정태는 성남이 아저씨가 좋았다.
정태는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집으로 가는 길에
가방을 메고 언제나 아자개 장터 구경을 했다.
아자게 장터는 규모가 꽤나 큰 오일장이었다.
아자개 장터가 유명세를 탄 것은 견훤 왕의 아버지인
아자개가 태어난 곳이었다.
아자개는 신라시대 상주땅을 호령하던 호족장이었다.
그 덕에 아자개 장터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시장이 되었다.
정태는 장날마다 구경을 하다 보니 성남이 아저씨가
장똘뱅이라는 별명도 붙여주었다.
정태는 어릴 때부터 높은 감나무에 올라가 홍시를
따는 등 몸이 날렵하였다.
그래서 또래 친구들에게는 날다람쥐로 불려졌다
정태에게는 꿈이 하나 있었고
그것은 서커스단원이 되는 게 꿈이었다.
정태는 작년가을 장터에 들어온 서커스단을
구경하고부터 서커스단원의 꿈을 키웠다.
정태가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간 가을쯤에 서커스단이
가은읍에 다시 들어왔다.
가은읍과 인접한 은척면과 문경읍에는 탄광이 여러 군데
있어서 인구가 많은 곳이다.
그래서 서커스단도 야외극장도 자주 들어왔다.
정태는 오일장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정태는 어머니를 설득해서 서커스단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졸랐다.
어머니는 정태의 집요한 설득에 못 이겨 성남이
아저씨와 함께 서커스단 천막 사무실로 갔다.
서커스단의 웅장한 높이는 읍내에서 가장 큰 제일의원
보다도 더 높았다.
천막 입구에는 레슬링 선수같이 생긴 덩치 큰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아직 공연 전이라 들어가면 안 됩니다.
오후 1시에 시작하니 그때 와서 표를 사세요!"
"네~, 선생님 그게 아니고요,
우리 아이가 서커스를 배우겠다고 졸라서 왔답니다.
우리 아이는 나무도 날렵하게 잘 타고 총기가 있는 아이니까
단장님을 한번 만나게 해 주세요!"
"아주머니, 여기에 서커스 배우겠다고 오는 아이가
한두 명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냥 돌아가세요!"
"아저씨 그래도 한 번만 만나게 해 주세요!"
이번에는 정태가 나서서 애원을 했다.
바깥이 소란한 탓인지 사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와서 말했다.
"박군, 도대체 무슨 일인데 이렇게 소란스러운가?"
"예, 단장님!
이 아이가 서커스를 배우겠다고 떼를 써서 돌려보내던
중이었습니다."
"그래?
내가 지금 담배를 사러 가던 중인데 그러면 박군 자네가 가서
아리랑 담배 한 보루만 사 오게!"
"예, 알겠습니다 단장님!"
기도를 보던 박군은 담배가게로 갔고 단장이라는 분은
별일 아니라는 듯 뒤돌아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정태가 다급하게 말했다.
"단장님, 무엇이던 시켜만 주신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제발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정태는 무릎을 꿇고 손을 비비면서 애원을 했다.
안으로 들어가려던 단장은 정태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래, 너는 나이가 몇 살이냐?"
"예, 저는 중학교 2학년 열여섯 살입니다."
그때 박군이라는 사람이 담배를 사가지고 왔다.
"단장님, 담배하고 잔돈 여기 있습니다."
"그래, 고맙네!
자네 안에 가서 줄넘기하고 곤봉을 좀 가져오게나!"
"예, 알겠습니다 단장님!"
잠시 후 박군이라는 사람이 곤봉과 줄넘기를 가지고 왔다.
"그래, 넌 이름이 무엇이냐?"
"예, 단장님, 저는 오정태라고 합니다."
"그래? 정태, 이름이 좋구나!
정태야 학교에서 이 곤봉을 해보았냐?
"예, 단장님!
곤봉이 재미있어서 운동회 때 연습을 많이 했답니다."
"그래?
그러면 이 줄넘기와 곤봉을 한번 해보거라!"
단장은 정태의 순발력과 민첩성을 시험하고자 했다.
"예, 단장님!"
정태는 키는 좀 작았지만 운동 신경은 남달리 뛰어난 아이였다.
정태는 집에서도 늘 하던 줄넘기였고
정태는 2단 3단 고난도의 줄넘기도 능숙하게 해냈다.
"음, 운동 신경은 꽤 빠르구나!
그럼 이번에는 곤봉도 한번 해 보거라!"
이번에도 정태는 운동회때 하던 대로 능숙하게 해냈다.
"정태 부모님 되시는가요?"
"네, 그렇습니다."
정태 어머니 유순자가 대답을 했다
"사실 서커스는 열 살 이전부터 배우는 게 정상입니다.
그리고 서커서는 위험하고 고난도의 기술이기 때문에
강인한 체력과 힘든 훈련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래서 중도에 포기하는 아이들이 태반입니다.
물론 정식 단원이 될 때까지는 급료도 없으며 숙식만 제공됩니다.
그래도 서커스 연습생으로 보내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엄마, 엄마, 제발 저를 서커서단에 보내주세요!"
이번에는 정태가 어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을 했다.
어머니 유순자는 주성남 씨에게 눈짓으로 의사를 타진했다.
정태는 어머니와 성남이 아저씨에게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한참을 생각하던 주성남 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단장님 우리 정태가 이렇게 하고 싶어 하니까
한번 시켜보겠습니다."
"네~, 결심을 굳히셨다면 안으로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간 단장은 박카스 한 병씩을 나눠주면서
간이의자를 내놓았다.
"일단 여기에 앉아보세요!
저는 아리랑 서커스단 고인석 단장입니다.
아까도 얘기를 했듯이 서커스는 쉬운 게 아닙니다.
연습 중에 다칠 수도 있어 항상 조심을 해야 하고
또 배우는 단계에서 인내가 필요하답니다.
그리고 처음 입단을 하게 되면 잔심부럼까지 해야 한답니다.
"이름이 정태라고 했던가요?"
"예, 단장님!
저는 오정태입니다."
"정태야!
내가 지금까지 하는 말을 잘 알아들었냐?"
"예, 단장님!"
"정태 어머니! 자제분이 이렇게 애원을 하니 정태를
우리 아리랑 서커스단 연습생으로 받아주겠습니다.
그러면 입단 서류에 부모님 동의와 도장을 찍어주셔야 합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셔서 이 서류를 잘 읽어보시고
도장을 찍어서 가져오세요!
그리고 학교에 가셔서 이런 과정을 알려주시고
중퇴 처리도 해주세요!
우리 서커스단은 오늘 공연을 마친 후 내일 철거를 해서
이번에는 영주로 떠납니다.
그러니까 정태가 입을 옷가지와 서류를 가지고
내일 아침에 여기로 와주세요!"
그제야 정태는 환하게 웃었다.
세 사람은 집으로 돌아와서 여러 가지 의논을 했다.
어머니와 성남이 아저씨는 걱정이 되어 정태에게 물었다.
"정태야, 서커스단에 들어가면 전국을 떠돌 텐데
네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냐?"
"아이고 걱정 마세요!
저도 이제 다 컸답니다 어머니!"
"그래, 네가 그렇게 하고 싶다니 어떻게 말리겠냐!
그놈의 고집은 네 아비를 꼭 뻬어닮았구나!"
세 사람은 점심을 대충 차려먹고 가은 중학교 교무실로 가서
사정 얘기를 하고 행정 처리를 했다.
정태 단임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정태에게 말씀하셨다.
"정태야 네가 서커스단에 들어간다니 나는 걱정이 되는구나!
여하튼 무슨 일을 하던지 최선을 다 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선생님!"
세 사람은 장터 서커스단으로 돌아왔다.
정태 어머니와 성남이 아저씨는 서커스 진행과정을 보기 위해서
길게 늘어선 줄 꽁무니에 섰다.
일 단 표를 사들고 세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고인석 단장이 서커스단 소개와 인사를 했고
이어서 읍장이 나와서 환영 인사를 했다.
서커스가 시작되자 많은 사람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쳤다.
그러나 자식을 저런 위험한 무대에 올려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달랐다.
정태 어머니와 성남이 아저씨는 가슴을 졸여가며 서커스를 보았다.
반면 언젠가는 저 무대에 올라갈 수 있다는 정태는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집으로 돌아온 세 사람은 정태와의 아쉬운 이별 준비를 해야 했다.
정태 어머니는 옷가지를 챙겨서 책가방에 차곡차곡 넣었다.
정태 어머니는 저녁을 먹은 후 정태를 가운데에 두고
꼭 껴안고 잠들었다.
이튿날 새벽 정태 어머니는 매일 달걀을 낳아주는
아까운 씨암탉을 잡았다.
정태 어머니는 시골에서 좀처럼 먹기 힘들었던 백숙을 만들어서
장태에게 먹였다.
그것은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아들과의 마지막
아침밥이었다.
정태 어머니와 성남이 아저씨는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고
정태는 신이 나서 저만큼 앞서갔다.
세 사람은 장터에 도착했을 때 벌써 서커스단 철거는 시작되었다.
단장을 찾아간 정태 어머니는 신신당부를 했다.
"단장님, 우리 정태를 잘 부탁드립니다.
다치지 않게끔 잘 지도를 해주세요!"
"네, 정태 어머니 걱정 마세요!
내년 가을쯤이면 가은 장터에 다시 올 테니 그때 뵙겠습니다!"
정태 어머니와 성남이 아저씨는 단장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돌아섰다.
"정태야~!
다치지 말고 잘 지내다가 내년에 보자꾸나!"
"네, 어머니 정태 아저씨도 안녕히 계세요!"
정태 어머니는 흐르는 눈물을 참아가며 돌아섰고
모자간의 이별을 지켜보는 성남이 아저씨도 눈물을 보였다.
(2) 서커스단 연습생
정태는 서커스 단에 합류하자마자 철거작업을 거들어야 했다.
어른 단원들은 무거운 쇠 파이프와 천막을 분리했고
아이들은 그것을 한쪽으로 가져와서 가지런히 정리를 했다.
또한 여자 단원들은 악기와 마술 도구들을 한쪽으로 옮겼다.
철거가 끝나자 그 자리에 커다란 버스가 들어왔다.
버스 옆면에는 화려한 서커스 그림과 함께 아리랑 서커스단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버스는 4열 의자 중에 운전석 뒤쪽 2열 의자는 없었고
맨 뒤쪽 의자도 없었으며 그 자리에 개폐식 문짝이 달려 있었다.
능숙한 단원들이 의자가 없는 자리에 하나씩 짐을 옮겼다.
단장은 일사불란하게 진두지휘를 했다.
그 많은 짐들이 버스에 다 채워지자 차례대로 버스에 올라탔다.
단장은 맨 앞자리에서 인원 체크를 했다.
운전석 외에 좌석은 2열 일곱 칸 14석이었고
운전사와 정태를 포함 총 12명이었다.
인원 파악을 끝낸 단장이 마이크를 들었다.
"자, 김기사 출발합시다!
에~, 가은읍은 근처에 은척탄광 봉명탄광 등 탄광지대라서
인구가 많아요!
그 덕분에 보름동안 수입도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또 아무 일 없이 공연을 잘 해준 단원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가은읍 공연도중 연습생이 한 명 들어왔어요!
저기 끝에 정태군 일어나 봐요!
아리랑 서커스 단원 여러분들과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
오정태 군을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단원들은 모두 큰 박수로 환영을 해주었고
정태는 얼굴을 붉히며 첫인사를 했다.
버스는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세 시간을 달려서
영주 공설운동장에 도착을 했다.
도착과 동시에 단원들은 또 짐을 내려야 했다.
단원들은 이력이 나서 그런지 일사불란하게 짐을 내렸다.
짐 내리는 게 끝나자 단장이 단원들을 모두 불렀다.
언제 시켰는지 자장면 열 두 그릇이 와 있었다.
"자, 저쪽에 여덟 그릇은 곱배기고 이쪽 네 그릇은
보통이니 아이들이 나눠서 먹어라!"
"예, 잘 먹겠습니다!"
여기저기서 인사를 하며 자장면을 먹었다.
때마침 오월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단원들의
땀을 시켜주었다.
식사를 마치자 일부는 담배를 피웠고 일부는 천막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다시 시작한 천막 조립 역시 손발이 척척 들어맞아
두세 시간 만에 조립을 끝냈다.
손님 들어올 천막까지 치고 나자 날은 어둑어둑 해졌다.
천막 모퉁이에서 열심히 조리를 하던 조영철 기사가
단원들을 불렀다.
"자~, 오늘 저녁은 카레입니다 카레!
빨리빨리 오셔서 식사들 하세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기도를 보던 박군은 단장님의 먼 친척뻘
동생으로 입장표 담당이었고
조영철 기사는 식사담당이었다.
양치질과 세수는 공설운동장 세면대에서 할 수가 있었다.
열두 명의 잠자리는 넓은 서커스 무대 자리가 침대 역할을 했다.
천막을 깔고 그 위에 안전을 위해 깔아 둔 고무판이 있어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세수와 양치질을 끝낸 단원들이 모두 모였다.
서커스 단원들은 군대처럼 단체적으로 움직였으며
단장의 명령에도 잘 따랐다.
정태는 마음속으로 단장이 고등학교 교련 선생님을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에 ~, 내일 하루 리허설 연습을 하고 모래 장날
1시부터 공연을 시작합니다!
오늘 밤 열 시까지는 자유시간이니까 단원 여러분들은
시간을 잘 지켜주세요!
일부 단원들은 그렇게 대답을 하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술 들 많이 먹지 마세요!"
단장은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말을 하고
이어서 정태를 불렀다.
"어이, 정태야 이리 좀 와봐라!"
"예, 단장님!"
"서커스의 기본은 체력이 우선이란다!
그러니까 매일 저녁 팔 굽혀 펴기 300회와 줄넘기 30분
그리고 철봉도 30분씩 하거라!
어느 정도 체력울 키우면 그다음에 서커스를 가르쳐주마!
그리고 선배들이 하는 동작을 잘 기억해 두도록 해라 알았냐?"
"예, 알겠습니다 단장님!"
정태는 서커스를 배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단장이
지시한 시간을 초과해서 매일 운동을 했다.
