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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의 학문적 성격: 규범적 접근 방법을 중심으로
이돈희(서울대학교 교수)
1. 제기된 몇 가지 문제
교육학이 하나의 규범 과학이라는 생각은 오래 동안 교육학자들을 지배해 왔다. 말하자면, 교육학은 교육의 제도나 활동이 추구하는 이상과 목표, 즉 교육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원리의 체계와 이를 정당화하는 이론의 조직이라는 생각이 전통적으로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현대 실증주의 철학의 전개와 경험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여러 차례의 도전을 받아 오기도 하였다. 그것은 주로 가치의 객관적 인식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야기시킨 결과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탈규범 과학적인 성향을 띤 주장, 즉 교육학을 일종의 경험 과학적인 사회 과학의 하나로 생각하려는 경향은 자연 과학의 방법론을 사회 과학에 적용하는데 대한 강한 저항에 부딪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미와 방법의 여러 가지 한계성으로 인하여 충분한 설득력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이처럼 난맥상에 빠진 교육학의 성격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쟁들을 정리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이러한 난맥상은 교육학의 과제에 대한 인식을 지배하는 논리에 있어서 혼란이 있기 때문임을 지적하고자 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에 따르는 파라다임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보다 명백한 말로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교육학에 있어서 교육 활동을 규범적으로 지배하는 원리의 탐구와 이를 정당화하려는 이론의 논리와 교육 현상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탐구와 그 이론의 논리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의 제목으로 주어진 규범 과학으로서의 교육학의 성격을 그것에 따라서 명료화하고자 한다.
교육학이 헤르바르트(Herbart)에 의해서 하나의 과학으로 시도되었을 때 그것은 규범 과학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는 교육학을 교육 목적론과 교육 방법론으로 나누어 체계화하고 전자는 윤리학에, 후자는 심리학에 기초를 둔다고 하였다. 그것은 교육이 어떤 가치, 특히 도덕성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윤리학적 특성을 지니며,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적 원리는 심리학의 이론에 따라서 설명되는 것이라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교육학을 교육 목적론과 교육 방법론으로 양분하는 사고는 교육학의 발전 과정에서 일관되게 있어 왔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교육학은 규범 과학적 특징을 유지해 왔다. 물론, 교육 목적론이 헤르바르트가 한정한 윤리학에만 그 기초를 제한받고 있었던 것이 아니며, 교육 방법론이 심리학에만 그 기초 이론을 구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교육학이 하나의 규범 과학인 한에서는 가치의 이론과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적 원리의 탐구로 그 특징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실증주의 철학과 경험 과학의 발달은 가치 인식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의 증대와 더불어 사회 과학의 제분야에서 가치의 문제를 배제하려는 경향을 자극하였다. 사회 과학은 제반 사회 현상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뿐이며, 당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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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에 대한 탐구는 과학과는 다른 종류의 지적 활동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으로 인하여 사회적 현상의 설명을 위한 사회 과학의 각 분야는 자연 과학의 방법론을 원용하여 실증적 경험 과학으로 그 특색을 나타내는 개별 과학을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당위적 원리를 논하는 문제들은 일종의 철학적 탐구의 영역에 넘겨 주는 경향을 타내었다. 이러한 동향과 함께 교육학도 일종의 사회 과학이라고 분류하고 전통적인 가치 탐구의 과제를 폐기하려는 경향의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오코너(O’Connor)의 주장과 정범모의 교육학이다.
