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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다니는 땜장이가 없고, 여덟 식구가 단벌 가지고 쓰는 설레에, 납땜을 보낼 틈이 없이, 그때마다 걸레쪽 을 타라막아 쓴다. 하루 아침에 칼끝으로 베오라기를 밀어 넣고 있자니 까, 노마가 참견을 왔다. " 아버지 왜 그래? " " 구멍을 막느라고 그런다 " 한참 고개를 꺄웃거리더니 " 응 물이 조금씩 나옹개? " " 그렇다 " 하고, 웃는 얼굴로 그를 추어 주었더니. 또 한 번 " 응! " 하고는 좋아서 달아난다. 내가 빙그레 웃는 데는, 그의 소원을 추어 준 밖에, 또 하나 다른 뜻이 있었다. 실거운 사람이면,
" 물이 [새]니까 " 하면 될 말을, " 물이 [조금씩 나오]니까 " 라고 표현한 그의 말이다. " 새 " 라는 한 낱내면 자래ㄹ것을, [조금씩 나오]라는 다섯 낱내를 썼다. 그 동안 한자말만 세우고 우리말을 제쳐 놓았던 지 금에, 우리가 우리 말만 가지고 써 보자면 이 어린 놈 같은 안타까움이 있다. 말이 시대와 문화를 따라 펴나지 못한 때문이다. 말에는 생명이 있다. 그래서 다른 생물과 마찬 가지로 나고 자라고 죽고 한다. 죽어 가는 말이 하나 둘이면, 새로 나는 말이 백이나 천이어야 한다. 그만큼 문화의 수는 나수어간다. 그에 따라서, 한 번 난 말은, 제가 맡은 구실을 다하 느라고, 긴 마디가 짧아지는 동시에, 한편에서는 거통으 로 하던 말이 잔 갈래로 쪼개진다. 애초에 " 물결(波) " 이란 말은, 나무에 결(理)이 있듯 이, 물이 켜켜이 밀려 들고 밀려 나는 것이 마치 나뭇
결 같으니까 거기서 생긴 말이리라. 그러나 그 " 물결 "에도, 작은 물결, 큰 물결, 더 큰 물결을 확실히 구별해 낼 필요가 생김에 따라, " 무놀이 " 못이나 내에 조그만 물결이 이는 것을 " 무놀이 친다 " 고 한다. " 놀 " (바다에 물결이 일렁거리는 것이 " 놀이 인다 " 고 한다.) " 뉘 " (폭풍에 큰 물결이 집채덩이 같이 뒤덮는 것 을, 뉘, 혹은 " 뉘ㅅ덩이 친다 " 고 한다.) 이와 같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진다. 이것이 말이 낳고 자라는 것이다. 노마의 말의 슬기로 해서는 " 물이 조금씩 나온다 " 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 을 " 물이 [샌]다 " 고 한 마디로 한데, 말이 자라난 자 취가 있다. 물이 조금씩 나오기는, 틈바구니에서 나오기 때문이 다. 틈바구니는 [사이(間)]다. [사이]는 줄어서 [새]가 된다. 물이 [새에서 난다],-----물이 새어난다-----물이
샌다. 이렇게 된 것일 것에 틀림 없으리라. " 새어 나고 새어 들고 " 하는 것은 물 뿐이 아니다. 바람도 그렇다.
