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개나루 3
토정은 천천히 사주에 대해 강의를 시작했다.
"인간이 운명이라는 말을 생각하고,
그 운명을감정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오천 년 전
중국의 황하 유역에 살던 하(夏) 이전의
동이족(東夷族) 때부터라고 하옵니다.
옛 조선번영기에는 중국보다 더 큰 나라가
조선이었사옵니다.
그때 복희씨(伏羲氏)가 황하에서
용마가 지고 나온그림을 보고
뜻을 새겨 여덟 괘를 만들었다고하옵니다.
이것이 하도(河圖)이옵니다.
그후 문왕(文王)이 낙서(洛書)를 만들었사옵니다."
"그거야 주역(周易)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렇다면주역과 사주가 같은 것이오?"
"아니옵니다.
다만 사주가 주역의 이치를 차용하고있으므로
그렇게 말씀드린 것이옵니다.
이야기를
사주의 기본 요소인 음양 오행으로 돌리면,
음양은역에는 나오지 않고
사주 명리학에서만 쓰는말이옵니다.
그렇다면 오행은 무엇이고,
또 이 오행을근본으로 가지친
10간 12지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별의 운행을 살핀 천문에서 따온 것이옵니다.
천문(天文)이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천문이란하늘의 글이니
바로 별의 움직임은 곧 하늘의 뜻이고
말씀인 것이옵니다."
토정은 오행의 원리
곧 상생(相生), 상극(相剋)의이치를
소상히 말한 뒤에 10간 12지를 설명했다.
"오행은 가까운 별,
즉 목(木), 화(火), 토(土),금(金), 수(水)의
다섯 개 별에서 오는 정기를 표시한
말이옵니다.
태양에서 오는 빛이 이 다섯 별에 들러서
우리 인체로 올 때는
저마다 다른 성질을 가진 빛이되어
인체에 큰 변화를 일으킵니다."
토정이 설명하는 오행은 일찍이 왕사에게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생소하고 낯선 내용이었다.
명종은
토정의 힘있는 목소리와 새로운 해설에 압도되어
진지하게 설명을 들었다.
"간(干)이란 하늘을 둘러싸고 있는
별에서 오는정기를 열 가지로 나눈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오행을
더 자세히 나눈 것이라고 할 수 있사옵니다.
그리하여
세상은 십 년을 반복해서 셈을 하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지(支)란 땅에서 감응한 열두 가지 성질을
짐승의 성격에 붙인 말이옵니다.
그래서 열두 달이생기는 것이옵니다."
명종은 토정의 말에 대단히 흥미가 느껴지는지
연신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사주 명리학은 의학과 직접 관련이 있어,
의학의 한 줄기라고 보아도 무방하옵니다.
황제내경(皇帝內經)>이라는 중국 최초의 의서를보면,
음양 오행과 10간 12지를 응용하여
신체를 잘분석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사옵니다.
신체의 오장육부가 작용하는 근본을
하늘의 별의 운행에빗대어 풀이하였으니,
하늘이 대우주라면
인간은소우주인 것이옵니다."
토정의 말에 명종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더니
토정에게 물었다.
"토정, 그대는 내 운명을 볼 수 있겠소?"
토정은 소리나지 않게 큰숨을 들이마셨다.
"예, 사주만 불러주시오면 볼 수 있겠나이다.
하오나 국왕의 운명은 곧 우리 대조선의 운명,
소홀히다루어서는 아니 되오니
좌우를 물리쳐주시옵고사관도 물려주옵소서."
"괜찮소. 대신들도 함께 듣는 게 좋겠소."
대신들도 명종의 말에 모두 동조하였다.
토정은 명종을 경계하고 있었다
말 한마디가
예기치 않은 날개를 달고 궐내를 휘젓고 다니다가
자칫 그 불똥이 애매한 사람에게 튀면
그걸 누가감당하랴.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특정기 사건이
바로엊그제 일만 같았다.
그 당시에 친구 안명세에게참수형을 명하고
토정을 잡으라고 지시했던 그 임금명종이
지금은 그를 친히 불러 자신의 앞날을
살펴봐달라는 것이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전하의 사주를 보기 전에
이말씀을 먼저 올리고자 하옵니다."
말씀해 보시오."
"세종조에 황희라는 정승이 있었사옵니다."
"있었지요."
"그분이 하루는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옵니다.
"말씀해 보시오."
'부인, 내가 똥을 누었는데 파랑새 한 마리가
항문에서 나와 포르르 날아갔소.
괴이한 일이니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시오.
그런데 얼마 후에 세종대왕께서
황희에게 묻기를
'대감 항문에서
봉황새수십 마리가 나와 날아갔다는데 사실이오?'
하시더랍니다."
"거 참, 괴이한 일이로고.
정승이 부인에게만한얘기가
어느 결에 임금께 전해졌단 말이오.
게다가파랑새가 봉황으로 바뀌고
한 마리가 수십 마리로늘어났으니…"
"이렇게 소문이란 무서운 것이옵니다.