오코너는 교육이 가치를 실현하려는 활동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가치의 객관적 인식이 불가능하므로 객관성을 지향하는 과학으로서의 교육학에서 가치의 문제를 제외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각주 1: D. J. O’Connor, “The Nature and Scope of Educational Theory.” G. Langford and D. J. O’Connor(ed.). New Essay in the Philosophy of Education (London: Routledge and Kegan Paul, 1973), pp. 47-65.] 그리고 정범모도 가치의 논리와 사실의 논리는 별개의 것으로서 교육학은 교육력, 즉 인간변화, 특히 행동의 능률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힘의 과학적 체제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각주 2: 정범모, 『교육과 교육학』(서울: 배영사, 1976), pp. 15-39.] 이러한 주장은 적어도 세 가지의 쟁점을 유발시킨다. 하나는 가치 인식은 참으로 객관화될 수 없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과학이 자연 과학의 방법론으로 타당하게 탐구될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셋째는 교육학이 사회학, 심리학, 경제학과 같은 여타의 사회 과학과 같은 종류의 것이냐의 문제이다.
첫째의 문제에 관해서 현대의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주장을 필두로 하여 제시된 가치 인식의 회의론에 대한 도전이 수없이 가해지고 있으나 사실상 설득력있는 이론은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다. 하나의 문화 체제를 공유하고 있는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지향하는 가치관과 가치 판단의 기준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문화적 상대성에 의해서 정당화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가치 기준의 객관적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가치에 관한 객관적 인식과 그것에 준하는 가치실현의 원리는 어떤 차원의 것이든지 간에 공유된 문화 체제의 범위 내에서 우선 가능하다고 밖에 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가치에 관한 논의는 당위로서의 가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실로서의 가치에 관한 것일 따름이다. [각주 3: 가치를 ‘당위’로서 이해하면 ‘가치로운 것’, ‘바람직한 것’을 뜻하게 되나 ‘사실’로서 이해하면 ‘추구된 것’, ‘원망된 것’으로 이해된다.]
둘째의 문제에 관해서는 과학 철학자들 간에 인간 세계에 관한 역사적·사회적·심리적 설명의 가능성의 문제를 두고 매우 복잡한 논쟁이 있어왔다. 그 논쟁들은 부분적으로 가치 인식의 객관성 문제와도 관련이 있지만, 주로 인간의 행위와 행동, 그리고 역사를 지배하는 법칙적 제일성(第一性)의 유무에 관한 의견의 대립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인간은 자신이 어떤 법칙에 지배되어 행동하거나 생활한다는 것을 의식할 때 그 법칙에서 탈피하기 위한 의지를 가질 수 있고 그 실현을 성공시킬 수가 있다. 물론, 엄격한 결정론자들은 그 의지의 발동 자체부터가 어떤 법칙성에 지배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의지의 자유는 그 부정도 긍정도 정당화하기 어려운 신비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비록 자유의지설이 부정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만약에 인간의 행위, 혹은 행동에 규칙성과 제일성이 없다면 어린 아이들이 성인의 생활에 적응할 수가 없고 사회적 관계도 성립되지가 않는다. [각주 4: Alan Ryan, The Philosophy of the Social Sciences (London: Macmillan Press, 1970), p. 101.] 인간의 사회적 학습은 바로 인간 행동의 규칙성을 인지함으로써 가능하고 그것에 의하여 동료 인간에 대한 어떤 기대와 예측을 한다. 그러한 기대와 예측이 없는 사회적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사회적 과정에서의 문화는 바로 인간 생활에서의 규칙성과 제일성을 일컫는 것 [각주 5: 이돈희, “규범 과학의 논리적 특성과 형식 -교육학을 중심으로-”, 한국교육학회, 『교육학연구』, 17권 2호(1979), p. 79 (75-91).]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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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규칙성과 제일성을 상정하지 않으면 사회 과학은 가능하지가 않다. 