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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과 정대세
2010. 6. 26.
정창인
백낙청씨가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한국정부의 조사발표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였다. 합리적 부정이 아니라 단지 북괴의 거짓 선전과 선동과 그 지령에 따라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백낙청씨는 한국의 알려진 지식인이다. 서울대학교 교수이며 <창작과 비평> 발행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친북좌파정권 하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그 때까지는 지하에 숨어서 활동하였다.
우리가 지식인이라고 할 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진실을 말하고 인권을 대변하며 불의에 항거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백낙청은 그와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진실을 외면하고 북한동포의 인권을 외면하며 김정일의 독재에 굴복하여 그에게 충성하고 북한의 비인간적 노예 상태를 모른 척 하고 있다. 이는 지식인이라 할 수 없는 위선의 극치다. 뿐만 아니라 조국을 배반한 반역이다.
한국에는 이러한 위선적 반역 지식인이 너무나 많다. 너무나 많을 정도가 아니라 이들이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고 대한민국 정부와 맞서고 있다. 이들은 광우병이라는 거짓 선전선동에 수십만 명이 촛불시위에 몰려드는 괴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겉으로는 좋은 가치를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저 독재자의 하수인일 뿐이요 위선자일 뿐이다. 이들이 거대한 세력이 되어 대한민국을 마비시키고 있다. 그 중심에 백낙청 같은 위선적 반역 지식인들이 있다.
북한이 축구 경기를 할 때 서울 봉은사에서 친북좌파반역세력이 모여 응원을 하였다. 봉은사 주지란 사람은 박지성의 패스를 받아 정대세가 골을 넣는 것이 통일이라는 식의 선전선동의 발언을 하였다. 봉은사라는 수입 좋은 절을 친북좌파반역 스님(이런 사람을 스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이 차지하고 앉아서 대한민국 정부와 맞짱을 뜨고 있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믿는 구석이란 대한민국 지하에 조직되어 있는 반역집단, 친북좌파집단, 빨갱이 집단의 세력을 말함이다. 그 세력에 속하는 참여연대가 천안함 조사 결과를 부정하는 편지를 유엔을 비롯해서 적대집단에까지 발송한 것은 잘 아는 바다.
참여연대나 백낙청이 천안함 조사 결과를 부정하는 것은 합리적 의문의 표현이 아니다. 이들은 북괴의 독재집단의 거짓 선전선동 지시에 응하여 거짓 캠페인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의 머리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것이다.
정대세를 보면서 백낙청을 생각하게 된다. 정대세는 일본 태생이다. 조총련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회에서 태어나 자유를 누리면서 살던 사람이 독재집단의 축구팀에 들어갔다. 북한동포의 비인간적 상태를 조금이라도 유의한다면 김정일의 조그만 배려에 감사하면서 북괴팀에서 활동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일신에 주어진 조그만 배려에 감동하여 김정일 독재자의 하수인이 되어 그를 위해 축구를 하고 있다. 그의 실력이 뛰어나다면 일본 팀도 있고 기타 많은 팀이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적 이익에 눈이 어두워 대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백낙청도 이와 같지 않은가? 그가 누리지 못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미국의 최고 명문 대학에서 유학을 하고 한국의 최고 명문 대학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갖은 혜택을 다 보면서 살았지만 북한의 세기적 독재자를 위해 일하고 있다. <창작과 비평>이라는 꾀 명성이 있는(?) 잡지를 이용해 대한민국에 대한 비판의식을 확산시키고 계급투쟁의식을 불어넣었다. 초기부터 그가 친북성향을 가졌다고 안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서서히 그는 정체를 드러냈다. 그러나 친북좌파정권 이래 그는 자신의 친북좌파성향을 주저하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 <백병원>으로 잘 알려진 집안의 내력을 본다면 그가 친북좌파가 될 이유가 없다. 순진한 지식인의 낭만적 좌파성향으로 치부하기에는 그의 사회적 위치가 너무나 중요하다. 왜 그는 북한의 독재자를 지지하게 되었는가? 한국의 위선적 반역 지식인의 표본이 된 그에게서 우리는 헛된 망상으로 가득찬 지식인들의 허상을 보게 된다.
백낙청과 정대세,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자유사회에서 자라나 성공하였으나 그 자유의 귀중함을 모르고 독재자의 하수인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조그만 영광에 눈이 멀어 독재라는 거대한 사회적 불의를 외면하고 있다. 축구 게임에서 정대세가 흘리는 눈물이 의미가 없듯, <창작과 비평>을 통해 분출한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고발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두 사람 모두 세기적 독재자의 하수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위선과 반역에서 그 어떤 가치를 찾을 수 있겠는가? 그들의 말로는 비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