이튿날은 전체적인 리허설로 연습을 했다.
마스게임 형태의 무등 타기는 성인남자 세명과
또 열두 살쯤 되는 남자 둘 그리고 여자 한 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 팀은 고난도의 그네 타기 서커스도 했다.
그중에 김 씨는 원숭이 재주넘기를 보여주었다.
또 하나의 여자 아이는 덤블링과 철봉이 전문이었고
정태 나이 또래의 다혜라는 아이는 접시 돌리기와
무시무시한 고난도의 외줄 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여자 단원들 모두가 부채춤 쇼를 보여주었다.
단장과 박군 그리고 조영철 기사님과 정태를
빼고 나면 전문 서커스 단원은 총 여덟 명이었다.
단장은 중간중간에 나와서 불 쇼와 기막힌 마술을
보여주었다.
아리랑 서커스단 중에 가장 기본적인 묘기가
바로 어깨 무등 타기였다.
그중에 한 명이 내년 초 군 입대를 하게 되었고
그 자리를 메꾸기 위해 정태가 들어온 것이다.
정태는 그 말을 듣고부터 더 열심히 운동을 했다.
그것은 체력과 기본기를 모두 갖추어야 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정태는 어느 날 목욕탕에서 남자 단원들의 몸매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남자단원 모두가 하나같이 최상의 근육질 몸매였다.
정태는 철봉 회전기술과 텀블링 등 기본기
훈련도 체계적으로 하나씩 배워나갔다.
정태가 아리랑 서커스단에 들어온 지도 어느덧 육 개월이 되었다.
드디어 가을이 되면서 정태는 기본적인 덤블링
묘기를 무대에서 선 보일 수가 있었다.
그것은 정태가 피나는 노력을 한 덕분이었다.
마지막 태백 공연을 마치고 아리랑 서커스단은
서울로 올라왔다.
장충체육관 벽보에는 아리랑 서커스단 공연이라는
커다란 홍보물이 걸려있었다.
아리랑 서커스단 정식 단원으로 정태의 이름도 올라있었다.
그것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아리랑 서커스단의
공연을 알리는 홍보였다.
아리랑 서커스단은 일 년에 한 번쯤 실내체육관을
임대해서 공연을 하였다.
그러나 입장료 수입으로 임대료를 지불하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다는 말을 선배 단원에게 들었다.
물론 서커스단 단원들은 수입도 필요하겠지만
전통과 명예를 더 중시한다는 말도 들었다.
장충체육관 공연 마지막 날 단장은 사무실로 정태를 불렀다.
"정태야!
이번 공연이 끝나면 삼 개월간 휴식기간을 가진단다!
한겨울이 되면 추위 때문에도 야외공연을 할 수가 없단다!
물론 너를 집으로 휴가를 보낼 수도 있지만
내년 봄에 군대를 가는 용대의 자리를
네가 이어받으려면 연습을 부지런히 해야 한단다!
우리 집 옥상에 조그만 체육관이 있으니 휴가기간에
거기서 연습을 하도록 하거라!
"예, 단장님!
저도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정태야!
네가 그렇게 결심을 해주니까 고맙다!"
"아닙니다 단장님!
제가 배우는 입장인데 당연히 연습이 우선이지요"!
"그래, 정태야!
여기에 봉투가 두 개 있단다!
이것은 너의 용돈이고 또 한 개는 너의 어머니에게
드릴 돈이다!
내일 우체국으로 가서 우편환으로 보내드리거라!
우체국에 가면 직원이 알려줄 거야 정태야!"
"예, 고맙습니다 단장님!"
정태는 밤새 어머니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어머니 전상서.
안녕하세요 어머니.
아리랑 서커스단은 지방 순회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답니다.
겨울 동안에는 추위 때문에 야외 공연을 할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단원들은 삼 개월간 휴가를 떠난답니다.
그러나 저는 단장님 집에서 겨울 동안 훈련을
하기로 했답니다.
그것은 단장님이 저에게 숙식제공까지 해주시며
훈련에 전념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열심히 훈련을 해서 유능한 서커스단원이
될 것입니다.
어머니, 제걱정은 하지 마시고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하게 지내세요.
"서울에서 아들 정태 올림.
이튿날 정태는 단장이 가르쳐준 대로 우체국으로
가서 편지와 우편환을 어머니에게 보내드렸다.
아리랑 서커스단 공연은 11월 장충체육관
공연을 끝으로 겨울 동안 중단이 되었다.
그리고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은 석 달간의 휴가를
떠났다.
정태는 도봉산 아래 한적한 동네에 있는 단장
집으로 따라갔다.
단장 집 옥상에는 가건물로 지어진 조그만
체육관이 있었다.
바닥에는 고무로 된 매트리스가 깔려있었고
덤블링과 철봉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또한 근육을 키우는 운동기구도 많이 있었다.
정태는 겨울 휴가기간 동안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겨울 동안 체력을 키우고 연습을 해서 정식 단원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오십 대 후반의 뚱뚱한 사모님도 정태를 아들같이
대해주었다.
정태 역시 어머니를 대하듯이 사모님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추었다.
어느 날 거실에 걸려있는 사진을 보고 단장에게
물어보았다.
"단장님!
저기 가족사진에 있는 두 분은 자제분과 따님인가요?"
"반은 맞추고 반은 틀렸다!
저기는 내 딸이고 그 옆에는 사위란다!
그리고 가운데 꼬마는 내 손주란다!"
"네~, 그러시군요 단장님!"
"그래 정태야!
나는 아들이 없단다!
저 하나밖에 없는 딸은 미국에 살고 있지!
사위가 이민을 가는 바람에 자주 볼 수가 없단다!
딸내미 식구들은 본 지도 삼 년이 되어가는구나!"
"네~, 단장님!
보고 싶기도 하고 사모님이 외로우실 것 같아요!
단장님도 전국을 떠도시느라 집에 자주 오시지도
못하겠네요!"
"그래, 정태야!
그래서 집사람에게 늘 미안하게 생각을 하고 있단다!"
정태가 단장님 자택에 온 지 한 달이 넘어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정태야!
너 서울 시내구경을 못 해봤을 테니 오늘은 시내
구경이나 가자꾸나!
미국에서 딸내미가 올해 못 들어와서 죄송하다고
용돈을 푸짐하게 보내왔단다!"
"예, 고맙습니다 단장님!"
"여보, 당신도 내일 시내구경 갈 준비를 해요!"
"네~,알았어요 여보!
딸내미 덕분에 나도 맛있는 것 얻어먹고 오랜만에
쇼핑도 좀 해야겠네요!"
"그럽시다 허허허!"
정태는 단장님과 사모님이 참 좋으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성공을 해서 두 분에게 보답을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이튿날 단장님 부부와 정태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정태야, 내가 사는 도봉동은 서울 변두리 끝이란다!
그래서 시내 중심부까지 가려면 넉넉잡아 두 시간은 걸린단다!"
"아이고 단장님!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저는 함께 가는 것도 고마운 일인걸요!"
정태는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는 서울 구경에
정신이 없었다.
정태는 난생처음 가보는 백화점 구경에 그저
넋을 잃었다.
대낮에도 휘황찬란한 실내조명에 난생처음 타보는
엘리베이터는 환상적이었다.
엘리베이터 유리 밖으로 한국은행이라는 글씨와
웅장한 건물도 보였다.
단장님은 정태에게 N사 메이커 운동복과 운동화를
선물하였다.
'단장님 , 정말 고맙습니다!
열심히 훈련을 해서 단장님께 보답하겠습니다!
정태는 운동복과 운동화를 가슴에 않고 감격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단장님이 데리고 간 뷔페식당은 정태에게
천국처럼 보였다.
멋진 샹데리아 아래 수북이 쌓인 음식들이
정태의 입맛을 돋웠다.
정태는 완전히 촌닭처럼 접시에 음식을 가득
담아와서 정신없이 먹었다"
"정태야, 여기는 무한리필이니까 천천히 먹고
더 가져와서 먹어도 된단다!"
"예, 알겠습니다 단장님!
정태는 촌닭처럼 한 행동에 대해 민망하게 생각했다.
식사를 마친 후 단장은 음식점을 나와서
남산 케이블카로 향했다.
정태는 거듭되는 호사를 누리게 되자 단장
부부에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다.
"그래, 정태야!
네가 좋아하니 다행이구나!
정태 네가 꼭 내 아들같이 느껴지는구나!
안 그래요 여보!"
"그래요 여보!
나도 자식이 하나 생긴 것 같아서 좋답니다!"
정태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한 아름 않고
도봉동 단장 집으로 돌아왔다.
정태는 단장 부부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를 드리고
더욱더 운동과 훈련에 열중했다
드디어 삼 개월간 휴식기간을 끝내고 삼월에
공연준비에 들어갔다.
단원 선배 이용대는 군 입대를 하였고 그 자리를
정태가 이어받았다.
(3) 전국 순회공연
해가 바뀌어 정태의 나이도 열일곱 살이 되었다.
아리랑 서커스단 4월 첫 공연은 경기도 부천에서
시작했다.
부천은 복숭아로 유명한 곳이라서 온 산이
복사꽃으로 가득했고 향기도 좋았다.
공연은 소사 장터에서 열렸으며 도심 공연은
하루는 오후 1시에 또 하루는 오후 6시에 열었다.
야간공연은 도심 사람들의 퇴근길 손님들을 위한
공연이었다.
선배 이용대가 군 입대를 하고 단원도 한 명이 줄었다.
정태는 무등 타기 묘기를 완벽하게 해냈다.
정태는 선배 이용대의 빈자리를 빈틈없이 메꾸어
주었다.
그것은 겨울 휴식기간에 열심히 훈련을 거듭한
결과였다.
단장도 단원들도 정태의 빠른 성장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정태는 서커스 단원으로서 묘기에 몰입하게 되었고
기술도 하나씩 연마해 나갔다.
정태의 적극적인 기술 연습에 단원들도 탄복하여
단원들의 개인기도 하나씩 전수를 해주었다.
또한 단원들과 친해지다 보니 공연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시내 구경 나들이에도 합류했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의 술자리에도 합석을 하게 되었다.
무등 타기 묘기를 할 때 정태는 가운데 있었고
다음 동작 지시를 해주는 윤 씨 아저씨가 정태를 특히
이뻐했다.
그 윤 씨 아저씨가 정태에게 맥주를 한잔 따러주었다.
"야, 정태야!
오늘도 수고했으니 맥주 한잔 받아라!"
"아이고, 윤 씨 아저씨!
저는 아직 술을 못 먹어요!"
"그래?
정태 너는 올해 몇 살이냐?"
"예, 열일곱 살입니다!"
"야 인마, 아저씨는 서커스단 따라다니며
열두 살부터 술을 배웠단다!
어려서 술 담배하면 키 안컨 다는 말도 말짱 거짓말이다!
그래도 아저씨 키가 백칠십이 넘잖아 하하하!
그러니까 조금씩 먹는 것은 괜찮아 정태야!"
정태는 윤 씨 아저씨 성화에 못 이겨 난생처음으로
맥주를 조금 마셔보았다.
"아이고 이걸 무슨 맛으로 마셔요?
쓰고 또 텁텁한 게 이상하네요 히히히!"
"그래도 맥주는 고급술이란다!
그거 한잔만 마셔봐라!
조금 있으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공연이 끝나면 우리는 이걸로 피로를 푼단다!"
정태는 강요 반 호기심 반으로 조금씩 홀짝홀짝
한잔을 다 마셨다.
윤 씨 아저씨 말대로 조금 있으니까 꿈을 꾸는 듯
앞의 사물이 움직이며 어지러웠다.
"아저씨 어지러워요!"
"그래, 이제 효과가 나타나는구나 정태야!
어때, 기분이 좋아지지 하하하!
나도 옛날에 그랬단다!
술은 그렇게 배우는 거야!
"자~, 술도 안주도 떨어졌으니 이제 갑시다!
다음 공연은 충남 서산이니까 공연이 끝나면
바닷가에서 횟감에다 한잔합시다!"
같은 팀 김 씨 아저씨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윤 씨 아저씨는 본인이 과거에 술을 배울 때를
상기하며 비틀거리는 정태의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왔다.
정태는 왜 그런지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공중을
날아가는 그런 기분이었다.
오늘은 야간 공연을 하였기에 내일 철거를
한다고 했다.
세 사람은 공연장으로 돌아와 내일 서산으로
이동을 해야 하기에 잠자리에 들었다.
정태가 눈을 떴을 때 조영철 기사가 얼큰한
육개장을 끓이고 있었다.
어젯밤 맥주를 딱 한잔 마셨지만 정태는 처음으로
마신 술이라서 속이 좀 불편했다.
그러나 조영철 기사가 끓여준 육개장에
밥을 먹고 개운하게 정신이 돌아왔다.
단원들은 아침을 먹고 공연장 철거작업에 들어갔다.
정태는 이제 어른들 틈에 끼어서 어려운 작업도
척척 해냈다.
단원들을 태운 버스는 시흥을 지나 태안반도를
따라서 충남 서산으로 향했다.
꼬불꼬불 해안을 끼고 달리는 창밖의 모습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정태는 생전 처음 보는 바다구경 삼매경에 빠졌다.
해미읍으로 들어오는 길에 커다란 성문이 보였다.
단장은 조선시대에 축조된 해미읍성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곧이어 단원들을 태운 버스는 서산군 해미시장에 도착했다.
무대를 펼쳐야 할 곳에는 노점상들이 자리에 잡고
있었다.
단장은 차에서 내려 노점 상인들을 설득해야 했다.
"안녕하세요, 해미시장 상인 여러분!
저는 아리랑 서커스단 고인석 단장입니다!
저는 서산군청과 해미 면사무소에 신고를 하고
허락을 받아 여기서 내일부터 서커스 공연을
한답니다!
내일부터 보름동안 이곳에서 계속 공연을 해야 하니
자리 이동을 부탁드립니다!"
"아니~, 이 보시유~!
우리도 장사를 해서 먹고살아야 되는데
왜, 우리를 쫓아낸데요~!
한 돼요, 아저씨가 다른 데로 가서 하세요~!"