물론 인간의 행동과 생활을 지배하는 규칙성과 제일성이 자연 과학적 탐구의 것과 동일한 종류의 것이냐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셋째의 문제에 관해서는 이렇다할 논쟁거리로 대두된 것은 별로 없다. 단지 넓은 의미의 사회 과학 속에 기초 과학과 응용 과학이 있다고 보고, 일차적으로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개별 과학들이 ‘기초학’이라면 그것을 응용하여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의 실현이나 문제의 해결을 위한 원리를 탐구하는 개별 과학을 ‘응용학’이라고 구분함으로써 교육학을 그 후자에 소속시키는 경향에 대해 새로운 교육학의 파라다임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한국의 교육학계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다. [각주 6: 김신일, “교육학의 실천 이론과 과학 이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신문화연구』(1984 봄), pp. 34-40; 이돈희, “교육학의 2원적 성격”, pp. 321-364; 장상호, “교육 과학의 좌표”, pp. 365-402, “교육 과학 연구의 국내 동향”, pp. 402-460, 이상 3편의 논문이 『한국 교육학의 성장과 과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에 실려 있음.] 말하자면, 교육 행위의 원리를 탐구하는 것과 교육 현상의 설명을 가하려는 것은 그 과제에 있어서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앞서 설명한 오코너와 정범모가 교육학에서 가치의 문제를 제외하려고 한 것과는 그 성격에 있어서 다소 다르다. 오코너와 정범모의 경우에는 가치의 객관적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들면서 가치의 문제를 교육학의 논외(論外)로 하려는 입장인데 비하여, 교육학의 2원적 성격을 논하는 사람들은 교육적 가치의 실현을 일차적으로 겨냥하는 탐구와 교육 현상 그 자체의 과학적 이해를 위하여 이를 객관적으로 설명하려는 탐구는 서로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자를 규범적 교육학이라고 한다면 후자를 서술적 교육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규범적 교육학은 교육의 규범적 실천 원리를 개발하는 것이라면, 서술적 교육학은 교육의 설명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자를 ‘교육 실천학’이라고 한다면 후자를 ‘교육 과학’이라고 칭할 수가 있다. 그리고 전자는 교육의 실천 현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봉사한다면 후자는 사회 과학도들의 커뮤니티와 교육의 객관적 이해를 필요로 하는 대중에 봉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를 위해서는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등이 응용될 기초 학문이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인접 학문에 불과하다.
서술적 교육학의 방법론적 가능성에 관해서는 다른 연구물을 참조하기 바라고 여기서는 이 논문의 주제인 규범적 접근에 의한 교육학, 즉 ‘규범적 교육학’의 논리를 검토하기로 한다. 필자는 이미 교육학의 2원성을 주장한 바가 있고 서술적 교육학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논한 바가 있으므로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규범적 교육학은 서술적 교육학이 별도로 성립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2. 규범적 교육학의 논리
규범 과학이라는 말은 넓게도 이해되고 좁게도 이해된다. 가장 좁게 이해되었을 경우에 가치 체계의 실현을 위한 원리들을 개발하거나 그 가치 체계의 실현 과정에서 당면하는 문제 해결의 방법들을 모색하며, 그 가치 체계를 정당화하는 이론을 탐구하는 학문을 규범 과학이라고 한다. 법학이나 교육학이 그 대표적인 것이라고 여겨져 왔다. 이러한 규범 과학은 일차적으로 가치의 실현과 문제의 해결, 그리고 가치 주장의 정당화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의 설명을 일차적 특징으로 하는 서술적 학문들에서 개발된 이론을 응용하는 응용 과학적 특색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규범 과학은 일반적으로 사회 과학을 응용하는 학문의 이름으로 알려져 왔으나, 가치의 실현에 도움을 주는 기초 학문의 범위는 사실상 한정되기가 어렵다. 예컨대, 법학에서의 법의학은 의학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교육학에서의 각종 교수 공학적 원리나 기재의 개발은 광범한 자연 과학적 기초 이론을 동원할 수가 있다.
