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간절한 뜻을 장안의 벗에게 써서 드림
書懷胎京邑同好 (서회태경읍동호) / 맹호연
維先自鄒魯, (유선자추노)
저희 선조는 공자·맹자의 고향에서 오셨고,
家世重儒風. (가세중유충)
대대로 유학을 숭상했습니다.
詩禮襲遺訓, (시예습유훈)
<시경>와 <예기>의 교훈을 배워 익혔으며,
趨庭霑末窮. (추정점말궁)
아버님의 가르침을 몸소 받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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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소개>
맹호연(689∼740) 양양(襄陽: 지금의 호북성 양번시) 사람.
반평생을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학문에만 열중했다.
한차례 녹문산(鹿門山)에서 은거하며 채소를 심고
대나무를 즐겨 가꾸었다고 한다.
40세에 장안에 와서 진사과에 응시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양자강과 회수(淮水)지방을 몇 년 동안 떠돌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장구령이 형주(荊州)의 장사(長史)가 되였을 때,
짧지만 막료(幕僚:참모)를 지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악성종기로 사망한다.
이 시는 평소 은거하며 학문에 열중했던 호연과는 다르게
벼슬을 간절히 구하는 그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좋은 시이다.
그 당시 그와 왕유, 왕유와 장구령의 관계에 의한다면
아마 왕유에게 벼슬을 부탁한 것 같다.
<단어정리>
"維"는 말머리에 오는 조사이다.
"先"은 선조(先祖:조상)이라는 뜻.
"鄒魯"는 주(周)나라 때, 지금의 산동(山東)지방에 있었던 두 제후국이다.
공자는 노(魯)나라 사람이고, 맹자는 추(鄒)나라 사람이다.
지은이 호연의 성이 맹자와 같은 '맹'씨 때문에
'선조들이 추노(鄒魯)에서 왔다'고 했다.
"詩禮"는 유학과 관계된 책인 <시경>과 <예기>를 말함.
"趨庭"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뜻함. <논어·계씨>에 나오는
'공자와 그의 아들 鯉(백어:伯魚) 사이의 대화내용'이다.
"末窮"은 자신을 겸손히 일컫는 말.
晝夜常自强, (주야상자강)
밤낮으로 매일 열심히 공부하여
詞翰頗亦工. (사한파역공)
시문에 상당한 조예를 쌓았습니다.
三十旣成立, (삼십기성립)
서른에 이미 학문의 진전이 있었으나,
嗟遇命不通. (차우명불통)
아! 때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단어정리>
"自强"은 '스스로 분발하다(自己振作)'라는 말.
"三十"은 <논어·위정>에 나오는 글.
"嗟우(口+于)"는 슬픔에 잠겨서 길게 탄식함(傷感長歎).
命不通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다'거나, '운이 좋지 않다'거나,
'기회를 만나지 못함'이라는 뜻.
慈親向羸老, (자친향리노)
자애로웠던 어머님의 연로한 모습을 생각하니,
喜懼在深衷. (희구재심충)
한편 기쁘고 한편 가슴을 쥐어짜는 슬픔이 북받칩니다.
甘脆朝不足, (감취조부족)
아침으로 어머님께 드릴 맛있는 음식도 없고,
簞瓢夕屢空. (단표석루공)
저녁엔 한 그릇의 밥과 맹물로 주린 배를 채웁니다.
<단어정리>
"慈親"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말.
"向"은 '가까이 다가가다'의 뜻.
"羸老"는 '쇠약해진 모습'.
"喜懼"는 <논어·이인>에 나오는 말. '부모님의 나이가 많으신 데도
장수하니 기쁘고, 부모님이 연로하시어 쇠약한 모습을 보니
슬프다'라는 말.
"深衷"은 마음속 깊은 곳.
"甘脆"는 '맛있는 음식'이라는 말. <전국책·韓策>에 "可旦夕得甘脆以養親"이라는 글.
"簞瓢"는 <논어·雍也>에 나오는 말.
"屢空" '늘 빈곤하다'라는 말.
執鞭慕夫子. (집편모부자)
도를 위해서라면 마부의 일도 마다하지 않은 공자님을 앙모하며,
捧檄懷毛公. (봉격회모공)
부모님의 한 끼 음식을 위해 벼슬 앞에서 좋아했던 모공을 존경합니다.
感激遂彈冠, (감격수탄관)
설레는 마음으로 벼슬을 기다리며 갓의 먼지를 털었으면 털었지,
安能守固窮? (안능수고궁)
어찌 가난과 굶주림에 태연자약한 군자를 바라겠습니까?
<단어정리>
"執鞭"은 '채찍을 잡아 말을 몰다'라는 말인데, <논어·述而>에 나오는 글
(공자님이 '道를 구할 수만 있다면 마부의 일도 하겠다'라고 한 말).
"夫子"는 공자(孔子)를 말함.
"捧檄"의 '檄'은 '관청에서 관직을 줄 때 쓰던 문서'라는 뜻
"毛公"은 <後漢書·毛義傳>에 나오는 이야기. '모의는 평소에 청빈한
선비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으나, 어머니를 위해서 벼슬살이를 하여
선비들의 오해를 받는다'는 내용.
"彈冠"은 <漢書·王吉傳>에 나오는 이야기. '왕길은 공우(貢禹)와 친구였다.
뒤에 왕길이 재상이 되자, 공우가 집에서 그 소식을 듣고는 갓을 털었다'는 내용.
當塗訴知己, (당도소지기)
정권의 요직에 있는 벗에게 저의 뜻을 전할뿐
投刺匪求蒙. (투자비구몽)
몽매한 관료에게 저의 이름을 부탁치 않으렵니다.
秦楚邈離異, (진초막리이)
당신이 계신 장안과 이곳 양양은 정말 멀리 떨어졌는데,
飜飛何日同! (번비하일동)
어제쯤 당신의 덕으로 벼슬길에 들어 함께 할 수 있을는지요?
<단어정리>
"當塗"는 '當道'이며, 요직에 있는 정권의 실세를 말함.
"刺"은 명함을 말함.
"求蒙"은 <주역·蒙>에 나오는 글('匪我求童蒙, 童蒙求我')
"秦楚"의 진(秦)은 장안(長安)을 말하며, 옛 秦나라의 땅이었다.
초(楚)는 지은이의 고향인 양양(襄陽)으로, 옛 楚나라의 땅이었다.
"邈" 秦은 북쪽에 있고, 楚는 남쪽에 있기 때문에 '멀다(邈)'라고 했다.
"飜飛"는 '새가 날개를 치며 날아오른다.'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지은이가 '벼슬에 올라 출세하다'라는 뜻.
출처 :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