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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산꾼의 산중산담 山中山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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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정맥, 기맥, 지맥 기타 스크랩 대간 13-2(거인19회차)구간 : 형제봉 구간 - 견훤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초보산꾼 추천 0 조회 60 17.04.16 17:3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대간 13-2(거인19회차)구간 : 형제봉 구간 - 화령재에서 피앗재까지.. 

 

 

언제 정유(17년) 잎새달 4월 열닷새 흙날

누구랑 : 거인산악회 대간 17기 산우님들         

어딜 :  화령재 ~ 봉황산 ~ 비재 ~ 갈령갈림길 ~ 형제봉 ~ 피앗재 ~ (접속) ~ 만수리

                     (대간 16.97 km 접속 2.3km 포함, 홍장천 대장님 공지내용)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초보산꾼 사진 산행기는 http://blog.daum.net/kmhcshh/3684 있습니다

 

 

4월은 전국을 꽃 누리의 세상으로 만들어 전 국민을 밤.낮 가리지 않고 모여들게 하는 마력 같은 일상을 주지만

나무에서 갓 나온 잎새와 꽃은 아직 세상이 주는 작은 미풍에도 여린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약하지만

아직은 여린 햇볕을 최대한 많이 밭아 놓아야 긴긴 여름을 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활짝 웃으려 하는 것이다

서울도 이제 벚꽃이 펼쳐놓은 은빛세상도 자기소임을 다한 듯 미풍에도 떨어지는 잎새달 4월 중순 

대간 길에서 만나는 꽃들과 함께 우리도 여름을 나기 위해 봄이 주는 여린 햇볕 속으로 들어가 본다

 

 

 

백두대간 화령재에서 피앗재까지 (참조용)

 

 

이번 구간은 이제 중화지구의 마지막 구간이면서 영취산에서 시작된 금강과도 이별을 해야 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남북 분단의 아픔이 있는 한국전쟁 화령장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천혜의 요새 화령

봉황이 알을 품는 형상이기에 중종의 태를 묻었다 해서 胎封山이라고도 불렸다는 화령(화서면)의 진산 봉황산

승자에 의해 폄하된 견훤의 흔적이 남아있는 못제에서 우측으로 바라보게 될 견훤의 꿈을 대변했던 대궐터산

대간 길에서 가장 낮은 중화지구대라고는 해도 역사적 의미에 더해 속리산을 더욱 독보이게 하는 역할까지..

충북알프스가 지나가고 작약지맥을 분가시키는 등 산우님들의 숨소리만큼이나 산줄기도 숨가쁘게 지나가는 구간이다

 

 

한국전쟁당시 치열한 전투를 거쳐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천혜의 요새였던 화령도착

화령化寧 : 경북 상주시 화서면 상곡리

고려조(高麗朝) 성내(城內)에서 가장 큰 상가(商街)로 번화(繁華)하였던 곳이라하여 화령장(華令場)이라 불릴만큼 중요한 곳이다 보니

무사들이 살았다는 무동, 현감이 살았다는 항현, 관곡을 보관했던 창고 있었던 창안 등의 지명이 지금도 당시 그데로 남아 있다

뒤에  화령장(化寧場)이라 하였다고 하는데 행정구역상 화서면이라 부르지만 지금도 화령초,중,고등학교가 남아 있는 이유이다.

 

단체사진 후 출발 - 이헌승님 작품

 

출발

 

산속에서 나와 마루금을 도로가 잡고 있어 도로를 따라 가야 한다

 

봄이 익어가는 소리를 대간길에서도 만날 수 있음이니...앞에 보이는 산이 멋진데... 무명봉이라고...

 

해마다 봄이 오면 우리는 언제나 벚꽃의 향기에 취하고

또 벚꽃의 낙화에 가는 봄을 아쉬워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렇게 벚꽃은 우리 곁으로 다가와

온 나라에 희망을 주고

겨우내 움츠렸던 저마다의 마음에

활짝 핀 꽃의 미소로 무언의 대화를 하고 있다.

 

이른 봄이 되기도 전에 우리는

벚꽃의 이야기를 한다.

아직 벚꽃은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꽃망울을 머금고선

빈손을 벌리고 있을 뿐인데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희롱하 듯...

 

초보산꾼 벚꽃이야기 중 일부...