가치의 실현, 욕구의 충족, 문제의 해결 등 가치 지향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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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 경영학, 사회복지학 등도 이 범주에 속하며 자연 과학을 응용하는 공학, 의학, 농학 등도 넓은 의미의 규범 과학에 속한다고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범 과학들이 다른 기초 과학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응용 과학이 규범 과학이라고 할 수는 없다. 천문학과 기상학은 그 특징에 있어서 상당히 응용 과학적인 특색을 지니고 있지만 서술 과학적 특징을 일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규범 과학으로서의 교육학, 즉 규범적 교육학의 가능성은 적어도 두 가지 이론적 가능성에 의존해서 성립한다. 하나는 가치 개념과 가치 기준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가치 이론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과학의 범주에 속하는 서술 과학, 즉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역사학 등의 이론이 과학으로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전제 조건은 규범 과학이 가치의 실현, 욕구의 충족, 문제의 해결 등 가치 지향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요청되는 것이며, 후자의 전제 조건은 규범적 교육학이 응용 과학의 일종이기 때문에 요청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전제 조건에 관한 문제는 이미 앞에서 간단히 검토한 바가 있지만 사실상 많은 논쟁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 복잡한 논쟁들을 하나 하나 검토할 여유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비록 필자가 그 논쟁을 해소하기 위한 이론을 전개한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의 반론과 새로운 쟁점을 유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실용적 관점을 취하기로 한다. 즉, 논쟁의 원천적 문제는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규범 과학이 현실적으로 우리의 생활에 유익한 학문이며 우리의 지적, 사회적 문제의 해결과 창조적 노력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실로 규범 과학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적 논쟁들은 그것의 불필요성이나 완전 불가능성을 거론하지는 않는다. 대개, 규범 과학적 지식의 확실성과 객관성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규범 과학은 일반적으로 (1) 어떤 가치로운 현상이나 사물이 발생토록 하거나, (2) 가치롭지 못한 현상이나 사실을 제거하거나, (3) 가치로운 현상이나 사물의 소멸을 방지하거나, (4) 가치롭지 못한 현상이나 사물의 발생을 방지하는 원리의 개발을 주된 과제로 삼으며, (5) ‘가치로움’을 정당화하는 일을 포함한다. [각주 7: 이돈희, “규범 과학의 논리적 특성과 형식”, 『전게서』, p. 82.] 이러한 특징을 고려한다면 규범 과학은 어떤 문화 생활권의 가치 체계를 관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비록 어떤 문화권에서 추구되는 가치 체제가 참으로 가치로운 것이냐의 가치 철학적 문제는 해결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지만, 한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개체들의 집합이 존재한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 체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므로 그 문화 체제를 유지시키는 가치 체제 혹은 가치관이 따르고 있다. [각주 8: S. E. Toulmin도 The Place of Reason of Eth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0), pp. 148-149에서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단지 그 문화 체제를 지배하는 가치 체제 혹은 가치관의 상대성 여부에 관한 가치 철학적 논쟁은 계속될 수가 있다.
규범적 교육학의 경우에도 적어도 한 문화권에서, 혹은 상당한 정도로 한 문화권을 초월해서, 인간 사회가 공히 추구하는 교육관이 있고 그 가치 체제를 둘러싼 학문적 대화가 가능한 한에서는 그 성립이 정당화될 수가 있다. 더욱이 현대 사회는 문화권 간의 교류가 빈번하고 즉시적(卽時的)인 상황 하에 있다. 어떤 교육관의 경우에 그것을 공유하는 문화적 판도가 크게 확장될 가능성을 가지기도 하며, 특수한 가치관이나 교육관도 문화권을 초월하여 공감대를 형성할 수가 있다. 예컨대, 어떤 종교적 세계관에 따르는 가치관이나 교육관은 한 문화권에서 전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기도 하지만 다른 문화권에서의 동조자들을 가진다. 이러한 가치관이나 교육관은 반드시 하나의 단위 사회에 한정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이나 다른 부문의 가치들에 관한 논의나 대화의 세계는 초문화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화권을 초월하여 공유하는 가치관이나 교육관이 넓으면 넓을수록 규범적 교육학은 문화적 특수성에서 벗어나서 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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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지향할 수가 있게 된다.