고인석 단장은 이런 일을 오래도록 겪어온 터라
곧장 읍사무소로 발길을 돌렸다.
잠시 후 단장은 읍서기와 상인회장을 대동하고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읍서기 유길주입니다!
여기는 보름동안 아리랑 서커스단이 공연하는
장소로 군청과 상인회의 허락을 받았답니다!
그러니까 다른 곳으로 이동을 부탁드립니다!"
"아, 그럼 우리에게도 뭔 혜택이 있어야 할 것
아니겠어요~!"
"단장님, 도저히 안 되겠구먼요!
이분들에게 초대장이라도 한 장씩 드려야
하겠구먼요~!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여기 열두 분께도 초대장을 드리겠습니다!"
단장은 속 주머니에서 초대장을 두 장씩 나누어주자
그제야 버스가 들어올 수 있었다.
서산군 해미 오일장은 1일 5일장이었다.
한바탕 소란을 치르고서야 공연장 천막 작업에
들어가서 해 질 녘에 설치가 끝났다.
조영철 기사는 바다향기 가득한 해물을 사다가
해물찜과 해물탕을 맛나게 끓였다.
박군은 언제 갔다 왔는지 소주 댓 병을 들고 들어왔다.
"자~, 안주가 좋으니까 소주 한잔씩 해 봅시다!"
박군은 그렇게 말을 하고 단장님부터 차례대로
한잔씩 따렀다.
"정태도 한잔해야지!"
"아니요, 저는 안 마실 겁니다!
부천에서 맥주를 한잔 마시고 죽을 뻔했습니다!"
"그려 그려, 그러면 군대 가면 배워오너라!"
단원들은 또 충청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공연 준비를 했다.
해미읍 공연은 1일 5일 11일 장날 2회씩 6회로 끝내고
다음 공연 장소인 전라도 나주로 향했다.
단장은 이동하는 버스에서 마이크를 들었다.
"에~, 이제 남은 순회공연은 삼 개월에 걸쳐져
진행이 됩니다!
전라도, 경상도를 거쳐 강원도 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려고 했으나 일정이 변경되었습니다!
나는 1949년 맹호부대 창설 때부터 육군병사로
육이오 전쟁 때 전투를 치른 군인이었습니다!
전투 중에 전공을 세웠으나 허벅지 관통상을 입어
육군 상병으로 제대를 했지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내가 받은 무공훈장으로
인해 그 이후로 매년 맹호부대 위문공연을 했답니다!
또한 맹호부대는 지금 월남전에 파병되어 전투를 치르고 있답니다.
이번에 저와 친분이 있는 사단장으로부터 월남 위문공연
요청을 받았습니다!
위문공연은 월남에서 가장 안전한 사이공에서
하기로 결정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7월 중순에 부산항에서 군함을 타고
월남으로 떠날 예정입니다!
모든 경비와 수고비는 국가에서 제공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득이 나주 공연을 마치고 바로 부산 공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만약에 가실 의향이 없는 사람은 나주 공연을
마칠 때까지 얘기해 주세요!
그래야만 결원을 채워서 갈 수가 있답니다!
여러분 내 말에 이해가 갑니까?"
"그러면 저도 해당이 되는 겁니까?"
조영철 기사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아리랑 서커스단 전체가 다 가는 겁니다!
결원이 없는지 확인을 해서 월남전 파병본부에
미리 알려야 합니다!
미성년자 단원들은 나주 공연을 마치고 내가 우체국으로 가서
집으로 전보나 전화를 하게 해 줄 테니 부모님께 물어보세요!"
단장이 그렇게 말을 하자 전체가 술렁거렸다.
정태는 서커스 단원으로서 월남을 간다니까
너무도 기뻐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나주 공연이 끝나고 단장은 아이들을 데리고
우체국으로 가서 가족에게 일일이 전화를 했다.
또 집에 전화가 없는 사람은 전보를 쳐서
우체국으로 회신을 요청했다.
정태 어머니에게도 마찬가지로 전보를 쳤다.
그 답장을 받기 위해서 나주에 하루를 더 머물렀다.
단원 가족들은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인심도 좋은
단장을 믿고 위문공연을 보내기로 했다.
아리랑 서커스단 버스는 위문공연을 가기 전
마지막 부산 공연을 위해 부산으로 이동을 했다.
부산공연 장소는 해운대 해수욕장 모래밭으로
결정이 되었다.
단장의 말에 의하면 해운대 해수욕장 개장을 했으니
임대료를 주고도 대박이 날 거라고 장담을 했다.
해운대 공연은 매일 5시부터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단장의 예상대로 해수욕장 인파로 인해서 공연장은
인산태가 났다.
박군과 조영철 기사님은 모래를 파고 밀입장하는
사람들을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단원들은 공연이 끝나면 해변가 횟집으로 가서 원하는 만큼
배부르게 회와 해산물을 맘껏 먹었다.
단장은 아침을 먹고는 월남 위문공연 문제로 관할
군부대를 정신없이 오갔다.
어느 날 오후 단장은 활짝 웃으며 공연장으로
돌아왔다.
손에 들고 있는 서류 봉투에는 관할 군부대 직인이
찍혀있는 출입국 서류가 들어있었다.
"자~,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 모두 여기로
모여주세요!
7월 17일 아침 열 시에 군함을 타고 월남으로
떠나는 일정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래서 해운대 해수욕장 공연은 7월 10일까지
연장해서 공연을 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내일은 우체국에 가서 전반기 급료를 지급할 테니
우편환으로 집에 보내도록 하세요!
여러분 모두 아시겠습니까?"
"와~, 기분 좋구나!
여러분 모두 박수로 자축을 합시다!"
조영철 기사가 일어나서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모두들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단장이 다시 일어나서 기분 좋게 말을 이어갔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입니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면 비싼 바닷가재로 회식을
하겠습니다!"
"와~, 감사합니다 단장님!"
단원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로 화답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공연장에는 오늘따라 관객이
더 많았다.
신바람이 난 단원들은 더 열심히 공연을 했다.
약속대로 저녁은 바닷가재요리 전문점으로 갔다.
오늘은 특별히 술도 와인으로 곁들였다.
정태도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처음 먹어보는
바닷가재 요리와 와인도 마셔보았다.
식사가 끝나고 여자 단원들 네 명은 공연장 숙소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단장을 따라갔다.
그곳은 가라오케라는 술집이었다.
기분이 좋은 단장이 2차를 데리고 간 것이다.
맥주를 시킨 단장이 노래할 사람을 물어보았다.
무대에서는 4인조 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단장은 울고 넘는 박달재로, 조영철 기사는 두만강을 불렀고
박군은 섬마을 선생님을 불렀다.
나머지는 무대 앞에서 춤을 추며 박수를 쳤다.
이튿날 아침도 조영철 기사는 복지리로
맛있는 해장국을 끓였다.
해운대 공연은 그렇게 순조로웠고 맛있는 음식도
이것저것 풍요롭게 먹었다.
아침을 먹은 후 단원들은 약속대로 단장과 함께
우체국으로 갔다.
단장은 집주소와 이름옆에 급여 금액을 적은
종이를 직원에게 주고 단원들 집주소로 우편환을 보냈다.
단장은 단원들에게 영수증을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단장은 언제나 철두철미하게 단원들 급여를 먼저 챙겨주었다.
마지막 해운대 해수욕장 공연을 마친 단원들은
숙소를 민박집으로 옮기고 하루종일 시내 단체 여행도 했다.
단원들은 7월 17일 아침 커다란 군함이 있는 부두로 갔다.
아리랑 서커스단 월남 위문공연이 드디어 대장정에 올랐다.
(4) 사이공으로 가는 머나먼 뱃길
1965년 7월 17일 아침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은
단장을 따라서 부두에 있는 군부대 막사로 들어갔다.
인원 점검과 서류에 이름과 지장을 찍고 부두에서
승선 대기를 했다.
부두에서는 환송 나온 가족들과 함께 환송식이
거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군악대 연주와 함께 오색종이가 부두의 하늘을 뒤덮었다.
군함 옆에는 USA navy라고 영문으로 쓰여있었다.
군복을 입고 총과 배낭을 멘 군인들 수백 명이
줄을 지어 끊임없이 군함에 오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장교 계급장을 단 군인들과 단원들도
군함에 올랐다.
그 많은 군인들이 어디로 다 들어갔을까
정태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장교들은 단장에게 깍듯이 거수경례를 하고
함상 건물로 들어가고
남은 장교 한 사람이 단원들을 안내했다.
장교는 함상에서 한 계단 내려가서 장교 숙소
두 개를 배정해 주었다.
침상이 5개 있는 작은방은 여자들이 묵을 방이고
또 하나는 꽤나 큰 방이었다.
큰방은 창고로 쓰던 방이라서 접이식 침대가 십여 개
놓여있었다.
그리고 부두에서 쓴 것처럼 또다시 단원들 모두가
두장의 서류에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었다.
장교의 설명은 한 장은 군함 탑승 기록이고 또 한 장은
미군부대에 제출할 서류라고 했다.
또한 부연적인 설명과 함께 주의 사항도 오목조목
가르쳐주었다.
이 군함은 한국군의 군함도 아닐뿐더러 작전중이라
선상으로 나가면 절대로 안된다는 말이었다.
또한 아래의 세 개 층에도 파병 중인 군인들이
타고 있어 통제구역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대신 식사는 장교 식당에서 제공된다고 했다.
고인석 단장의 국가유공자와 군 경력을 알고 있는 장교는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갔다.
뱃머리에서 바다구경을 하려고 했던 정태는
크나큰 실망을 했다.
"단장님!
월남 사이공 까지는 얼마나 걸린답니까?"
"그래, 내가 듣기에는 4박 5일이 꼬박 걸린단다!"
"아이고, 꼼짝없이 군함에 갇히는 신세가 됐네요!"
"그래, 정태야!
전쟁 작전중이라서 어쩔 수가 없단다!
심심하면 내가 격은 군대 얘기를 해줄까?"
"네, 해주세요 단장님!"
그래, 나는 사법고시 공부를 한답시고 25세가 되던
1949년 3월에 군 입대를 했단다!
나는 입대해서 바로 수도사단에 배속되었지!
그리고 6월에 맹호부대가 창설되었다!
그러니까 나도 맹호부대 창설 멤버란다!
다음 해 내가 상등병을 달고 6월에 한국전쟁이 터졌지!
우리 맹호부대는 용감한 부대였단다!
전쟁 초기에는 낙동강 하류까지 후퇴를 했다가
한때는 압록강 까지 진격을 했지!
중공군의 전쟁 개입으로 다시 경기도 포천과 동두천
까지 후퇴를 했지!
우리 맹호부대는 지금의 휴전선 근처에서
밀고 밀리는 전투를 석 달간이나 했단다!
그 전투에서 전우들이 절반이나 전사를 했지!
나는 그 전투에서 수색 중에 전우 한 명과 함께
중공군 다섯 명을 붙잡아서 밧줄로 묵어 끌고 왔단다!
그 이후에도 나는 적군 초소로 기어가서 수류탄 투척으로
적군 분대원 모두를 전멸시켰지!
그러나 그 이튿날 전투에서 내가 있던 참호에
로켓포탄이 날아와서 많은 전우가 전사를 했지!
그때 나도 여기 장딴지에 파편이 박혔단다!
장딴지 근육이 모두 파열되어 수도 통합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장애등급을 받고 1952년 3월에
결국은 전역을 했단다!
"아이고, 큰일 날 뻔했군요 단장님!"
그래, 나는 그 공을 인정받아서 일계급 특진의
추서와 함께 무공훈장도 받았단다!"
단장은 정태에게 장딴지 상처 자국을 보여주었다.
상처는 열십자 형태로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우리 맹호부대는 용감한 부대였고 지금 이 군함에
타고 있는 군인들도 바로 맹호부대 군인들이란다!"
"예, 그렇군요 단장님!"
"이십 년 세월이 지났지만 나는 지금도 뛸 수가
없단다!
몇 번의 수술과 재활운동을 해서 지금은 천천히
걸을 수는 있지!
그래서 나는 서커스가 아닌 마술을 배웠단다!
단장은 속 주머니에서 묵직한 무공훈장을 꺼내어
정태에게 보여주었다!
"네~, 이것이 바로 그 무공훈장이군요!"
"그래, 이 훈장 덕분에 우리가 월남 위문공연을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육이오 전쟁은 북한의 공산군들이
쳐들어와서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그 공산화를 막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단다!
월남도 마찬가지야!
베트콩은 공산군이고 무기도 거의가 공산국가가
만든 것이다!
월남군은 우리나라 육이오 전쟁처럼 공산화를
막기 위해 싸우는 것이야!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국가 미국 역시 월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전쟁에 개입을 한 거야!
우리나라는 육이오 전쟁 때 미국의 도움으로
공산화를 피할 수 있었지!
우리나라도 지금 미국을 도와서 월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참전을 한 것이야!
베트콩들은 미군보다도 우리 따이한을 더 무서워한단다!
우리나라 군인은 육이오 전쟁을 격은 군대이고
또한 공산군을 싫어하기에 더욱 용감하단다!
그래 정태야, 이해가 가느냐?"
"예, 단장님 말씀을 들으니 이해가 갑니다!"
"그래, 너도 이제 이삼 년 있으면 군대를 가겠구나!"
"예, 그렇습니다 단장님!"
"그래 그러면 군대 간 용대가 제대하면
그때 너도 입대를 하면 되겠구나!"
"예, 단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가 시간 날 때마다 기본적인 마술을 하나씩
가르쳐주마!"
"네, 고맙습니다 단장님!"
단장도 무료함을 달래 가며 정태에게 마술을
한 가지씩 가르쳐주었다.
총기 있는 정태는 단장에게 마술 개인기를 하나씩
전수받았다.
함상에 갇혀있는 며칠이 어찌 보면 정태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태는 함상으로 나갈 수도 없었기에 부지런히
단장의 마술 전수를 받아가며 운동에만 전념했다.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 역시 식당과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군함 선실에서 꼬박 4박 5일을 보내고 아침 9시경
월남 사이공 군사기지 항구에 도착을 했다.
단장은 시차를 모르기에 한국 시간으로 시계를 보았다.
