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위민, 보민, 애민’ 행정
지방자치 시대 행정의 기본은 서비스다. 중앙집권적 시대에서도 물론 행정은 국민을 위한 ‘야경국가’적 형태를 보였다. 국민국가가 자유민주주의로 발전하면서 공동체주의가 대두하고, 그 맥락에서 더불어 사는 복지국가가 대세로 나타나면서 지방자치에서의 주민 권익 보호가 실질적인 시대정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 자치행정은 따라서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해 전개되어야 바람직하다.
정부는 그래서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그 시행령에 따라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시민고충처리위원회(이하 ‘시고위’)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8년도부터 시작된 전국 자치단체별 ‘시고위’는 37곳이었으나 매년 점차 그 숫자가 늘어나면서 올해 5월 기준 85곳으로 증가됐다. 이는 전국 243개 지자체 중 85곳 35%에 불과하지만 맨 처음 보다 약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로 향후 더욱 늘어 날 전망이다.
이들 지자체 산하 ‘시고위’가 지난 6월 국민권익위원회 전국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결성하고 회의를 개최했다. 이른바 ‘시고위’의 활성화 방안 논의와 제도 개선에 대한 의견 수렴을 하기 위함인데, 전국 56곳 ‘시고위’ 대표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의견들을 쏟아 냈다.
이날 개진된 내용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대목은 ‘시고위’의 결정에 대한 행정부서의 태도였다. 주민의 고충 민원을 아무리 해결하고자 노력을 해도 자치단체 관련 부서에서 수용하질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무용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고위’의 시정 권고나 의견 수렴 등의 결정 사항에 대해서 관련 부서가 불수용을 하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시고위’에 대한 제도적 홍보가 미흡한 탓도 있지만 ‘시고위’ 자체의 권위가 미약하기 때문인데, 공무원 입장에서는 나름의 법과 원칙을 따른다는 속성 탓이다. 법과 원칙을 지키는 공무원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무원들의 오랜 타성과 습성은 민원인의 고충을 포용하지 못하는 행태다. 그냥 공무원 입장에서 행정적 원칙만 고수하는 행정편의주의가 물들어 있기 떄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민원인들의 고충 민원을 담당하는 감사실에서의 민원 해결도 지지부진한 셈이고, 그래서 감사실에서의 민원 처리를 민원인들이 불신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같은 공무원들끼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자조가 터지면서 지금까지 불신이 남아있는 것이다.
‘시고위’는 그러나 민간 전문인들이 모여서 중립적으로 고충 민원을 해결하는 자세이기 때문에 오히려 민원인들의 신뢰와 기대 속에, 보다 효율적인 민원 해결을 낳을 수도 있는 것인데, 이에 대한 공무원들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무원들이 고충 민원을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민원인 주장이 일리는 있으나 법과 규정이 명확하지 않으면 움직이질 못하는 경우도 있고, 또한 민원인 사정이 그럴듯해도 사정에 따른 융통성을 발휘할 수가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자치단체 부서 간 의견이 다를 수도 있으며, 과거 업무 담당자의 불명확한 처리에 대해 책임지고 싶지도 않고, 특히 악성 민원 같은 경우에는 아예 처리할 엄두도 못 내는 습성이 배어 있다.
사실 고충 민원에 대한 ‘시고위’의 시정 권고 또는 의견표명 등의 이행은 「부패방지 및 권익위」법에 따라 적극 행정 면책기준을 적용하도록 되어있기도 하다. 실제로 2019년 6월부터는 자치단체의 자체 감사 규정을 개정토록해서 시행하는 자치단체도 여러 곳이 있다.
이러한 규정은 오히려 공무원들의 융통성을 증가시켜 민원인의 사정과 상황에 맞는 민원 해결을 능동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실제적 행정 효율성 제고는 물론 민원인의 억울함 또는 아쉬움을 해소하는 위민 행정이 될 수 있는 길이다. 공무원들이 ‘시고위’ 결정을 핑계로 민원인의 고충을 해소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본래 주민을 위해 행정이 있는 것이지, 행정을 위해 주민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닌 것이다. 또한 행정은 주민의 권리를 구제하여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그렇다면 ‘시고위’ 설치와 운영의 기저에는 주민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행정은 서비스가 기본이고, 그 대상은 당연히 주민이기 때문에 ‘위민과 보민 그리고 애민’의 행정 서비스가 마땅히 전개되어야 한다.
격암유록(格庵遺錄)에 나오는 성신애제(誠信愛濟)가 바로 “만물에 정성을 다하면 사랑하게 되고, 그러면 모든 것을 건널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앞으로 전국 ‘시고위’의 활성화를 위해 행정 공무원들이 민원인을 사랑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것이 행정 서비스 발전에 첩경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