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움과 추억에 관한 시모음 ]
- 순 서 -
□ 사는 법 / 나태주
□ 늘, 혹은 때때로 / 조병화
□ 별에게 묻다 / 이정하
□ 그만입니다 / 박성빈
□ 푸른 곰팡이 / 이문재
□ 그리움 / 이상윤
□ 추억 / 다서 신형식
※ 사는 법 / 나태주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남은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 늘, 혹은 때때로 / 조병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카랑카랑
세상을 떠나는 시간들
속에서
늘, 혹은 때때로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 인하여
적적히 비어 있는 이 인생을
가득히 채워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라도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 노을인가
※ 별에게 묻다 / 이정하
밤이면 나는 별에게 묻습니다
사랑은 과연 그대처럼 멀리 있는 것인가요
내 가슴 속에 별빛이란 별빛은 다 부어놓고
그리움이란 그리움은 다 일으켜놓고
당신은 그렇게
멀리서
멀리서
무심히만 있는 겁니까
※ 그만입니다 / 박성빈
사랑했다 한들 당신이 믿으시겠습니까
내 마음 반의 반만큼이라도
당신이 이해하시겠습니까
밤 새워 그리워한 그 많은 밤
당신이 헤아려 주시겠습니까
당신을 다시 만나고
내 슬픈 세월 넋두리한들
당신이 울어 주시겠습니까
저는 그만입니다
당신이 이해하지 않아도
내 슬픔 헤아리지 않아도
내 눈물 슬퍼하지 않아도
당신이 살아 계시기에
그만입니다
그만입니다
당신을 사랑했기에
그만입니다
살아서 당신 앞에
내 눈물로 쓴 시를 읽어드릴 수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벅차
이젠 행복합니다
※ 푸른 곰팡이 /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위한 것이겠지요
※ 그리움 / 이상윤
얼마나 아파야 꽃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순결해져야
울음이 될 수 있을까
그리움 하나로
새들은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강물은 뿌리까지도 남김 없이
온 몸 바다로 가 닿네
돌아오지 않는 사랑 앞에서
날마다 가난한 마음으로
푸른 등을 내거는 별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가슴에 작은 아픔 하나
밝힐 수 있을까
온 몸으로
너에게 그리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 추억 / 다서 신형식
닦을수록 더 스며들고
번질수록 더 짙어지는
점점
사랑이 지워진 그 자리
멀어진 너와 나 사이로
점점 번져오는
그리움이라는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