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떡이란 명칭은 원래 병자병餠子餠이라 불렀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빈자떡이 되고,
다시 빈대떡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추정되어 진다.
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는 빈자떡의 어원이
중국음의 빙자(병정 餠 )에서 온 듯 하다고 하였다.
이 음식의 유래에 관하여는 본디 제사상이나 교자상에
기름에 지진 고기를 고배할 때 밑받침용으로 썼는데,
그 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되어 빈자貧者떡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당시 한양 정동貞洞에 빈대가 많다고 하여 빈대골이라 하였는데
이곳에 빈자떡 장수가 많아 빈대떡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당시의 세도가에서 빈대떡을 만들어
남대문 밖에 모인 유랑민들에게
“어느 집의 적선이오.”
하면서 던져주었다고 한다.
규곤시의방閨 是議方에서는 껍질 벗긴 녹두를 가루 내어 반죽 하여
번철의 기름이 뜨거워지면 조금씩 떠 넣고
그 위에 껍질 벗겨 꿀로 반죽한 팥소를 놓고
그 위를 다시 녹두반죽으로 덮어 지진다고 하였다.
■규곤시의방閨是議方:현종11년(1670년) 이현일의 어머니
인동장씨가 쓴 조리서로서 음식디미방이라고도 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조리가공서이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는 같은 방법이지만,
위에 잣을 박고 대추를 사면에 박아 꽃전모양으로 만든다고 하였다.
지금의 빈대떡은 달고 화려하며 향기로운 떡이 아니라
소금 으로 간을 맞추고 팥소 대신 고기 채소 등을 섞어 만드는 음식이 되었다.
특히, 평안도의 빈대떡은 그곳 명물 음식의 하나로
지금 서울의 빈대떡에 비하여 크기가 3배나 되고 두께도 2배가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