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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꿈학교(학력인정기관)
 
 
 
카페 게시글
자료실 스크랩 구정은 소장님의 놀이치료 사례입니다.
운영자 추천 0 조회 97 08.06.01 19: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놀이를 통해 아이는 스스로 성장한다.


     많은 엄마들은 “애가 이미 컸는데 제가 함께 놀이하는게 필요할까요?”라고 묻곤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도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신의 어려움을 풀어나갈 힘을 얻어갑니다. 엄마와 함께 한다면 아이들은 ‘나’라는 존재를 찾아 떠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함아름 안고 출발할 수 있겠지요.

     놀이 안에서 엄마의 역할은 힘겨워하는 아이의 마음을 포용해 주고 성장할 수 없게 만드는 장벽들을 치워주고 어려움을 박차고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래 기연이와 만나면서 나누는 대화들과 놀이를 통해 변해가는 아이의 마음을 따라가 보세요. 엄마인 나 자신이 아이와 어떻게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를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귀여운 기연이(가명)와의 첫만남. 

 

   나에겐 처음이지만 기연이에겐 두 번째 방인 놀이치료실이다. 처음 다른 선생님과 만나 면담을 나누었기에 낯설어 하지 않고 들어왔다. “안녕. 기연이구나. 만나서 반가워. 오늘부터 선생님하고 놀이를 할 거야. 지난주에도 왔었지?” 선생님이 바뀐 것에 대해 어리둥절할 기연이를 위해 목소리 톤을 높이며 더 많이 반가워했다.

   엄마를 많이 닮은 기연이는 귀엽고 예쁘장하게 생겼다. 수줍은 듯하지만 활달한 기연이는 금새 밝은 표정으로 장난감들을 둘러본다. “오늘부터 선생님하고 매주 만날 거야. 1시에 시작해서 1시 45분까지 놀이를 할꺼거든. 그 시간동안은 기연이가 하고 싶은대로 놀이를 할 수 있어. 여기는 너의 방이란다. 자 어떤 놀이를 해볼까?”

   기다렸다는 듯이 소꿉놀이 집 앞으로 가서 꺼내 달라한다. 진열장 위에 손이 닿지 않아 까치발을 하고 들여다 본다. 내가 꺼내주자 마자 “여기 누구 집이예요?” 하며 물었다. “누구 집이지?”하고 내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더니 아무렇지 않게 “인형집이겠죠.”하며 진열장에 있는 집 소품들을 이것저것 꺼내 배치한다. “혜연이랑 놀았어요” 동생 혜연이와 소꿉놀이 했던 기억이 떠올랐나 보다. “동생이랑 있어서 어떠니?” 하고 물으니, “조금 귀찮기도 하지만 괜찮아요.”라고 대답하기에 무엇이 귀찮은지 물어도 대답이 없다.


   사실 기연은 동생을 싫어하지만 겉으로는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엄마인양 보살피고 보호해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마저 가지고 있다. 그러니 3살이나 어린 동생한테 지고 만다. 혜연은 언니인 기연을 점점 깔보기까지 했다. 사실 기연은 예쁘장한 얼굴인데도 혜연의 아주 예쁜 외모와 말솜씨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어딜 가도 “우와 동생 정말 예쁘구나. 어쩜 이렇게 예쁜 아이를 낳았어요. 너 정말 예쁘다.”라는 찬사가 동생에게만 향했다. 엄마 아빠는 시무룩한 기연을 의식해 “우리 큰애가 더 예뻐요” 하지만 이미 기연은 그런 엄마 아빠를 눈치채고 있었다. 오히려 기연은 한 술 더 떴다. “얘가 쟤 동생이예요. 정말 예쁘죠.”하며 동생 자랑을 하기까지 했다. 점점 자신감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집 주변에 주차장, 놀이터, 마차를 가져다 놓으며 꾸며놓는다. 앞에 여러 사람들과 마차를 진열하고는 “이건 지켜주는 거예요.”라고 말하는데 왠지 보호받고 싶은 기연이의 마음이 전해져왔다. “지켜주는 거구나. 무엇을 지켜주니?”하니 “도둑이 오면 막아주는 거예요.”한다. 점점 놀이터가 커진다. “우와, 놀이터가 점점 커지는구나”하니 집 문 앞에 막아주는 사람들 더 많이 세워놓고는 또다시 “얘네가 지켜줘요,”한다. “여기가 안전하길 바라는구나. 그래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지켜주는구나”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드디어 집 안에 사는 여자인형을 꺼낸다. “누구니?”라고 물었다. 기연이는 커다란 마론인형을 앉혀 놓으며, “엄마랑요. 아빠는 없고 할머니 할아버지랑요 병사들이요 그리고 우체국 아저씨.”라며 아빠는 빼놓는다. “아빠하고는 같이 안 사는구나”하니, “아빠는 다른데 거기서 산데요.”

   기연한테 아빠란 존재는 어떤 것일까?  항상 바빠서 함께 하기 어려워 그립지만, 함께 있어도 늘 아빠한테 큰소리로 야단을 자주 맞았다. 빠릿빠릿하고 애교도 많은 혜연과 달리 매사에 좀 답답하리만큼 느리고 고집스러운 기연이는 아빠 성에 차지 않았던 거다. 아이는 아빠가 한번 소리를 지를 때마다 쥐구멍에 가고 싶을 만큼 마음이 쪼그라 들었다. 그러니 아빠는 마음속에 함께 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이 엄마는 기분이 어떠니?”

  “기분 좋아요. 사람도 같이 살아요 여기 엄마랑요. 도둑도 안와요.”하며 병사들을 더 꺼내서 더 튼튼히 보호한다. “여기 병사들도 사는구나” 하니 “도둑이 물건 훔쳐가서요. 사람들이 어떤 걸 막 가져가요.”라고 언짢은 얼굴로 대답한다. 나는 속으로 ‘너의 자리를 빼앗아 간게 정말 속상하구나. 사랑을 빼앗가가는 걸 어떻게든 막아보고 싶구나’라고 느끼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집에 있는 소품이며 사람들이 옆에 있는 오두막으로 모두 옮겨졌다. 그 집에는 아기만 홀로 남아 있다가 나중에 나온다. “아가가 혼자 남겨져 있었구나” 하니 “애기도 힘세요. 다른 것도 많이 하잖아요. 이 애는 지금 나갔어요.”라고 대답한다. 강하고 사랑받고 힘도 세다고 느끼는 동생을 홀로 남겨놓고 싶었나 보다. 금새 동생 이야기를 한다.

    “혜연이 빨리 잠자면 좋겠어요.”

    “동생이 빨리 잠들었으면 좋겠구나.”

    “혜연이가 깨면 컴퓨터 잘 못해요. 자전거는 한 개예요.” 사랑과 물건을 나누어 가져야만 하는 것이 못내 속상했던지 그 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혜연이가 있어서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못하는구나. 그래서 빨리 잤으면 좋겠구나”

    장난감을 정리하며 “자 이제 시간이 다 되었네. 기연이와 함께 놀았던 시간이 선생님은 정말 즐거웠어. 다음주에도 또 만나자.”