이번에도 맹호부대 군인들이 먼저 하선을 하고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은 맨 마지막으로 하선을 했다
정태는 오일만에 함상으로 나와 하늘을 보았다.
정태는 며칠간 선실에 갇혀 있었기에 눈이 부셔서
손으로 하늘을 가린 채 실눈을 뜨고 보아야 했다.
잠시 후 눈에 들어온 사이공 항구의 모습은
정태가 상상한 이국적 모습 그대로였다.
해변가에 늘어선 야자나무는 정태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맹호부대 군인들은 부두 공터에 대열을 갖추어
대기하고 있었다.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은 부두로 내려와서
서커스단 버스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함선 뒤꽁무니에서는 거대한 문이 열렸고
각종 장비를 실은 군용 트럭이 부두로 내려왔고
마지막으로 서커스단 버스가 내려왔다.
잠시 후 사이공 시내 쪽에서 군용 트럭 약 20대가
줄지어 부두로 들어왔다.
부두에서 원을 그리며 들어온 트럭에 맹호부대 군인들의
탑승이 시작되었다.
부대원들의 탑승에만 약 20분이 소요되었다.
"우와~, 대단하네요 단장님!"
"그래, 정태야!
저 맹호부대 대원들은 세월이 지났지만 모두가
내 후배들이란다!"
맨 앞쪽에는 장갑차와 MP라고 쓰인 지프차가 떠났고
그 뒤를 따라서 군용 트럭이 출발을 했다.
군인들을 태운 군용 트럭이 앞서고 각종 장비를 실은
군용 트럭이 뒤를 따랐고
그다음 아리랑 서커스단 버스도 출발했다.
버스 뒤쪽에도 무장을 한 장갑차와 지프차가
호위를 했다.
길거리에는 "환영, 맹호부대 제1진 참전용사,,라는
한글로 된 환영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군용 트럭은 약 20분 후 사이공 외곽에 위치한 부대
연병장으로 들어가서 도열을 했다.
트럭의 뒤를 따르던 아리랑 서커스단 버스는
부대 정문에서 검문을 받아야 했다.
장교 한 명이 버스에 올라와서 거수경례를 하고
검문을 진행했다.
"지금부터 보안상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장교는 여기저기를 흩어보고 안내를 했다.
"기사님, 저기 연병장 왼쪽 축구장 옆으로 가서
주차를 하면 됩니다!"
단원들의 버스는 축구장 옆 공터에 주차를 하고
단원들도 버스에서 내렸다.
뒤따라 오던 군용 지프차 한대가 버스 앞으로 왔다.
중령 계급장을 단 장교가 단장 앞으로 와서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월남 파병 맹호부대 선발대 대대장 중령
이성일 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
"그래요, 수고가 많습니다!
여기에 무대를 설치하는가요!"
"예, 그렇습니다 선배님!
연병장을 바라보고 축구골대 앞에 설치하시면
골대는 임시로 철거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국하고는 시차가 어떻게 되나요?"
"네, 한국보다 세 시간 정도 빠릅니다!
현재 시간은 열두 시 십 분입니다!
잠시 후 1시에 점심 배식이 있으니 저쪽 B동
장교 식당으로 가시면 됩니다!
배식은 아침 8시, 점심 1시, 저녁은 7시입니다!
또 필요하신 것 있으면 저기 초병에게 말씀하시면
언제든지 제가 달려오겠습니다!
점심 식사 후 HQ라고 쓰인 본부로 오셔서
말라리아 예방접종을 해야 합니다!
또한 여기는 가끔 베트콩이 출몰하는 곳이기에
보안상 저쪽 C동이라고 쓰인 곳에서 주무십시오!"
"그래요, 알겠습니다 대대장님!"
"네, 각 초소 초병들이 확실하게 경계근무를
하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충성!"
대대장 이성일 중령은 단장에게 깍듯이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갔다.
대원들은 우선 짐을 내려놓고 배식 막사로 향했다.
"단장님, 여기는 가로수도 모두 야자나무입니다!
야자가 주렁주렁 열렸네요!"
"그래, 정태야!
나도 사실 동남아 쪽은 처음으로 와봤단다!"
커다란 막사 A동 앞에는 부대원들이 줄을 지어
배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모두 총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단장님, 밥 먹을 때도 총을 메고 밥을 먹네요!"
"그래 전시에는 총이 밥보다 우선이란다!
나도 전쟁 중에는 언제나 총을 몸에 지니고 다녔지!
심지어는 잘 때도 옆구리에 총을 끼고 잤단다!"
"네~, 그렇군요 단장님!"
단원들은 줄도 서지 않아도 되었기에 B동으로 들어가서
점심 식사를 했다.
그곳에는 이성일 대대장도 와 있었다.
대대장은 식사 중에 일어나서 서커스 단원들에게
자리 안내를 했다.
"모두들 식사 맛있게 하시고 심심하면 가족들에게
편지를 써서 저기 우체통에 넣으면 한 달 이내로
무료배달 해드립니다!"
대대장은 단원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다.
점심 메뉴는 월남 쌀국수와 치킨이었고 단원들의
입맛에도 잘 맞아 모두 맛있게 먹었다.
(5) 월남 위문공연
단원들은 다시 서커스단 버스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무대 설치작업을 시작했다.
버스 옆쪽에는 언제 가져왔는지 빈 드럼통 30여 개와
구멍 뚫린 철제 발판도 가득 쌓여있었다.
잠시 후 대대장이 지프차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
"단장님, 저쪽에 있는 빈 드럼통을 세워놓고 그 위에
철재 발판을 놓으시면 무대 설치가 쉬울 겁니다!
약간 높게 설치를 해야지 많은 사람들이 볼 수가
있답니다!"
"아~, 그래서 드럼통을 같다 놓았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하루 더 준비를 하시고 모레 오후
두 시부터 두 시간씩 한 달 동안 공연을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공연시간에 맞춰서 각 부대 장병들이 매회
부대원을 나누어서 올 겁니다!
현제 한국군 파병은 5개 부대 약 2만 명이 있고요
사이공 근처에 있는 미군도 관람을 할 겁니다!
그리고 관람 부대에서 들어오는 찬조금은 모두
단장님께 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대장님!"
대대장은 철두철미하게 배려를 해주었다.
단원들은 대대장이 얘기한 대로 드럼통을 깔고
그 위에 철제 다리를 놓은 후 천막으로 덮었다.
이곳에서는 팬스용 천막이 필요가 없기에
천막을 접어서 두툼하게 깔았다.
그리고 발판이 이탈하지 않게끔 밧줄로 고정시켰다.
그다음 그 위에 부상방지 매트리스를 깔고
단장은 단원 모두를 무대 위로 불러서 뛰게 하였다.
"자~, 모두들 제자리 뛰기를 계속해봐요!
내가 돌아가며 이상이 있는지를 볼 겁니다!"
그것은 안전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단원들 11명이 올라가서 뛰어도 발판은 안정적이었다.
사이공 시간으로 오후 5시경 설치작업이 끝나고
단원들은 더위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사이공 날씨는 사람 체온과 맞먹는 36도를
오르내리고 장마철처럼 습한 날씨였다.
다행히 C동 막사엔 간단한 샤워시설이 되어있었다.
단장은 여자들부터 씻게 하고 남자들은 밖에서 기다렸다가
반씩 나누어 샤워를 했다.
정태는 단장의 옆자리에 앉았고 이어서 다혜가 따라와서
정태 옆자리에 앉았다.
"정태야, 월남에
"응, 말로만 들었던 월남을 직접 와서 보니까 좋다 다혜야!"
"그래, 동갑내기라서 나는 네가 좋다 정태야!"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다해야!"
"그래 맞아!
정태 너하고 다혜는 동갑이었지!
다혜 네가 훨씬 선배 되니까 정태에게 많이 가르쳐 주거라!"
"예, 알겠습니다 단장님!
정태야, 단장님 말씀 잘 들었지?
나한테 잘 보여야 가르쳐 줄 거야 호호호!"
저녁 배식은 월남 야채쌈과 쇠고기 뭇국이 나왔다.
단원들은 식판을 들고 차례대로 배식을 받았다.
"많이 먹어라 정태야!"
"응, 고마워 다해야 너도 많이 먹어라!"
정태와 다혜는 동갑내기로 옆자리에 앉아서 소곤소곤
다정하게 식사를 했다.
재료는 사이공 것이었지만 한국인 사병이 조리를
해서 그런지 입에도 잘 맞았다.
단원들은 식사 후 일부는 간이의자에서 담배를 피우고
일부는 C동 막사로 들어갔다.
정태는 간이의자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국에서 보는 하늘보다 유난히 별이 더 많았고
사이공의 밝은 별빛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래,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안부도 전하고 자랑도 좀 해야겠다!"
정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막사로 들어갔다.
막사엔 보안상 불빛이 아래만 보이도록 갓을 씌운
백열등이 있어서 편지를 쓸 수가 있었다.
" 어머니 전상서.
안녕하세요 어머니 아들 정태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아리랑 서커스단에 보내주신 덕분에
연습과 적응기간을 거쳐서 정식 단원이 되었답니다.
단장님은 육이오 동란 때 맹호부대의 용감한
군인이었답니다.
전투 중에 큰 부상을 입어 전역을 했지만
국가 무공훈장도 받은 용감한 분이셨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지금은 월남 사이공에 위문공연을
왔답니다.
단장님 말씀은 위문공연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한 달간 휴가를 주신다고 했답니다.
아마도 9월 중순이면 집으로 갈 수가 있을 겁니다.
어머니 그때까지 건강 잘 챙기시고 평안하세요.
''월남에서 아들 정태 올림.
정태는 예방접종받으러 갈 때 PX에서 사 온 봉투에
편지를 담아서 우체통에 넣었다.
단원들은 이튿날 아침 6시경 부대원들의 우뢰와 같은
함성소리에 깨어났다.
부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아침 점호를 마치고
운동장 구보를 하고 있었다.
단원들도 단장의 지도 아래 무대 앞에서 몸풀기
스트레칭을 했다.
"자, 오늘은 식사 후 오랜만에 공연 리허설을
할 것입니다.
공연을 위해서 몸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단원들은 군인들의 기를 받아 우렁찬 대답을 했다.
아침 식사 후 단원들은 본격적으로 리허설에 돌입했다.
단장은 세심하게 단원들을 다독이며 안전을
중요시한 연습을 이어갔다.
단원들은 6일 동안 군함 선실에서 보내느라 대체로
몸이 굳어있었다.
오전엔 리허설 점검과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고
오후엔 집중적으로 서커스 리허설에 들어갔다.
단원들은 늘 하던 동작이라서 금방 컨디션을
회복하고 서커스 공연 리허설을 시연했다.
이튿날 오전 최종적으로 리허설 점검을 마쳤다.
식사 후엔 무대복을 입고 서로에게 화장을 해주었다.
아리랑 서커스단은 이로서 모든 공연 준비를 끝냈다.
첫 번째 관람 부대는 군함을 함께 타고 온 맹호부대였다.
점심을 먹은 맹호부대 부대원들이 연병장에
집합을 했고 대오를 갖추어 무대 앞으로 왔다.
정각 두시에 무대 앞 커튼이 열렸다.
첫 공연은 단장이 삐에로 분장을 하고 등짝에 커다란
북을 메고 1인 악극단으로 오프닝 공연을 하였다.
단장의 공연이 끝나고 전체 서커스 단원들이 늘어서서
배꼽인사를 했다.
두 번째로 대대장 이성일 중령의 축하인사가
이어졌다.
"안녕하십니까 맹호부대 1진 부대원 여러분!
제군들은 사이공에 오자마자 첫 번째로 서커스 공연을
관람하는 행운을 잡았습니다!
귀국하는 날까지 이 행운을 가슴에 담고 전투에
임해주시길 바랍니다.
방금 삐에로 공연을 해주신 분은 1949년 맹호부대
창설멤버로 육이오 전쟁에 참전을 하였고
많은 전공을 세워 국가 무공훈장도 타신 분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적군의 로켓포탄이 참호로
날아들어 큰 부상을 입었고
그 부상으로 인해서 전역을 하신 분입니다!
제군들 모두 일어나서 맹호부대 창단 멤버이신
고인석 단장님께 거수경례로 예를 표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다음으로 부 대대장의 통솔이 이루어졌다.
"부대~~~ 차렷,
단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부대원들 경례 소리는 월남의 하늘을 찔렀고
단장은 그 인사를 받으며 눈시울을 적셨다.
다음 공연은 접시 돌리기와 상모 돌리기로 이어졌고
다음엔 무등 타기 공연이 이어졌다.
그다음 순서는 단장님의 불쇼와 화려한 마술이
이어졌고 공연 단막이 끝날 때마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음 외줄 타기 공연 준비를 하는 동안 김 씨의 원숭이
묘기가 이어졌다.
김 씨는 기어서 무대를 한 바퀴 돌았고
김 씨의 목에는 목줄이 메어 있었으며
원숭이가 줄을 잡고 김 씨를 끌고 가는 장면이었다.
원숭이의 손에는 회초리를 잡고 있었으니
부대원들의 폭소가 터져 나왔다.
서커스 공연은 두 시간에 걸쳐 성황리에 끝났다.
그다음 날부터 차례대로 청룡부대와 백호부대
국군파병 장병들이 차례대로 관람을 하였다.
아리랑 서커스단 공연은 계획된 한 달의 절반인
2주간의 공연을 했다.
이번 일요일엔 하루 휴식을 하기로 정해져서
단원들은 사이공 관광길에 나섰다.
단장은 단원들에게 그날 특별보너스로 10달러씩을
봉투에 담아서 주었다.
사이공은 주둔 미군이 많아서 거의 달러로 결제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대대장 이성일 중령은 만일을 대비해서 무장한
부대원 1개 분대를 경호조로 딸려 보냈다.
정태의 눈에 보이는 이국적인 모습은 나중에
월남 파병 입대를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단원들도 생전 처음으로 접하는 월남 국민들의
생활 모습을 신기하게 여기며 관광을 했다.
통역은 경호조로 따라온 부대원 한분이 유창한
영어로 통역을 해주어 언어소통은 문제가 없었다.
