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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필미학 원문보기 글쓴이: 신재기
<1> A씨의 독후감
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십니까.
봄이 갑자기 찾아와 온갖 꽃이 한꺼번에 피어나니
어리둥절할 지경입니다.
보내주신 '기억의 윤리' 잘 읽었습니다.
편편의 작품들에 공감의 파장이 넘쳐서
모처럼 행복한 글읽기였답니다.
또한 선생님의 인생歷傳과 가족애가 감동적이었습니다.
치열한 삶의 모습에 경의를 표합니다.
안이하게 살아온 저의 삶을 되돌아보게도 하였답니다.
확실히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역량이 따로 있군요.
선생님의 수필은 마치 차 한 잔을 마주하고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친근하고 진솔하면서도
묵직한 통찰의 깊이가 있습니다.
뭣보다 부럽고 경이로운 것은 선생님의 열정입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베껴놓은 선생님의 잠언들을
선생님도 보시면 다소 새삼스럽게
여기시지 않을 런지요.
보여드리고 싶어서 첨부합니다.
선생님을 뵙고 좋은 말씀도 경청할 시간을
만들어봐야겠습니다.
행복한 봄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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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기억의 윤리
신재기
■하얀 이데올로기 p13
-눈 자체는 아름다운 자연현상이다. 하지만 인간의 현실 생활 안에서 눈은 노동이고 고통일 수 있다. 한쪽을 보고 그것만을 믿는 것은 허위다.
■부끄러움 p18
-나를 정확하게 잘 보았다고 할 수 있고, 잘못 보았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을 지닐 뿐만 아니라, 일관된 하나의 마음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늘 변화무쌍한 것이 인간 아닌가?
-마음의 두께가 얇아 나를 잘 숨기지 못한다. 내면이 훤하게 비치는데, 나를 포장해 봐도 금방 들통 나고 말 것이다. 이럴진대 어찌 부끄러워하지 않겠는가. 투명한 존재가 되고 싶다.
-내 맑은 영혼을 위해 작은 부끄러움이라도 잃고 싶지 않다.
■특별한 세뱃돈 p21
-100여 년 전 리쭝우는 후흑학厚黑學을 주장-전자는 유비, 후자는 조조 -처세방법-얼굴이 두껍고 심보가 시커먼-어쩌면 우리는 모두 처세라는 명분으로, 혹은 세상 탓을 하면서 ‘후흑’에 조금씩 물들어 가는지도 모르겠다.
-남의 염치없음은 쉽게 비난하면서도 나 자신의 후흑에 관해서는 관대했던 것은 아닐까?
■양도소득세 p28
-내 명의로 양도소득세를 내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느 시점부터 수중의 것을 조금씩 남에게 양도하고 죽을 때는 손 털고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내 존재 자체가 본래 얻은 것이라면, 남은 시간 동안 양도소득세를 흔쾌히 내면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리라. 이런 넉넉한 마음이 가장 지혜로운 노후대책일지도 모른다고 나 자신을 위로해 본다.
■소리길 p31
-슬쩍슬쩍 던지는 이야기 사이로 그가 살아온 삶의 무게와 그늘이 드러났다. 거기에는 슬픔이 어려 있었는데, 그것이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친구들의 종교가 모두 달았다.
-하지만 어느 쪽도 돌출되지 않았다. 나이뿐만 아니라 정신적 수양으로도 자신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드러낼 줄 알고 남의 모서리도 편안하게 품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이 시대, 오히려 무거움과 진지함이 훨씬 편했는지 모른다.
■천지삐까리 p37
-발 앞에 그림자처럼 따라와 쌓인 세월이 어느새 이마 높이에 이르렀다. 이제 안다. 그 높이만큼 쓸쓸함도 깊어진다는 것을.
-‘천지삐까리’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그 옛날의 ‘대구서적’이 세월의 파도에 휩쓸려 간 것처럼 나의 청춘도 삶도 그리고 이 봄날도 바람 되어 날아가리라. 중앙통 거리를 걷는다. 무거운 걸음 아래로 내 젊음이 봄바람처럼 지나갔다.