    “네”하며 신나게 놀이실을 나간다. “엄마”하며 엄마에게 밝은 표정으로 안기는 기연이. 다음주가 기대된다.


 

 

2 번째 만남. 나도 사랑받고 싶어요.


 

   마론인형 중 여자아이 한명을 꺼내며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거 같다며 즐거워한다. 그 인형만 자전거를 태워주고 다른 애들은 걸어간다고 한다. 드디어 혼자만 사랑받는 경험을 놀이 속에서 대신 해주는 모양이다. “이 여자아이만 자전거를 타는구나” “네 그래가지고 미용실 가고 옷도 예쁘게 입어요”하며 여자를 예쁘게 꾸며주기 시작했다.

   “혜연이 때문에 많이 피곤했어요. 뿡뿡이 틀어주라고 했어요. 그래가지고 제가 알았다고 그랬는데 혜연이가 웃어요.” 동생이 귀찮게 해도 모두 들어준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마치 자기가 보호하는 엄마처럼. “혜연이가 이것 저것 해달라고 해서 피곤했구나. 그래도 기연이가 해줘서 혜연이가 고마워 했구나” 기연의 마음을 읽어주려는 나의 마음이 전달이 되었나 보다. 혜연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혜연이가 괴롭힐 수도 있어요”

   “동생이 괴롭히기도 했구나”

   “언니한테 막 할퀴고 그래요. 아빠한테는 맨날 맨날 그러고요. 아빠가 혜연이 안방에 들어가서 막 혼내줘요. 그래가지고 괜찮아요. 그럼 아빠가 혼내요.” 아빠가 자기가 아닌 혜연이를 혼내는 모습에 기쁨이 묻어나는 듯 보였다. 첫 만남 후 사실 아빠에게 편애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빠가 노력하셨나 보다.

    “아빠가 혜연이를 혼내주는구나”

    “요즘은 혜연이가 괴롭힐 수도 있어요. 혜연이가 맨날 맨날 아빠한테 혼나요. 그래가지고 막 울어요”

    “혜연이가 요새 아빠한테 많이 혼나는구나. 그럴 때면 넌 기분이 어떠니?”

    “막 웃겨요. 아빠한테 혼나니까요.”

    “아빠한테 혼나니까 웃기는구나” 동생이 혼나는 것이 웃기단다. 정말 속으로 고소했으리라.

    아빠 이야기를 한참 하더니 남자 인형을 집어 들었다. 춤추는 사람이다. 근데 그만 바닷가 가서 놀다 왔는데 병들고 말았단다. 아빠를 아프게 하고 싶었나 보다. 예쁜 여자 인형을 하나 더 꺼내서는 예쁘게 치장해준다. “얘는 아주 예쁜 드레스를 입을 거예요.” 처음 꺼낸 여자아이보다 더 예쁘게 꾸며진 여자 인형. 그것은 아마도 동생 혜연이였을거다.

   배가 불룩 나와 임신하고 있는 여자 인형을 꺼내며 무척 좋아한다. 배속의 아기 인형을 꺼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는지 할머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할머니. 저 언제 할머니 집에 산 적이 있어요.”

    “할머니 집에서 살았었구나. 언제 살았었니?”

    “5살 때요. 그때 혜연이는 없었어요. 그때 배속에 있었어요.”


     기연은 아기였을 때 엄마가 일을 했었다. 그래서 4살 때 까지 친할머니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었다. 동생이 태어나면서 엄마가 일을 그만두고 4식구가 모여 함께 살게 되었던 것이다. 엄마를 이제야 독차지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느닷없이 혜연이가 태어났으니 기연은 엄마 품이 무엇인지 낯설다. 이에 비해 혜연은 모유를 먹었다. 엄마와 함께 지내고부터 기연은 혜연을 품에 안고 있는 엄마와 지내야 했던 것이다. ‘왜 쟤는 엄마 품에서만 있지.’라고 생각하며....

 

  상담이 끝나고 엄마를 만났다. 언제나 두 딸을 예쁘게 꾸미고 엄마 자신도 두 아이 엄마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예쁘게 치장한 모습이다. 새삼 같은 두 아이 엄마로서 부러움이 생길 정도였다.

   “집에서 어떻게 지내셨나요?” 하고 물으니 “기연이가 동생을 때리기 시작했어요.” 라고 대답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어떠셨나요?” “그래. 원래 이랬어야 하는 건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동생이 함부로 하면 기연이가 너 맞을래 하면서 맞서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예전에는 대항을 못해서 동생이 언니를 깔보고 그랬는데 지금은 “엄마 언니가 무서워” 그러더라구요. 근데 여전히 아빠는 화를 자주 내시는 편이에요. 잘해주려고 하다가도 욱하는 일이 생기나봐요.”


 

3 번째 만남. 이 세상을 나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첫날에 꺼냈던 집을 다시 꺼내달라 한다. 이사를 온단다. 이것 저것 점점 더 많이 들어가는데 첫날보다 더 어수선한 느낌이다. “완전 난장판이야. 변기도 이렇게 있고요 똥이 이렇게. 변기에다 똥 싸고 싶은데. 어린이가 똥을 보고 욱 냄새라고 했어요.” 과거로 퇴행해서 더러운 찌꺼기를 뽑아내나 보다.

    여자 인형을 꺼내놓고, “근데요 이 소녀는 발레를 잘하고요. 칭찬도 받아요. 하지만 얘보다 더 예쁜 애가 있어요 나쁜 친구가 모르고 그 드레스를 찢어버렸어요. 그래서 다시 옷 입히는 거예요.” 

   “나쁜 친구가 옷을 찢어버려서 옷을 갈아입혀 줘야 되는구나. 얘는 기분이 어떠니?”

   “너무 슬펐어요. 기분 나빴어요.”

   “정말 속상했겠구나”

   “그래서 내 옷 찢지 말라고 그랬어요. 그래도 못 참고 찢어버렸어요. 이제 비가 쏟아지면 차 타고 갈꺼예요. 엄마도 없고요. 모두 다 참고 그냥 걸어 가요.” 엄마도 없이 혼자서 기연을 힘들게 하는 이들의 횡포를 참고 가야 하는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실제 기연은 새로 이사를 했었다. 새로운 유치원에 갔는데 유치원이 썩 맞지는 않았다. 다소 느린 듯한 행동에 약삭빠르지 않은 기연에게 새로 간 유치원은 사립학교처럼 매 시간마다 타이트하게 학습을 해내야 했기에 다소 버겁기도 했다. 불행히도 유치원 적응만도 힘에 부친데 같은 반 친구 영미는 동생보다 더한 존재였다. “너 내 말 대로해. 이렇게 해야지. 바보야.”하며 기연을 마음대로 부렸다. 그러나 기연은 그런 영미가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수줍고 잘 못한다 여기던 자신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일이 지시해주고 이끌어주는 것 같아 편했다. 비록 같은반 친구들이 대부분 영미의 일방적인 처사에 불만을 품으며 싫다고 거부의사를 밝혀도 기연은 좋아하며 따르기까지 했다.