규범적 교육학은 문화적 특수성에 일차적으로 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보편성을 지향할수록 개발된 원리들의 영계(領界)가 넓어지며 그만큼 이론으로서의 작용력이 증대된다고 할 수가 있다. 이론적 작용력이 미치는 영계가 좁을수록 한 문화권이 가지는 교육관에 충실할 수는 있지만, 이론으로서 가지는 보편성과 영속성은 한정된다.
규범 과학에서의 명제는 객관적 인식이나 판단의 기준에 의해서 가치 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든지 없든지 간에, 그리고 문화적 상대성에 의존하든지 초문화적 절대성에 근거하든지 간에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가치 명제이거나 가치 명제로 환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러나 가치 명제만으로 규범 과학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예컨대, 규범적 교육학의 한 명제 ‘인격의 통합성을 기하기 위하여는 개방적 사고력을 신장시키는 것이 좋다’라는 것을 두고 생각해 보자. 이 명제는 의미론적 특징에 있어서 가치 문장이다. 그것이 나타내고 있는 가치 주장은 복합적이다. 즉, 인격의 통합성이 하나의 교육적 가치로 전제되고 있으며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적 가치로서 개방적 사고의 신장을 들고 있다. 인격의 통합성은 교육 철학적으로 정당화되어야 할 것이지만 개방적 사고와의 관계는 심리학과 같은 서술 과학의 이론에 의해서 설명되고 또한 정당화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인격의 통합성을 기하는 데 있어서 개방적 사고가 과연 어떤 기여를 하며 어떻게 기여하는가는 심리학적 설명을 요한다는 것이다.
보다 엄격히 규범 과학과 서술 과학의 관계를 밝혀 보면 다음과 같이 나타내어진다. 즉, 어떤 교육학적 명제 X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1) X는 가치 명제이며 그것은 교육적 가치 체제와 논리적 일관성을 가진 것이다.
(2) X는 논리적으로 가능한 진술이다.
(3) X는 서술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법칙에서 도출된 명제에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4) X는 실현되기에 기술상의 결함을 가지고 있지가 않다. [각주 9: 이돈희, 『전게서』, p. 86.]
먼저, (1)의 조건은 규범 과학적 명제의 본질적 특성으로서 가치관이나 교육관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2)는 과학적 진술의 논리적 조건이고, (3)은 서술 과학적 지식의 응용을 위한 조건이다. (4)는 규범 혹은 가치의 실현을 위한 실천적 조건이다. 여기서 (3)의 조건을 보다 자세히 설명하면 이러하다. 규범 과학에서의 가치 명제는 가능한 세계(비록 현실적으로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에서의 기대된 현상의 진술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대된 가능한 현상은 서술 과학에서 밝혀진 법칙성이 적용되는 사례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가치 명제는 공상적인 것을 원망(願望)하는 것일 따름이며, 그 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어떤 아동으로 하여금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교육적 기대 혹은 목표라면, 그것은 그러한 아동에게 그 일이 가능하다는 심리학적 법칙성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그 기대된 바 그것이 심리학적 이론을 적용받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규범 과학적 명제 체제는 가치 체제에 의해서 평가된 서술 과학적 명제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규범 과학의 명제는 가치 체제에 의한 타당성과 서술 과학적 법칙성에 의한 가능성을 그 최소한의 조건으로 한다. 그러나 그 어떤 현상, 어떤 영역의 사실을 다루느냐에 따라서 규범 과학을 특징짓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치, 어떤 가치 체제에 관련되어 있느냐로 그 특징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규범 과학의 가능성은 그것이 의존하는 서술 과학의 가능성과 거의 운명을 같이 한다고도 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사회 과학 자체의 가능성 문제는 규범적 교육학의 가능성 여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닐 수가 없다. 사회 과학의 가능성 문제는 앞에서 논의한 바대로 많은 논쟁점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문제이지만, 그것은 주로 사회 과학에서의 방법론이 자연 과학의 것과 동일한 종류의 것일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며, 또한 엄격한 법칙 정립적 과학으로 성립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이 말은 역사적·사회적·심리적 현상을 지배하는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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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성이나 제일성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주장을 특징으로 하는 극단적 회의론만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사회 현상에는 적어도 어떤 경향성이 있고 그것이 어떤 수준의 예언을 가능하게 한다면 그것은 그런대로 일종의 과학적 탐구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된다.
