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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 시부모님 산소
일시:2004년 10월 21일 목요일 ∼ 23일 토요일
장소:경북 영덕
김윤자
*영덕 가는 길
영덕은 경북 동해안의 소도시다. 내가 그곳을 알게 된 것은 결혼한 후다. 영덕에서 나고 자란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였고, 그 곳은 제2의 고향이 된 것이다. 꽤나 먼 곳이다. 서울에서 가려면 하루를 투자해야 한다. 수원에서는 시간이 조금 단축되지만 그래도 진종일 가야 되는 곳이다. 대구까지는 기차로, 대구에서는 버스로 포항을 거쳐서 간다. 대구에는 시형제가 살고 있어 들르고, 포항에는 손위 시누님이 살고 있어 들렀다가 가는 길이 정코스다. 이번의 나들이도 그렇게 행해졌다. 영덕까지 가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은 참으로 많다. 간단한 후기로 적고자 한다.
동해 바다의 깊고 푸른 정경
*해변 도시 영덕
영덕에 도착한 것은 해가 저물 때였다. 내일 아침 일찍 시가와 선산을 가려면 숙소에 들어가 쉬어야 한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우리는 잘 곳이 없다. 영덕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모텔에 들어갔다. 큰 아들과 동행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던 손자다.
영덕은 해변의 조그만 도시다. 큰 발전도 없고 퇴보도 없고 바다를 믿고, 산과 땅을 믿고 사는 소박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읍 소재지다. 산으로 둘러싸여 안온하고, 그러면서도 갯내음이 흐르는 곳, 언제 와 봐도 그 자리에 변함없이 모든 것들이 그대로 있다.
특산물로는 영덕 대게가 유명하다. 쪄서 먹는 대게는 이곳 산지에서도 상당한 가격이다. 저 세상에 계신 시아버님께서 커다란 대게를 사들고 오시던 그 날이 눈에 선하다. 해변 도시의 밤이 익어가는데 나는 내일 부모님을 뵈올 셀레임으로 뒤척이고 있다.
*삼계동 아늑한 고장
영덕읍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삼계동 아늑한 고장으로 택시를 타고 들어갔다. 전에는 절반의 길은 흙길이었는데 지금은 시가까지 아스팔트 포장도로다. 동해안 고속국도에서 깊은 산골 마을로 진입하는 작은 길을 따라 들어간다. 감회가 남다른 길이다. 지금 곁에 있는 나의 큰 아들을 잉태했을 때 깊은 1월의 눈밭을 헤집으며 걸어 나오던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시어머님께서 이만큼 배웅하며 손을 저으시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영롱한 추억들이 부초처럼 일어서 출렁인다.
여전히 시댁의 집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소나무 쉼터가 마을 입구에서 우리를 반긴다. 택시가 당도하면 잰 걸음으로 나오시던 부모님은 아니 계셔도, 나의 남편이 나고 자란 고향집은 기둥 뿌리를 지키고 있다. 옛 우물도 그대로인데 먹어줄 사람이 없으니 녹이 슨 채 아픔이 고여 있다. 주인 잃은 감나무, 붉은 눈시울로 우리를 보듬는다.
*하얀 탑
잠들어 계신 묘소 앞에서 인사를 올리고 다짐을 했다. 나에게로 보내준 향기로운 남자, 어머님처럼 따스함으로 잘 지켜드리겠습니다. 청탑에서 청탑으로 이어지는 마디 마디의 대를 소중히 지키겠습니다.
눈물겹도록 자식 사랑이 지극하셨던 부모님, 그 사랑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곱게 대를 이어 지켜나가겠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술잔을 올리며 등을 어루만져도 기척하지 않으시는 부모님, 서늘해지는 날씨에 추우시지는 않을런지. 돌아서 가야 하는데 차마 발 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남편은 술병에 오늘의 날짜를 써서 나무 숲에 놓는다. 우리의 숨결을 부모님 곁에 남기고 싶은 것이다. 비가 와도 지워지지 않도록 잘 기대놓고 내년에 다시 오겠노라는 작별 인사 올리고 돌아섰다. 하얀 탑, 그 속에서 6남매를 올곧게 기르시던 꼿꼿한 집념을 보았다. 저희도 그렇게 살겠습니다.
산중에 누우신 시부모님께 잔을 올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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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록키 산맥
산의 능선을 타고 영덕읍으로 나가는 길을 택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차도로 나가 자동차를 이용하면 쉬이 갈 수 있는 길을 접고 우리 셋은 산행도보를 하자는 의견으로 일치했다. 가장 큰 매력은 한국의 록키산맥을 볼 수 있다는 것. 태백산맥의 줄기가 장엄한 숨결로 하늘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밟고 걷는 이 산도 저 건너편에서 보면 그러하리라.
지금은 농익어가는 가을인데도 이곳 산은 푸르름을 고집하는 집념으로 짙푸른 자태다. 산과 산이 끝없이 이어지고, 산과 하늘만이 보이는 우주를 바라보노라면 운해 사이 숭고한 혼이 빛난다. 태고로부터 내려오는 빛, 한국의 고원, 지붕 능선에서 록키의 칼날같은 맥은 아니어도, 대신 데드라인이 없는 순순의 생명이 빛나고 있다.
나의 남편은 이 길을 걸어 중학교까지 다녔다 하니 행운을 지고 산 셈이다. 저기가 가파르지만 더 빨리 학교 갈 수 있는 못골재라고 나무지팡이로 가르킨다. 아들과 나는 처음 걷는 길이 아닌데도 풀꽃 하나에도, 나무 열매 하나에도 신기하여 주저앉아 보고 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