   갑자기 주변에 칼들을 세워놓고 “칼들이 힘이 세서 할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조심해야 되요.”라며 으스스한 분위기까지 연출한다. 쥬스 뽑는 기계에서 쥬스를 뽑으려 했지만 잘 뽑히지 않는다. “얘는 또 쥬스를 먹어 버려요. 어떻게 할까요? 또 짜증내. 어떻게 할까. 너무 짜증 내버려. 이렇게 짜증나게 해요. 그렇죠.” 좀처럼 기분을 드러내지 않는 기연이 부정적인 감정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잘 안 들어가니까 정말 짜증이 많이 나는구나”

   “네. 아 나온다.”

   여자 인형 셋을 한 곳에 세워 두고는 “얘네 셋이 여기 살아요. 아빠는 없구요. 아빠 없어도 되요.” 역시나 아빠는 없다. “아빠 없이 여자들만 사는구나. 아빠는 없어도 괜찮구나”

  “여자들이 힘이 세잖아요. 씽씽카도 마법이구요. 다 마법이예요. 마차도 마법. 하늘을 날아 다닐 수 있고요. 다 날아 다닐 수 있어요. 정말이예요.”하며 정말 마법으로 세상이 덧씌워진 것처럼 자유롭다.

   “모두가 다 마법이 되어서 힘도 세고 하늘도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구나. 다 마법이라 아빠 없이도 살 수 있구나” 

   “어른들이 마법 쓰는 거예요. 애기들이 돌아왔어요. 애기들은 마법의 성에 있어요.” 드디어 마법의 성이라 했던 집은 어느새 놀이터로 변신했다. 아이들은 정말 신나게 놀이터에서 놀기 시작한다. 그 성은 자기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자신의 놀이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놀이치료실처럼. 아빠는 없지만 드디어 마법으로 세상을 지휘할 수 있는 만능적인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만큼 자신에 대한 전지전능함을 경험하고 있으리라.



기연이와의 4 번째 만남. 


   이것 저것 둘러 보고 있는 기연은 표정아저씨가 붙어있는 벽 앞에 멈추어 바라보고 있다. “참 신기하지. 눈썹, 코, 눈동자, 입 모두 여러 가지 모양이 있네. 이건 지금 기분을 아저씨 얼굴에 만들어 주는 거야. 기연이네 가족의 기분을 한번 만들어줄까? 해보겠니?” 하니 한참 생각하더니 “네” 한다.

   “자 그럼 기연이부터 해볼까?” 쉽게 웃는 얼굴을 만들어준다. “와 기연이는 기분이 참 좋구나. 웃고 있는 걸 보니.”

   “아빠는 어떤 표정일까?” 조금 생각하더니 무서운 얼굴 표정을 만들어 주었다. “아빠는 기분이 어떠니?” “화났어요.” “아빠가 화난 얼굴이구나. 아빠는 자주 화내시는 편이니?” 아무런 대답이 없다. 바로 뜯어내고는 동생 얼굴을 만든다. “아 혜연이 얼굴이구나. 어떤 표정이지?” “졸린 표정. 아니 웃는 표정이야.”하며 약간 부정적인 표정을 만들었다가 금새 긍정적인 표정으로 바꾸어 버렸다. 동생의 부정적인 면을 표현하고 바라보기가 아직 부담스러웠나 보다. 엄마 역시 웃는 표정을 만들었다. 기연이네 가족은 아빠가 유독 무섭다.

   표정아저씨 바로 옆에 서랍을 열더니 아빠, 엄마 손인형을 꺼내 나에게 건넨다. “선생님이 아빠 엄마 해요. 나는 아기 할께요. 언니랑.” 자기네 가족을 꺼내놓은 셈이다. 아기인형은 덥석 엄마 아빠에게 안긴다. 언니는 기연의 왼손에 끼워진채 물끄러미 바라보게 하고 있다.

   나는 수동적인 언니 인형을 따뜻하게 불렀다.

   “언니야. 이리 오렴. 엄마 아빠는 언니를 무척 사랑한단다. 엄마 아빠가 안아줄게.”

   언니 인형은 슬그머니 엄마 아빠의 품에 안겨왔다. “와 정말 예쁘구나. 이렇게 많이 컸구나. 사랑해. 우리 넷 모두 함께 안아보자. 아 좋다”하며 기연의 가족은 그렇게 모두 살포시 안아주었다. 

   손인형은 어느새 서랍 안으로 들어가고 위칸 서랍안에 있던 커다란 뱀을 보며 깜짝 놀랐다가 바로 손에 감아보기까지 한다. “안 똑같네. 안 무서워요. 봐봐요.” 겁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해 흐뭇했다. “와 정말 무서워하지 않는구나”

   사랑의 감정을 경험한 기연은 약간 혼란스러운 듯 보였다. 이 장난감 저 장난감을 그저 만져만 볼 뿐 선뜻 다가가 놀이를 하지 못했다. “어떤 놀이를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다시 집놀이를 하러 간다. 이번엔 마루인형들을 하나씩 만지면서 빈정거린다. “아이 얘는 너무 싫어. 아이 남자가 여자 옷을 입었잖아.” 싫은 표현들을 드러내놓고 하는 듯 보였다. 실제 자기 발에 맞는 유리구두 신발을 신고 왕관도 쓰고 상담자를 수줍게 쳐다본다. 진짜 공주가 되어보고 싶었나보다. “와 정말 공주가 되었구나. 이렇게 예쁜 공주를 만나게 되었네. 정말 반가워.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하니 선뜻 포즈를 취한다. 수줍은 듯 고개를 아래로 내리고 약간은 긴장한 표정으로 찰칵. 드디어 자신의 모습을 공주로 예쁘게 만들어줄 만큼 자신을 사랑하게 되어 가는 중이다.

   이제 집안은 텅 비었다. 벽난로와 약통들만 가져왔다. 집안에 온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었나 보다. 약통은 어느새 가구가 되었다. 약통들로 1층, 2층 모두 장식한다. “오빠랑 언니가 아파서 약 가져왔어요. 저도 언제 여행갔다 와서 아팠어요. 여행 갔다 오자마자 아팠어요”

   드디어 자기 마음을 스스로 치료하기 시작하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집안에 온기를 불어넣어주고 약을 먹고 얼어붙고 주눅 들었던 약한 마음이 살포시 고개를 들고 건강하게 자라나길 바랬다. 그러나 아직도 집 안에는 사람이 없다. 강아지만 홀로 남겨져 있을 뿐.