신바람이 난 단원들은 고향으로 가져갈 여러 가지
선물을 준비했다.
하루의 특별휴가를 보낸 단원들은 심기일전하여
다음 공연을 준비했다.
다음 관람 차례는 사이공에 주둔하는 미군 해병대부터
시작되었다.
런닝에 군번만 걸고 있는 우람한 체격의 자유분방한
미군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관람을 만끽했다.
그다음 날은 차례대로 미군의 공병대와 공군 해군까지
관람이 이어졌다.
전쟁터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군인들로서는
일종의 에너지 보충이었다.
공연 때마다 미군들의 입에서는 원더풀, 원더풀 코리아가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매회 공연 때마다 무대 앞에는 군인들이 선물로 주고 간
초콜릿과 깡통 음식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우와~, 단장님!
이것을 한국에 가져가서 공연 때마다 불우이웃 돕기를 하면
좋겠네요!"
"그래, 정태야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좋겠구나!"
정태는 어릴 때부터 어렵게 살아왔기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사이공에서의 마지막날 공연은 사이공 시장과 정치계
주요 인사들 그리고 각국 외교관과 미국 장성들까지
참석하는 피날레 공연으로 이루어졌다.
그 마지막 공연에서 들어온 격려금과 찬조금은 아리랑 서커스단
일 년 치 소득과 맞먹는 거액이 들어왔다.
그 돈은 나중에 고물딱지 버스를 최신형 버스로 교체하는
원인제공이 되었다.
공연 시작은 언제나 단장이 삐에로 분장을 하고
등짝에 커다란 북을 메고 1인 악극단으로
오프닝 공연을 하였다.
관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공연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사이공 위문공연 마지막날 공연에서 사고가 터졌다.
다혜의 외줄 타기 공연이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근처에서 커다란 폭팔음이 들렸다.
그 순간 5M 높이에서 외줄 타기 공연을 하던
다혜가 놀라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가운데는 안전망을 설치해 두었지만 끝지점에
안전망이 없는 곳으로 떨어졌다.
안전을 위해 무대 옆에서 대기하던 정태가
순간적으로 뛰어가서 다혜를 받아냈다.
그것은 정태의 뛰어난 순발력이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으나 다혜는 정태에게 않기면서
허리가 한쪽으로 꺾였던 것이다.
"다혜야 괜찮아?"
"응, 폭음소리에 깜짝 놀라서 발을 헛디뎌 떨어진 거야!"
"그래, 어디 아픈 데는 없어?"
"몰라, 지금도 얼떨떨해서 크게 아프지는 않아!"
다혜는 떨어지면서 놀라는 바람에 정태의
어깨를 잡으며 껴안고 있었다.
정태는 다혜를 않고 있다가 그제야 계면쩍어서
내려놓았다.
그러나 정태는 다혜의 체온이 두 손에 남아있는 듯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것은 정태가 동갑내기 다혜를 좋아하게 된
동기부여가 되었다.
단원들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혜야, 큰일 날 뻔했구나!
정태 네가 다행히 다혜를 살려냈구나!
정말로 장하다 정태야 고맙다!"
단장은 정태를 칭찬하고 다혜를 안심시켰다.
관중들도 폭음소리에 잠시 술렁거렸다.
곧이어 대대장 이성일 중령이 무대로 올라와서
손으로 마이크를 톡톡 치면서 영어로 말을 이어갔다.
"에~, 방금 폭음소리는 철조망 바깥에 매설한
지뢰를 산돼지가 밟아서 터진 소리입니다!
그러니 너무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후 무대가 정리가 되었고 김 씨의 원숭이 앵콜공연으로
다시 한번 긴장한 관중들에게 폭소를 안겨주었다.
이어서 다혜가 주축이 된 부채춤 피날레 공연이 이어졌다.
다행히 다혜는 부채춤 공연을 무리 없이 해냈다.
아리랑 서커스단 월남 파병 위문공연은 그렇게
한 달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6) 아리랑 서커스단의 금의환향
공연이 끝나고 이성일 대대장은 감사의 표시로
멋진 회식을 열어주었다.
이튿날 단원들은 무대 철거를 위해 다시 한번
땀을 쏟아야 했다.
그때 지프차 한대가 무대 쪽으로 왔다.
이성일 대대장은 단장에게로 가서 한참 동안
얘기를 하였다.
잠시 후 단장은 단원들을 모아놓고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다.
"에~, 방금 이성일 대대장이 기쁜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우리 아리랑 서커스단의 공연 소식이 사이공
전체에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사이공에 있는 대형 극장에서 공연을 요청해
왔습니다!
우리가 타고 가야 할 군함 출발은 아직도 5일이나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추가공연을 결정해서 답을 해주어야 합니다.
출연료는 입장료 수입의 80%를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입니다!
나 역시 출연료의 80%를 단원 여러분께 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그 대신 추가공연 결정은 단원 여러분의 의사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자, 공연에 찬성하는 단원은 손을 들어보세요!"
그러나 그것은 형식에 불과했다.
단원들 전체가 무조건 찬성이었다.
이튿날 사이공 극장으로 가는 길에는 이성일 대대장도
무장을 한 지프차 타고 앞 뒤에서 경호를 해주었다.
이번 사이공 극장 추가공연은 무대 설치가 필요 없기에
무대복과 공연 도구만 준비하면 되었다.
이층으로 된 극장에는 소문을 듣고 온 관객들로
완전히 만석이 되었다.
단장이 한국말로 인사를 할 때는 이성일 대대장이
영어로 통역을 하였고
그 영어를 다시 극장 사장이 월남 말로 통역을 했다.
허리를 삐끗한 다혜도 별 걱정 없이 외줄 타기를
완벽하게 해냈다.
외줄 타기 공연을 마친 다혜가 사다리를 내려오자
정태가 다혜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다혜야!
삐끗한 허리는 괜찮은 거야?"
"응, 그때 정태 네가 나를 받아주어서 살아난 거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
정태야 고마워!"
그 일을 계기로 사춘기의 정태와 다혜의 가슴에는
사랑이라는 싹이 조금씩 돋아나고 있었다.
공연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그 공연을 계기로
대한민국 서커스 공연과 따이한 군대의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단장은 달러로 가득 채워진 두툼한 봉투를 받아 들고
기쁜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자~,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 여러분!
이 봉투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맞혀 보세요!"
"아, 당연히 돈이겠지요 돈, 하하하!"
오랜만에 박군이 그렇게 말했다.
"저번에 받은 찬조금도 이번에 받은 공연료도
모두가 달러입니다 달러!
이 돈이 바로 가난한 우리나라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 달러입니다!
월남전에 파병된 대한민국의 용사들의 월급도
바로 이 달러로 받는답니다!
결론은 우리도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데
일조를 한 것입니다!
한국에 도착하면 이 돈을 우체국 통장에 입금을 하고
한국 돈으로 찾아서 여러분께 나눠드리겠습니다!"
단장이 그렇게 말하자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단원들은 부대에 도착해서 들뜬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군함을 타기에는 아직 이틀이나
남았으나 단원들은 부대에 머물러야 했다.
그것은 사이공 시내에 출몰한 베트콩이 휴가 나온
미군 두 명을 총격해서 죽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범인을 잡지 못해 비상 경계령이 내려졌다는
상황을 이성일 대대장이 알려왔다.
단원들은 부대에서 머물며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다음날 이성일 대대장은 부대원들을 집합시켜 놓고
환송 자리를 열어주었다.
"우리를 위해 수고해 주신 아리랑 서커스 단원들이
내일 새벽 5시에 사이공 항구로 출발합니다!
아리랑 서커스단원 여러분 덕분에 우리 장병들은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는 맹호부대 후배로서 고인석 단장님께
존경을 표하며 이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성일 대대장의 환송인사가 끝나고 고인석 단장의
답사도 이어졌다.
"에~, 우리 아리랑 서커스단이 머나먼 이국땅
월남에서 뜻깊은 공연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은
모두가 이성일 대대장님 덕분입니다!
맹호부대 창설과 육이오 전쟁에 참전했던 저로서는
월남전에 파병된 후배 장병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단장의 환송인사를 끝으로 단원들은 이튿날 새벽 출발을 위해
모든 점검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단원들은 새벽 4시에 기상을 했다.
맹호부대 조리병사가 특별히 끓여준 된장찌개에
새벽밥을 먹고 귀국길에 올랐다.
무장한 맹호부대 장갑차의 경호를 받으며
단원들이 탄 버스는 사이공 항구로 향했다.
이성일 대대장의 입회하에 출국심사는 비교적
간편하게 끝났다. 이어서 군함에 아리랑 서커스단
버스가 올라가고 단원들도 승선을 했다.
이성일 대대장은 군함 장교에게 무엇인지 몰라도
영어로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이성일 대대장은 단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하고
단장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갔다.
귀국길은 올 때보다 좋은 선실로 배정이 되었고
규제도 훨씬 유연했다.
한편, 가은에 살고 있는 정태 어머니는 정태의
편지를 받아 들고 떨리는 손으로 읽어 내려갔다.
어머니는 아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것은 어린 자식을 객지로 떠나보낸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사이공 항구를 떠난 지 오일째 되는 날 군함의
장교가 선실로 들어왔다.
장교의 손에는 작은 메모지를 들고 있었고
그것을 단장에게 전해주었다.
메모 내용은 이성일 대대장이 쓴 것이었다.
"to, 고인석 단장님!
군함이 한국 해상으로 진입하면 함상에서 바다를
볼 수 있도록 미군 장교에게 특별히 부탁을 했습니다!
이 쪽지를 보실 때는 아마도 바다를 구경하고
계실 줄로 믿겠습니다!
아무쪼록 안전한 귀국을 기원합니다.
월남 파병 맹호부대 선발대장 이성일 올림.
미군 장교는 손짓으로 컴온을 외쳤다.
단원들은 함상으로 나가서 신비한 바다구경에 정신이 없었다.
뱃머리 너머로 어렴풋이 한국의 작은 섬들이 보였다.
정태는 월남으로 갈 때는 바다를 보지 못해 안타까웠지만
지금은 마음껏 구경을 했다.
미군 장교는 멀찍이서 지켜보다가 30분쯤 지나서
다시 선실로 안내를 했다.
이튿날 군함은 머나먼 뱃길 5박 6일 동안 행해를 해서
저녁 8시쯤 부산항에 도착을 했다.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은 관할 군부대에서 또다시
입국절차를 거쳐야 했다.
부산항에 도착한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은 밤이 늦어서
하룻밤을 부산의 여관에서 머물러야 했다.
이튿날 단장은 단원들을 데리고 나가서 아침밥을 함께
먹고 우체국으로 가서
가져온 달러를 우체국에 입금을 시켰다.
그리고 예금을 찾아서 준비한 여러 개의 봉투에 넣고
봉투에 이름을 일일이 적었다.
단장은 올해의 급료 봉투에다 휴가를 떠나는
단원들에게 반년치에 해당하는 보너스를 더 주었다.
단장은 여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문을 샀다.
그 이유는 가판대 신문기사에 단원들의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아리랑 서커스단 월남 위문공연,,
커다란 활자아래 단원들의 공연 내용과
고인석 단장의 맹호부대 무공훈장 이력도
쓰여있었다.
단원들은 그 신문기사는 보고 크나큰 자부심을
느꼈다.
단원들은 아리랑 서커스단 버스에 차례대로 올랐고
다혜는 정태의 옷자락을 잡으며 옆자리에 않기를
권했다.
"정태야 너도 열일곱 살이라고 그랬지?"
"그래, 다혜야!
너도 동갑이라고 그랬잖아!"
"그래, 그러면 너는 생일이 몇 월이니?"
"응, 나는 생일이 2월 7일이야!"
"그러면 나보다 오빠가 되네 호호호!
나는 생일이 팔월이니까 나보다 육 개월이 빠르다!"
"에이, 뭘 그런 걸 따지고 그래!
같은 나이면 친구지 안 그래?"
"그나저나 월남 위문공연에서 떨어지는 나를
받아줘서 정말로 고맙다 정태야!
너 아니면 죽을 뻔했잖아!"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거지 다혜야!"
정태와 다혜는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버스는 국도를 따라 서울로 향했고 단장의 말씀이
이어졌다.
"에~, 우리 아리랑 서커스단은 월남 위문공연으로
수입도 좋아지고 위상도 더욱 높아졌답니다!
이것은 단원들 모두의 노력으로 이룬 것입니다!
아마도 내년에는 더 많은 공연 섭외가 들어오리라
예상이 됩니다!
나도 사실 오늘이 10월 5일이라는 걸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월남을 오가는데 2주일이 소요되었고 또한 공연을
한 달 동안 하느라 날짜가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타국에서 공연을 하느라 다음 공연 일정도 잡지를 못해서
올해 공연을 이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단장의 말에 버스 안이 떠나가도록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올 후반기 급료에다 보너스까지 지급을
한 것입니다!
내년 공연 일정이 잡히는 대로 편지를 보낼 테니
그때 모이도록 합시다.
정태는 집이 문경 쪽이니까 서울로 가는 길에 동대구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줄 것이다!"
"네, 고맙습니다 단장님!
"그리고 김 씨는 집이 이천이니까 이천 터미널에
내려 드리면 되지요?"
"예, 고맙습니다 단장님!
올해도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박군아!"
"예, 단장님!"
"저기 뒤쪽 따불백에 담긴 초콜릿과 통조림을
12개 봉투에 똑같이 나누어 담아서 단원들에게 하나씩
주도록 해라!
여러분이 고생하고 받은 것이니까 집으로 가져가서
선물로 드리도록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단장님!"
단장은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초콜릿과 통조림을
단원들 가족에게 선물로 주었다.
버스는 국도를 따라 세 시간을 달려서
동대구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정태는 초콜릿 선물을 한 보따리 들고 돌아서서
단원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단장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단원 여러분 내년에 뵙겠습니다!"
정태는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정태는 이때까지 문경땅을 벗어난 일이 없었기에
물어물어 문경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정태는 세 시간을 달려서야 문경땅에 도착했다.
다시 가은읍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오후 다섯 시쯤 되어서야 드디어 꿈에 그리던 가은읍
터미널에 도착했다.