바람이 눈을 몰아 山窓에 부디치니 찬 기운 [새어들어] 잠든 梅花를 침노한다 아무리 얼우려 하인들 봄 뜻이야 앗을소냐 (옛 시조) " 샛길 (사잇길,間路) " " 샛 마루 (큰 마루 곁에 있는 조그만 마루) " " 샛것 (사이에 먹는 것, 곁두리 間食) " 이런 말들이 [사이]라는 " 새 "를 말밑으로 해가지고 났을 것은 분명 하지마는, " 샘(泉) " " 샘하다(猜) " " 새우다(妬)" 이런 따위도 [사이]라는 " 새" 와 한 맥이 서로 통 하는 듯함을 느끼기는, 그것들이 모두 틈바구니 혹은 둘
이상의 사이에서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무 지우쳐 들어가면 괴벽스러운데 흐를 염 녀가 있긴 하다. 그러나 괴벽스러운 데까지 끌고 들어 가야만 쓸 것도 캐고 못쓸 것도 캔다. 가을 골짜기에 바구니를 끼고 들어 간 숫머스매는, 이 리 뛰엄 저리 뛰엄, 거저 버섯 비슷한 것이면 모두 따 넣는다. 한 바구니를 팔이 휘게 들고 돌아오면, 그 어머니가 못 먹을 버섯이라고 가려 내 버리는 것이 수태 많다. 그러나 그 속에, 귀한 송이 버섯도 들고, 싸리버섯, 삼 녹버섯, 갓버섯, 밤버섯이 들었다.
" 새 " 에 [사이] 라는 뜻 밖에 또 " 날이 샌다 " 는 " 새 " 의 뜻이 있고, 새롭다는 " 새 " 의 뜻이 있다.
그리든 임 만날 날 밤은 저 닭아 부디 우지 마라 네 소리 없도소니 날 " 샐 " 줄 뉘 모르리 밤중만 네 울음 소리 가슴 답답하여라 (옛 시조)
날이 " 샌다 " 는 " 새 " 의 말밑에서는 " 새벽, 샛별 " 따위의 말들이 되었으려니와, 날이 샐녁은 묵은 날이 가 고 새 날이 오는 " 사이 " 이다. 이로 미뤄 보면, 날 샌다는 " 새 " 또한 [사이] 의 " 새 " 를 말맡으로 캐볼 수도 있을 것이며, 날이 새면 새 날이 되나니, " 날 샌다 " 는 " 새 " 에서 다시 [새 롭다] 는 " 새 " 가 굴러 나왔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 다. 창 밖에 童子 와서 오늘이 " 새해 " 라 커늘 東窓을 열고 보니 예 돋던 해 돋아 온다 두어라 萬古 한 해니 後天에 와 일러라 (옛 시조) " 새롭다 " 는 " 새 " 는 , " 새봄(新春), 새힘(新力), 새옷(新衣), 새서방(新郞). 새며느리(新子婦)" 해서, 그럼직한 모든 이름씨 위에 앞가지로 두루 쓰이거니와, 농촌에 " 샛갈이 " 라고 하 는 것이 있다.
" 샛갈이 " 는 가난한 농민이 춘궁에 묵은 나락을 부 자에게서 내다 먹고 가을에 길미를 길러서 새 나락으 로 갈아다 갚는 것이다. 그러기에 " 샛갈이 " 라는 이름이 붙었으리라. 이밖에 좀 표난 것으로, " 새삼스럽다 " " 새침하다 " 하는 따위가 있다. " 새삼스럽다 " 는 일껀 해 오던 것을 새판잡이인양 한다는 뜻이니, " 새삼스럽게 그게 무슨 말인가 " " 외면이라니 장근 보던 이에게 새삼스럽지 " 이렇게 쓴다. " 새침하다 " 는, 무슨 역증이 났던가 골이 나서, 생판 모르는 사람 대하듯 아는 사람을 대하는 얼굴을 형용 하는 것이니, " 왜 그리 새침해서 날아갈 듯이 앉았나? 무슨 트집 이 생겼나? " 이런 투로 쓰지만, 이러한 사람의 얼굴에서 받는 인 상을, 하늘에 대어서 쓰기도 한다. " 그 동안 몇 아침이나 서리가 쳤던가.