  “강아지만 있으니까 너무 아쉽다. 아무도 집에 없어요.”

  “아무도 집에 없고 강아지만 있어서 허전하구나. 다 어디갔어?”

  “이사갔어요.”

  “선생님 저 오늘 친구네 집에 놀러 간다요. 걔가요 착하게 말해요. 근데 밉게 말할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영미가 시킬 때는 하지 말라고 그래요.”

  “하지말라는 말도 할 수 있구나”

  “네. -실제 밴드를 바라보며- 밴드예요? 저 여기 다쳤어요.” 다치지 않은 팔이지만 그 팔이 정말 다쳤다면서 밴드를 팔에 붙이고 놀이실을 나갔다. 그 밴드처럼 사랑이 꼭 붙어서 아물길 바라는 마음처럼...


 놀이가 끝나고 엄마와 또 마주앉았다. 슬금슬금 엄마 곁에 오고 싶은 기연은 상담실로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아빠가 많이 노력해요. 그래선지 요즘 아빠한테 반항하더라구요. 자꾸 먹으라고 하면 집 나갈 거야. 그러면 아빠 예전처럼 돌아가기도 해요. 그래라. 그래도 잠시뿐 아빠가 기연한테 가서 달래 주더라구요. 아빠가 기연이 말을 이제 알아들을 거 같다고 해요. 말도 조리있게 해서 생각도 자라는 듯 보여요. 혜연이도 이제는 덜 괴롭히구요. 언니가 분명하게 싫다하니 혜연이도 예전처럼 언니한테 함부로 안하고 그래선지 잘 안 싸우게 되었어요.”



5 번째 만남. 나도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해. 

 

   오늘은 아빠와 혜연과 함께 왔다. 아빠와 온 것이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오늘은 아빠랑 왔구나.” “네.” 하며 금새 놀이실로 들어가 버린다. 귀신인형을 꺼내더니 귀신 옷을 뼈인형에 씌워준다. 밖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니 아빠의 목소리에 귀기울인다.

    “아빠가 혜연이한테도 잘해주고 나한테도 잘해준다요”

    마론인형 옷을 모두 벗기고 신발을 신긴다. “오늘은 가면 무도회 가는 날이예요. 준비가 안 ?어요. 이건 너무 싫어. 예쁜 드레스 입어야 돼.” 황금색 목걸이를 걸어 줄 만큼 애써 예쁜 옷들만 찾아서 입히려고 노력한다. “예쁜 옷을 입히고 싶구나”

    “아 이 반지가 필요하지. 왕자님한테 딱 어울리는게 딱이다. 이 반지가 왕자님한테 다른 신부가 이러지 않게 딱 해 주는거예요.” 마치 아빠의 사랑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어떤 보호 장치를 찾고 있는 듯 보였다.

    “이 반지가 왕자님이 다른 여자애들한테 관심 갖지 않게 막아줄 수 있구나.” 예쁘게 입혀 놓고, “왕자님이 딱 좋아하겠어요. 왕자님이 좋아해요.”

    “왕자님이 마음에 들만큼 예쁘게 입었구나”

    “아 친구 또 데려와야 되요. 왕자님. 아 얘도 아예 예쁘게 입히자.” 자기 어깨에도 맬 수 있는 커다란 잠자리를 꺼내 달라 한다. 그 위에 인형들을 올려 놓는다. “왕자님더러 잠자리 태워달라고 하면 되요. 잠자리 타고 무도회에 갈 수 있어요. 얘는 아무거나 입혀도 되요. 왕자님이 예뻐하거든요.”

   “걔는 꼭 예쁜 옷을 입지 않아도 왕자님이 좋아하고 사랑하는구나. 얘는 다른 여자들이 왕자님한테 가지 못하게 하려면 예쁘게 입어야 하는데 얘는 아무거나 입어도 왕자님이 좋아하는구나” 자신은 애써 노력해야 아빠의 사랑을 받는데 혜연은 가만히만 있어도 아빠가 좋아하는 모습에 부러운 마음이 생겼던거 같다.

   “네.”하며 예쁘게 입지 않아도 되는 인형에게 신발도 초록색 눈에 띄는 신발을 굳이 찾아서 신기고 싶어 한다. 그러더니 순간 순간 밖에서 들리는 동생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진짜 혜연이 소리네.”

   역시나 왕자가 무조건 사랑하는 인형은 왼쪽 잠자리 날개에 태워주고, 반지도 끼고 힘껏 치장해야 하는 여자와 친구 2명은 오른쪽 날개에 태워 무도회로 떠났다. 심리학적으로 왼쪽은 좀더 무의식적인 세계를 의미하고, 오른쪽은 좀더 의식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아이의 무의식 저편에는 동생에 대한 질투가 드리워져 있으리라.

   “선생님 제가 인형극을 해볼께요.”하며 약간은 선생님 눈치를 보며 인형극 틀을 꺼내 왔다. 그래도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발표를 해 보겠다는 신호라 무척 반가웠다. 수줍고 뒤로만 빼던 기연이. 이제는 누군가 앞에서 장기자랑을 할 만큼 내면의 힘이 자라고 있다는 신호였다.

   “제목은요. 공주와 거지의 파티. 백조의 호수입니다요. 남자 먼저 나와 안녕하고 가요. 저는 춤추는 왕자님 역할을 하는 인형입니다. 박수치세요.” 나는 즐거운 표정으로 박수를 열심히 쳐주었다. “얘가 노래를 하겠습니다. 부끄러워서 못하겠습니다.” 수줍게 웃는 기연은 천사 같았다. “막상 노래를 하려니 부끄럽구나”

   다시 용기를 내어 공연을 하기 시작한다. “참새들도 노래하며 참새들도 놀아요. 엄마 따라 나 갈께요. 진짜 진짜 잘한다.” 갑자기 무기들을 꺼낸다. 나에게 “어떤게 힘이 셀까요?.”라고 물어보고 무기를 고르게 했다. “왕자랑 싸울 껀데... 마녀는요.”하며 아까 초록 구두 신은 예쁜 여자를 마녀라 하였다. 처음 왕자와 마녀가 싸움을 시작할 듯 보이더니 어느새 왕자는 나쁜 아저씨로 변해있었다. 춤추고 놀던 화사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어두침침하고 사악한 마녀와 아저씨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드디어 예쁘게 꾸미고 반지를 차고 있던 아가씨는 수정을 간직하고 있는 요정으로 변했다. 유니콘을 데리고 있기 까지 한. 이 유니콘은 아마도 상담자인 나였으지도 모른다. 요정을 지켜주는 상상의 동반자. 요정은 마녀와 싸워 이겼다. 마녀가 드디어 죽었다. 이로써 반지를 간직했던 자신은 예쁜 요정으로 승화되고 누구나의 사랑을 받던 얄미운 동생은 요정의 강한 힘에 눌려 죽었다.



6 번째 만남. 기연아, 엄마가 미안해. 