 

 

수청거리삼거리에서 산속으로 진입

 

화서면 방향인 상현리 방향으로 조망이 열리면서 좌측 멀리 백화산과 우측 팔음산이 조망된다

 

가야할 봉황산과 우측으로 봉황산 전위봉

 

진달래가 만개하여 대간 식구들을 맞이하는 가운데 산불감시초소봉에 도착하고

 

초소 직전 우측으로 봉화산에서 분기된 팔음지맥의 팔음산을 담아 본다. 좌측은 원통산이 아직도 보이고 상주의 진산 백화산도...

 

역시 봉화산에서 분기 된 팔음지맥상에 있는 천택산

 

초소를 지나 진행하다 우측으로 조망이 열리면서 형제봉에서 분기된 작약지맥의 최고봉 남산도 멀리서 손짓한다

 

대궐터산과의 사이에 있는 갈령으로 가는 길이 조망되는데... 앞에 동관리에서 좌측으로 해서 우리는 비재에서 만나게 된다

 

봉황산에 다가 오니 이제 대궐터산에서 청계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모습을 드러내고... 견훤의 사당이 있는 청계마을도 조망

청계산(淸溪山·두루봉874m)  대궐터산까지 청계산으로 보기도 한다

후삼국통일을 꿈꿨던 견훤의 혼이 서려 있는 청계산은 사방이 첩첩의 산과 험준한 벼랑으로 둘러싸여 있는 천혜의 요새지다.

조금 멀리 속리산이 만리장성 역할을 해주고 바로 뒤로 작약지맥이 자연적인 방어막이 되어주고

대궐터산 좌.우로는 협곡이니 견훤이 이곳에서 꿈을 꿀만한 지형으로 생각된다. 어디까지나 초보산꾼 생각

견훤이 이 산에 웅거하면서 성을 쌓고 대궐을 지었다는 대궐터산 아래 청계마을(화살표)에는 견훤의 신위를 모신 견훤사당이 있는데

아직까지 견훤왕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견훤의 넋을 기리고 있는 신당(神堂)으로는 유일하다고 한다.  위패는 ‘後百濟大王神位’

 

화서면의 진산 봉황산

鳳凰山 

包卵地世(봉황이 알을 품은 형상)형국이라는 이름에 걸 맞게 중종의 태를 묻었다는 전설에 의해 胎封山이라고도 불렸던

봉황산은 화령(화서면)의 鎭山이며 황간으로 흐르는 송천의 발원지이며,

정상부분이 봉황처럼 완만하게 생겼고 좌우 양 날개를 길게 펼친 형국이 봉황새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가뭄이 들면 이곳에 가서 산돼지의 피를 내어 바위에 붉게 칠을 한 뒤 정성을 들여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붉은 바위(일명 기역자바위)가 봉황산 중턱에 있고 1000년 묵은'이무기'가 살았다는 탑송이 화서면 상현1리에 있다

자료 : 상주시 홈피 우리마을소개  http://www.sangju.go.kr/dong/main.jsp?home_url=null&dong_code=DONG_MOSEO&code=DONG_MOSEO_2_4

 

 

봉황산은 아까 보았던 팔음지맥 분기봉이다. 상주의 진산 백화산은 팔음지맥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팔음지맥(八音枝脈)

백두대간 봉황산에서 남서방으로 분기하여 천택산(683.9m), 팔음산(771m), 천금산(464.9m), 천관산(445.4m), 철봉산(449.5m)을 만들고

북으로는 보청천, 남으로는 송천(초강천)의 분수령이 되어 금강으로 흘러가게 된다

 

못제 직전 충북알프스가 대간에서 벗어나는 지점인 삼형제봉을 향해 달려간다. 앞에 보이는 봉이 중간팀이 식사를 한 봉황산 서봉

 

봉황산 서봉(660m)에서 중간팀 식후경 - 마루금은 우측으로... 좌측으로 계속 진행하면 복룡사로 내려갈 수 있다고 한다

 

충북알프스 구병산이 조망되기 시작하는 비재 전위봉 지도상 459봉 - 이제 봉황산을 넘어가니 쉬는 시간이 늘어나고...

 

이제 생태통로가 생겨 편하게 넘어 갈 수 있는 비재( 飛鳥재)

 

 

화남면 평온리와 동관리를 이어주는 길이 비재를 통과하는 도로명이다.

 

지도상 무덤이 있는 510봉

 

조망바위 오름길...

 

조망바위에서 본 충북알프스 구병산

 

한참을 진행하고서야 대궐터산이 제 모습으로 다가 온다. 앞에는 억시기 마을

견훤성과 대궐터산(城山山城) : 견훤산성   

상주에 있는 견훤성은 3개인데 문경시 농암면 농암리 성재산과 지금 눈앞에 보고 있는  상주시 하송리 대궐터산과

그리고 대간팀이 무박으로 늘재에서 문장대로 올라올 때 보았던 속리산 문장대 입구의 장바위산(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정상에 있다.