물 든 잎이 하나 둘 날리고, 빈 가지만 남은 정원수 너머로 [새침한] 하늘이 뵌다 " 이렇게 쓴다면, 그 아침은 찬바람 으시시 돌고, 구름 한 점 없는 새말간 하늘이다. 이렇게 " 새 " 라는 한 낱내에 여러 가지 뜻이 섞여 있기 때문에 걸핏 잘못하면 엉뚱한 틀림을 일으킬 수 있다. " 새서방 " 이라고 하면 " 新郞 " 이지마는, " 샛서방 " 하면, " 사잇서방 " 을 이름이어서 " 姦 夫 " 가 된다. " [밤새] 안녕 하심니까?" 의 " 밤새 " 는 " 밤사 이 " 라는 뜻이거니와, " 밤새 한잠도 못잤네 " 하면, 그 " 밤새 " 는 " 밤새워---- 밤이 새도록 " 이란 뜻이다. 따라서 이 두 " 밤새 " 는 소리 냄부터 달라야 한다. " 밤새워 ", 의 " 밤새 " 는 밋밋한 발음으로 내지마는, " 밤사이 " 의 " 밤새 " 는, 예전에 사이ㅅ을 쓰던 것을 머리에 두고, 두 낱내 사이를 좀 걷어 채야 한다.
" 새 " 에 생각되는 또 다른 하나의 " 새 " 가 있다. 농가의 가을에 햇짚을 가지고 이영을 엮어서 집을 이
을 때는 먼저 낡은 이영을 걷어 낸다. 이것을 " 썩은새 " 라고 한다. 오래 못 잇고 둔 초집에 장마가 심하면 지붕에 골이 생겨서 물이 샌다. 미처 새로 이지 못할 때는 그 골을 헤치고 짚이나 쟈 끌대 같은 것을 거머넣어서 아쉼면을 한다. 이것을 " 군새 " 라고 한다. " 썩은 [새], 군[새], [새]끼 이 셋에 모두 " 새 " 가 붙었다. 이 " 새 " 는 무슨 " 새 " 일까? 산에 가면 " 새 " 라는 풀의 일종이 있다. 그것은 갯 가에 우거진 갈(芦) 비슷한 풀이다. 새 가운데 " 억새 " 는 산 비달에 덤불을 지어서 첫 가을이면 미렷이 하얀 모개를 내밀어 한풀 가을 풍경 을 돋우는 것이다. 옛날 아직 논 농사가 드세지 않아, 짚이 흖지 못했을 때, 우리 조상은 산에 올라서 새를 베어다가 그것으로 그들의 조그만 지붕을 잇고 살았던 것 같다. 초새로 집을 잇는 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 낡은새를 " 썩은새 " 라 하고, 군으로 두는 새를 " 군새 " 라 하고, 새를 꼬아서 끄나불을 만들었으 니, 새를 꼬았대서, " 새꼬이---새끼 " 가 된 듯 하다. 이렇게 새를 이영으로 쓸 때 생긴 이름이 그 대로 물 려서 짚을 쓰는 지금에도 남았다. 이러한 말밑에서는 옛날 우리의 풍속과 아울러 그 변 천의 자취도 여어볼 수 있다.
