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6)
2006-09-11 16:58:50
107차 정기 산행기(화야산) - 서상국
1. 때 : 9. 9(토)
2. 곳 : 화야산(755m)
3. 코스 : 사기막골 끝 주차장-계곡길-고등산줄기-화야산 정상-사기막 계곡길(순수 산행 3시간 30분)
4. 참가 : 상국(대장), 문수, 펭귄, 덕영, 병욱, 신림(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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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9 : 52 산행 시작
올여름, 처음엔 비가 줄줄 오더니 나중에는 몇 십 년 만에 찾아온 불볕더위라고 지독히도 더웠다. 30산우회는 날씨보다 독한 아이들, 덥다고 예정된 산행을 미루지는 않았다. 땀에 범벅이 된 채 산을 내려오다가 이구동성으로 하던 말, “아... 언제 씨원하게... 알탕 한번 해야 할 낀데....”
그런 원을 풀려고 잡은 곳이 화야산인데, 다들 먹고사는 일에 바빠 알탕 산행에 참석한 사람은 겨우 6명. 좀 적으면 어떠랴.
사기막골 끝까지 올라간 주차장, 안내표지판에 의하면 어디로 가든 정상까지 2시간 30분 걸린단다. 거리는 얼마 안 되는데 비탈길이 까다롭겠다는 암시, 미리 각오를 한다.
비를 맞으며 오붓하게 산행을 시작한 시각 9시 52분.
요즘 들어 말씨가 엄청 순화된 펭귄 입에서 갑자기 "아이 Tv..., Tv we.... " 이런 말이 자주 나온다.
덕영이는 아예 처음부터 비를 맞을 요량으로 맨몸으로 가고, 나머지는 비옷을 입었는데, 펭귄은 꼭 우산을 고집하더니만, 왼손에 우산, 오른손에 스틱을 잡고, 밀림같은 숲을 지나다가 예상치 못한 나뭇가지에 우산이 걸리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내지르는 불평불만이다.
그게 자꾸 반복되다보니 저 뒤에서 듣다 못하고, 보다 못한 신림거사 왈,
“어이! 저 앞에 펭귄! 우산 쫌 걷어라. 나무에 걸려 자빠지면서 무슨 고집이 그리 쎄노? 우산하고 무슨 원수짔나? 산에서는 손이 쫌 프리해야 하는데... 궁시렁궁시렁...”
신림거사의 핀잔을 듣고서야 우산을 접어 넣으며 씨익 웃는 펭귄, 그 얼굴에서 ‘펭귄 사랑은 신림’이라는 표정을 읽을 수 있다.
2. 12 : 02 정상 도착
사기막에서 계곡길 따라 오르다가, 오른쪽으로 고등산 방향 지능선을 오르는 것도 쉽진 않았지만, 지능선에서 화야산 주능선을 타는 그 오르막이 상당히 까탈지다.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쉬어가며, 정확하게 12시 2분, 산행시작한지 2시간 10분만에 정상에 올랐다.
정상까지 오면서 아무도 만나지 못했고 정상에도 한동안은 우리뿐이었다.
찍어줄 사람이 없어 5명만 나오게 찍으면서, 자동-타이머를 작동할 줄 알던 박대장이 아쉽다.
점심을 먹는 동안 얼마 전 남대문에서 있었던 <펭귄 난동>사건을 안주삼아 잠시 펭귄 청문회가 열렸다.
펭귄은 왜 그렇게 광분하여 몸을 던져가며 몇 번이나 반복해 벨을 심하게 뚜드렸는지 모른다하고, 병욱이가 택시 태워준 것도 모르겠다하고, 온통 시종일관 줄기차게 ‘모르쇠’로 일관한다.
“펭귄 니 모르는 기 그리 많은 것 보몬... 국회 나가몬 딱 되겠다. 인자 안 그란다카이 고만 하자.”
꽁꽁 얼려온 더덕 동동주, 잘 나오지 않아 문수가 버너에 불을 붙여 녹인다.
그걸 본 펭귄,
“캬... 문수는 역시 장비가....” 운운 한다.
펭귄 이야기는 고만 할라했는데 지난 번 산행기에 보여준 펭귄의 진면목을 또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펭귄, 니... 말이나 행동도 조심해야 되지만, 글도 마찬가진 기라. 쓰다가 이빨 빠진 거는 펭귄 매력인데, 어줍잖은 조사 하나 땜에 사람 조져놓는다니까. 니 전에 ‘항문수는 장비 하나는 끈내준다.’ 요래 썼제? 장비 하나는... 요, ‘는’이라는 조사 하나 때문에 문수가 얼마나 망가진 줄 아나? 크크.”
“크크, 저 부산이나 다른 데서 보는 아~들은... 문수가 산은 ‘ㅈ'도 못타면서 폼만 잡는다고 생각 안 하겠나?”
