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인정한 야베스의 기도 본 성경은 (B.C..458년)에 있었던 제2차 포로 귀환이 이루어진 직후인 B.C.450년경에 기록하였다. 즉 백성들은 외세 침략이라는 외형적 피폐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제사장들이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기보다는 오히려 각종 이권문제(느13:4,5절)에 관여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들의 생활 문제가 있는 정상적인 십일조 생활을 잘못 가르치고 왜곡시킴으로서 정상적인 제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이는 하나님은 1-9장의 족보가 말해 주듯이 택한 백성의 구원을 위한 역사 자체는 택함 받은 백성의 잘잘못을 떠나
하나님의 의도대로 묵묵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제시하신다. 그러므로 택한 백성들은 그 시대에 축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만물의 주권지인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기록하고
있다. 이 삶이란? 하나님 중심의 순종적 생활로서 내 삶이 불완전 하지만 다윗처럼 참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애쓰는 신앙을 말한다. 오늘 설교는 이러한 배경을 중심으로 성공적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한자]로 인정 받은 야베스의 기도를 살펴 보려
한다. 여기서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 많은 이름들 가운데서 특별히 조명을 받게 하였을까? 당시는 이름을 지을때 그 사람의 성격과 경험을 근거로지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추 할수 있는것은 야베스는 부모에게나 자신에게 무겁고
두려움 짐을 가지고 태어 난 것을 알수 있다. 야베스는 이아픔을 안고 살면서 자신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며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만물의 주이이신 하나님께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기도하고 순종하며 적극적인 신앙을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가 어떤 기도를 하였기에 그를 <존귀한 자>라고 소개하고 있을 까? 다른 본문에서는 야베스에 관한 내용이 등장하지 않고, 본문에서도 10절의 내용 외에는 없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의 [아뢰어]는 히브리어로 “카라”라고 하는데 이뜻은 다급할 때 “부르
짖는다”(시34:6,81:7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고질적 곤궁](창4:26절)과 관련이 있다. 즉 야베스에게는 타고난 장애를 안고 있음을 시사 한다. 이러한 야베스의 기도 내용을 살펴 보자 훌륭한 신앙인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힘쓰며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신다는 약속을 믿고 기도한다.(사58:9절) 야베스는 인생사 전반적인 것을 하나님께 맡길 줄 알았고 그 앎을 기도 연결하여 자신의 많은 부분을 하나님께 맡기며 간절히 기도하였던 것이다. 복이란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짐을 알고 있었다. 이 말은 땅의 경계를 넓혀 달라, 즉 부요롭게 해주시기를 비는 내용도 되지만은 하나님의 사역을 함에 있어서 역량을 넓혀주시기를 바라는
기도이기도 하다.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할 수 없다고 하는 것보다는 역량을 넓혀 주셔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케 하옵소서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신다. “기도하지 않고 성공과 능력을 바라는 것은 죄악”이다. 직장이든 사업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정 당당하게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구할
때 반드시 이뤄진다. 야베스는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도 자신이 사명을 감당 할 수 있도록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 하였다. 그러나 ‘야베스의 기도’를 잘이해 하여야 한다.
‘지경을 넓혀 달라’는 기도문 속에 과연 어떤 소원을 담겨 있을까? 하나님은 기도에 사용하는 말이 성경에 나온다고 하여 기도의 내용이나 기도자의 태도와는 상관없이 자판기같이 기계적으로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다. 사랑의 구체적인 방법은 율법 또는 계명에 대한 순종이다. 순종의 결과로 주어지는 언약적 축복은 ‘너희의 수고가 그리스도 안에서 헛되지 않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바울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야베스는 자신이 택한 백성으로서 사명을 감당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어여뿌게 보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내가 순종한 것은 나를 축복의 자격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수혜자로 만들뿐이다. 나를 축복의 수혜자로 만드는 것은 나의 공덕이 아니라 나를 어여삐 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근심(히,오체브)”라는 의미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은데 자신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내적 근심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이것도 저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그의 심정은 하나님이 간섭 하여 달라고 요구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제사장적 심정의 신앙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동안에도 환난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때에서 환난에서 벗어나고 근심에서 벗어남을 알았습니다.
“허락하다”(히, 야베)는 뜻은 “가져오다”“이루다”이다. 야베스의 마음의 세계를 인정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창고를 열어 가져가게 하셨고
야베스의 뜻을 이루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리는 자는 기도의 응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존귀한 자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다.
성도는 모두 존귀한자이다 그러나 존귀한자가 되려면 야베스 처럼 자신을 의지하는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신앙의 실천이
중요하다. [기도의 예화] 큰 기도를 한 사람 |
출처: 청산 원문보기 글쓴이: 청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