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준일입니다.
지난 일요일[4월 22일] 서울 일원구 창동 수련관에서 열린 어린이 체스대회[정식 명칭은 파워브레인 체스대회?]에 도우미로 참가했습니다. 이 대회를 직접 주관하신 왕명옥선생님, 윤정희선생님, 그리고 류채옥선생님을 비롯하여 FM 송진우, CM 이상훈, 권은미선생님, 백원기선생님, 정성훈씨, 그리고 제가 참가했습니다. 유가람양이 대회끝나고 뒷처리를 도와주러 나왔고 많은 체스세트와 시계 등을 빌려주셨던 윤석배사범님 또한 오셨고 대회를 보러 류은섭 협회장님께서도 나와주셨습니다.
저는 대회에 참석한 어린이들의 부모님을 상대로 공개강좌를 하는 커다란 영광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뜻깊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대회주관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학부모님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배려를 하지 못하고 약간 두서없이 강좌를 진행한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도 뒤늦게 들고는 있습니다. 또한 다른 심판 일을 하시는 강사분들을 도와드리려고 강좌를 빨리 끝내어 체스의 기본 행마와 규칙을 가르쳐드리려 했던 일이 수포로 돌아가서 아쉽습니다.
강좌는 대략 체스가 전략적 사고를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이유를 과학적 근거를 인용하여 설명해 드리고 바둑등과 같은 전통보드게임과 어떠한 차이점이 있고 어떤 비교우위가 있는지 등을 설명해 드리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 되었습니다. 아래는 핸드아웃으로 나누어 드렸던 강좌의 전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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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기념 일요 공개 강좌 [2007. 4. 22.] “체스와 사람의 두뇌”
흔히들 체스는 집중력과 창의력, 그리고 수학적 사고를 향상시킨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진부한 말들로는 체스가 갖고 있는 덕목들을 제대로 또는 객관적으로 보여드리거나 증명하기는 어려울 듯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준비한 것은 조금 학구적이면서도 전문적인, 그러나 결코 어렵지 않은 정보입니다.
제가 이제부터 말씀드릴 내용은 아일랜드 더블린 대학의 과학자들[논문 제목: Chess Masters' Hypothesis Testing, 저자: Michelle Cowley, Ruth M.J.Byrne, Univ. of Dublin, Trinity College]이 밝혀낸 사실입니다.
사람은 하나의 가설을 세우면 그 가설의 옳고 그름을 증명해보이려고 합니다. 이때 가설이 옳다고 증명하는 일을 확증, 반대로 가설이 거짓이라고 증명하는 일을 반증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세운 가설은 반증하기보다는 확증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인지과학자들이 대체로 수긍하는 사실로서 ‘확증에 대한 편향성[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수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확증보다는 반증이 훨씬 신뢰도가 높습니다. 왜냐하면 가설의 반증이 성립되는 순간, 그 가설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100% 확신할 수 있지만, 확증의 경우는 언젠가 그 가설을 반증할 수 도 있는 가능성이 여전히 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체스를 두어서 높은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될 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전략[체스에서는 자신이 세운 가설이 곧 전략입니다]을 확증하기 보다는 반증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이는 앞서 소개해 드린 아일랜드 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하여 직접 밝혀낸 과학적 사실입니다. 즉, 자신이 세운 가설에 대한 비이성적 애착을 갖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심리적 경향이라면, 체스를 오랜 세월 둔 사람들은 자신이 세운 가설을 비교적 객관적인 관점에서 냉정하게 평가한다는 뜻입니다.
실험방법은 체스를 잘 두는 마스터, 전문가, 중급자, 그리고 초심자의 그룹으로 나누어 그들이 처음 보는 포지션을 3분간 보면서 전략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초심자와 중급자 그룹은 자신들의 전략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마스터와 전문가 그룹에 비하여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상대방의 수를 예상하는 과정에서도 초심자와 중급자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전략을 확증하는 방향의 수들을 예상하기 좋아하였지만, 전문가와 마스터 레벨로 올라갈수록 자신의 전략을 망가뜨릴 수 있는 수들을 중점적으로 예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결론: 체스는 자신이 세운 가설, 전략과 같은 아이디어가 객관적으로 얼마나 논리적이고 이치에 맞는지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덕목을 길러준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체스교육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경쟁사회에서 우리 자녀들이 튼튼하고 이치에 맞는 전략을 세워 남들보다 한 발짝 더 앞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리라 확신합니다.
글쓴이 : 최준일[국제레이팅:1932, 국제체스심판자격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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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이후 학부모님들께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해주셨고 거기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여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려 노력하였습니다. 한 분이라도 더 많은 분들이 자녀에게 체스를 가르쳐서 잘했다는 생각을 갖도록 도와드리려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만, 학부모님들의 본심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은 일인 듯 합니다.
체스라는 교육적 도구 또는 스포츠가, 자라나는 2세들의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하여 좀더 체계적인 연구를 하여 다른 분야[음악, 미술, 국영수, 각종 스포츠]와의 차별성과 경쟁력을 확보해나가는 일이 체스 대중화의 성패여부를 좌우합니다. 학부모를 설득하는 일은 단순히 한 사람의 체스강사의 몫이 아니라 한국체스커뮤니티의 공동의 숙제입니다. 단순히 체스는 사람의 두뇌를 발전시키고 인성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막연한 주장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 또는 확실한 사실적 근거로 이루어진, 치밀한 이론과 프로파강다가 필요합니다. 많은 체스강사분들의 노력과 연구 그리고 끊임없는 공부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공개강좌를 마치고 뒤늦게 심판 노릇을 하기 위하여 남자1부, 남자3부, 남자4~6부의 대회가 이루어지고 있는 대회본부실로 입실하였습니다. 아마도 제3라운드의 시작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남자1부를 주로 감독하게 되었는데, 예상했던 대로 남자부 초등학교1학년들은 체스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체스규칙이나 기초 메이트에 대한 이해 또는 연습이 많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물론 매일처럼 배우는 것도 아니고 주[week]단위로 배우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저 또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을 개인지도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다만 초등학교 1학년[만6~7세?]이 체스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는 개인적 지론이 있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진짜 거물급 체스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 시기에 거의 매일같이 하루평균 2~4시간 체스를 두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강행군을 하는 학생들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이 시기에는 기물의 행마에 대하여 깊이 있는 이해가 가장 중요합니다.
기물이 움직이면서 그 기물의 행마범위 또한 같이 움직이며, 기물들은 혼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물들과 함께 움직여야 비로소 전체적으로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기초 메이트[룩 하나, 룩 두개, 퀸 하나, 퀸 + 룩 등의 체크메이트]와 응용 메이트에 대하여 끊임없이 연습을 해야 합니다. 기본적인 체크메이트 기술과 기초 끝내기만 마스터하여도 만6~7세 어린이가 배워야 할 내용은 거의 다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의 어린이들을 지도하시는 분들은 체크메이트를 중점적으로 가르쳐 주시고, 체크메이트와 같은 가장 기초가 되는 기술조차 하나의 기물만으로는 구현불가능하고, 언제나 2개 이상의 기물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여야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셔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회를 성공적으로 무사히 마치고 대회주관을 하셨던 선생님들로부터 크게 저녁을 대접받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모처럼 성대한 저녁을 하였습니다. 2차에서는 류은섭 회장님께서 협회의 개혁을 약속했기 때문에 더욱 뜻깊은 하루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회에 참가하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