연이은 질타성(?) 발언에 펭귄은 억울하다는 듯 침을 튀기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기 아이고, 내는 문수가 장비를 엄청 잘 갖고 댕기고, 없는 기 없는 고수라고 쓴 긴데... 말이 그리 돼뿟나? 아참, 내는 그기 아인데...”
요즘 신입 쫄, 병욱. 6번 연짱으로 나온 병욱이가 의자는 언제 주느냐고 투정(?)을 부리다가 진지하게 묻는다.
“근데... 알탕은 머꼬? 묵는 거가?”
“크크. 그거 붕x을 담그고 목욕하는 거, 혹은 알몸으로 탕한다고 우리가 그리 쓴다. 니는 진짜 알탕 묵는 줄 알았나?”
“응, 나는 오늘 뒷풀이에 알탕 묵는 줄 알았지. 한국에 오랜만에 들어와 노으이 모르는 말이 많네.”
담배는 끊는 게 좋다.
병욱이 가져온 555라는 인도 담배, 타르와 니코틴 지수를 놓고 물어보았더니 건너편에 앉은 덕영이 대답이 명쾌하다.
“숫자, 그거 밸 거 아이다. 다 똑 같다고 보몬 된다. 타르 높으면 독해서 적게 피고 하니까 타르도 똑 같다. 안 피우는 게 좋고, 피우몬 다 똑같다.”
‘끊어야 하는데. 확실하게 팍 끊어뿌야 되는데.’
3. 13 : 10 하산 시작 ~ 알탕 ~ 15 : 00 하산 완료
사기막으로 내려오던 길, 적당한 장소에서 알탕을 했다.
펭귄은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무슨 영웅처럼 몸에다 나뭇잎 한 장 붙였다.
그 누고? 아킬레슨가? 용의 피에 목욕해 불사신이 되면서, 나뭇잎 한 장 떨어져 그 부분만 약점이 되었다 캤제?
펭귄 왈, “내 어깨가 약점이라꼬? 내... 오십견 없는데? 캭캭.”
4. 16 : 00 ~ 17 : 10 하산주
오는 길에 마석쪽, 천마산 들어가는 입구의 숯불구이집으로 황선달이 안내한다. 주인장 내외가 황선달을 알아본다. 황선달 전화기엔 전국의 맛집이 110개 정도 입력되어 있단다.
비는 가늘게 뿌리고 있었지만 밖에서 먹는 게 훨씬 운치 있을 것 같아 파라솔을 펴고 원탁 테이블에 상을 폈다. 역시 굽는 일은 문수가 맡았다.
갑자기 펭귄이 저 언덕 아래 푸른 잎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묻는다.
“저게 저.. 큰 이파리는 뭐꼬? 억수로 크네?”
“저거 진짜 몰라서 묻나?”
“응. 모르는데.”
“저거, 호박 이파리 아이가. 니 호박 모르나?”
“호박? 우리 묵는 동그란 호박은 안다.”
“저 노란 꽃은 뭔지 모르나? 저게 호박꽃인데... 니... 처음 보나?
“아니, 처음 보는 거는 아닌데, 저게 호박꽃인 줄은 몰랐다. 캬캬.”
“그래, 국회의원 될 사람이 그런 거 알아서 뭐하겠노? 술이나 묵자. 크크.”
신곡사 못 본지 제법 되었다고 모두 궁금해 한다. 요즘 일이 좀 바쁜 모양이다.
전화를 해 뭘 하고 있는지 확인해본다.
산에 억수로 오고 싶을 낀데...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안면도에 간 인섭이는 지금쯤 전어를 실컷 묵겠다고 부러워하는 병욱이를 위해, 마침 저 앞에 트럭에서 팔고 있던 전어를 한 접시 주문했다. 삼겹살에, 전어회에 소주가 잘 넘어간다. 총무를 맡고 있으면 돈이 많이 남아도 귀찮고 모자라도 귀찮다. 남는 돈을 제때 제때 은행에 넣으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그렇다고 돈은 거둬놓고 모자란다며 카드로 결재해버리는 것도 나중엔 결국 적자가 된다. 호주머니에 든 돈, 결국 표도 안 나게 푼돈으로 써버리고 나중에 목돈을 내어놓는 꼴이다.
가능하면 그날 거둔 돈, 그날 다 쓰는 게 좋다.
돈을 들고 고민하고 있으니 황선달과 신림거사, 간단히 해결해버린다.
“오늘은 돈이 쪼매 모자라제? 차량지원을 다 하지 말고, 쪼끔만 해뿌라. 그라몬 되겠제?”
장비도 끝내주는 황선달 덕분에 집 앞까지 편하게 왔다.
현관문을 열면서 집에 왔다는 생각 한쪽에 다시 떠오르는 생각은...
‘아, 다음 주엔 또 어느 산을 가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