담 구간 늘재에서 밀재로 이어지는 구간에서 다시 견훤을 자세히 만나게 된다

산꼭데기에 대궐을 지어 데궐터산이라 했다는 데 "城山山城"이라 하여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는 천해의 산성이란 뜻이다.

 

암릉구간이 시작되고

 

봉황산 줄기와 충북알프스가 만들어 내는 화남면 방향 계곡을 되돌아 본다

 

억시기 마을 갈림길

억시기 - 동관1리

농사를 지어 억석(億石)을 할 부자가 날 곳이라고 한다. .《‘억석, 억시기’에는 ‘매우, 억척, 억세게’의 뜻이 있다

화전(火田)으로 개척되었지만 6. 25 한국전쟁 후 난민정착촌(難民定着村)이 되어 지금은 큰 마을이다.

상주시 홈피 : 우리마을 소개

 

못제 직전 충북알프스와 만나는590봉 우회

 

충북알프스

충북알프스

충북보은군과 경북 상주시에 걸쳐있는 산줄기로 보은군 외속리면 서원리 고시촌을 시작으로

북에서 가장 아름답고 경관이 빼어난 구병산과 속리산 산줄기을 이어서 보은군 신정리로 이어지는 산행코스이다.

총거리 약 43.9km이고 충북보은군에서 1999.5.17 충북알프스로 특허청에 업무표장 등록을 하였다.

 

잠시 대간에서 벗어나 충북알프스 방향으로 590봉 넘어 바로 삼형제봉인 것 같은데 아무런 표시가 없다.

 

590봉 옆에 있는 백두대간상의 유일한 습지로 주민들은 천지라고 부른다고 하는 못제

 

못재 호수에서 견훤이 목욕을 했기 때문에 장수의 기운을 받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여기 안내판에 나오는 견훤에 얽힌 전설...

오직 왕은 하나... 곧 패자는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퇴장하게 된다.

패자 견훤을 역사는 왕건에 푸릎을 꿇은 도적무리들의 두목쯤으로 기록하고 있고

견훤은 이렇게 승자의 기록에 의해 지렁이로 격하되는 수모를 당하고 만다

 

혹시나 하고 못제에 들어가 봤지만 물을 조금도 발견할 수가 없다

 

진골 집안 출신이였던 후고구려의 궁예나 막대한 부를 쌓은 호족 출신의 고려 태조 왕건과 달리

견훤은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비천한 출신이였지만 자수성가하여 마침내 후백제를 호령했던 인물이다

오늘 우리가 걸으면서 우측으로 보았던 대궐터산의 성산산성 城山山城이 견훤의 야망을 얘기하고 있고

대궐터산 아래 청계마을에는 지금도 그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구간에 만나게 될 청화산 아래에 남아 있는 견훤의 흔적들이

결코 승자의 잘못된 기록으로도 지울 수 없는 영웅의 기록들이 지금까지 살아 숨쉬는 원천이다

 

헬기장을 지나고

 

그런데 덕유산 동엽령 넘어에 있던 못봉.. 기억나시나요?  "못봉 池峰" 1,342.7m"

옛날에 연못이 있어서 흰구름이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핀 연꽃이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사찰의 화기를 막기 위해 잉어나 물고기등을 달아 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처럼 자연습지가 아니라 불가에서 가상의 연못이 아니였을까 추측해 봤었던 기억...

 

힘들어도 가야하는 대간길... 형제봉은 손짓하지만 발걸음은 어떨련지... 갈령삼거리와 형제봉

 

충북알프스 못재를 우회하는 갈림길도 지나고

 

갈령 방향

 

갈령삼거리에서 형제봉으로

 

갈령은 형제봉에서 분기한 작약지맥이 지나가는 마루금이다

芍藥지맥

형제봉과 갈령,청계산을 지나 상주시와 문경시를 넘나들며 작약산과 태봉산으로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50km의 산줄기로

북으로 영강과 남으로 이안천의 분수령이 되어 태봉산에서 영강과 합수하여 낙동강으로 흘러가게 된다

 

형제봉 정상

 

형제봉에서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가 다시 시작되므로 중회지구도 여기서 끝난다.

잠시 형제봉 좌측으로 들어가 보면 경북도 경계 탐사 띠지가 붙어 있다.

 

이 곳으로 잠시 들어 온 이유는 형제를 닮은 멋진 바위군이 있다


다시 형제봉 정상석에서...