위의 들은 말에 "군새" 라는 말이 있다. " 군새 " 는 [군]으로 둔 새라고 했다. [군]이라는 것은, " 가욋 것, 객적은 것 " 을 이른다. 끼니때 먹는 것이라든지, 곁두리가 아니고, 거저 심심 풀이로, 호콩을 사다 까먹는다든지, 과자를 사다 바삭거 리는 것을 " 군것질 " 이라고 한다. 객적은 것을 먹는다는 뜻이다. 이 " 군 "을 앞가지로 써서, 군 시꾸(食客) 군 살(贅肉)
군 더더기(贅物) 군 불(밥 짓는 불 말고 暖房의 불) 군 말(客談) 군 사설(객담의 긴 것) 군 소리( 꿈 속에 하는 소리) 군 서방(姦夫), 군 계집(姦婦) 하는 따위의 말이 있 다. 혹은 겨울 밤거리에 애틋하면서도 그리운 인기를 끌 고 있는 군 밤 장수, 군 고구마 장수도, 같은 " 군 " 이 라는 소리가 나지마는 그것은. " 구운 " 밤, " 구운 " 고구마이어야 말본에 맞다. 굽다(炙)의 구에 ㅂ벗어난 우가 붙어서 " 구운, 구워 서, 구웠다 " 가 되는 것이다. 같은 벗어난 풀이씨에, " 깁다(報), 맵다(辛) " 따위가 있나니, " 기운 옷(補綴衣), 매운 고추 " 를 " 긴 옷, 맨 고추" 라고는 못하리라. " 구운 밤 " 이 " 군밤 " 으로 발음되는 것은 홀소리 ㅜ 둘이 겹치기 때문에 하나로 줄어진 것이다. " 군 " 을 앞가지로 쓰면 위와 같은 말들이 이뤄지거
니와, 다시 그 같은 뒷가지(接尾辭)로 달면, 어찌 어찌한 사람, 어떠 어떠한 사람 " 이란 뜻으로 쓰 인다. 농군(農夫), 초군, 혹은 나뭇군(樵夫), 사냥군(獵夫), 놀음 군(賭博者), 생일군(肉身勞動者), 마바릿군(馬馱 夫), 짐군(擔夫), 지겟군, 구루맛군--------- 이리도 쓰다가, 사람이 많이 몰린 것을 휩쓸어 [군] 이라고 쓰기도 하나니, " 빨랫군, 장군, 구경군----- " 하는 따위가 그것이 다. " 군 " 은 본래 게란 말로 " 사람 " 이라는 것인데 그 것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이렇게 쓰인 것이다. 대개 이와 비슷하면서도 혹은 [이], [둥이], [장이], [방이], [구러기] 따위를 쓰는 것도 있으니, " 이 "----- 꼽사등이, 곰배팔이, 육손이, 절뚝발이, 애꾸눈이, 덜 렁이, 멍청이, 색골이(好色漢), 갓난이, 젖먹이,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 " 둥이 "---- 막내둥이, 천두이, 귀염둥이, 미련둥이, ----- " 장이 " 난장이, 환장이(畵工), 대장장이(鍛冶工), 놋각장이(鍮 器工), 미장이(泥匠), 멋장이(放逸者), 오입장이(外道者) 점장이, 겁장이, 늦잠장이, 거짓말장이. 심술장이,--- " 방이 "---- 안진방이, 게름방이, 가난방이, 비렁방이,----- " 구러기 "---- 잠구러기, 심술구러기, 욕구러기, 꾸지람구러기, 맷구 러기, 눈총구러기, 익살구러기(諧謔家)----- 이러한 여러가지 뒷가지에는 조그만씩한 차이가 있 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그 차이는 어떻다고 설명하는 것보다 실지 쓰는 보기 를 보고 스스로 짐작하는 편이 나으리라. 다만, 이 모든 것 가운데 "구러기" ---에는 하나 둘 춰지는 말밑이 잇다. 그것은 " 구럭(繩袋) 이라는 것이다. 조개 주우러 갯가에 가는 사람이나, 약 캐러 산에 오 르는 사람은 구럭을 메고 간다. 그래서 거기에 그들의 얻은 것을 하나 가득 담아 온다.
그러기 때문에, 구럭이라면 아가리가 벌어지도록 무 엇이 뺑뺑히 담긴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데서 무엇이 많이 나는 데를 " 무슨 구럭, 무슨 구럭 " 한다. [세포] 는 명탯 구럭이다 [영광] 은 굴빗 구럭이다 이러한 [구럭] 에 [이] 를 붙여서, [구럭이] 를 말밑 밝히지 않고 [구러기] 로 써서 " 심 술구러기, 욕 구러기 " 로 만든 것이다. [심술 구러기], [익살 구러기] 라고 하면, 그 속에 심 술과 익살이 굴석 굴석 들은 사람을 말 함이고, [눈 총 구러기], [꾸지람 구러기] 라고 하면, 뭇 눈총을 얻어맞 고, 뭇 꾸지람을 얻어 듣는 사람을 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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