■잉여의 기억 p44
-인생살이는 아주 사소한 일들로 채워지는 것 같다. 굵직한 일의 틈새를 작은 일이 메워주므로 우리의 생은 하나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대부분 큰 것만을 보고 작은 것은 놓친다. 큰 그물코를 빠져나간 작은 일들, 거기서 발산하는 희로애락이 인생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겠는가. 비록 과거 혹은 미래의 내 삶의 조각이 비루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온전히 화려한 삶은 없다. 다만 화려하게 보일 뿐이다.
■세 편의 독후감 p53
-한방철 교수는 저서 <피로사회>에서 “궁핍한 시대에 사람들은 흡수와 동화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과잉의 시대에 이르면 문제는 거부와 배척이 된다.”라고 했다.
-우리는 늘 여기가 아닌 저 먼 곳에 있는 것을 갈망하고, 일상의 섬세한 무늬보다는 그 뒤에 잠재한 추상적인 본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가까이 있는 존재의 가치에 대해서는 눈멀어 있다. 그러다 보니 ‘여기’와 ‘현재’가 늘 불만스럽다.
■냉소와 허영 p55
-김영민 <공부론>
-논어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글쓰기 과정에서 내 생각은 타인의 생각을 만나 서로 얽혀 통일된 새로운 구성체를 만들어 낼 때 나만의 개성적인 스타일을 확보한다. 이는 글쓰기에서 내 생각을 ‘자연화’(보편화)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보편적인 논리를 획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산문문학으로서 수필쓰기가 이러한 언어의 논리를 구축하지 못하면 위태롭기 짝이 없다. 수필에서 글의 논리성은 문학성보다 앞선다. ‘말이 되는 이야기’는 수필의 오메가이고 알파다.
-“‘내 생각’만으로는 영영 너의 ‘사실’에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 그래서 내 생각의 막을 찢고 나가는 모종의 실천적 근거 없이 들먹이는 관념적 상호소통의 이상이 종종 공소하다.”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냉소’, 남에게 자기를 보이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진 기이함이나 새로움에 현혹된 ‘허영’은 수필을 창작하는 사람이 극복해야할 중요한 과제다.
■이야기 속에 내 삶이 p58
-내 이야기는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든지 못 주든지 간에 그것은 처음부터 나의 이야기다. 그것이 신파와 같이 진부할 수도 있고, 누구에게나 엇비슷한 통속적인 전형으로 끝날 위험도 없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 속에 내 삶이 있다는 것이다. 말해짐으로써 내 삶은 존재했던 삶이 된다. 존재했기 때문에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있다. 내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내 삶의 특정한 한 부분을 떼어내어 엮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내 삶의 전부인 것이다.-이야기되지 않은 이야기는 삶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
■문명의 우울 p62
-어느 시점부턴가 출간한 책을 다른 사람한테 보내는 일을 될 수 있으면 줄였다. 보잘것없는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일로 비치거나 관심 없는 사람에게 나를 봐달라고 귀찮게 구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다. 한 권의 책 선물보다 한 끼 음식 대접이 마음을 더 크게 움직이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이다. 일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책에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편리한 소통의 기기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의 문은 꼭꼭 닫고 살아가는 것 같다. 문명의 우울한 그늘이 점점 짙어져 간다.
■반성문 쓰기 p67
-글 쓰는 이의 내면의식을 반영하지 않는 글이 없지만, 수필만큼 자기 성찰과 자기반성을 거치는 글쓰기는 없다. 일상은 반복의 관성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흘러간다. 일상으로 점철되는 우리 삶도 그대로 두면 무의미하게, 관습대로, 타율적인 길을 따라갈 뿐이다. 이같이 일상에 묻혀있는 소중한 의미를 찾아 나서는 것이 수필쓰기다. 수필은 일상의 발견과 송찬이고, 삶의 긍정이다. 그 가운데 이루어지는 자기 성찰이야말로 수필쓰기의 본질이고 가치이다. 내면 몰입이나 자의식 과잉은 성찰이 아니다. 경험적인 현실에 직접 접촉하는 자아를 관찰하고 반성하는 것이 성찰이다. 이러한 성찰은 개인적인 존재에만 국한하지 않고 자아와 타자의 관계, 즉 사회적인 차원에서 나의 진정한 위치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모럴은 자기 성찰에서 비롯된다.
