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면(珍山面) 읍내리(邑內里)
진산면의 행정적 중심지로 사면을 산으로 가렸으나 그 산 안쪽으로 넓게 펼쳐진 진산분지의 남동쪽 한편에 읍내리는 위치한다. 돌로 쌓은 산성이 오랜 고적으로 손꼽힌다. 구전에 따르면 백제시대 초기 근초고왕 때 쌓은 산성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나 확실치 않다.
인류의 정착은 백제 이전부터 이며, 백제 때는 진동현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황산군에 딸린 영현에 속했었다. 그리고 이어 진례군의 영현에 속했었다.
현재 읍내리의 풍속에 따르면 매년 정월달에 거리제를 지낸다. 그 거리제의 전통적 유래로 보아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 지역을 지나는 길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유숙하고 지나갔다는 지역임을 알 수 있으며, 일찍부터 이 지역에 장터가 개장되었던 것도 알 수가 있다.
고려 때에도 진례군의 영현 고을을 지속해 오다가 고려말기 공양왕 때에 잠시 고산현감이 겸직해서 다스리는 고을이 되었었다. 조선시대 초기 태조 때에는 어태(御胎)를 모심으로써 승격된 진산군의 행정중심지이다. 비록 그 규모에 있어서는 금산군보다 작았을지라도, 오히려 국가적 차원의 장소인 태실을 모시고 있음으로 해서 그 상징적 의미는 금산군보다 더 상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볼 수 있다. 지진주사(智珍州事)의 고을로 옥계부(玉溪府)에 속했으며 그 후 태종 12년(1412)부터는 진산군 군내면의 지역이었다. 이곳에 군청이 자리해 있으므로 읍내(邑內)라고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남상리, 서상리, 중리, 동리, 북리, 방축리와 신촌, 외교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읍내리라 하고 금산군 진산면에 편입되었다. 조선시대 진산군 때의 관아 건물로 동헌, 내아, 향사당, 군사, 작청, 추청, 장청, 관청, 서청, 통인청, 사령천, 관노청, 장대, 형옥, 객사가 있었던 것으로 진산지에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하나도 없다. 군수의 집무청이었던 동헌(東軒)은 1914년 이후 진산면사무소로 사용하다가 1932년 5월 큰 화재가 있어 불타서 옛 건물은 전소되었으며 진산객사는 진산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사용하다가 건물이 낡아서 서서히 무너져 간 것으로 사료된다. 읍내리 소재 진산초등학교는 1912년 5월 1일에 설립되었으며 그 후 한참 뒤에 진산중학교가 1953년 4월 18일에 설립되었으며 진산고등학교도 1974년 12월 27일에 설립되었다. 읍내리의 면적은 6.26㎢이고 진주하씨(晉州河氏)와 나주진씨(羅州陣氏), 문화유씨(文化柳氏)가 많이 세거하는 지역이다.
자연부락(自然部落)
<방축리, 다리골, 심방골, 장터, 읍내>
방축리
읍내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17번 국도와 금산으로 통하는 지방도로 우측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 안에 있는 바위가 물을 막고 있다해서 방축리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진산장터가 있었던 마을이다. 옛날에 상인들이 걸어 다니며 장을 볼 때에 보부상을 비롯한 여러 상인들이 장을 보고 쉬어가던 마을로 주막도 많았던 마을이다. 마을에서는 거리제를 지낸다. 제단은 도로변에 서 있는 느티나무와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느티나무다. 거리제의 풍습은 오래전부터 전해오던 풍습으로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형식이다. 위쪽으로 읍내저수지라고 부르는 작은 저수지가 있었다.
읍내
방축리 위쪽에 있는 마을을 통털어 읍내라고 부른다. 진산면의 행정기관도 모두 읍내마을에 있는 셈이다. 옛날에 군청이 있을 때부터 읍내라고 불렀다. 이 마을에서 부암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당산재라고 부른다. 고개에 산제당이 있어서 옛날부터 산제를 지낸다. 또한 읍내 남쪽에 있는 골짜기 압석골 그 위쪽에 있는 골자기에 불당이 있었으므로 이 골짜기는 불당골이라고 부른다. 읍내 동쪽에 있는 골짜기는 춘척골이라고 부른다.
장터
진산읍내에 장터라는 마을이 있다. 옛날에 1일과 6일에 장이 섰던 마을이라 장터라고 부른다. 진산장터에서 주로 거래되었던 물품은 인삼, 석주황, 무쇠, 동자석, 꿀, 송이버섯, 당귀, 사삼, 담배, 문종이, 대추, 감, 베, 보리, 콩 등이었다. 또한 진산군에서 진공하는 물품으로는 꿩, 백포, 곶감, 보리, 부채, 새쌀 등이었다.
심방골
읍내 서북쪽으로 자리한 마을을 심방골이라고 부른다. 오대산을 서북쪽에 두고 있는 산골마을이다.
다리골
심방골 남쪽으로 깊은 산골짜기에 가려있는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다리골이라고 부른다. 마을로 들어서기 전에 다리골저수지가 있는 마을이다. 마을 지형이 반달과 같다해서 다리골이라고 부른다.
달 모양의 형국에서는 보름달(만월(滿月))보다 초승달이나 반달 모양을 더 길하다고 보는데, 이는 초승달이나 반달이 보름달을 향해 점차 커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수명, 관직, 기운 등이 더욱 높아질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보름달은 당장은 최고의 정점이나 곧 기울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