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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세상 걱정’ 에세이】
■ 술을 배우는 젊은이들에게[1], [2]
― 잘못된 음주 사례를 통해 본
― ‘각성제’ 같은 전직 경찰관의 조언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 필자의 말 대학가 주변 주택에 산다. 동네 골목을 산책하다 보면 상쾌한 아침 기분을 망가뜨리는 현상을 종종 본다. 불쾌감을 넘어 역겨움이 치밀어 오른다. 개똥? 물론 요즘 몰상식한 일부 반려견 주인의 배설물 방치도 불쾌감을 주지만 그보다 더 역겨운 것이 있다. 사람의 토사물이다. 남의 강아지 배설물을 치우는 일도 역겨운데, 사람의 토사물까지 치워야 할 때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오늘은 개방된 내 집 화단에 어느 젊은이가 질펀하게 토해 놓았다. 간밤에 어느 만취한 젊은이가 무지막지하게 ‘고생’한 흔적이다. 이래선 안 된다. 술을 그렇게 배워선 안 된다. 남의 일이 아니다. 모두가 사랑하는 자식 · 손자 같기에 한 가정의 할아버지로서 ‘술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조언을 해주고 싶다. 필자가 과거에 크게 개탄했던 ‘체험기’를 소개하니 <각성제> 한 알 먹듯 참고하길 바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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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배우는 젊은이들에게[1]
“술을 꼭 이렇게 배워야 하나요?”
― 한 가정의 단란한 행복을 깨는 빗나간 ‘음주 문화’
|2003. 03. 13. ‘靑村隨筆’
윤승원 수필가, 대학생 아들을 둔 아버지
자주 듣는 지방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모처럼 잔잔한 여운을 주는 좋은 이야기 한 토막을 들었다.
CBS 대전방송의 ‘기분 좋은 오늘’이란 프로다. 이 프로는 진행 아나운서의 굵고 정감 있는 목소리가 좋아 한 번 듣기 시작하면 좀처럼 채널을 돌리지 못한다.
◆ 행복과 행운, 그 차이를 아시나요?
“여러분들은 풀밭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아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많고 많은 클로버 중에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면 마치 행운이 내게 온 듯하여 기분이 참 좋으셨죠? 소중하여 책갈피에 꽂아 두기도 하고요.
그런데 선택되지 않은 그 많고 많은 세 잎 클로버들은 어떻게 바라보셨나요? 우리는 흔히 네 잎 클로버를 ‘행운’의 상징으로 알고 있지만, 그 밖의 클로버는 ‘행복’이란 뜻을 지녔다는 것을 알고 계신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이란 풀밭에서 ‘행운’만을 좇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진행자의 말을 정확히 옮겼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프로그램 시작 전에 ‘기분 좋은 오늘’을 ‘여는 말’로 한 마디 던지는 아나운서의 차분하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급하게 운전하는 나의 마음을 잠시나마 안정되게 한다.
◆ 행복을 지키려면 과도한 욕심을 버려야
어찌 보면 행복에 겨워 때로는 과도한 욕심을 부리며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 던지는 경종의 말씀인지도 모른다.
행복을 말하면 혹여 부정(?)이라도 탈까 싶어 입 밖으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내심 이만하면 나도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자위하면서 살아왔다.
가족 모두 건강하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고 있으니 가정이 평안하고, 나 역시 힘은 들지만 맡은 일에 보람을 찾고자 나름대로 노력하니 이만하면 행복이지, 더 큰 ‘행운’을 좇아 무엇하랴 싶었다.
먹고 살 만한 수많은 사람이 열풍처럼 ‘로또 복권’에 큰 기대를 걸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을 꿈꿀 때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내세울 것 없는 보통 시민의 평범한 삶이지만 한 가장으로서 수양의 방편이나 거칠어지는 정서를 다독일 목적으로 여가 시간 틈틈이 먹을 갈아 ‘지족상락(知足常樂’)을 써 보기도 하였다.
◆ 새내기 대학생 아들의 빗나간 ‘대면식(對面式)’
그런데 바로 그 날 저녁이었다.
새내기 대학생 아들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기 병원 응급실인데요. 좀 걱정되는 일이 생겨서….”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잖아도 대학 신입생 아들이 요즘 매일 같이 선후배 ‘대면식’인가 뭔가 하는 명분으로 술을 마시고 밤늦게 귀가하는 것을 걱정하던 터였다.
그래도 그렇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어린 나이에 언제 술을 입에 대어라도 보았는가.