-어느 사회학자는 ‘더 이상 자기 성찰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현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에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논문 쓰기에 갇힌 인문학 p70
-대부분 백 년 전의 것을 ‘현대’라는 이름 아래 무덤을 파헤치고 있다.
-논문-모든 것을 일관된 틀로 설명할 수 잇다는 서구 근대의 독선이다. “정밀성과 객관성이라는 근대적 이념의 틀로써만 우리의 글쓰기를 좌지우지하는 태도는 결국 남의 쓰레기를 수집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음식의 구걸도 서러운데 깡통조차 빌려 쓴다.”-철학자 김영민의 논문주의 글쓰기에 대한 비판
인간성을 탐구하고 옹호하는 것이 인문학의 본질이다.
-“인간이 자연적으로 소유하게 되는 성질에 추가되어야 하는, 그래서 기존의 인간을 더 인간적이게 하는 잉여의 성질이 인문주의의 인간성이다.”-김상환의 <철학과 인문적 상상력>
-인문학은 인간 존재를 긍정하고 그 다양성을 용인하며 인간다운 삶의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훼손하는 장애 요소를 극복하고자 하는 실천적 노력이고 정신이다. 연구실의 밀폐된 공간과 텍스트에만 안주하는 논문 쓰기는 인문학의 포기이다.
-대중 속으로 달려가는 실천적 인문학의 목소리
■새로운 책의 시대 p75
-진정하고 새로운 책의 시대, 독서의 시대는 책과 독서에 대한 자의식을 발동하여 그것의 본질적 의의를 자각하는 시대다. 그동안 책과 독서가 감당했던 다양하고 주변적인 역할을 내려놓고 가장 기본적인 것에만 집중할 필요가 있다.
-책과 독서는 자기 본연의 영역만을 견지함으로써 오히려 그 존재가치가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사고력
-책과 독서의 존재가치는 ‘사유의 힘’이다. 책은 세상을 바꾸고, 인간을 바꾼다. 독서를 하면서 인간은 어둠의 세계에서 밝음의 세계로 나올 수 있다. 즉, 독서를 통해 인간은 스스로 상상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간다. 사유하는 존재로서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면 독서는 필수적이다. ‘생각하는 힘’의 원천이 독서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은 책을 버릴 수 없다. 책과 독서는 인간의 존재의 가치이고 가능성이다.
■냄비 받침대 p79
-고려 시대 김부식도 <삼국사기> 서문에서 자신의 책이 간장독 덮개로 사용되지 않기를 빌지 않았던가. 책이 천덕꾸러기가 된 이 시대.
■우리 문학 안녕한가요 p82
-문학의 심미성 앞에서 역사, 사회현실, 이웃, 공동체 등은 괄호 안에 갇히고 만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우리 문학은 슬그머니 개인의 밀실로 잠입하고 말았다. 전 시대의 활기찬 광장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개인의 내면세계가 문학의 전-문학의 개인성역을 점령했다.-현실 비판과 저항의 칼날이 무디어 갔다. 자기 고백적이고 자아 중심적인 글쓰기인 수필이 200년대 문학의 총아로 대중의 환호를 받고 있는 것도 이러한 시대 변화를 잘 말해준다. 문학이 ‘나와 너의 관계’에서 벗어나 ‘나’에만 집중한 나머지 -개인의 욕망에 갇힌 오늘의 문학.
-현재 우리 문학은 안녕하지 못하다.
■형님과 오미자 p97
-덩굴과 잎 속에 묻혀 잇는 오미자 송이가 햇빛에 드러난 것보다 알도 더 충실하고 색깔도 더 곱다고 한다. 그렇다. 형님의 인생이 덩굴 속에 묻힌 오미자가 아니겠는가? -겉은 거푸집처럼 보이지만 형님의 삶은 덩굴 속에서도 잘 익은 오미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생각한다 p104
-인간적인 감응을 생성시키는 것이 예의 본질이다.
-라캉은 기표의 연쇄가 기의를 생성한다고 했다. 실제적인 의미가 없는 형식의 반복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말이다.
-예는 사회적인 상징체계, 즉 기호다.