   영미와 함께 다니는 유치원이 영 찜찜했던 기연의 엄마는 유치원을 옮겨주었다. 학습보다는 체험을 위주로 한다는 유치원으로 간 기연은 밝은 표정이었다.

   “선생님. 저 유치원 옮겼어요.”

   “유치원을 옮겼구나. 새로운 유치원에 가니 어땠니?”

   “정말 좋아요. 친구 민세도 있어요. 저 이제 파랑 유치원은 안 갈꺼예요. 거긴 너무 싫어요.”

   한번도 싫다고 얘기하지 않았던 파랑 유치원. 표현하지 못했어도 마음에 스트레스로 남아있던 유치원의 짐이 어느새 재가 되어 날아 갔나보다. 한결 가벼워 보이는 기연의 어깨가 한 뼘은 더 높아진 듯 보였다.

   놀이실에 들어간 기연은 처음으로 만들기를 하자 한다. 처음 무대를 다시 해볼까 하더니 금새 안한다 했다. 그리고는 계산대 놀이를 꺼내고는 몇 번 만지고 돈 통을 열었을때 돈이 없자 돈을 만들겠다 했다.

   “돈이 없어요. 우리 돈 만들어요.”

   “돈이 없어서 돈을 직접 만들어 쓸거구나. 좋은 아이디어네.” 무에서 유를 스스로 창조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여 반가웠다.

   한 시간 내내 예쁘게 종이돈 만들기에 심취해 있는 기연을 바라보며 무언가 하고자 하는 열의에 불타오르는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상담이 끝나고 엄마와 상담을 했다. 전 시간까지 줄곧 상담실에 수시로 들어와 엄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확인하던 기연은 오늘따라 동생을 보살피며 들어와 보지 않는다. 의젓하게 혼자 기다리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애들하고 잘 놀고 요새 거의 흥분상태인거 같아요. 발레 학원에서 발레 공연이 있었는데 처음에 안하겠다고 했거든요. 근데 자기가 직접 공연하겠다 하더라구요. 연습도 별로 안했는데 정말 열심히 잘 했어요. 지금은 다른 애들 앞에서 아무대서나 ‘엄마 나 봐봐. 춤춰볼게.’하며 나서서 오히려 난처하기 까지 하다니까요. 공부도 자기가 할려고 하고 피아노도 두쪽이나 하겠다하면서 열심히 해요.”

   “아이가 나서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자신감이 생겼나 봐요. 그런 아이를 바라보면서 어떤 느낌이셨나요?” 그렇게 자랑을 늘어놓던 엄마는 나의 질문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글쎄요. 그냥” “좋지 않으세요?” “뭐.”

   “어머님 말씀대로라면 무척 많이 변한 건데 저 같으면 기쁠 거 같은데 어머님의 반응은 그렇지 않네요”

   “좋아요. 많이 변해서. 사실은 이렇게 빨리 변해도 되나 싶어서 겁이 나기도 해요. 그리고 제가 원래 좋은 점에 대해서는 칭찬에 인색한 거 같아요. 기연이는 어머니께서 키워줬었는데 내가 못마땅했던 점이 많았어요. 애지중지 키우고 밥 먹는 거에 너무 공들이고. 다른 것에는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것도 그렇고.”

   “양육하는 사람이 둘이니 서로 마음에 들지 않은게 있다는 건 당연한 거지요. 할머니와 지냈기에 어머님께서 아이를 키우기가 더 힘드셨던 부분도 있었을 거 같아요.”

   “할머니 말은 잘 들을 때가 있어요. 사실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를 따르지 않고 할머니를 더 좋아하는게 질투나기도 하고요. 느리고 말해도 잘 못 알아듣는 거 같을 때도 있고 다른 애들보다 빠르지 않은 게 영 못마땅했던 거 같아요. 참고 기다려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하는게 참 미안해요. 아이한테 맞추어야 하는데 나한테 맞추라 하니 아이가 상당히 스트레스였을 거예요. 난 어릴 때 안 그랬는데 어릴 때 똑똑하고.” 나와 다른 기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시도였다.

   “어머님은 동생과 비슷한 성향이셨군요. 동생은 말귀도 빨리 알아듣고 알아서 척척 해내니 자연스럽게 비교가 ?을 꺼예요. 기연이는 밖에 나가도 덜 예쁨 받고 다른 애들한테 밀리는 것 같고 그 속상한 마음이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발전되기도 하구요.”

   기연이의 엄마는 어느새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맞아요. 내가 그러면 안 되는데 미워하는 마음도 있었던 거 같아요. 더욱이 혜연이는 젖만 먹여서 늘 안고 지냈더니 정도 많은데, 기연이는 젖도 한번 안 먹이고 일하느라 바빠서 정을 제대로 못 줘서 그런지 지금도 어색하고 그래요.”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 한 켠이 짠해졌다.

   이 세상에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자식에게도 질투를 느끼고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는 것에 대해 서운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자연한 이치이다. 그것을 애써 누르며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척 할 때 그 마음은 다른 방식으로 전달될 뿐이다. 아이에게 적대감을 드러내고 ‘너가 못나서’라고 위안하며 푸대접할 수도 있으니까.

 


7 번째 만남. 우리 오데트를 잡아 먹어요. 


   엄마가 볼일이 있다고 아빠와 동생과 함께 상담실에 방문했다. 기연은 출입문을 열자마자 상담실로 뛰어 들어간다. 지난시간에 만들었던 돈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다.

    “와 우리가 만든 거다.” 자기 것을 소중히 여겨준 것이 무척이나 기뻤나 보다. 미소를 머금고 화사하게 얼굴이 폈다. “기연이가 만든 것을 선생님이 잘 보관하기로 했는데 정말 있는 걸 보았구나.” “와 신나요. 우리 저거 가지고 놀아요.” 하며 돈과 계산대를 꺼내서 마트놀이를 하자 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새로이 느끼는 순간이었다.

   “선생님 뭐 살 꺼예요?” “뭐 살까?” 하자마자 자기가 먼저 상자에 들어있는 것을 모두 꺼내서는 “이거 다요”라면서 모두를 다 계산해주고 영수증까지 만들어주었다. 마음이 풍요로와 진게 분명하다. 모두 다 사란다. 계산기를 정리함에 넣고 나더니 손인형들을 보다가 나쁜 마녀를 발견하고 꺼내면서 나를 준다. “선생님이 마녀해주면 안될까요? 악어랑 마녀가요. 악어랑 마녀가 친구예요.” 나는 어느새 마귀할멈이 되어 있었다.

   “오데트 잡아 올꺼예요. 근데 친구가 있어요. 가서 못 싸우면 어떻하죠?” 여자를 잡아와야 하는데 잡으러 가기도 전에 잡지 못할까 걱정한다. 시작 전에 두려움이 많은 기연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동생을 잡아서 처단하고 싶지만 혹 이길 수 없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생긴 듯 보였다.