체질상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올라 술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도 못하는 녀석이 선배들의 권유에 못 이겨 소주를 사발에 따라 마셨다니,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갈 만도 했다.
미련한 녀석! 요령껏 마시지 못하고 그걸 물 마시듯 다 마셨단 말이야?
화가 났다. 매년 신학기만 되면 대학 신입생 한두 명이 ‘술 사고’를 일으켜,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까지 한다는 사실을 저녁 종합 뉴스에서나 보았지, 정작 내 집안의 걱정거리로 다가올지 언제 상상이나 했던가?
◆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현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녀석은 배를 움켜쥐고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녀석을 이곳까지 데리고 온 같은 학과 친구는 내게 ‘경과보고’를 했다.
“심하게 토했어요. 아마도 위경련인가 봐요.”
아들의 친구 앞에서 나는 그만 감정을 자제하지 못했다.
“이놈들이 공부하라고 비싼 등록금 들여 대학에 보내 놓으니까 술 공부부터 하냐? 누가 이런 지경으로 술을 퍼마시게 했는지, 다들 공범이다. 살인 미수란 말이다.
선배 학생뿐만 아니라, 대학교 총장을 비롯하여 교수들도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가정에서 지도를 잘못한 이 아비도 죄인인 것은 더 말할 것 없고.”
앳돼 보이는 아들의 친구는 잔뜩 화가 난 내 앞에서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간밤의 ‘술 사건’에 대해 이런저런 해명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믿지 않았다. 아들 녀석으로부터 이미 “사발에 따라 마셨다”라는 고백을 들었으니까.
◆ 치밀어 오르는 속상함
아들의 친구를 보내 놓고 나서, 나는 아직도 통증을 호소하는 아들을 크게 꾸짖었다. 의사도, 간호사도 아버지의 나무람을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렇게 매일 같이 걱정하며 신신당부를 하였건만 이 아비 말을 우습게 여기더니 결국 이런 어처구니없는 꼬락서니를 보게 되는구나!”
녀석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예부터 어른 말씀은 하나도 그른 것이 없다니까요. 제가 겁 없이 마신 것이 큰 실수지요. 이제 다시는 술 입에 대지 않을 거예요.”
화가 나는 가운데도, 녀석의 순진한 고백과 다짐에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하였다.
식도와 위장 사진을 찍어 본 의사는 입원을 권했다. 다행히 위장 손상은 없지만 심하게 토하는 과정에서 식도 부위에 약간의 상처가 난 것이라고 했다.
상처가 아물 때까지 입원하여 ‘금식’을 해야 한다고 했다. 속이 상했다. 이제 막 대학 생활의 첫발을 내딛는 녀석이 ‘입원’이라니, 점점 더 부아가 치밀었다.
◆ 잘못 길드는 젊은이들의 ‘음주 문화’
대학 선배들은 왜 사랑스러운 새내기 후배들을 지성으로 이끌어 주지 않고 술로 ‘길들이기’를 하는가.
마치 좋은 관례나 되는 것처럼 이 같은 일이 어째서 대학가에서는 매년 되풀이되는가.
대학가 주변은 고급 지성 문화의 향기를 풍기지 않고 어째서 휘청거리는 술집만 성시를 이루는가?
주변 골목은 밤만 되면 남녀 구분 없이 꾸부리고 앉아 등을 두드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어 버렸는가.
대학가 주변 파출소에는 밤만 되면 이들 젊은이의 ‘단골 출입처’가 되어 밤샘 경찰관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드는가.
만취 젊은이들의 치다꺼리에 다른 치안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니 국력 낭비가 아닌가.
◆ 이 시대 지성인을 자처하는 젊은이들이여!
젊은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보는 ‘좋은 체험’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평생 고치지 못하는 고약한 술버릇으로 이어져 한 가정의 단란한 행복을 깨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았는가?
어른들의 노파심이고, 과민이라고?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의 기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어른들의 편견이라고?
그래 이해한다. 고민 많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로서 어찌 술을 피해 가랴.
젊은 시절 술 마시고 한 번쯤 고생해 보지 않으면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술을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진정한 ‘주도(酒道)’를 가르쳐 주어야 할 대학 선배들이 이런 ‘살인적인 음주 문화’를 가르쳐서야 하겠는가?
◆ 뒤늦은 후회와 반성
이튿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들에게서 이런 문자메시지가 온다.
“금식이란 게 이렇게 혹독한 고문인지 몰랐어요. 남들은 맛있는 거 먹는데, 난 속을 비우고 있으려니, 아! 이런 고문이 없군요. 자업자득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고.”
이어서 또 이런 염치없는 문자메시지가 온다.