-자신의 욕망을 양보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
■아버지 p116
-꿈을 꾸면서 고독과 함께 살았던 내 아버지
-내가 살아있는 한 아버지도 내 기억 속에 살아있으리라. 그 기억은 내가 아버지로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를 인도해 줄 것이다.
■듣보잡 일기 p118
-돌이켜 보면, 그동안의 나의 인생도 시골 오지의 고향을 탈출하여 도시 중심으로 진입하려고 갖은 애를 썼던 힘든 여정이 아니었던가 싶다.
■'나‘는 없다 p127
-내 성격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것 같다. 유일한 대응방식은 상처 받을만한 여건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지 모른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낯선 ‘나’를 만나면서 하나의 ‘나’를 만들려고 애쓰면서 살아간다. 여기에는 나는 존재하지만 어디에서도 나를 찾을 수 없는 황당한 모순만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거울을 들여다보아도 나는 없다.
■구이경지 p132
-최동호 선생님과의 만남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행운은 어떤 목적이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나는 우연히 서울로 공부하러 갔고, 거기서 최동호 선생님을 만났다. 한 치만 빗나가도 인연이 맺어질 수 없는 우연한 만남이었다. 이 만남이 계기가 되어 내가 이룬 것은 절대 가볍지 않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것이 초라할 수도 있지만, 나 스스로는 타고난 그릇에 담을 만큼 충분히 채웠다고 생각한다.
■기억이 윤리 p142
-기억의 증언이 쌓여 오늘의 실존이 되고, 현재 삶의 넓이와 깊이가 된다. 기억은 아직 지워지지 않은 과거의 껍질이 아니라, 오늘에 의해 재구성되고 해석된 것이다. 따라서 기억하는 것은 살아 있음의 실체다.
-국정원 댓글 조작-정권에 대한 약간의 충성심으로 한 일을 두고 그 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것은 과잉반응이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삼십 년 전 민주화를 위해 온 국민이 하나가 되고 목숨까지 희생하는 사람이 있었던 그때를 기억한다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아닌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현재의 가치이고 윤리다. 현재 내 삶은 어제의 기억을 버리고는 품격을 유지할 수 없다.
■보조를 맞추다 p145
-한편으로는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삼십 년이나 같이 살면서 늘 나 혼자 걷기만 한 것 같아서 말이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경쟁과 갈등 가운데서 협동과 이타적 행동-이기적인 개체는 상호 협력하고 배려함으로써 사회적인 공존이 가능하다.
-“마음씨 좋은 녀석이 일등 한다.”-저마다의 개성과 능력 존중-개인의 욕망에만 집착하는 이기적인 태도에서 물러나 옆 사람을 배려하는 심성을 발휘하라는 뜻
■소나기는 소나기일 뿐이다 p151
-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객관적인 문맥, 나 밖의 타자를 읽어내는 마음의 거리가 부족하다. 자신의 견고한 울타리를 허물 필요가 있다.
-정보 조작에 의한 가상현실은 현실보다 더 강한 증강현실로 드러나고, 욕망이 만들어내는 무수한 환상이 지금 우리 삶을 포위하고 있다. 생각과 판단의 투명함은 말로만 가능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는 균형 감각이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는 내 마음이 어느 때는 이 세상 전부를 딤을 만큼 넓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 마음이 감옥일 때가 많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상식적인 말이 가장 절실하게 다가온다. 집착이 아닌 허심이 비책이리라.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 p156
-노인이 되면 여유 있게 세상을 관조하고 내 밖의 것을 끌어안는 큰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어쩌면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일지 모른다. 그것은 정염과 열정의 사랑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 속에 자신을 조용히 내려놓는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근원적 사랑일 것이다.
■존재의 완성 p161
-의미 있는 삶은 단지 행복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추구할 만한 가치를 설정하고 그것을 지향하는 것이 삶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객관적인 가치를 생산하면서 더 큰 주관적인 만족을 이루는 것이 바로 인생의 의미이고 목표다. 자기 한계를 극복하고 주관적 만족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자기를 발전, 상승시켜 나아가는 것이 인생의 의미일 것이다.
