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내의 폭력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영토를 수호하는 목적을 위해 설치된 국민의 군대입니다.
그러므로 군인이 그 이념적 주인인 국민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피해를 주는 일을 반역죄에 해당됩니다.
군인 역시 국민이므로, 동료군인에게 해를 입히는 일 역시 반역죄이며, 동료군인에게 해를 입히는 일은 아군의 전투력을 저하시켜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죄가 됩니다.
‘군부대에서는 어떤 형태의 폭력도 금한다.’는 각군 참모총장의 명령이 있었고, 이를 취소하지 않았으므로, 군사령관이라 하더라도 하급자에게 폭력을 쓰면, 항명죄입니다.
이 반역죄나, 이적죄나 항명죄는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중죄입니다. 국민과 전우에게 해를 입히는 이런 군인은 없어저야 합니다.
'피해자가 죽었으니,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 성추행죄를 추가해야 한다.'는 식으로 결과를 따지기보다 모든 진중범죄는 국군의 설치목적이란 기본이념에서 따져야 합니다.
군대가 적을 이롭게 하거나 아군에게 해를 입히는 일을 용납하면, 자멸합니다.
군대의 생명은 군기입니다. 군기란 큰 소리로 대답 잘하고, 모포가 각이 지도록 정리하고, 상급자가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군대의 목적에 충실하게 일하는 정신자세요, 태도입니다.
기밀누설, 장비나 물자 관리부실이나 낭비, 훈련부실, 근무부실, 재정이나 물자횡령, 부당인사, 폭력이나 인격모독, 진중음주 등은 모두 아군에게 해를 입히는 일입니다.
상급자의 요구라고 해서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상적인 직무수행에 관련된 지시는 명령으로 인정하고 따라야 하지만, 부당한 지시는 거부해야 합니다.
계급의 고하와 상관없이 모든 군인은 전우입니다.
지휘관이 평소에 부하들을 아꼈다면, 위기 때에 그 부하가 지휘관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 것입니다. 하지만, 평소에 부하를 아끼지 않고 무시하고 모욕하며 학대한 지휘관이라면, 외면하고 말 것입니다.
선후임을 떠나 적의 공격을 받거나 위기가 닥쳤을 때, 전우가 나를 지켜주어야 합니다. 평소에 그 전우를 적으로 만들어놓으면,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가 나를 구해줄까요? 나를 해치거나 외면할까요?
어리석은 사람은 주변사람들은 적으로 만들지만, 현명한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친구로 만듭니다.
군복무 기간은 세월허송이 아닙니다.
군복무기간은 인생과 세상을 배우는 기회가 됩니다. 국방부의 2년짜리 전문대학교에 진학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등생이 되어 졸업해야 합니다.
군대에서 자신을 시험하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성품, 의지, 체력, 지능 등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군대에서 배워야할 것도 많습니다.
군대에서 배우고 체험해서 얻은 지식이 사회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지도력을 배우고, 행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규칙생활, 정리정돈, 절약생활, 꾸물대지 않기 등 좋은 습관을 들이게 됩니다.
군대에서 지내는 동안, 나라와 민족에 대해, 부모님과 가족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어 애국자가 되고, 효자가 됩니다.
군복무 후에 복학한 학생들이 더 성실하게 공부합니다. 자기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사고방식을 갖게 되어 후회할 일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군복을 입혀놓으면, 본성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같은 조건인데, 적응하는 사람이 있고,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조건인데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군복무 기간은 자신에게 숨겨져 있는 본성을 찾아서, 버릴 것은 버리고, 고쳐야 할 것은 고쳐서 스스로를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군복무 기간은 사람을 보는 눈을 키울 수 있는 기간입니다. 군대에서는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야비한 사람, 강자 앞에도 당당하면서 약자를 돕고 위로하는 사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 기간 동안 내게 유익한 사람을 가려내고, 내게 해를 끼치는 사람을 가려내는 안목을 키울 수 있습니다.
하급자를 괴롭히면서 시간 때우기나 하고 있는 사람은 군대를 인생의 무덤으로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군복무를 통해 얻을 소중한 가치를 모르고 어리석게 처신하는 것입니다.
군부대에 뿌리박힌 악습이라도 누군가가 끊어버리려고 하면, 끊어집니다.
내 체험을 소개하겠습니다.