“밥, 과일, 각종 음료, 얼음, 전복죽도 먹고 싶어 죽겠어요. 아빠, 오실 땐 꼭 사 오세요.”
아들은 아직 천진한 데가 있다. 겁 없이 술을 과도하게 먹은 행위는 종아리를 때려주고 싶도록 밉지만, 한참 식욕이 왕성한 성장기의 자식이 이런 것들이 먹고 싶다고 열거하는 걸 보니, 한편으론 딱한 마음도 들었다.
대견한 대학생 아들의 ‘엄마’에서 졸지에 ‘환자의 보호자’로 처지가 바뀐 아내는 뜻하지 않은 아들의 병간호를 하고 와서 이렇게 말한다.
“이번 기회에 크게 반성해야 해.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말이야!”
아내의 굳은 표정과는 달리, 아들은 6인실 병실 풍경이 ‘아주 좋은 그림 소재’라고 하면서 스케치북을 갖다 달라고 연락이 왔다.
바라건대,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반성’도 진지하게 담았으면 한다.
고생스러운 이번 경험이 아들에게 잃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값지고 소중한 밑거름이 되길 아비로서 간절히 비는 마음 또한 숨길 수 없다. (2003/03/13. 오후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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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을 배우는 젊은이들에게[2]
경찰관 아버지의 과민인가, 염려인가?
― 한 가정의 단란한 행복을 깨는 빗나간 ‘음주 문화’
|효성그룹 사보 2001. 가을호. 『함께 하는 세상』
윤승원 수필가. 경찰관. 대학생 아들을 둔 아버지
▲ 《효성曉星 사보》 원고 청탁으로 쓴 필자의 글(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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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한 젊은이가 경찰관서에 들어오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무얼 잘못했다고 그러시나?”
상대(피해자)가 있어 멱살 잡혀 끌려왔는데도 자신의 잘못을 일단 부정하고 보는 것이다. 알코올 성분은 그런 면에서 위대(?)하다.
평상시는 조금만 무안을 당해도 금방 빨개지는 얇은 얼굴을 마치 철판처럼 두껍게 해 주는 그 성분이야말로 위대한 요술 성분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체면이란 무엇인가? 맑은 정신일 때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능력이 아닌가. 자신의 잘못을 부정할 만치 정신이 몽롱해졌을 때는 이미 그가 마신 것은 약주(藥酒)가 아니라 마약(痲藥)이다.
◆ 만취 여대생의 추태
얼마 전 새벽 3시경이었다. ‘곤드레만드레’가 된 여대생 3명이 주민의 손에 이끌려 파출소에 들어왔다.
내가 근무하는 경찰서 관내에는 온천 관광특구와 대학이 있어 한밤중이면 술 취한 젊은이들을 거리에서 많이 본다.
이들 여대생도 대학가 술집에서 밤새 술을 마시고 거리를 헤매다가 입 간판을 걷어차기도 하고, 주차 차량에 발길질도 하여 피해자의 손에 끌려들어 온 것이다.
한 여학생은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흥건히 토해 놓는다. 나머지 두 여학생은 다리도 잘 가누지 못하면서 토하는 여학생의 등을 두드려 준다.
아버지뻘 되는, 머리가 허연 경찰관은 봉 걸레로 이것을 닦으며 혀를 찬다.
“잘 한다. 잘 해! 이노무 자슥들. 끌끌”
거의 매일 되풀이되는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오늘은 뜻밖에도 여학생이다. 대학가 주변 파출소는 이렇듯 언제부턴가 방황하는 젊은 주정꾼들의 종착역이 되고 있다.
경찰관들은 젊은 주정꾼들의 삿대질과 고함에도 무던히 인내해야 하고, 급기야 엉엉 목놓아 울어대는 희한한 술버릇도 제풀에 그칠 때까지 인내하면서 받아 주어야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 세 여대생은 술을 진탕 마시기 위해 며칠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왜 하필이면 그런 생각을 하였느냐고 묻자,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요.” 한다.
‘스트레스’라는 말이 요즘처럼 어느 계층을 막론하고 예사로 쓰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정신적․육체적으로 다양한 자극을 받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이들 앳된 여학생들에게는 그런 스트레스 요인이 전혀 잠재되어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스트레스 풀려고 술을 마신다’라고 버젓이 말하는 것이다.
하기야 고등학교 시절,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이 세상의 모든 자유스러움을 거부한 채, 스스로 억압한 것을 생각하면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 무언가 보상받고 싶은 심리도 작용했을 것이다.