(7) 서커스 신동 오정태
정태는 설레는 마음으로 가은 터미널에서 1km도 안 되는
집으로 달려갔다.
짧은 거리였지만 마음은 벌써 어머니 앞에 서있었다.
정태의 시골집에 나무로 된 삽짝문은 닫혀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하던 것처럼 공간으로 손을 넣어서
골뱅이 형태의 철사로 된 잠금장치를 풀었다.
"어머니!
어머니 저 정태가 왔습니다!"
정태가 소리쳐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방문은 자물쇠로 잠겨있었고 어머니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머니는 예전에 정태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열쇠를 마루밑에 화로에 넣어두셨다.
아니나 다를까 열쇠는 그곳에 있었다.
정태는 자물쇠를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자개장 서랍 위에는 정태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가 놓여있었다.
"아니, 어머니는 도대체 어디를 가셨을까?"
정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집안을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나 어머니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정태는 서둘러 부엌으로 가보았다.
어머니가 언제 해놓으셨는지는 몰라도 마른
누룽지가 상위 채반에 놓여있었다.
어머니는 비상식량으로 언제나 누룽지를
만들어 놓으셨다.
정태는 시장끼도 있고 해서 예전에 하던 대로
신문지에 불을 붙여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누룽지를 끓였다.
"이 누룽지는 어머니가 나를 위해 만드셨는데!
그러면 내가 올 줄을 알고 계셨을 텐데 말이야!
도대체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을까?
혹시나 은척에 있는 외갓집에 가셨을까?
그래, 그러면 인사도 드릴 겸해서 내일은 외갓집으로
가보자 정태야!"
정태는 불을 때면서도 중얼거렸다.
정태는 호야 등불과 누룽지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의 손맛으로 담그신 물김치와 끓인 누룽지를
정태는 오랜만에 맛있게 먹었다.
가은읍 산골은 시월초에도 초겨울처럼 쌀쌀했다
누룽지를 끓여 먹느라고 군불을 지폈으니
방은 비교적 따뜻했다.
정태는 오랜만에 어머니와 함께 덮고 자던 이불을
깔고 자리에 누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어쩌면 그것은 태어난 곳으로 잠시 귀향을 했다는
안도감일 수도 있었다.
정태는 이튿날 아침 이웃집 개 짖는 소리에 잠을 깼다.
혹시나 어머니가 오셨을까 해서 밖으로 나가보았으나
마당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정태는 월남에서 가져온 전투식량을 뜨거운 물에
불려서 아침을 때우고 외갓집으로 향했다.
정태의 외갓집은 멀지 않은 상주군 은척면에 있었다.
가은 터미널에서 이십 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정태는 터미널 근처에 있는 외갓집으로 들어갔다.
"외할머니!
외할머니 정태가 왔습니다!"
정태의 소리를 듣고 방문이 열렸다.
"그래, 정태 왔구나 어서 오너라!"
"안녕하세요 외삼촌!
할머니는 어디 계세요 외삼촌?"
"그래, 할머니는 작년 가을에 돌아가셨단다!"
"네~, 그러시군요!
외할머니는 제게도 참 잘해주셨는데 안타깝습니다!
혹시 우리 어머니는 안 오셨나요?"
"그래, 나도 동생 본 지가 꽤 오래됐구나 정태야!
너 외숙모 들에 같다가 돌아오면 점심이나
먹고 가거라!
"예, 알겠습니다 외삼촌!"
외삼촌은 정태 어머니의 바로 위 오빠였다.
정태는 옛 추억에 잠겨서 외갓집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잠시 후 푸성귀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외숙모가
들어오셨다.
"안녕하세요 외숙모!"
"그래 우리 정태 왔구나!
몇 년 사이에 많이도 컸구나!
그래, 서커스단에 들어갔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할만하더냐?"
"예, 외숙모님!
열심히 배우고 있답니다!"
"그래, 정태야 안으로 들어가자!
내가 된장비빔밥 해줄게 정태야!"
"네~, 고맙습니다 외숙모님!"
외숙모는 들에서 가져온 푸성귀로 맛있는 된장찌개를
만드셨고
정태는 오랜만에 외갓집에서 맛있는 된장 비빔밥을 먹었다.
"외삼촌, 외숙모님 점심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집에 안 계셔서 어디에 가셨는지
찾으러 가볼게요!"
"그래, 어머니하고 또 놀러 오너라 정태야!"
"예,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들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정태는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정태는 이웃집에도 수소문을 해보았으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정태는 어머니를 기다리면서 비짜리를 들고
여기저기 거미줄을 걷어내고 마루와 마당까지
청소를 했다.
그때 기운이 없어 보이는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어디를 다녀오세요??"
"아이고 우리 정태 왔구나!
편지는 받았는데 그래 언제 왔느냐?"
"예, 어머니!
어제저녁때와서 어머니가 해놓은 누룽지도
끓여 먹었답니다!"
"그래, 잘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마루에 걸터앉았다.
정태도 마루에 걸터앉아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그동안 잘 계셨는지요 어머니!"
"그래, 정태야!
월남 위문공연을 잘하고 왔느냐?"
"예, 어머니 염려 덕분에 잘 다녀왔고요
선물과 급료도 많이 받았답니다!"
정태는 어머니와 방으로 들어가서 가방을 열고
급료로 받은 두툼한 봉투 두 개와 월남에서
가져온 푸짐한 선물도 내놓았다.
"그나저나 어머니 안색이 안 좋으신데 혹시
어디가 아프신가요?"
"아니다!
사실은 며칠 전에 성남이 아저씨가 돌아가셨다!
광산 갱도에서 괘도차를 타고 나오다가 괘도차가
뒤집어져서 다섯 명이나 돌아가셨단다!
성남이 아저씨는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결국은 돌아가셨단다!
그래서 오늘 합동장례식을 치르고 왔단다!
"아이고 그러셨군요!
성남이 아저씨는 제게도 참 잘해주셨는데요!
어쩌다가 그런 사고가 나서 돌아가셨군요 어머니!"
정태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태가 서커스단에
들어간 후 어머니는 성남이 아저씨와 혼인신고를
한 것이다.
정태 어머니는 두 번의 결혼을 했으나 두 남편 모두가
사고로 죽었다.
정태 어머니는 두 남편의 제사를 지내야 하는
기구한 팔자를 가진 여인이었다.
어머니는 부엌으로 가셔서 저녁준비를 하셨다.
정태도 어머니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헛간을 보니까 땔거리가 떨어졌네요!
내일 산에 가서 나무부터 한 짐 해올게요!"
"그래, 정태야 고맙구나!"
"그나저나 저기 천장에 구멍이 나있네요!
비가 오면 빗물이 다 들어오겠어요 어머니!"
"그래, 스레트가 오래되어 다 삭아서 그렇단다!
헛간에도 비가 오면 빗물이 줄줄 들어온단다!
성남이 아저씨가 예전에 비닐로 덮어놨는데
바람에 날아갔다보다 정태야!"
"안 되겠어요 어머니!
겨울이 오기 전에 사람 불러서 집수리부터
해야겠네요 어머니!
저 돈 많이 벌어왔답니다!
제가 집수리 깨끗하게 해 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정태와 어머니는 오랜만에 호롱불 앞에서
오순도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정태는 장터에 가서 오백 원을
주고 쌀도 한가마를 시키고
리어카 배달비로 십원도 지불했다.
그리고 정태는 집수리 센터를 찾아갔다.
집수리 센터 아저씨는 집 평수를 봐야 한다며 정태
집으로 따라왔다.
"아이고 총각!
서까래도 많이 삭아서 좀 갈아야겠구먼!
집수리 센터 아저씨는 이리저리 살펴보시고
공책에 필요한 자재를 적어나갔다.
"아랫채는 스레트만 갈면 되겠고 안채는 여러 군데
손을 봐야겠네 그려!
대충 견적을 내 보니 팔천 원은 족히 들겠구먼!"
"예, 그 돈은 다 드릴 테니 그럼 집수리를 깨끗이만
해주세요!"
"아이고 총각!
도회지 가더만 돈을 많이 벌어왔는가 보구먼!
알았네, 그러면 일꾼들 불러서 집수리를 시작하겠네!
"예~, 오실 때 견적서와 영수증 가져오시면 돈을
드리겠습니다!"
집수리 비용이 팔천 원이면 쌀로 치면 쌀 열여섯 가마
값이었다.
정태는 일 년 치 급료와 보너스로 약 이만 원을
받았으니 집수리할 돈은 충분했다.
어머니와 함께 점심으로 멸치국수를 끓여 먹고
정태는 어머니를 모시고 장터로 갔다.
오늘은 마침 오일장이 서는 날이라 장터가
시끌벅적했다.
정태는 어머니에게 겨울옷도 몇 벌 사드렸다.
"아이고 정태야!
이렇게 비싼 옷을 세벌씩이나 사느냐 그래!"
"아이고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제가 돈을 많이 벌어서 왔답니다!"
그리고 우체국으로 가서 어머니 통장에 만원을
입금시켜 드렸다.
"어머니, 돈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찾아서 쓰세요!"
"집수리 하는데도 돈이 많이 들 텐데 또 이렇게
큰돈을 주느냐 정태야!"
"아이고 어머니!
여기 든든한 아들이 있으니 걱정 마시고
아프지 마세요!"
"그래그래 고맙다 정태야!"
정태는 집수리가 끝나고 수시로 나뭇짐을 해다가 날랐다,
집수리 덕분에 정태와 어머니는 따뜻한 겨울을
날 수가 있었다.
다음 해 2월 7일 정태는 어머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었다.
"정태야, 너도 이제 열여덟 살이 되었구나!
"예, 어머니!
저를 튼튼하게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정태는 그렇게 열여덟 살 청년이 되었다.
이튿날은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가지고 오셨다.
단장은 이월초에 정태에게 편지를 보내서
서울로 불러올렸다.
정태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서울로 올라갈 채비를 하였다.
"어머니, 다음에 내려올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그리고 돈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우체국에 있는
돈 찾아서 쓰도록 하세요!"
"그래, 정태야 고맙구나!
너도 건강하게 잘 있다가 내려오너라!"
"예, 알겠습니다 어머니!"
한 달 일찍 서울로 올라온 정태에게 단장은 삐에로
1인 악극단 묘기와 불쇼 마술까지 전적으로 전수를 해주었다.
이후 단체가 모인 합숙훈련에서 다혜는 외줄 타기
묘기를 정태에게 실전으로 가르쳐주었다.
다혜는 정태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너는 한 달 일찍 올라왔다면서 정태야?
"응, 단장님 개인기를 배우려고 일찍 올라왔단다!"
"그렇구나 정태야!
너하고 정이 들어서 그런지 겨울 동안 네가
보고 싶었단다 호호호!"
다혜는 마지막 접시 돌리기까지 정태에게 가르쳐주었다.
정태는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깨우치는
천재적 재질을 타고났다.
옆에서 지켜보던 단장은 정태에게 서커스 신동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삼월 초 도봉동에 있는 단장 집 옥상 체육관으로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 모두가 모였다.
"에~,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 여러분 겨울휴가
잘 보내셨나요?"
"예, 단장님이 보너스까지 주셔서 잘 먹고
잘 놀았답니다!"
박군의 말에 이어서 단원들도 하나같이 단장의 말에
화답을 했다.
단장은 한 달 전에 미리 정태를 불러올려서
개인기 전수와 훈련을 시켰다는 말도 덧붙였다.
"에~, 우리가 월남 위문공연을 갔다 온 사실이
신문기사에 오르면서 우리 아리랑 서커스단
위상이 한껏 높아졌답니다!
그래서 요즘 공연 요청이 쇄도를 하고 있답니다!
작년에 우리는 월남 위문공연을 가느라 순회공연을
다 마치 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열두 군데의 순회공연 일정이 잡혔고
첫 공연지는 강원도 속초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자~, 올해도 우리 아리랑 서커스단의 무탈을 기원하는
파이팅을 다 같이 외쳐봅시다!
하나, 둘, 셋, 아리랑 서커스단 파이팅!"
단원들은 단장의 집에서 부대끼며 하룻밤을 묵고
올해의 순회공연 대장정에 올랐다.
단장의 인솔하에 단원들 모두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단원들 모두는 버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자리에는 새로운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단장님!
언제 버스를 새것으로 바꾸셨나요?"
박군은 궁금증에 단장에게 그렇게 물었다.
"아~, 새것은 아니고 쓸만한 중고 관광버스를 새로
구입했다네!
조영철 기사님과 함께 가서 저번 버스와 똑같이
공장에서 개조를 했다네!"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은 새로 구입한 버스를 타고
첫 공연지 강원도 속초로 향했다.
조영철 기사는 새로운 버스를 운전하는 게
신이 났는지 휘파람을 불면서 운전을 했다.
같은 자리에 앉은 다해는 정태의 손을 꼭 잡은 채
잠이 들었다.
(8) 맹호부대 군입대
단원들은 먼 거리 이동으로 인해 휴게소에 들러서
가락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삼척을 향해서 달렸다.
아리랑 서커스단은 오후 3시경 오징어의 도시
속초에 도착했다.
때마침 속초항구 근처에는 야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단원들은 단장이 섭외한 자리로 이동을 해서
야시장 한쪽에 주차를 시켰다.
"자, 일단 무대를 설치하고 저녁을 먹도록 합시다!
공연은 모레 오후 5시부터 열기로 했으니 리허설은
내일 하도록 하겠습니다!"
단장의 지시에 따라 단윈들은 버스에서 짐을 내리고
무대 설치에 돌입했다.
단원들의 합심으로 6시 이전에 야외무대 설치를 마쳤다.
"오, 오징어의 고장 삼척에 왔노라!
징, 징검다리 건너서 횟집으로 갑시다!
어, 어느 집이 좋을지 가위 바위 보!"
싱거운 박군이 오징어 삼행시를 지어서 외쳤다.
"와~, 짝짝짝!
멋있는 삼행시입니다 하하하!"
김 씨 아저씨가 박수로 칭찬을 했다.
야시장 구석지에 화장실과 간이수도가 있어서
단원들은 대충 세수를 하고 해변으로 향했다.
그때 상인회장이 단원들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 분들 아니신가요?"
