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구만큼도 못해서야
(루가 23:33-43)
김현근 신부 (마태, 묵방교회)
저는 작은 개를 한 마리 기르고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3개월 된 녀석을 맡게 되었고 지금은 성견이 된 슈나우저 종인데 ‘짱구’라고 불러주는 까만 수놈입니다.
짱구는 전에 키우던 주인으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녀석 같았습니다.
재롱도 잘 부리고 영리하며 주인을 참 잘 따르면서 기쁘게 해 줍니다.
짱구는 내가 새벽 미사를 드리기 위하여 나서면 뛰어나와서 항상 반갑게 맞아줍니다.
밤새 대문을 지키며 고단했을 텐데도 내가 나서기만 하면 엄지 손가락만한 꼬리를 흔들며 그렇게 반갑게 맞아 줍니다.
미사를 끝내고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와서 보면 또 반갑다고 꼬리치고, 잠깐 집 안에 들어갔다가 먹이를 주기 위해서 나와도, 잠시 심방을 다녀와도 조금 전 반기던 그 모습대로 역시 팔짝 팔짝 뛰면서 반겨줍니다.
한 번은 외출을 했다가 외박을 하게 되어서 하루 왼 종일 밥을 주지 못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돌아와 보니 역시 짱구는 똑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그 녀석이 나를 반갑게 맞이할 때마다 나 역시 그 녀석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주게 됩니다.
좋아한다고 하는 표현을 서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그 녀석에게 밥을 주면서 물어봤습니다.
“넌 왜 그렇게 나를 좋아하니? 밥을 주는 사람이라서 그러니? 아니면 그저 본능이니?”
대답은 들을 수 없었지만 본능으로 그렇게 했든, 밥을 주기 때문에 그렇게 했든 그 짱구를 보면서 저 자신을 투영해 본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 짱구에게 나는 하늘처럼 여겨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왕같이 보일 수 있고 신과 같은 존재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프면 고쳐줬고, 배고프면 먹을 것을 주었으며, 요즘 같이 추운 날이 오면 짱구가 요구하지는 않았어도 그 집에 거적때기를 깔아줬고, 잘 했으면 잘 했다고 개들이 좋아한다고 하는 개 껌을 준비해서 상으로 줬으니 짱구의 눈에 비친 나는 대단한 존재로 비치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해 봅니다.
나에게 먹고, 마실 것을 주었고, 걸칠 것을 주었으며 내가 살아가도록 모든 것을 다 베푸신 주님께 얼마나 매일 매 순간마다 우리 짱구가 나에게 해 주었던 모양으로 주님을 기쁘게 해 드렸고, 반갑게 맞이해드렸던가?
우리 집 짱구는 매일 매일 주인인 나를 기쁘게 해 주는데 나는 나의 주인 되시는 주님께 해 드린 것 변변치 않고, 주님을 흡족하게 해 드린 것 내세울 것 없이 한 해를 또 이렇게 지내놓고 보니 참 많이 송구했습니다.
오늘은 연중 주일이 끝이 나는 날입니다.
교회력으로는 섣달그믐과도 같은 주일입니다.
이날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만왕의 왕으로 고백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몇 가지 스스로에게 자신에게 확인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진정 우리 인생의「주님」으로 믿고 살고 있는가?
그분께서 참으로「나를 다스리고, 세상과 우주를 다스리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라고 믿고 사는가?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살고 있는가?
지금 나를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내 심연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이 물음에 우리 집 짱구가 주인인 나를 생각하는 만큼도 못하게 우리들이 주님을 고백하고 있다면 참 서글픈 일입니다.
새롭게 맞이하는 한 해는 주님 백성으로 인정받는 저와 우리 모두가 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