-인간 욕구의 최종 단계를 ‘자기실현의 욕구’로 설정-자아실현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범위를 넓혀 공동체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대될 때 ‘인간 존재의 완성’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대자보와 손글씨 p166
-인류 역사에서 종이의 발명과 문자사용은 문명사를 새로 쓰게 했다. 문자로 정보를 기록하면서 인간의 사고력은 급속도로 확장한다. 그리고 책이라는 매체의 등장으로 지식 축적이 가능했으며, 그것을 토대로 과학과 문화도 놀랍게 발전했다. 이는 글쓰기가 가져온 혁명이었다. 종이에 글을 쓴다는 행위는 사유를 동반한다. 글로 표현하는 순간 생각은 체계화되며 정확성을 발휘한다. 논리적 사유의 표현은 상대의 생각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하얀 종이에 쓴 글은 구름처럼 흘러가는 생각을 붙잡고 확신을 심어준다. 글은 말보다 신뢰가 높으므로 글을 통하면 나와 너의 교감은 한층 돈독해진다.
■실존 p169
-실존주의-간단하지 않은 이 말은 국가 권력의 폭력성이라는 영화 본래의 주제에서 비켜나 있지만,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 존재는 고정된 명사형이 아니라 현실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사형이다. 이처럼 존재의 우연성이나 개별성이 바로 ‘실존’이다. 우리는 인간이란 보편적인 개념 안에 있으면서도 개별적인 존재자로 실존한다.
-시인 김춘수는 “꽃”에서 모든 존재는 그것에 합당하는 이름이 붙여졌을 때 존재로서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하지만 그 후 언어의 개념이 주는 폭력성을 인식하고 존재의 순수함을 드러내기 위해 무의미시를 실천한다. 언어의 개념보다 육체성이 존재를 순수하고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개념이 삭제된 존재의 의미는 성립불가능한 모순이지만, 이러한 무의미시는 개념과 이데올로기의 획일성에 대한 저항의지를 내포한다.
-일레인 글레이저 <Get Real>-익명적이고 은밀한 이데올로기의 숨은 책략
-영화 ‘변호인’에서 공학도 진우가 고문을 받으면서 뱉은 ‘실존주의’는 실존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임을 역설하고 있다.
<2> B씨의 독후감
신재기 수필집 <기억의 윤리>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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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표지부터 전문서적 분위기, 단숨에 읽었다. 한 권의 수필, 에세이교본 지침서를 읽는 느낌, 각 제목도 문장도 마음속에 깊이 새겨저있다. 밑줄 그어 가며 펴보기 쉽게 책갈피를 접어 뒀다. 가까이 두고 공부하련다.
2) 그동안 여러 지면을 통해 저자의 평론을 애독해왔다. 초보자도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작법론에 매료되어 ‘평론가 신재기 교수님’을 존경했다. 간간히 그가 쓰는 수필도 읽었다. 그런데 ‘명평론가도 그다지 감동적인 글은 못쓰는구나.’였다. 아니다. 이 수필집을 읽으며 내 경솔함을 깊이 뉘우쳤다. 저자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건만 마주앉아 정담이라도 나누듯 푹 빠져 읽었다. 어떻게 이토록 알맞은 거리를 두고 중용을 지키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지 거듭 감탄했다. 특히 유소년기에 닥친 어려움을 긍정으로 극복, 스스로의 주인 역할을 의연하게 해내고 우뚝 선 대목에서 많이 감동했다. 어느 호칭보다도 수필가라 불리고 싶다는 그의 수필집 머리글을 접어두고라도 감히 명수필가라 칭하고 싶다.
3) 저자 자신이 애주가라 했다. 술에 비유한다면 한마디로 목을 톡 쏘는 양주가 아닌, 술술 잘 넘어가는 막걸리 맛이랄까, 때로는 밥알 동동 띄워 표주박으로 떠먹는 새콤달콤한 동동주 맛도 즐길 수 있었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그의 옹달샘에서 끝없이 퍼 올려질 것 같다.
아버지
후대에게 조상의 자취를 전해주는 좋은 계기, 장문(長文)인데도 글에 힘이 있어서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조상의 DNA는 분명히 후손에게 영향을 준다.