"예, 그렇습니다 만 누구신지요?"
"예~, 저는 상인회장 구자성입니다!
서커스단이 공연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몰려와서
우리 상인들도 장사가 더 잘 된답니다!
하여 우리 상인회에서 저녁대접을 하기로 했으니
저하고 함께 가시면 된답니다!"
상인회의 대접으로 단원들은 오징어회에 방어회에
조개찜 꽃게탕까지 실컷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건오징어 한축씩도 선물로 받아 들고
무대로 돌아왔다.
이튿날은 하루종일 겨울 동안 무디어진 서커스
동작을 연마하는 리허설에 돌입했다.
다음날 오후 5시 단장은 삐에로 분장을 하고 등짝에
커다란 북을 메고 1인 악극단으로 오프닝 공연을 시작하였다.
속초에서 보름간의 공연을 아무 탈 없이 마치고
다음 공연지 충북 제천으로 떠났다.
울고 넘는 박달재를 넘어 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의
발자취를 따라 약초의 도시 제천에 도착했다.
이번 공연지 역시 제천 시장 앞 공터에서 짐을 풀었다.
사월의 선선한 날씨에 보름간의 공연을 마치고
경북 안동 그리고 포항을 거쳐서 거창으로 갔다.
전국 순회공연을 거듭할수록 정태의 실력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했다.
다음 목적지 전라도 장성을 거쳐 춘향이의 고장
담양으로 향했다.
대나무 공예품 선물을 받아 들고 다음 공연지
백제의 발자취를 따라 부여 장터로 향했다.
단원들은 백제의 유적지도 여기저기 구경을 했다.
다음 공연지 천안삼거리를 거쳐서 순박한
도자기의 고장 여주로 갔다.
다음 공연 장소 양주땅으로 가는 길에는 벌써
벼베기가 한창이었다.
시월 마지막 공연은 의정부 공설운동장에서
열렸다.
의정부 공연을 마지막으로 아리랑 서커스단
순회공연을 마쳤다.
11월 초 단원들은 도봉동 단장 집으로 가서 사모님이
준비한 음식들로 송별회를 열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관람객도 문제지만 단원들이
추위에 몸이 굳어서 사고의 위험 때문에
겨울은 휴가에 들어간다.
"올해도 우리 아리랑 서커스단 순회공연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자~, 다 같이 건배를 합시다.
아리랑 서커스단 내년을 위하여~!"
단장은 준비한 일 년 치 급료를 이름을 호명하며
나누어주었다.
이튿날 아침 정태도 봉투를 받아 들고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을 달려 문경에 도착했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네시쯤 가은 터미널에 도착했다.
정태는 서울에서 미리 준비한 선물을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달려갔다.
"어머니, 정태가 왔습니다!"
"그래, 정태 왔구나 어서 오너라!"
어머니는 부엌에서 반가움에 뛰쳐나왔다.
"정태야, 못 보던 사이에 키도 많이 컸구나!"
"예, 어머니 별고 없으셨지요?"
"그래 네가 주고 간 돈 덕분에 편하게 지냈단다!"
정태는 이튿날 어머니를 모시고 우체국으로 가서
통장에 급료로 받은 돈을 입금시켰다.
"아이고 정태야!
이제는 너의 장가 밑천도 충분하겠구나!"
어머니는 감격스러운 말씀을 하셨다.
정태는 집에서 이삼일 쉬고 또 나뭇짐을 해다가
겨울이 날 수 있도록 헛간에 채워두었다.
정태는 집에서도 연습을 개을리 하지 않았다.
다음 해 또 어머니가 끓여주신 생일 미역국을 먹고
또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삼월 초 도봉동 단장의 집에서 시무식이 열렸다.
"에~, 올해부터는 내가 복잡한 일에서 한시름
놓았습니다!
내가 일일이 전화로 공연장소를 섭외해 왔으나
이제는 그렇게 안 해도 됩니다.
우리 아리랑 서커스단의 위상이 높아지자
여기저기서 공연기획 제휴가 들어와서
공연 기획사와 제휴하여 일정을 잡아놨답니다!
특히 올해는 모두 야외공연이 아닌 실내 극장에서
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답니다!"
아리랑 서커스단 공연은 김포극장 공연을 시작으로
편하게 추진되었다.
서커스 신동 정태는 전분야에 걸쳐서 공연을 했다.
그것은 본인의 피나는 노력과 단장의 지도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네 번째 공연지는 대전에 있는 극장이었다.
공연 전날 단장은 정태를 따로 불러서 군 입대에 대해서
진지한 얘기를 했다.
"정태야 네가 생일이 2월이니까 너도 이제
내년이면 군입대 영장이 날아오겠구나!
또한 내년 삼월이면 군대 간 용대가 전역을 한단다!
그러면 네가 입대를 해도 결원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말인데 어차피 군대를 가야 한다면
내가 거쳐온 맹호부대를 갔으면 좋겠구나!
어제 대전에 와서 맹호부대 동지회장을 만났단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맹호부대 월남 파병 장병을
모집한다고 했단다!
지금 맹호부대 월남 파병 지원을 하면 3개월 후
입대를 한다고 했단다!
지금이 7월이니까 올해 공연을 마치고 10월쯤에
입대를 하는데 너의 생각은 어떠냐?"
"예~,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기왕 군대를 가야 한다면 저 역시 용감한 맹호부대를
선택할 것입니다!
월남 위문공연에서도 맹호부대의 용맹성을 보고
동경을 했답니다!
또한 단장님의 과거사를 듣고 감동을 받았으니
단장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내일 오전에 가서 좀 더 알아보고
지원을 하도록 해보자!
그리고 네가 제대를 할 때 되면 그때는 나도 서커스
현역에서 은퇴할 나이란다!
네가 군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때는 이 서커스단을
네게 물려줄 생각이다!"
"예, 알겠습니다 단장님!"
이튿날 정태는 아침을 먹고 단장을 따라서
맹호부대 동지회로 갔다.
정태는 사무실에서 자초지종을 듣고 지원을 결정했다.
맹호부대 월남 파병 지원서에 주민등록번호와
집주소를 적어 넣고 이름 옆에 지장을 찍었다.
사무실에서는 지원자 편의를 위해 대행을 한 다음
서류를 병무청으로 보낸다고 말해주었다.
"오정태 군 맹호부대 지원을 환영하는 바이네!
한 달 정도 지나면 집으로 통지서가 갈 것이네!
내가 예상하기로는 시월 초에 논산훈련소로
입소를 하게 될 거네!"
지회장과 단장은 거수경례로 예의를 표하고
돌아 나왔다.
정태는 맹호부대 소속으로 다시 월남땅에 간다는
기쁨에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정태는 숙소에서 공연장으로 가는 길에 다혜에게
은근히 자랑을 했다.
"다혜야, 나 이번에 월남 파병 맹호부대에 입대
지원을 했단다!"
"어머, 그 말이 사실이니 정태야?"
"응, 내년이면 어차피 군대를 가야 되는데 뭐!
다만, 몇 달 일찍 가는 것뿐이지 뭐!"
"어머, 섭섭해서 어떡하니 우리 둘이는 평생도록
친구 하기로 했잖아 정태야!
"그건 나도 그래 다혜야!
입대하면 너네 집 주소로 편지 보낼게 알았지?"
"그래, 정태 너 제대할 때까지 내가 기다려줄게!"
사춘기의 정태와 다혜는 그렇게 손가락을 걸었다!
대전 공연을 마치고 단원들은 다음 공연지
김천으로 이동을 했다.
단원들은 야외무대를 설치하고 철거하는 것보다
극장에서 공연을 하다 보니 편하고 시간적 여유도 많았다.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은 김천에서 공연을 마치고
다음 공연지 영천으로 내려갔다.
영천 공연 마지막 날 영천 숙소에서 단장은
정태를 따로 불렀다.
"정태 너의 어머니가 서울 우리 집으로 전보를 보냈단다!
"네~, 그러면 입영통지서가 온 것인가요?"
"그래, 정태야 그렇단다!
10월 6일 오후 2시까지 논산훈련소로 입소하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단다!"
"대전에서 얘기를 들은 그대로군요 단장님!"
"그래, 정태야!
다음 공연 장소는 8월 10일부터 보름동안 상주에서
공연을 한단다!
상주 공연을 마치고 충주로 이동을 해야 하니
충추로 가는 길에 문경 터미널에 내려줄 테니 그때
집으로 가거라!
9월 한 달은 집에서 쉬다가 논산훈련소로 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정태야!"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단장님!"
정태는 상주 공연을 끝으로 입대를 하게 되었으니
서운 섭섭한 마음에 최선을 다해서 공연에 임했다.
단원들은 상주 공연을 마치고 문경새재를 넘어
충주로 이동하는 여정에 올랐다.
정태는 입대를 하게 되면 전역을 할 때까지
다혜를 볼 수가 없다는 마음에 다혜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내가 전역할 때까지 꼭 나를 기다려줘 다혜야!
내가 월남에 가서 멋진 사나이가 되어서 돌아올게!"
"그래, 알았어 정태야!
몸조심하고 전역하면 그때 다시 만나자 알았지?"
"그래, 고마워 다혜야!"
순수한 친구가 되기로 했던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은 채 한동안 눈을 감았다.
어느새 아리랑 서커스단 버스는 문경 터미널
가까이 왔다.
"정태야!
짐 챙겨서 앞자리로 오너라!"
"예, 알겠습니다 단장님!"
단장은 일 년 치 급료를 봉투에 담아서 정태에게
주면서 정태의 손을 꼭 잡았다.
"정태야,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군대생활 잘하고
돌아오너라!"
"예, 고맙습니다 단장님!"
"그래 그러면 단원들에게 인사하고 가거라!"
정태는 대답을 하고 일어났다.
"아리랑 서커스 단원 여러분!
저 오정태 군대생활 잘 마치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단원 여러분들과 즐겁게 지냈으니 좋은 추억
가슴에 담아서 갑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정태는 구십도 각도로 배꼽인사를 했다.
버스 안에서는 단원들의 환송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태와 단원들은 서로서로 손을 흔들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9) 첫사랑의 동반자
정태는 문경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가은읍
고향으로 향했다.
정태를 맞이한 어머니는 눈물부터 흘렸다.
"아이고 정태야 네가 커서 군대를 간다고 하니
정말 대견하구나!
얼른 방으로 들어가거라 정태야!
된장찌개 끓여서 저녁을 먹자꾸나!"
"예, 알겠습니다 어머니!
정태는 어머니가 연기를 들어마시고 기침을
하는 것을 보고 손쉬운 연탄아궁이를
놓아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정태와 어머니는 오랜만에 마주 앉아서 도란도란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이튿날 아침 정태는 작년에 집수리를 해주셨던
가게로 가서 연탄아궁이 개조를 부탁드렸다.
"아~, 작년에 집수리를 했던 집 자제분이구먼!
오늘은 따로 일이 없으니 바로 가서 해줄게요!"
"네, 고맙습니다 사장님!"
그리고 연탄가게로 가서 연탄 천장을 주문했다.
"아이고 총각!"
내가 연탄장사 십 년 동안 가은읍에서 연탄 천장을
주문받은 것은 처음이구먼 그래 하하하!
총각이 도회지로 나가서 돈을 많이 벌었나 보구먼!"
"예, 사장님!
제가 먼저 가서 연탄 놓을 자리를 만들어놓겠습니다!"
정태는 군대를 가면 어머니를 도와드릴 수가 없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준비를 해드렸다.
"어머니 이제 연탄아궁이로 개조를 했으니
나무는 겨울에 군불을 지필 때만 사용하세요!
제가 한 달 동안 나무를 해다가 헛간에 장작을
가득 채워놓을게요!
"그래, 정태야!
이제 곧 군대를 가야 하는데 좀 쉬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어머니!
정태가 집으로 온 지도 한 달이 넘어 입대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태는 어머니가 정태 없이도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집안을 세심하게 살폈다.
이튿날 정태와 어머니는 은척에 있는 외갓집에
들려 군입대 인사를 드리고 돌아왔다.
드디어 입영 날 새벽 어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을
먹고 떠날 채비를 하였다.
정태 어머니는 군대 가면 생일날 미역국을 못 먹을까 봐서
미역국을 끓인 것이다.
"정태야 먼 나라 월남까지 간다고 하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구나!
여하튼 무탈하게 돌아오도록 하거라 정태야!"
"예, 어머니!
이미 공연 때 한번 가본 곳이라서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정태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터미널로
걸음을 옮겼다.
정태가 사는 가은읍은 첩첩산중 산골 동네였다.
논산훈련소를 가려면 문경을 거쳐 충주에서
또 버스를 갈아타고 대전을 거쳐서야 논산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논산훈련소 정문 앞에는 맹호부대 마크가 새겨진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맹호부대 월남 파병 장병 입소를 환영합니다"
논산훈련소 정문 근처는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
마중을 나온 부모와 애인들과의 이별이 여기저기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늘 논산훈련소 입소는 월남 파병 장병들의
입소이기에 이별이 더 애절하게 보였다.
정태는 정문에서 대열을 갖추어 인솔장교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정태가 도착한 연병장에는 맹호부대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고 빨간 모자를 쓴 조교들이 처음부터
강도 높은 군기를 잡았다.
정태는 삼 개월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것은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한 훈련이었고 또한
맹호부대의 위상이 걸려있는 문제였다.
삼 개월간의 논산훈련소 기초군사훈련을 마치자
해가 바뀌어 정태의 나이도 스무 살이 되었다.
어느 날 저녁 완전군장을 한 맹호부대 장병들이
연병장에 도열하였고 연병장에는 수십대의 군용 트럭이
대기하고 있었다.
맹호부대 장병들을 태운 군용 트럭은 밤새 달려서
새벽 5시 드디어 부산항에 도착을 했다.
정태가 예전에 월남 위문공연을 가기 위해대기했던
바로 그 장소였고
부두 위쪽에는 환송 나온 인파들로 북적거렸다.
군함 뒤꽁무니의 거대한 문이 열리고 보급품을
실은 트럭이 먼저 올라갔다.
이어서 대오를 갖춘 장병들이 승선을 했다.
어마어마하게 큰 선실 내부는 화장실과 세면대가
딸린 침상이 없는 바닥이었다.