그러니 제가지금 올리는 말씀이
어떻게 날개를 달고 퍼져나갈지
지극히 염려되나이다."
"내 그런 일이 없도록 약속하리다."
"전하께옵선 더이상 후사를 얻기 어렵사옵니다.
그러니 미리 대통을 전할 사람을 정하시어
장차 이나라의 앞날을 밝고 쾌청하게 하시옵소서."
토정은 그동안 왕에 대해 생각했던 근심을
털어놓았다.
때는 병인년(丙寅年, 1566),
명종이 즉위한 지21년째 되는 해였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임금의자리에 오른
명종의 나이 서른셋,
남자로서 한창인때였다.
인순 왕후 심 씨에게서 아들을 얻어
세자로책봉하였으나
이 세자가 열세 살 되던 해에 죽어
대가끊기고 말았다.
그것이 3년 전의 일이었다.
그 이후 명종은 후사를얻기 위해 애를 쓰고 있으나
여의치 않았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전하의 여명이 그리 길지 않사옵니다."
게다가 명종은 명이 짧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후사도 없는 임금이
후계자를 지목하지 못한 채 죽고나면
이 나라 조정은 왕권 다툼으로
다시 피바람이몰아칠 게 뻔했다.
토정은 그런 일을 막기 위해
감히 임금의 심기를불편하게 할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선 이조는 왕통이 혼탁했다.
그만큼 왕권도약했다.
그래서 이따금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왕자의 난리가 일어났는데
그것이 네 번에 걸친 사화였다.
조선 이조의 왕위 세습은
전통군주제도에 의거한대로
장자가 정통으로 물려받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13대인 명종대까지 4명밖에 안 되었다.
그 중에서도문종이 2년, 단종이 3년, 인종이 1년 등
재위 기간이극히 짧아
제대로 정사에 참여해 보지도 못했고,
연산군은 그나마 쫓겨났다.
장자 계승을 한 왕 가운데
왕 노릇을 제대로 한사람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장자 세습이 안 된 왕중에는
태조 이성계를 시작으로 태종 이방원, 세조,
중종, 명종까지 자기가 직접 나섰든 외척이 빼앗았든
왕위를 찬탈해서 차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고려는 34대 임금 가운데 28명이
순리대로 왕위를이었고
이들은 많은 치적을 쌓았다.
풍수지리학자들은
왕위 세습이 정통으로 이어지지않는 까닭을
한양의 지세에서 찾았다.
즉 삼각산이
북에서부터 곧게 남으로 뻗어내려오다가
뚝끊어지면서 빗나갔기 때문에
장손보다는
다른 손이 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선 이조의 왕가운데 장자는
즉위하자마자 병사하거나 이유없이
요절하는 경우가 많았고,
오히려 세종이나 성종, 영조같은 차손(次孫)이
더 치세를 잘했던 것이다.
"뭐, 뭣이라고?"
명종은 토정의 이야기를 듣고는
얼굴색이창백해졌다.
지난 해 수렴청정을 해오던 어머니 문정왕후가죽자,
그를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윤원형이
관직을 삭탈당한 채 고향 마을로 쫓겨나
그곳에서 죽었으며,
제주도에 유배당했던 승 보우는
제주 목사 변협(邊協)에게 피살됐다.
그제서야 비로소 임금의 권위를 되찾은 명종은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선정을 펴보려고 노력하는중이었다.
명종의 눈꼬리가 치켜올라가면서
이를 꽉 문입술에서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런 불충을 감히…"
대신 한 명이 성을 내며 나섰다.
그 대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른 대신들이들고 일어났다.
"저런 요망한 자를 보았나?"
그들은 더 큰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전하, 이런 엉터리 사주쟁이의 말은
한마디도 듣지마옵소서.
궤변일 뿐이옵니다."
"전하, 당장에 저 자를 하옥시키시옵소서.
감히어전에서 불충한 말을 함부로 늘어놓다니…"
"전하, 저 자는 일찍이 특정기 사건 때 참수된
안명세란 자의 죽마고우이옵니다.
감히 주상 전하께원한을 품고 아뢴 말씀임에
틀림없사옵니다."
명종은 더이상 아무 소리를 내지 않고
토정을노려다보았다.
그러나 토정은 아무런 흐트러짐 없이
낭랑한 목소리로 다음 말을 아뢰었다.
"파랑새 소리가 너무 시끄럽사옵니다."
명종은 침통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이보시오, 토정. 밖으로 나가 잠시만 기다리시오."
토정은 절을 하고 물러났다.
안에서는 엄히다스리라는
대신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토정은 어깨를 딱 편 채 버티고 서서
명종의 명을기다렸다.
궐내 사람들이 그런 토정을 보고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지만
토정은 조금도 근심스런 얼굴을 하지않았다.
이윽고 좌상이 나와 토정에게 어명을 전했다.
"그대가 그렇게 세상을 훤히 내다보고
계책이분명하다 하니,
전하께서 한 가지 일을 맡기셨소."