3. 규범적 교육학의 수준과 영역
규범적 교육학이 실천 원리의 개발을 일차적으로 중시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현장의 기법에 관한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적어도 거기에는 세 가지 수준의 사고를 우리는 식별해 볼 수가 있다.
첫째, 교육에서 추구되는 기본적 가치 판단의 기준, 그리고 거기에서 도출된 가치 체계의 정당화에 관한 이론은 사실상 교육 현장의 구체적인 문제와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 물론 그것은 종국적으로 현장의 모든 실천적 과정을 통제하고 모든 구체적 사태에서의 판단에 대한 기준을 제공할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는 잠시 현실과 떨어져 있는 셈이다.
둘째, 이러한 고답적 이론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실천 현장의 여러 가지 기법을 개발하는 일이 있다. 이러한 기법들은 많은 경우에 실제의 경험이나 현장의 실험적인 시도를 통하여 개발되기도 하고 기초 과학의 이론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된 아이디어의 도움을 받아 개발되기도 한다.
셋째, 위의 두 가지의 중간에 위치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연구 활동이 있다. 그것은 현장의 여러 가지 기법들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거나 이론적으로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실천적 원리라고 할 수 있고, 교육적 가치 체제의 실현을 위한 원리를 서술 과학의 도움을 받아 이론적 차원에서 개발한다는 점에서 이론적 원리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중간의 이론은 정당화된 가치 체제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규범적 특징을 지니며, 사실적 가능성과 엄격한 체제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과학적 특징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규범적 교육학에 이 중간 차원의 것이 없다면, 그것은 이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실현 가능성이 없는 교육적 가치에 관한 논의나 잡다한 기법들의 무조직 상태를 교육학이라고 하게 된다. 이 중간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규범적 교육 이론은 철학적 사고에 머물지 않고 과학적일 수 있으며, 또한 잡다한 기법들의 집성체로 머물지 않고 조직화된 이론적 체제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규범적 교육학을 영역별로 분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수 있겠으나, 필자의 견해로는 세 가지 묶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편리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교수학’이다. 여기서의 교수학은 교수의 과정이 지향하는 교육적 가치 체제에 관한 논의와 교수될 내용을 조직하는 원리인 교육 과정에 관한 연구와 교수 행위 그 자체의 절차나 방법의 조건에 관한 이론을 포함하는 광역의 것이다. 둘째는 ‘교육상담학’이다. 이것은 교육 대상자 개체의 인격적 성장과 정신적·신체적 건강의 관리, 그리고 사회적 진로와 역할과 그 의미를 발견하는 일을 도우는 인격체의 관리 원리의 전반을 포괄하는 것이다. 셋째는 ‘교육행정학’이다. 이 영역은 교육적 이상과 가치를 실현하는 교육 행위의 제도적 조건의 당위적·전략적 체제를 개발하는 연구의 전반적 영역을 포괄한다.
종래에 교육학을 교육사, 교육철학, 교육심리학, 교육사회학, 교육행정학, 교육 과정 및 교수의 이론으로 나누어 왔으나, 그것은 교육학의 응용 과학적 특징에서 나온 것으로 교육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규범 과학적 특징과 교육 현상의 과학적 설명을 위한 서술 과학적 2원성을 부각시키지 못한 초점 흐린 영역 구분의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