취침시간에는 군장을 베개 삼아 바닥에 모포를 깔고
자야만 했다.
예전에 위문공연을 갈 때처럼 선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4박 5일의 항해 끝에 1966년 2월 새벽 4시쯤
드디어 월남 사이공에 도착했다.
장병들은 선실에만 있었기에 밖으로 나오자 모두
눈이 부셔서 손으로 하늘을 가려야 했다.
장병들은 대기하고 있던 군용 트럭을 타고 이동이
시작되었다.
정태가 도착한 곳은 위문공연을 했던 바로 그
연병장이었다.
정태는 새삼스러운 감동으로 축구장 골대 쪽을
바라보며 회상에 젖어들었다.
맹호부대 장병들은 대오를 갖추어 연병장을
가득 채웠다.
그때 연단에서 대대장의 환영인사가 진행되었다.
"부대~, 차렷!
대대장님께 경례, 충 성!"
"자랑스러운 맹호부대 장병들이여!
머나먼 월남땅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제군들은 이 전초기지에서 3주간의 정글
전투방식과 적응훈련을 마치고 전방으로 배치가
될 것이다.
아무쪼록 귀국하는 날까지 부상 없이 무탈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장병들은 정글에서의 생존 전투방식과 베트콩의
무기제원등 다양한 훈련을 다시 받아야 했다.
또한 미군과의 합동작전도 있었기에 기본적인
영어도 배워야 했다.
삼주 간의 월남전투 적응 훈련을 마치고 드디어
전방으로 이동하는 군용 트럭에 탑승했다.
전선이 가까워지자 헬리콥터 소리와 멀리서
폭음소리도 들려왔다.
정태는 드디어 상상으로만 느꼈던 월남전쟁
그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정태가 도착한 맹호부대는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인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방을 뺑 돌아서 3m 높이의 철조망이 쳐져있었고
20m 간격으로 가림막이 쳐진 초소가 있었다.
정태가 속한 맹호부대 2중대는 야간에 베트콩의
기습공격으로 초병들이 속수무책으로 하나 둘
쓰러져갔다.
어젯밤에도 소리 없이 침투한 베트콩에 의해 초병
두 명이 또 전사했다.
이를 보다 못한 조경수 중대장은 본부의 허락을 받고
보복을 결심했다.
이튿날 드디어 베트콩 섬멸작전에 돌입했다.
맹호부대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미군부대의
전투 헬리콥터가 적진을 향해서 로켓포를 퍼부었다.
미군 헬리콥터의 지원사격은 맹호부대의 공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지원 지원이었다.
맹호부대 역시 먼저 로켓포 공격을 퍼붓고 진격을
시작했다.
베트콩의 동굴을 발견하면 무조건 수류탄을
동굴 속으로 투척했다.
베트콩들은 수풀로 가려진 땅굴속에 숨어서
느닷없이 공격을 해왔기에
화염방사기로 수풀에 가려진 곳은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 순간 베트콩 섬멸작전 선봉에 있던 화염방사기조
박선정 상병이 가슴에 적탄을 맞았다.
정태는 화염방사기를 박상병 등에서 떠어내고
지혈과 동시에 응급처치를 했으나 박상병은 결국
전사했다.
땅굴과 수풀 속에 숨어있는 베트콩을 찾아서
섬멸하려면 화염방사기는 필수였다.
정태는 박상병에게서 떼어낸 화염방사기를
등에 둘러메고 수풀과 동굴을 향해서 불을 뿜었다.
그러나 동굴은 사방팔방 연결이 되어 적군을
섬멸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베트콩들은 땅굴 속으로 후퇴를 하였고 맹호부대
2중대는 지상에서 계속 추격전을 벌였다.
그때 어디선가 위생병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니 선봉에서 지휘를 하던
조경수 중대장이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다.
정태와 의무병 이관수 일병은 중대장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조경우 중대장은 응급처치로 허벅지에 지혈을 하고 있었다.
지혈을 마친 중대장을 정태는 오른쪽에서
이관수 일병은 왼쪽에서 중대장의 어깻죽지를 붙들고
후방으로 무조건 뛰었다.
그때 이관수 중대장의 전투배낭이 적군이 설치한
부비트랩을 건드리고 말았다.
콰광, 하는 소리와 함께 세 사람은 공중에 붕 떴다가
바닥에 내리 꽂혔다.
정태는 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다리 쪽을
쳐다보았다.
군복은 너덜너덜했고 그 사이로 시뻘건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정태는 훈련소에서 배운 대로 손수건을 찢어서
압박 지혈을 하려고 했다.
그 순간 정태는 기절초풍을 해야만 했다.
왼쪽 다리 무릎아래가 절단이 되어있었다.
정태는 응급처치로 허리띠를 풀어서 무릎 위쪽을
묵고 지혈을 했다.
정태는 한쪽 다리를 잃은 채 낮은 포복으로 후방을
향해서 사력을 다해 기어갔다.
마침 후방에서 대기하던 의무병에게 발견되어
다른 부상병과 함께 헬기로 후송되었다.
정태의 절단된 다리엔 출혈이 너무 심해서 사이공
미군병원으로 곧장 이송되었다.
정태는 절단된 다리 봉합수술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병원에서 수소문을 해보았더니 조경우 중대장과
이관수 일병은 부비트랩이 터지면서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고 들었다.
정태 역시 고인석 단장처럼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더 이상 군대생활은 할 수가 없었다.
이듬해 2월 정태의 생일날 우연처럼 정태는
제대 특명을 받았고
고인석 단장의 계급과 똑같은 예비역 상병으로
전역을 하였다,
정태는 교대근무를 위해 귀국하는 타부대 장병들과
함께 귀국길에 올랐다.
정태는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슬픔에
잠기실까 하는 걱정으로 가슴이 아팠다.
정태는 부산역에서 귀국길 인솔대장의 배려로
군용 열차를 타고 동대구역에 내렸다.
정태는 동대구역에서 문경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예전에 아리랑 서커스 단원 시절엔 희망을 가진
귀향이었으나
지금은 절망으로 가득 찬 귀향길 되었다.
정태는 가은읍 터미널에 내렸지만 어머니를
볼 면목이 없어 도저히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정태는 왼쪽 다리가 없는 바지를 덜렁거리며
목발에 의지한 채 길 건너 대폿집으로 들어갔다.
정태는 순댓국 한 그릇에 막걸리를 시켜서
한숨으로 들이마셨다.
정태는 막걸리 두 주전자를 비우고 술에 취해버렸다.
그때 오십대로 보이는 주인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에구~, 총각!
내가 나 설일은 아니지만 군복을 입은 것을 보니
전역을 한 모양이구먼!
어쩌다가 그래 다리를 다쳤을까 쯔쯔쯔!"
모자를 푹 눌러쓴 정태가 혀가 꼬부러진 말로
대답을 했다.
"네~, 아주머니 월남전쟁에서 다리를 잃었답니다!
어머니를 뵐 면목이 없어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답니다!"
"아니, 그러면 혹시 왕릉리 오씨집 아들이 아닌감?"
"예, 맞습니다!
제가 바로 오정태입니다!"
"에구, 쯔쯔쯔!
그 집 아들이 서커스단에 들어가서 돈을 많이 벌어
효도를 했다고 가은읍에 소문이 파다했는데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구먼!
안 죽고 살아서 돌아온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게나!"
"예, 아주머니 말씀 고맙습니다!"
정태는 비틀거리며 목발에 의지한 채 집 앞에
도착을 했지만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정태는 삽짝문에 기대어 선채 물끄러미 방을
쳐다보았다.
방문 창호지 틈으로 호롱불 빛이 새어 나왔다.
삽짝문에 기대고 있던 정태는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한쪽으로 넘어지면서 문짝을 밀쳐버렸다.
그 순간 삽짝문에 달려있던 워낭 종소리가 심하게 울렸다.
그 소리에 놀란 정태 어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그기 누구세요?"
아무런 대답이 없자 정태 어머니는 다시 물었다.
"그기 도대체 누구세요?"
그래도 대답이 없자 정태 어머니는 혹시 몰라서
옆에 있는 지게작대기를 들고 다가왔다.
그 순간 정태 어머니는 기겁을 하고 놀랬다.
"아니, 너는 정태 아니냐?
온다는 소식도 없이 무슨 일이냐 정태야?"
술에 취한 정태는 삽짝문에 기대어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그때까지 정태의 모습을 자세히 보지를 못했던
정태 어머니는 목발을 보고서야 어렴풋이 알아챘다
"아니, 정태야!
어디를 다쳤기에 목발을 짚고 왔느냐 정태야!
정태는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아이고 정태야!
어쩌다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냐 정태야!"
정태 어머니는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정태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고 목발을 짚고
마루에 걸터앉았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저 피곤해서 좀 자야 되겠습니다!"
정태는 방으로 들어가서 술기운에 잠들어 버렸다.
이튿날도 그다음 날도 어머니는 정태에게
아무것도 묻지를 않았다.
어머니는 오히려 그 사연을 듣는 것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정태 역시 아무런 말도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더 지났을 때 우체국에서
등기소포가 왔다.
정태는 국방부에서 보내온 서훈과 내용물을
보고서야 사연을 알게 되었다.
정태가 전역을 한 이후 맹호부대 2중대의 활약상과
정태의 용맹한 전투기록이 상부에 보고되었다.
그로 인해 맹호부대 2중대 상병 오정태의 무공훈장
수여가 결정되었고
어느 날 정태 집으로 일계급 특진 서훈과 함께
무공훈장이 배달되었다.
정태는 무공훈장을 받아 들고 씁쓸하게 웃었다.
"단장님과 나는 같은 팔자를 타고났다 보다!
인생은 내일을 알 수가 없다더니 그 말이 꼭 들어맞는구나!"
정태는 마루에 걸터앉아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후 여름이 다 가도록 정태는 마음을 추스르며
바깥출입도 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어느 날 고인석 단장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정태군 요즘엔 어떻게 지내는가!
자네가 맹호부대에 입대해서 월남전 참전으로
다리를 잃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네!
나도 자네를 맹호부대에 입대를 시킨 것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를 하고 있다네!
하지만 내가 자네를 유심히 지켜본 바로는
자네는 비록 다리를 잃었다지만
자네가 아주 유능한 사람이라는 건 분명하다네!
다름이 아니고 내가 육이오 전쟁 때 다친 다리가
골수암으로 진행되어 보훈병원에 입원을 했다네!
정태 자네와 나는 똑같은 맹호부대에서 근무하며
같은 운명적으로 부상을 당했지!
그나저나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리랑 서커스단을
운영할 건강도 자신도 잃었다네!
내가 백방으로 알아보고 또 생각을 해봐도
아리랑 서커스단을 물려줄 사람이 없다네!
마지막으로 마음에 두었던 정태 자네에게
아리랑 서커스단을 물려주기로 결심을 하였네!
자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버스와 장비까지
무상으로 물려주기로 마음을 먹었네!
세상 살다 보면 절망의 고개를 넘어서면 희망이
보인다네!
나 역시 한쪽 다리 불구가 되어서도 마술을 배워
아리랑 서커스단을 창단했다네!
그러니 자네도 용기를 잃지 말고 부디 희망을 가지고
일어서게나!
그러니까 이 편지를 보는 즉시 서울 보훈병원으로
와서 나를 찾게나!
-맹호부대 선배 고인석 단장-
정태 역시 고인석 단장의 맹호부대 후배였다.
정태는 월남 참전 용사로서 전투 중에 부상을 입어
전역을 했지만 국가로부터 고인석 단장과 똑같은
무공훈장을 받았다.
정태와 고인석 단장의 만남 그 자체가 어찌 보면
필연적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정태는 우체국으로 가서 서울 보훈병원에 전화를 걸어
고인석 단장과 통화를 했다.
정태는 단장이 가르쳐준 대로 서울로 가서 버스를 타고
서울 보훈병원으로 갔다.
단장의 침상옆에는 의외로 다혜가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단장님!
오정태 왔습니다 충성!"
정태는 슬픈 모습을 감추고 애써 웃음을 지었다.
그때 다혜가 벌떡 일어나 정태에게 안겨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정태야 이 나쁜 자식아!
왜 이제야 오는 거야 정태야!
다리는 어디다 두고 온 거야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정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듣고만 있었다.
한참을 지켜보던 단장이 정태를 불러 앉혔다.
"정태야~!
다혜에게는 사실대로 얘기를 했단다!
내가 편지에 쓴 내용대로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리랑 서커스단을 이끌 수가 없단다!
네가 오기 전에 다혜와 많은 얘기를 했단다!
다혜는 아직도 너를 가슴에 품고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너도 이제 스물두 살이면 성인으로서 스스로
혼인을 할 수 있는 나이란다!
정태 네가 월남전쟁에서 다리를 잃었지만
다혜는 너를 향한 사랑이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가 만일을 대비해서 우리 집 근처에 조그만
집을 하나 마련했다.
앞으로 너희 둘이 머물 수 있도록 병원에 오기 전에
다혜 앞으로 등기도 마쳤단다!
너희 둘이 힘을 합하면 내가 없어도 충분히
아리랑 서커스단을 이끌 수 있을게다!
이제 아리랑 서커스단의 운명은 너네들
어깨에 달려있단다!
너들이 내 부탁을 들어줘야만이
내가 편하게 눈을 감을 수가 있단다!"
정태와 다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정태와 다혜는 단장의 말씀대로 결혼식은 못했지만
단장이 마련해 준 집에 둥지를 틀었다.
정태와 다혜는 삼일이 멀다 하고 보훈병원으로
가서 단장의 병간을 하였다.
정태와 다혜가 동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단장은 정태와 다혜가 지켜보는 앞에서 임종을 했다.
1969년 10월 20일 아리랑 서커스 단장이자
맹호부대 창설 멤버였던 육군 예비역 병장
고인석은 그렇게 생명줄을 놓았다.
삼일 후 정태와 다혜, 그리고 단원들 모두가
버스를 타고 고인석 단장의 뒤를 따랐다.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과 맹호부대 선후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맹호부대 창단 멤버였던 예비역 병장 고인석은
국군 묘지에서 영면에 들어갔다.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