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4월 8일 피카소가 타계했다. 피카소는 스페인과 프랑스에 연고를 둔 화가이지만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세계적 예술가이다. 〈아비뇽의 처녀들〉 등 2차원 화폭에 3차원 세계를 담은 그의 작품이 대한민국 중 · 고교 미술 교과서에 줄곧 실려 있었던 덕분이다. 서양 회화가 전통으로 섬겨온 원근법과 명암법을 벗어나 대상을 원추 · 구 · 원통 등 기하학적 단순 형태로 환원한 그의 입체주의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자못 충격을 주었다.
피카소의 그림 중에는 〈Guernica〉도 아주 유명하다. 〈Guernica〉는 독일 공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스페인 게르니카 민간인들이 무참히 학살된 비극을 고발한 1938년 작품이다. 〈Guernica〉를 그릴 당시 피카소는 서양 나이로 57세였다. 피카소는 70세이던 1951년 〈Massacre en Coree〉도 그렸다.
1970년 4월8일 서울 와우 아파트가 무너졌다. 건축허가 등과 관련된 부패 탓에 부실공사가 이루어진 것이 원인이었다. 그 이후에도 1994년 성산대교, 1995년 삼풍백화점 등 대형 건축물 붕괴가 이어졌다. 심지어 1950년에는 당시 한강 유일의 다리 ‘인도교’를 ‘국가’가 폭파하는 바람에 “양민 500∼800명이 까닭도 모른 채 목숨을 잃었다.(조선일보 2010.6.29.)” 그뿐일까! 1950∼53년 전쟁 기간 중 무려 3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죽었다.
피카소의 〈Guernica〉 · 〈Le Charnier〉 · 〈Massacre en Coree〉는 ‘양민’ 학살 전쟁을 반대한 반전反戰 그림이다. 그 중 〈Massacre en Coree〉는 그림 내용으로는 알 수 없지만 제목이 우리나라를 제재로 삼았음을 말해준다. 그 탓에 이 그림은 2021년까지 국내에 전시되지 못했다. 공산주의자 피카소가 반미 사상 고취를 목적으로 만든 ‘불온’ 그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1931년 4월 8일 운명한 노벨문학상 수상 스웨덴 시인 카를펠트는 “어두운 곳에서 탄식하는 파도여 / 너 역시 나처럼 꿈꾸는 나날을 노래하고 / 잠 못 드는 밤을 노래하느냐”면서 〈그리움은 나의 숙명〉이라 했다. 전쟁과 부패로 사람이 죽는 데 대한 절망감 때문에, ‘꿈꾸는 나날’은 도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잠 못 드는 밤’을 뒤척여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가!
2017년 4월 8일 이승을 떠난 황금찬은 신년시 〈새해〉에서 “정결한 마음”으로 “욕심 없이” 살아가자고 했다. 〈Massacre en Coree〉를 감추는 조치는 정치적 ‘욕심’의 소산이다. 예술 세계를 가두면 끝내는 실존 현실도 암흑천지가 된다. 미래 사회는 ‘정결한 마음’을 가진 정치가들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