   “잡아오고 싶은데 싸움에서 질까봐 걱정되는구나”

   다시 기운을 내고 진짜 오데트를 잡으러 갔다.

   “오데트를 잡아오고 어떻할까요? 오데트를 잡아와서 옷을 뺐어요.” 박쥐도 꺼내서는 변신을 시킨다. 마녀는 박쥐로 상어는 사람으로 변장하고는 오데트를 잡으러 갔다.

    드디어 공주를 잡아왔다. 마녀는 공주 옷을 벗기고 악어는 공주를 물어 죽였다.  이때 상어가 나타나서 왕자를 데려왔다. 마녀는 여자로 변장하고 왕자마저 죽였다. 왕자와 공주는 모두 돌로 변해버렸다. 아빠와 동생 모두를 죽이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해결하려는 듯 보였다.

   기연은 변기를 꺼내서 여자와 남자를 넣는다. “우리 얘네 잡아 먹어요.” 우리는 두 사람을 모두 잡아먹어 버렸다. 드디어 여자와 남자를 그릇에 담고 요리까지 해서 모두 먹어버렸다. 인형은 어느새 사라지고 과일들을 가지고 실제 음식 만들기 놀이가 되었다.


   처음으로 아빠와 마주 앉았다. 아빠는 노력하고 있음을 알려왔다. 눈으로 보기에도 처음 상담실에 왔을 때 기연이와 아빠와의 심리적인 거리감이 느껴졌던 것과 달리 기연은 아빠를 부르며 안기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예전에는 아예 안 놀았는데 그래도 지금은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생은 눈치도 빠르고 싹싹하고 해서 혼낼 일이 적은데 기연이는 자주 화낼 일이 생기나 봐요.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요. 애기 엄마는 애가 좀 느리다. 행동도, 인지도 느리다고 답답해 하고 있었어요. 내가 어릴 때 그랬거든요. 3형제 중 막내였는데 형들이 다 해줘서 굳이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와이프는 장학금 받고 수석 졸업했거든요. 기대 수준에 못 미칠 때 화나는 듯 보여요. 지금은 의도적으로 소리 안 지르려고 해요. 많이 좋아진 듯 보여 다행입니다. 한번 쯤 더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더라구요.”

    아빠와 대화를 나누면서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게 비난했을 그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대놓고 표현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수동적 공격이 아이를 더욱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상담이 끝날 시간에 맞추어 엄마가 밝은 미소를 머금고 아이 앞에 다가왔다. “늦게 와서 미안해. 자 이제 놀러가자”하며. 두 아이는 엄마 아빠를 바라보며 신나게 소리치고 있었다. “와 신난다. 출발”...



8 번째 만남. 빨리 빨리 하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어요. 


   손가락 인형을 꺼내서 아빠 손가락 인형은 나에게 맡기고 엄마와 아기는 자신이 하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금새 “애기 없다고 할꺼에요.”라며 애기를 뺀다. “애기가 없어졌구나” 하니 “오늘 아가가 태어났어요.”하며 아기를 꺼내서 엄마에게 안겨준다. 그러면서 할머니도 함께 산다고 이야기한다. 새롭게 태어난 자기를 들여다보았지만 아직도 엄마의 품이 아닌 할머니의 품이란 사실이 들여다 보이는 듯 했다.

   “우리 이번 주에 에버랜드 가요. 아빠 보고 데려가라 해요.” 가족 모두가 나와서 자동차를 타고 애버랜드를 향했다. 애버랜드에 도착하니 어느새 새로운 집이 되어 있었다. 침대들을 한아름 꺼내놓고 모든 식구들에게 침대를 하나씩 나누어주고 싶어 했다. 드디어 여자 아이와 엄마와 아빠가 한 이불속에서 잠을 잔다. 애기들은 따로 침대에서 재운다. 동생은 멀리 있고 언니가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순간이다. 자신만이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은 마음을 놀이 속에서 그대로 실현하고 있다.

   “와 아가는 다른 방에서 자는데 언니는 엄마 아빠와 함께 포근하게 잠이 들었구나.”

모두들 침대에 재워야 하는데 2층칸 보다 침대가 더 크다.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리 놨다 저리 놨다 해본다. “어떻게 잘까. 이렇게 잘까. 떨어지면 어쩌지.”하고 또 걱정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자야 될지 고민되는구나. 자다가 떨어 질까봐 걱정 되는구나” 고민하고 걱정하는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주고 싶었다.

   기연은 제대로 채워지지 않는 가구들과 이불들을 가지고 한참을 씨름한다. 재빨리 다른 대안책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내심 답답한 마음이 찾아왔다. ‘빨리 다르게 할 방법을 찾으면 좋을텐데.’라는 조급함마저 들었다. 이것이 엄마와 아빠의 평소 마음이리라. 나또한 느끼고 있었다. 자칫하면 나도 모르게 “빨리하자. 이렇게 해보자”했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 한자락에 역전이가 일어나고 있었다.

   역전이란 상담자가 상담을 받고 있는 아동에게 느끼는 무의식적인 감정이다. 기연이가 때때로 나를 엄마나 아빠로 느끼고 엄마 아빠에게 하지 못했던 표현들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나 또한 기연이에게 나의 얽혀져 있는 감정들을 쏟아부을지도 모른다. 내가 만약 이러한 감정에 휩싸여 기연이에게 재촉하고 비난한다면 기연은 또다시 절망의 늪에 빠질 것이다. ‘저 사람도 엄마 아빠랑 똑같구나. 나는 역시 못난 아이구나’하고 말이다.

   나는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이불이 모자라 모든 사람에게 정식 이불을 덮어주지 못해 난처해 하고 있는 기연이, “선생님 이걸 그냥 이불이라고 해요.”  인형 옷들을 이불이라 하잖다. 그렇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꼭 이불을 덮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반가웠다.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구나. 꼭 이불만 이불로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옷도 덮어주어서 따뜻하면 이불로 쓸 수도 있구나”. 기연은 자신이 멋진 의견을 내놓은 것이 의기양양해졌는지 “선생님 좋은 생각이 났어요. 옷들을 이불로 써요. 할아버지를 쇼파에서 자라고 하면 되잖아요.”

   “정말 좋은 생각이 났구나. 꼭 침대에서 재우지 않아도 되는구나”

   초기에 감정에 대한 표현에서 점점 자유로와졌던 기연이는 점차 인지적인 전환능력 또한 성장하고 있는 듯 보였다.

    모두 이제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근데 한명은 계속 안 자고 일어나 있다. 이제는 할머니와 아기와 강아지만 일어났다. “근데 애기도 졸리다고 낑낑대다가 엄마한테 갔다가 아빠한테 갔어요. 할머니도 졸려서.” 이제 할머니 품을 떠나 엄마 아빠한테 사랑을 받으러 가게 ?던 상황을 떠올리는 듯 했다. 