나는 1978년 여름에 입대하여 경기도 포천과 연천에 주둔한 포병대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이등병 시절, 우리부대가 군단의 군사훈련수준측정(ATT)에서 1위를 했습니다. 대대장에게는 최고의 성과요, 명예로운 일입니다. 어느 주일 아침, 대대장이 치하주를 보내며 주번사관이던 포대부관에게 포대원들에게 한 잔씩 직접 따라 주라고 했습니다. 아침점호 시간에 모두들 그 술을 기분 좋게 받아 마셨지만, 나는 거부했습니다. “저는 크리스천이므로 마시지 않겠습니다!”고 했더니, “대대장님이 하사하신 술인데, 입에 대기만 해도 된다, 잔이라도 받아라! 거부하면, 항명이다!” 라는 부관에게 “술을 마시는 것은 내 신앙양심에 어긋나는 일이고, 이제까지 술을 마시지 않았으므로 취할 수도 있습니다. 술을 마시라고 하시는 것은 정당한 명령이 아닙니다.”라며 거부했습니다. 이등병의 반란인 셈이었습니다. 이 일로 밉게 보인 탓에 포수로 지내는 6개월 동안 선임병들에게 엄청나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당시의 포대선임하사(상사)가 자신이 그 부대에 이등병으로 전입한 이래로 가장 고생한다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선임 중의 한 사람은 제대하고 1년이 지나 부대를 찾아왔고,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나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자신이 한 짓을 생각하고는 보복이 두려웠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술을 거부했던 그 일로 인해 부관은 나를 진짜 예수쟁이라고 인정해주었고, 가끔씩 답답할 때면,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 술에 취한 그 부관을 말려야할 일이 있으면, 선임들이 나를 데려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일병이 되고는 행정병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병장이던 어느 날, 전입한지 며칠 되지 않던 관측장교인 소위가 내게 자기의 군화를 닦으라고 발을 내밀기에 거부했더니, “그러면, 왜 포대장과 인사계의 군화는 닦아주느냐?”고 했습니다. “그분들은 같은 사무실의 직속상관이므로 우리가 자원해서 닦아드리는 것이지, 요구해서 닦아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관측반원에게 부탁하시면, 됩니다.”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사실 그 관측장교는 계급이 높으면 하급자에게 무엇이든 시켜도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군대에도 업무상 관할 범위가 있습니다. 포병중대의 행정사무실 근무자들은 포대장의 관할인데, 이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내가 근무한 부대는 군단직할포병으로 지금은 없어진 8인치 곡사포 부대였습니다. 장비가 모두 크고 무거워서 자칫 사고가 날까 무척 긴장해야 했고, 전역을 앞둔 선임병들 중에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선임병들이 간부들의 눈을 피해 후임병들을 집합시켜 곡괭이 자루로 매질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밤마다 불려나가서 계급순으로 맞는 행사를 치러야, 오늘은 끝났다고 마음 놓을 정도였습니다. 군대에 일찍 와서 상급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후배들을 괴롭히는 짓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일석점호 시간에 팬티를 벗게 하여 멍자국이 있는지 확인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선임병들은 멍이 들지 않는 부분만 때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주특기인 포와 탄약을 비롯한 여러 전투장비에 대해서는 교육을 반복해도 제대로 이해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했습니다. 머리를 써야 하는 일에는 무능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기가 죽는 때가 바로 교육훈련시간이었고, 가르치는 대로 척척 배워 잘 기억하는 머리 잘 돌아가는 고학력자들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래서 머리 좋은 사람들은 계산병, 사수, 부사수를 시켰습니다.
당시에 1년 정도 선임이던 선배들이 신설부대로 차출되어 버렸기 때문에, 2년 정도가 지나자 상병이던 우리가 거의 선임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동기로 친하게 지내던 두 사람과 의논해서, 우리가 그만큼 당했으니, 이제는 이 악순환을 끓고 부대분위기를 바꿔놓자고 제안했습니다. 우선 전입병 신고식을 없애고, 욕설과 폭력을 없애자고 했습니다. 지역특색이 나타나지 않도록 가능하면 사투리를 쓰지 말고 표준말을 쓰게 했습니다. 서서히 부대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어느 날 운전병이 전입해왔습니다. ‘전입병 신고식이 없어졌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신병은 항상 배가 고플 테니, 빵을 사주면, 좋아할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날 운전병들은 불안해하던 그 전입병을 데리고 PX에 가서 빵을 사줬는데, 손바닥만한 호떡을 20개나 먹었다고 합니다. 신고식에 대해 들어 불안해하던 그 신병은 선임병들에게 빵을 얻어먹고는 싱글벙글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신병은 부잣집 아들이었습니다. 그 후로 전입병에게 빵을 사주는 일은 새로운 전통이 되었습니다.
병장 때는 두 친구들과 의논하여 성탄전야에 커피를 돌리기로 하고, 재료를 사다두었다가 근무시간 조정을 해서 밤에 초소를 돌면서 커피를 돌렸습니다. 추운 겨울밤, 선임들이 갖다 주는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따뜻한 밤이 되었습니다.
밤마다 비명소리가 들리던 부대가 선임병이 후임병에게 빵을 사주는 부대로 바뀐 것입니다. 나는 제대명령을 받고 근무에서 제외되는 특혜를 누리는 것도 폐단이 된다고 여겨 전역하기 전날 밤에도 평소처럼 불침번 근무를 했고, 전역하는 날 부대원 하나하나와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눈 뒤 부대를 떠났습니다.
지금도 그 분위기, 그 전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