◆ 객기와 낭만의 혼동
그러나 이 사회는 그런 젊은이들의 마음을 썩 알아주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거리의 간판을 걷어차고, 차량의 문짝에 발길질해야만 복수(?)라도 되는 걸까? 방법이 틀렸다.
객기(客氣)와 낭만(浪漫)을 혼동해서 생기는 실수다.
몸 버리고 망신당하는 ‘객기’를 ‘젊음’이라는 특권으로 얼마든지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범죄로 이어지지 않는 한 사소한 실수는 얼마든지 애교로 보아 넘길 수 있지 않으냐? 라고 믿는 것이 객기의 속성이다.
내 어릴 적 시골의 어른들은 힘든 농사일의 어려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셨다.
노동을 목적으로 술이 필요했다. 요즘은 도시나 농촌을 막론하고 노동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즐거운 휴식을 위하여, 혹은 낭만을 위하여 술을 마신다. 술에 ‘객기’라는 요술 성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현명한 젊은이들은 한 잔을 마셔도 멋지게 마시려고 노력한다.
분위기 있고, 넉넉한 인심이 배어있는 술집을 찾아 문학을 이야기하고, 사회 현상에 대한 진지한 토론으로 밤을 새우는 것이다. 지성과 낭만이 어우러진 이런 아름다운 정경을 보면 왠지 흐뭇하고 듬직하다.
◆ 탈무드의 가르침
이 세상 최초의 인간이 어느 날 포도 씨를 심고 있는데 악마가 다가와서 물었다. “무엇을 하시오?” 그러자 “아주 훌륭한 식물을 심고 있지요. 이것은 굉장히 달고 맛있는 열매가 열려 그 즙을 마시면 그대는 더없이 행복해질 거요.”라고 했다.
“그러면 나도 한몫 끼어 주시요.”하고는 악마는 양, 사자, 돼지, 원숭이를 끌고 와 이 네 마리를 죽여 그 피를 비료로 흘려 넣었다. 그리하여 포도주가 되었다.
이 때문에 술을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때는 양처럼 온순하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좀 더 마시면 돼지처럼 더러워진다.
너무 많이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을 추고 노래도 하고 허둥거리기도 한다. 이것이 인간의 행위에 대한 악마의 선물이다. 이는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 경찰관서 추태는 결국 국력 낭비
말썽을 일으켜 경찰관서에 들어오는 대학생들은 극히 일부분일 것이다. 전체 젊은이들의 모습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모습이 심야에 자주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역 주민들의 편안한 삶을 보장해 주기 위해 밤을 밝히는 경찰관들의 귀중한 시간과 정력을 젊은 주정꾼들 때문엔 소모한다는 것은 결국 국력 낭비다.
대학에 다니는 우리 집 아이도 얼마 전 새벽에 들어왔다. 어디서 무얼 하다가 늦었느냐고 물으니까,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고 한다.
옛날 같으면 어른 앞에서 감히 술을 마셨다고 하지 못했다. 술도 음식이라고는 하지만, 어른 앞에서는 술 마신 내색을 하지 않는 게 도리라 배웠다.
아비 앞에서 조금도 어려워하지 않고 술 한잔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유스러워진 오늘날, 그래도 아비는 궁금하여 묻는다.
◆ 경찰관 아버지의 과민?
“친구들과 술 마시고 실수한 것은 없냐?” 그러자 녀석이 대꾸한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노파심이 지나치면 과민이라고 하잖아요.”
그렇다. 어쩌면 녀석의 말이 맞는지 모른다.
남에게 피해를 주어 경찰관서에 끌려오는 젊은이들만 주로 보아 온 이 아비의 시각은 건강한 상식을 가진 젊은이의 시선으로 보면 과민인지도 모른다.
모쪼록 지성과 낭만, 그리고 멋을 가꾸는 아름다운 시절을 부질없는 객기로 얼룩지게 하지는 말아라.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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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덕용 목사님 댓글
필자 답글
창원에서 김선임 선생님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5.04.17. 08:05
대체로 가정이 무너지고 동료들이 배우는 술자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요즘 폭탄주라는 괴상한 술 마시는 풍조가 또한 유행이라고 합니다. 윤 선생님의 염려가 더는 없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술은 음식입니다. 즐거움을 주고 분위기를 따뜻하게 하는 좋은 음식입니다. 술은 또한 기름진 음식 소화를 돕는 약주이기도 합니다. 잘 먹으면 약주요, 과음하면 몸이 상하고 자칫 남에게 피해도 주는 알코올입니다. 저는 반주를 즐기는데 그마저도 절제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