 

마지막으로 담아 본 궁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청계산을 담아 본다

 

담에 가야할 청화산과 속리산과 도장산 우복산이 만들어낸 십승지 중 최고로 뽑히는 우복동천 방향

 

가야할 피앗재와 속리산 최고봉 천왕봉

 

좌측 봉황산 방향 대간길과 우측 충북알프스 구병산 방향

 

만수동 계곡 어딘가에 삼가저수지가 보일텐데 올망졸망한 산들이 점묘화를 그리고 있어 보이지 않는다

 

형제봉을 지나 내려오면서 형제봉의 유래가 된 형제바위를 당겨보면

 

피앗재 직전 마지막으로 담아 본 천왕봉과 문장대로 이어지는 속리산

 

유래를 알 수 없는 피앗재에서 하산

 

옛날 만세암이라는 절이 있어 만세동이라고도 불리던 만수리 洞 직전 직진

 

돈들여 설치하고도 욕먹는 이정표... 친절하게 산객이 표시를 해 놓았다. 아쉬운 놈이 샘을 파는겨?

 

만수리로 내려와 차를 이동

 

여기서 힘들었던 봉황산 구간의 피로를 풀어 본다

 

수고했습니다.

 

한반도 역사에서 중부지방과 호남지방의 자연스런 경계를 이루게 하고

고구려와 백제의 접경지역을 담당했던 대간의 한 축인 한남금북정맥의 분기 봉 속리산 천왕봉

오늘 걸었던 구간은 속리산 천왕봉 턱 밑까지 걸었던 구간이다

 

사실 우리가 산줄기를 따라 왔지만 강을 떠나서는 대간의 의미가 없다

강이 없다면 쪽발이들이 얘기 했던 산맥만이 존재할 뿐이다.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섬진강과 이별하고 여기까지 동행한 물줄기가 바로 금강이다

금강은 금남호남정맥 신무산에서 발원하여 힘찬 물줄기를 거침없이 북으로 북으로...

다른 놈들은 모두 서해로 남해로 동해로 바다로 향하는데...

요놈만은 유별나게 한양으로 거침없이 달려드니

한양 구중궁궐에서 백성의 피를 빨아먹던 위정자 같은 권력자들에게는 눈엣가시 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한 때 반역의 강줄기로 오해받아 핍박 아닌 핍박의 역사를 짊어져야 했던 금강

그런 금강도 결국 속리산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서해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우리가 대간 길을 걷지 않았다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많은 시간을 들여 영취산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던 힘든 여정이 있었기에

우린 자신 있게 금강의 역사를 말할 수 있음이니

이 또한 대간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또 다른 즐거움의 하나일 것이다

아쉽지만 이제 담 구간부터는 금강과 이별하고 한양의 젖줄 이였던 한강과 함께 하게 될 것이다

한강의 역사를 만들어낸 대간 길에는 또 어떤 사연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초보산꾼 얘기는 계속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산우님들이 백두대간을 마치면

9정맥에 도전하는 이유인 것 같다.

강을 이해를 하려면 먼저 정맥을 걸어봐야 한눈에 정리가 된다는 사실...

 

참!! 지도를 자세히 보면 4대강 문제로 차안에서 잠시 혼선이 있었는데

금강과 영산강의 길이가 눈으로 봐도 두 배는 차이가 나는 듯...

금강이 4대강이 맞네요..

 

 

금강의 물줄기 흐름도 - 천리길 금강의 반은 한양으로 힘차게 북진하고 있다(청색 화살표)

 

 

존재하는 모든 것은 흐르고 있다고 한다

자연도 어쩔 수 없는 우주의 흐름에 맞춰 흐르고 있는 것이다.

흐름의 멈춤은 상상할 수가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현명했던 우리 선조들은 모든 것을 흐름으로 이해하려 노력했고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물 흐르듯 줄기차게 뻗어 내려온 산줄기를 보고

백두대간이라 칭했다는 생각...

거기에 흐름을 멈추지 않는 강줄기를 보면서

사람도 흐름을 멈추면 숨을 거두는 정맥이라 불렀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오늘 우리가 걸었던 대간 길...

우리가 남겨놓고 온 추억만큼이나

또 다른 산객들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찾아 갈 것이고

그 흐름이 우릴 하나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는 생각

오늘 초보산꾼이 금강과 이별하는 마지막 구간

대간을 걸으면서 생각해 봤던 단상이다.

 

함께 해 주신 거인산악회 17기 산우님들 고생했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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