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내 방식의 해맞이
심 영 희
올해도 어김없이 해맞이 인파가 동해로 남해로 산과 바닷가를 찾아 모여든다고 한다.
며칠 전 신문에 보도된 바로는 강원도 강릉, 속초, 동해시의
숙박업소가 백 프로 예약되었다고 한다.
오늘 드디어 아침 해가 뜨고 있지만 나는 우리 집 거실에 앉아있다. 1월 1일 새해를 맞이하는 시각과 연계해 해맞이는 매년 나의 기분을 들뜨게 한다.
지는 해[年]와 뜨는 해[年]를 보내고 맞으면서 구름 위를 걸어가듯 상쾌한 기분이다. 때로는
열두 시가 거의 되어갈 무렵 잠이 쏟아져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야속한 잠은 나의 마음과는 별개로 두
해를 송두리째 잡아먹으려는 듯이 나를 괴롭힌다.
이럴 때는 시원한 음료수나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과일을 먹으면서 잠과 씨름을 하며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매년 그 얘기가 그 얘기고 타종식도 해마다 하는 행사인데 그 장면을 놓칠세라 신경을 쓴다.
이런 내 방식의 해맞이는 거의 이십 년이 넘었다. 젊었을 때는 아들딸
겨울방학이라 거의 친정 집에서 윷놀이로 시간을 보냈고 때론 친구들과 춘천의 명동거리를 휘젓고 다니기도 했지만 사십 대 이후에는 내 해맞이 장소는
언제나 우리 집 거실이다.
어떤 이는 동해로 가자고 하고 어떤 지인은 춘천에 있는 구봉산으로 가자고 하지만 그 제안을 받아드린 적이 없다. 늘 그랬듯이 집안에서 마지막과 처음을 맞이하는데 익숙해졌고 또 그것이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
바닷가로 해맞이를 가면 군중 속에서 함께 한다는 색다른 기분이 있겠지만 새해 첫날은 겨울이라 항상 춥다. 추운 것을 싫어하는 내게는 바닷가 해맞이는 그리 달가운 여행이 아니다. 게다가
춘천에서 동해로 가는 도로사정을 생각하면 정말 아니올시다.
나 같은 해맞이를 하는 사람이 많으면 숙박업소와 지역 상권에는 손해가 많겠지만 그와 반대인 사람들도 많을 테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춘천에 있는 구봉산에 올라가 차 한 잔 마시며 오들오들 떠는 시간도 내게는 즐거운 시간이 아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라면 맹 추위에도 임무를 수행해야 되겠지만 자유선택권인 해맞이를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생각에 맞추고 싶지는 않다.
괜히 누워서 새해를 맞으면 일년 내내 아파서 병석에 누워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일어서서 새해를 맞으면 항상
바쁘게 살아야 할 것 같아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앉아 책을 뒤적거리거나 종이에다 무엇인가 쓰기도 하며, 문인으로
해야 할 무거운 보따리를 재 점검해본다.
대부분 서울의 보문각이나 춘천시청 앞에서 거행하는 타종식을 보는데 부지런한 시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행사분위기를
북돋운다. 그들은 어쩌면 저리도 부지런 할까.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밤을 새우며 타종식장에 몰려와 구경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다나 산으로 다시 해맞이를 떠난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하기 싫은 것일까. 게으른 것도 아니고 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그 시간만큼은 텔레비전과 더 친숙하게 지낸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여러 곳의 해 뜨는 모습을 보며 신기함에 환호한다. 비록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맞이하지만 가슴은 벅차다. 붉은 빛의 찬란한 아름다움은 어두운
밤 불을 밝히는 등불처럼 새해의 밝은 미래를 예견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하다.
그렇게 쏟아지던 잠도 새해에 놀란 듯 도망가고 정신은 더욱 맑아졌으니 한 해를 어떻게 보낼까 헤아려 본다.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뒤에 춘천시립도서관이 있고 도서관 쪽에서 이십여 미터 산으로 올라가면 종각이 있어 몇 년
전까지는 이곳에서 타종식을 했다. 아파트에서 산으로 난 지름길로 올라가면 종각까지는 더욱 거리가 가깝다. 그래도 타종식을 한번도 구경가본 적이 없다.
12월 31일에 눈이 내리는 날은 시청직원들이 종각으로 올라가는 길에 눈을
치우느라 고생할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시청마당 가에 종각을 세웠으니 그런 수고는 안 해도 된다.
추위에 떨지 않고 거실에 편안하게 앉아서 맞이한 붉은 태양, 괘씸하다고
축복을 안 내려주지는 않을 것이니 2016년 한해도 바라는 모든 일 잘 되리라 기대를 걸어본다.
늘 새해와 더불어 거창하든 소박하든 계획을 세워보지만 목표달성은 반반이다.해마다
하는 일이 그 일이 그 일이건만 새해가 되면 괜히 마음이 들떠 큰 성공이라도 할 것처럼 부풀어있지만 연말인 12월 31일이 되면 큰 성과 없는 결과에도 다시 내년의 계획을 그렇듯 하게 세운다.
내 방식의 새해맞이와
해맞이는 이렇게 계속 유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