    그 여자아이는 어느새 강아지로 변해있었다. 강아지 혼자 일어나 멍멍 짖어대며 식구들을 깨운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강아지가 섭섭해 해.” 강아지도 가서 잠이 든다. 여자 아이가 다시 깨어났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잠이 들었다. 다시 강아지가 나타나 이제는 여자아이를 괴롭힌다. 일어나라고. 그래도 여자아이는 잠이 든다. 할머니도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강아지 혼자 깨어있다. “강아지가 아무리 깨워도 모두 못 일어나네.”라고 있는 그대로를 읽어주었다. 기연은 엄마 집으로 와서 강아지처럼 사랑받고 싶어했지만 아무도 보살펴주지 않고 함께해주지 않았던 과거를 되짚어 보는지도 모른다.

   기연이은 “어제 밤에 늦게 까지 있었어서요. 피곤해요.” 드디어 엄마와 아빠가 일어났다. 엄마는 여자 아이를 깨웠다. 그러나 일어나지 않고 짜증만 낸다. “왜요. 저는 발레도 하고 밸리 댄스도 하고.... 오늘은 토요일이잖아요.”라며 나보란 듯이 엄마에게 대항한다. 뒤늦게 관심과 사랑을 다가오는 엄마에게 ‘왜 이제 왔어. 엄마 기다리다 지쳤잖아. 미워’하며 투정하는 기연이가 보였다. 그런 기연의 투정과 서러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싶었다.

   나는 어느새 엄마가 되어있었다. “하는게 많아서 피곤하구나.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자도 될 거 같구나. 그래 그럼. 너 자고 싶은 만큼 자도 돼. 몇 시까지 자고 싶니?”

“12시까지요.”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분명히 표현하는 기연이의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또다시 엄마와 마주앉았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단다. 하지만 아직 한 이야기를 계속 반복한다고 다소 답답함을 호소했다. “며칠전에는 영미를 만났어요.” 영미가 기연을 이끌려고 하니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영미에게 대놓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 너랑 안 놀거야.” 엄마는 내심 속이 시원했단다. 맨날 당하기만 하는 것 같던 기연이에게 영미를 당당하게 밀쳐내는 모습이 보여 후련했다고.

   “그래도 엄마인데 아이에게 바른 방법을 알려주어야 할 것 같아서 그러면 안된다고 했어요. 친구에게 같이 안 논다고 하면 싫어해. 너도 친구가 그러면 기분 나쁘잖아 했더니 자기 변명만 늘어놓지 엄마 말을 안 듣더라구요. 영미가 자꾸 귀찮게 하잖아. 자기 멋대로야.라고 소리치더라구요.”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기연이 엄마에게 “만약 남편분께서 ‘어머님께 그건 옳지 않아. 그러면 시부모님이 당신을 어떻게 보겠어. 좀더 좋은 방법으로 대하면 어떨까?’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기분이 나쁠 꺼예요. 내가 왜 그랬는지 설명하겠죠”

   “분명 맞는 말이지만 아마도 어머님은 어머님 자신을 방어하느라 그 옳은 방법이 귀에 고스란히 들어오지는 않았을 거예요. 기연이도 마찬가지지 않았을까요?”

   “듣고 보니 그러네요. 내가 아이 마음을 읽어줘야 한다는 건 얘기들어 실천하려 하는데도 안되네요. 잘잘못을 먼저 따지게 되고. 잘하는 법만 알려주게 되구요.”

   “영미가 너한테 하기 싫은 마녀만 하라고 해서 기분이 나빴구나. 그럴 때는 ‘영미야 나 그거 싫어. 나도 이번 차례에는 공주 할래. 서로 번갈아 가면서 하자.라고 얘기하면 돼. 가서 다시 얘기해볼까?’하고 권해보세요.”

   우리는 내 아이가 잘했으면 하는 마음에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아무리 알려주어도 제대로 실행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답답하다 못해 미운 마음까지 들게 된다. 진정 그렇게 밖에 하지 못했던 아이의 숨겨진 마음을 읽어준다면 아이는 어쩌면 스스로 다른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9번째 만남. 나는 소중한 사람이예요.


글씨 쓰는 거에 자신이 없어하던 기연이가 들어오자마자 칠판에 글씨를 쓰고 지우고 한다. 또다시 가족 손인형을 꺼낸다.

아빠와 엄마는 나를 주고 아가와 언니는 자신이 끼고는

“애기가 아파요.”

“아기가 아프구나. 어디가 아프니?”

“여기저기요. 안아주어야 겠어요.” 언니가 아기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이제 다 나았어요. 아이 아기 하기 힘들다. 넣어두자” 늘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비합리적인 생각을 떨쳐내는 순간이다. 비로소 자신은 엄마가 아니니게 힘겨운 보살핌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연이는 이제 7살 진짜 아이가 되어 아빠를 만난다. 언니인형은 아빠를 만났다며 기뻐한다. “아빠” “그래 우리 딸 잘 놀았니?” 아빠에게 서슴없이 안긴다.

   이제는 아빠를 받아들이는 걸까? 무섭고 화내던 아빠가 아닌 다정하고 반가운 아빠를 만나고 있다. 엄마와 여자아이는 놀이터에 간다. “와 놀이터다” 기연이는 놀이터에 엄마와 놀러 온 것을 마냥 즐거워하는 표정이다. 바닥에 놀이터 장난감을 펼쳐놓고 시소며 그네며 철봉을 분주히 타러 다니기 바쁘다. “엄마 철봉 태워 주세요.” 이제는 엄마를 독차지 하고 있다. 나는 열심히 기연이의 인형과 함께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았다. 나 또한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실컷 놀이하고 돌아와 보니 어느새 오두막에 다다랐다. 어둑어둑해진 오두막에는 여자아이와 엄마 아빠가 함께 있다. 기연이는 나의 눈치를 살피며 여자 인형을 숨긴다. “아이가 없어졌어요.” 나는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정말 우리 아이가 없어졌네. 세상에서 정말 소중한 우리 딸. 어디 갔니? 흑흑흑흑. 우리 아이. 엄마 아빠가 찾아줄게. 기다려. 꼭 찾아줄 거야.”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연이는 여자아이를 꺼내놓는다. “짜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나는 여자 아이 인형을 끌어안았다. “사랑하는 우리 딸. 너는 언제나 소중해. 너는 우리에게 특별한 아이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지켜줄게. 사랑해.”

   “사랑해요. 엄마 아빠” 와락 엄마 아빠에게 안기는 여자 아이. 기연이는 이렇게 엄마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나 보다. 동생이 아닌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엄마 아빠.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는 엄마 아빠를.