나
진솔한 내용에 감동, 나를 돌아보는 글, 써보고 싶은 충동
부끄러움
솔직해서 좋다. 나를 돌아보는 계기, <내 맑은 영혼을 위해 작은 부끄러움이라도 잃고 싶지 않다> 마음속에 새기고 싶은 보석 같은 문장.
반성문 쓰기
참 좋다. 한 구절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주옥같은 글이다. 명강의 들은 느낌.
논문쓰기에 갇힌 문학
신선하다. 현 논문 제작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런 에피소드들이 가끔 신문지상에 기사화되어 짐작은 했지만 속속들이 들어낸 용기에 감동, 자신도 교수이면서 마치 양심선언 같이 거리낌이 없다. 큰 울림이 온다.
우리 문학 안녕한가
깊은 공감.
형님과 오미자
재미있다. 주인공을 마치 눈앞에 보이듯 그렸다. 군데군데 장문 뒤에 단문이 받쳐줘서 힘이 있고 돋보인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식의 멘트). 읽으며 많이 공감. 이 수필에 밑줄 친 부분이 많음을 고백.
고향전설
재미있다. 그때 처해진 상황에서는 그랬겠구나, 끄덕여진다. 문득 내 고향 얘기도 펼쳐보고 싶은 충동.
듣보잡일기
처음 듣는 말이다. 재미있게 풀이했다. <나는 이런 수필이 좋다. 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채워진 것에는 내 사랑이 스며들 틈이 없다> 얼마나 푸근하고 애정 어린 표현인가!
양도세
어떻게 하면 세금을 안낼까? 눈에 불을 켜는 세상에 이렇게 편안하게 긍정적인 생각을 하다니, 그 지혜와 너그러움에 존경심이 인다.
신교수님,
멋진 분을 알게 되어 행복합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어쭙잖은 독후감 행여 실례되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2014년 3월 왕초보 수필가 000
<3> C씨의 독후감
신재기 교수님~
설국을 장식해 주던 겨울을 보내기가 아쉬운지 꽃샘추위가 표독스럽습니다.
보내주신 수필집 '기억의 윤리'와 '수필미학' 잘 받았습니다.
교수님의 수필집을 처음 받아본지라 숫눈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지난 밤부터 새벽까지 가슴 설레며 읽었습니다.
외양이 항상 흐트러짐 없는 분이어서 내면이 궁금한 적도 있었는데
수필집을 통해서 심경을 알게 되어 한층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전 국민이 모두 수필을 쓴다면 이해 못할 사람이 없겠다는 신선한 충격을 받는 순간입니다.
한 권을 다 읽고나니 교수님의 유년기에서 지금까지 살아오신 내력이 드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갑니다.
산간 오지에서 태어나서 대학교수가 되기까지 힘들게 살아오신 과정이 공감을 불러 일으켜
아침부터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자제분의 친구가 책으로 냄비받침을 했다는 비화는 스글픈 현실이면서 한편 받아들여하는 문인들의 아픔입니다.
얼핏 보아 표제가 도덕교과서 같아서 두려움이 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읽고나니 소탈한 수필과 학술적인 내용으로 짜여 있어서 영양밥을 먹은 듯 든든합니다.
술로인한 실수로 사촌 결혼식장에 참석하지 못한 일화는 저에게 위안이 되는 대목입니다.
윤리에 한 점 어긋남 없이 살아가시는 이미지를 흠뻑 갖춘 분도 그런 실수를 하시는구나 싶어
차라리 인간적인 냄새를 맡게 합니다.
교수님,
서점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문예지까지 발간 하시는 우직함에 박수를 보냅니다.
교수님같이 수필을 사랑하시는 분이 계셔서 자아성찰이라는 명제를 걸고
수필을 쓰는 문인들이 목에 힘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대구에 살았다면 수필쓰기에 동참하고 싶은데 거리가 있어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기억의 윤리를 읽고나니 수필선집 '앉은 자리가 꽃자리'를 읽어보지 못해 아쉽습니다. 서점에 가서 구입할까 합니다.
교수님, 꽃샘추위에 건강 조심하시고 가내에 봄의 기운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알찬 수필집과 수필미학 읽게 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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