"무슨 일이옵니까?"
"포천 현감에 그대를 제수하셨소."
"포천 현감이오?"
"그만한 지혜와 경륜을 가진 사람이
나랏일을 하지않는다는 것은 불충이라고 하셨소
그러니 직접
백성을 다스려보라 하셨소."
포천. 산간 지역의 척박한 땅.
굶어죽는 백성이부지기수인 고을,
팔도에서 제일 가난한 현이었다.
"무슨 뜻이옵니까?"
"그대의 능력을 시험해보고자 하시는 것이오.
그대가 그렇게 세상 일을 꿰뚫어보고 있다면
가난한현 하나쯤은 거뜬히 다스려서
그 고을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셨소."
"전하께서 저에게 벌을 내리시는 것이로군요."
대궐을 나온 토정은 마포로 달려갔다.
그리고정휴와 남궁두, 전우치를 불러모았다.
제자들이 방에모이자
토정은 명종에게서 받아온 <천기비전>을
그들앞에 내놓았다.
"누가 이 필사본을 만들었는가?
임금께서 읽고계셨네. 정휴, 자네 짓인가?"
정휴는 토정이 내민 책을 보더니 금세 수긍을 했다.
"예, 형님."
"왜 그랬는가?"
"내의원 정작에게 <다선기(茶仙記)> 한 권을
준적이 있습니다.
두륜산에서 얻은 책 말씀입니다.
그때
정작에게서 궐내에서도
<천기비전>을 찾는 사람이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필사본을 한 권 만들어주었습니다."
"언제 주었더란 말인가?"
"지난 달에 주었습니다."
"다른 책은 또 없는가?"
정휴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러자 남궁두가나섰다.
"저, 선생님. 그 책이 아주 잘 맞는다고 소문이자자한데
더 많이 만들어 배포하시는 것이 좋을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슨 소린가? 내가 자네들에게 이르지 않았던가,
이 책을 밖에 유포시켜선 아니된다고!"
정휴를 두둔하는 남궁두의 말을 끊으면서
토정이 역정을 내었다.
"이러고서야 어찌 자네들이 내게서 공부를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 뜻을 이렇게 몰라주니 몹시답답하이.
이 책은 밖으로 나가면 창이나 칼보다 더 위험하네.
하루 아침에 낙엽지듯 우수수 떨어지는 선비들의 목을
보지 않았는가.
함부로 천기를 누설하면 그 화가
발설자에게 미치는 법이라네."
"죄송합니다, 형님. 정작 그 사람이 워낙간청하길래…
형님의 깊은 뜻을 미처 알지 못하고…"
정휴가 토정에게 사죄를 청했다.
"알았네. 자네가 직접 나서서
그 책들을거두어들이게.
벌써 몇 권이나 필사되었는지 모르는일,
한 시라도 빨리 거두어들이도록 하게.
화급한일일세.
이 책이 잘못 쓰이면 자네나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큰 화를 입을 것일세."
"명심하겠습니다. 곧 그렇게 하겠습니다."
"기왕지사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자네들에게
다짐을받아야겠네.
자네들 실력으로 몇 년만 애쓰면
한개인의 운명은 물론 국사의 먼 일까지도
자세히적시해낼 수 있을 것이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내용을 책으로 써서 무슨 비결(秘訣)이니
비기(秘記)니 해서 세상에 내놓을 생각은
아예 하지말게.
그래서는 절대로 안 되네.
그런 사람은 내제자가 아닐세.
아니, 그런 사람은 절대로 도에 이를수 없네."
"알겠습니다.
함부로 남의 운명을 감정하는 것을삼가겠습니다.
한참 묘리를 터득해가는 중에
하도 잘들어맞는 게 신기해서 그랬습니다.
형님의 깊으신뜻은 헤아리질 못하였습니다.
제가 직접 돌아다니면서책을 거두어들이겠습니다."
"한 권도 빠짐없이 거두어들이지 않고는
날 볼생각을 말게."
토정은 역정을 거두지 않았다.
이튿날부터 정휴는 내의원 정작에게 찾아가서
필사본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손을 타고
퍼지고있는지 물어하나하나 거두어들였다.
하루라도 빨리남김없이 거두어들이는 것이
토정의 뜻을 행하는것이고,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이었다.
아니 재앙을미리 막는 길이기도 했다.
정휴는 며칠 동안 숨이 가쁘게 뛰어다닌 끝에
그가필사해 주었던 책과,
그것을 다시 필사한 책 다섯권을 다 찾아내었다.
토정은 그것으로 정휴에 대한 질책을 끝냈다.
"토정은 이제 폐쇄하겠네.
지금까지 우리 네 사람이열심히 애를 썼으니,
이제 이것으로 족하이."
"<천기비전>은 어찌 할까요?"
"나중에 필사한 것들은 모두 불질러버리고,
애초자네들이 필사했던 것들만 간직하고 있게.
절대로백성들에게 유출시켜서는 안 되네."
"토정이 없어지고 나서도 말입니까?"
"그렇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