   놀이 속에서 그런 무한한 사랑과 소중함을 경험한 기연이는 벌써 어른이 되어 있었다. “제가 엄마 할께요.” 들뜨고 활기찬 표정이다. 엄마가 된 기연은 여자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간다. 열심히 놀아주던 엄마는 어느새 친구가 되었다. “이제 친구예요. 우리 같이 놀자.” 나또한 반가움을 드러내며 “그래. 같이 놀자. 만나서 반가워” 하며 서로 웃으며 놀이터를 빙글빙글 돌며 한참을 깔깔거리며 놀았다. 이렇게 둘은 절친한 친구가 되어 함께 논다. 다른 친구들이 놀이터에 나타났다. 그 친구들은 자기네만 좋은 마차를 타겠다고 비켜주지 않는다. 여자 아이는 당당하게 “이거 누구건데. 왜 너네들만 많이 타. 같이 타는 거잖아. 내가 뒤로 넘어갈 수 있는 법을 가르쳐줄게.”하며 함께 놀이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기연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재미에 빠져있다. 그리고 부당하다 여기면 당당하게 자기표현도 할 수 있다. 그런 기연이 근사해 보인다.


   엄마 말이 월요일에 가영이와 피아노 학원에서 만났다고 한다. 피아노 치는데 가영이가 자꾸 피아노 의자를 함께 앉으려 했다고. 기연이는 “나 자리 좁아. 비켜.” 했더니 가영이가 “싫어”하며 기연이를 밀었단다. 기연이는 밀리지 않고 가영이의 손을 꺾고는 “하지마”라고 얘기했다고.

   “속으로 정말 흐뭇했어요. 화나서 그랬구나. 화난 걸 표현한 거는 좋은데 방법이 좀 그렇다. 말로 하면 더 좋을 거 같아라고 이야기했지요. 힘센 존재로만 보다가 대항하니 정말 고소한 기분마저 들었어요. 근데.” 하며 눈치어린 표정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요즘 행동이 느리니까 짜증이 나요. 아침에 시간은 없는데 밥은 계속 입에 물고 있고 스스로 옷도 빨리 갈아입고 ?고 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되니까요. 내가 피곤해지니까 더 그런거 같아요. 기다려야지 기다려야지 하지만 그리 쉽지 않네요.”

   “엄마가 항상 아이에게 좋은 마음만 가져야 되는 건 아니예요. 힘들면 짜증나죠. 그러면 당연히 화내게 될 수 있어요. 우리 스티커 제도를 한번 써보면 어떨까요? 간단한 습관은 잘 고쳐지거든요. 그러면 엄마도 굳이 화낼 필요도 없고. 목표 행동에 대해 체크만 하면 되니까요.” 엄마는 해보겠다고 했다.

    과제는

    1. 밥을 앉아서 20분 안에 스스로 다 먹기.

    2. 화장실 들어가면 양치질과 세수 바로 하고 나오기.

    3. 유치원 갔다오자 마자 숙제 바로 하기.



10번째 만남. 새로 꾸며진 기연이의 집 

 

  상담실에 들어오자 마자 신나서 소리친다. “저 여행가요. 선생님. 한밤 자고 온데요.”

“와 그래서 신나는구나. 기연이가 여행간다고 좋아하는게 느껴져. 선생님도 신이 나네” 한참을 수다스럽게 어디에 가서 뭐하고 놀 건지를 이야기한다. 활기차고 수다쟁이가 된 기연이.

   또 집을 꺼냈다. 이번엔 집이 두개다. 집에 아기침대를 있는대로 다 꺼냈다. “이 집에는요. 애기가 진짜 많아요. 100개나 있어요.”

   “와 이 집엔 아기가 100명이 될만큼 아주 많구나”

   나에겐 또다시 엄마 아빠 인형이 주어졌다. 기연은 여자아이 인형을 들고 있었다. 2층에서 울고 있는 아기를 가리키며, “엄마, 아기가 울어요. 추운가 봐요.” 기연은 엄마더러 아기에게 우유를 주라고 한다. 우유를 먹고 다시 잠이 든 아기. 이제 3층에 강아지와 고양이가 여러 마리 살게 되었다. 강아지 한 마리가 여자아이에게 다가왔다. 여자 아이는 그 강아지를 싫어한다. “무서워해요. 엄마 무서워.”하며 엄마에게 안긴다. 엄마 아빠가 강아지를 안게 한다. “엄마 아빠는 강아지를 좋아해요. 강아지도 엄마 아빠를 좋아해요”

   “여자애는 강아지를 무서워하는데 엄마 아빠는 강아지를 좋아하는구나.” 어쩌면 이 강아지는 동생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은 싫고 성가신 동생을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모습을 표현했으리라.

   다른 강아지들이 나타나서 “이 강아지들이 얘를 좋아해요.” “강아지들이 여자아이를 무척 좋아 하는구나” 아까 무서워하던 강아지는 이제 이 여자아이와 친해졌다. “아까는 무서워하고 싫어했는데 지금은 서로 좋아하는구나. 아까는 뭐가 싫었니?” 싫은 점을 이야기해보려고 물었지만 대답없이 다른 곳을 가버린다.

   “모두 여행갔다 왔어요. 와 이제 집에 왔다.” 여행갔다 돌아온 집에는 여자 아이의 침대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와 내 침대다.”

   “침대가 새로 생겼네. 축하해. 정말 멋있는 침대구나. 너를 위한 거야.”

   밖에서 아기가 우는 소리가 난다고 하며 “애기가 울어요. 애기도 데리고 와야겠어요.” 데리러 간 빈 집에는 강아지 혼자 남겨져 있었다. “강아지가 원래 집을 멍멍하며 돌아다녀요. 엄마 아빠가 안와서 여기저기 물어뜯고 있어요.” 언니는 사랑받고 버려져서 투덜거리는 동생과 다시 화합하려는 시도일게다. 또한 자신이 엄마가 되어 돌봐야 하는 존재가 아닌 동생 또한 엄마 아빠가 보살핌을 주는 자기와 똑같은 아이임을 인식하고 있는 듯 보였다.

   “강아지 혼자 집에 남아서 엄마 아빠가 데리러 갔구나. 강아지는 엄마 아빠가 없어져서 여기저기 찾으러 다녔구나. 속상해서 여기저기 물어뜯고.”

   “이제 강아지도 데리고 가고. 언니 옷장도 데리고 갔어요.” 하며 강아지와 함께 돌아온 새집에는 새로운 가구들을 예쁘게 진열해 놓았다.

  “와 새로운 가구들이 많이 생겼네. 정말 멋있어 보인다.”

  드디어 새로운 가정이 꾸려졌다. 미워했던 동생도 포용하고 기연이를 지켜주는 다정한 엄마 아빠와 함께 새 가정에서 새로운 가구들로 장식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길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기연이와는 지금도 매주 만나서 놀이를 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위축되고 불안해하던 기연이의 모습은 사라지고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기연이로 성장하고 있다. 기연이와의 만남 동안 기연이 뿐만 아니라 기연이네 가족은 서로를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으로 대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듯 하다. 시간이 갈수록 가족 모두 즐겁고 행복해 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다시금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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