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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고유한 음악을 향악이라고 합니다.
악학궤범에는 우리의 음악을 아악(송나라의 음악을 고려 예종때 수입), 당악( 궁중의 연례악등에 사용), 그리고
통일신라이후로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을 향악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왕직아악부 시절이후 국악은 정악, 민속악이란 범주를 새롭게 등장시켰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그런 구분을 언급하자는 것은 아니고...
향악이란 말은 결국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을 총체적으로 말해주는 표현입니다.
지금은 세계화시대이다 보니 향악이라기 보다는 국악이란 말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정가란 표현도 최근에 김기수 선생님께서 아정한 노래 라는 의미로
새롭게 만든 용어로 그전에는 가곡, 가사, 시조 라는 명칭을 각각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바로 향악의 핵심중의 핵심은 가곡,가사, 시조 같은 정가라는
점이고, 이런 음악은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입니다. 절대 중국에서 수입된 음악이 아닙니다.
고구려시대의 노래, 신라의 노래, 백제의 노래는
삼국통일로 통일신라 시대에 삼현(가야금,거문고, 향비파), 삼죽(대금,중금,소금)이란 악기로 향악기의
중추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중에 향비파와 중금은 거의 지금은 절멸이되었지만,
대금, 소금, 가야금, 거문고는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우리음악에서 차지하는 악기입니다.
통일신라는 고려시대로 이어지고 고려가요로 전해지던 우리나라의 노래문화는
조선의 건국으로 여말 선초에 시조시를 선비들이 많이 짓던것들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하여가와 단심가로 알수있습니다. 이후 황진이가 지은 주옥같은 시조시중에 '청산리 벽계수야~"는
선가 김월하 선생님의 노래로 수많은 시조창 애호가를 낳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의 중인이상의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향유하면서도 풍류에 관심이 많던 가객이란
그룹들은 가곡이란 음악을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을 거쳐서 마침내 현행 남녀창 가곡 총 41곡이란
대곡의 흐름을 이루어 냅니다.
그 중에 가곡은 아주 형식미와 절제미 그리고 예술적 특징이 높은 음악으로 상당한 전문가들의
노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박효관, 안민영, 김수장, 김천택 등 수많은 가객들의 모습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크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들이 지은 가사를 수록한 책자들은 우리가 자랄때
국어시간에 배운적들이 있습니다.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 가 3대 가곡집이라고.
이왕직아악부는 조선이란 나라가 일본에 국권이 넘어간이후에 간신히 궁중음악을
보전할수 있는 단 한가지 방책으로 마련되어 그나마 그 오랜 조선 궁중음악이 현재까지
전승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의 장을 제공하였다고 생각됩니다.
이때 이왕직아아구에서는 레파토리의 증가를 위해서인지, 또는 정가란 음악의 보전을
위해서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결과적으로는 정가음악이 살아날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귀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선가 하규일 선생님을 모시고 가곡, 가사등을
이왕직 아악부의 아악수와 아악생들에게 전수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소남 이주환 선생님, 두봉 이병성 선생님 등은 바로 이왕직 아악부에서 정가를 전수받은
분들이고, 이후에 저의 스승이신 현재 가곡문화재로 계신 소하 김경배 선생님은 이왕직
아악부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국악사 양성소 1기로 소남 이주환 선생님께 정가를
배우신 분입니다. 그 당시엔 따로 정가전공이 없이 거문고를 주 전공으로 하면서
정가를 모든 학생들이 배웠다고 합니다.
물론 나중에 본래 전공인 거문고보다는 정가로 더 대성하신것 같습니다.
이후에는 국립국악고등학교가 세워지고 그렇게 기수가 내려가다가
결국 정가전공이 따로 생겨서 정가만을 전공하는 과 가 생겼습니다.
현재 여창가곡 문화재로 계신 김영기 선생님의 전공역시 거문고 였고
문화재가 되시기 전까지 KBS국악관현악단에서 거문고 주자로도 활동하셨습니다.
지금은 정가전공은 국악중학교에서 부터 별도 전공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가란 용어가 생소하면서도 국악과에서 정가전공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원래 이름이던 가곡, 가사, 시조는 더 이상의 대표단어로는 좀 혼돈상태로 정가와 같이
사용되고 있고 일단 이름자체가 좀 모호하게 일반인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시기가 아닌가합니다.
가곡의 반주는 죽헌 김기수 선생님께서 각 악기별로 반주보를 만드셨고, 최근에는 국악과의
교수님들께서 따로 악보가 나온것들도 많아 좋습니다.
그처럼 악보가 따로 있고 선율이 따로 있다는 말은 그만큼 음악적인 정제미를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형식적인 면에서도 대여음-초장-2장-3장을 연주하고 중여음- 4장-5장을 그음곡의 대여음이
연결되는 남녀교창의 형식을 가지고 있고 연주하는 교창순서까지 다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흡사 뼈대 있는 집안에서 또는 종묘에서 제를 지내는 순서를 정해서 하는것처럼 가지런하고
법통이 있어 보인다고 생각됩니다.
그에 반해서 가사나 시조음악은 어떻게 누가 언제 노래한다고 까지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냥 노래하는 사람의 자세와 청자의 자세정도를 정해두고 있을정도입니다.
아무튼 향악의 대표주자중의 하나는 바로 정가, 그중에 최고는 가곡이란 점입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향악이란 음악은 주로 7가지조나 8가지 조를 사용했다는 점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조선시대초 세종대왕께서는 정간보를 처음 창제하신뒤에 정간으로 된 악보에 율명을 적어서 동양최초의
유량악보를 만드셨습니다. 지금도 국악인들의 대부분 정간보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세조때에 오면 궁중음악에서는 오음약보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것은 지금 정간보를 보시면, 중임중임 무황무황~ 으로 시작하는 아리랑을 조를 올려서
황태황태중임중임~으로 바꾸어 불려고 하면, 정간보에 적힌 율명을 일일이 지우고 다시 적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선보를 그려주는 피날레란 프로그램을 사용해보면 조를 바꾸는 것은 악보상에 조표를
변화시켜주면 한번에 확 이조가 오선보상에서 됩니다.
그런데, 정간보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정간보를 보는 저와 같이 정가 반주에 능통하신분들은 대부분은 가령 남창의 노래하는 악보로
된 정간보를 보고서는 여창의 반주를 할때는 황으로 시작하는 음정을 임종으로 시작하는 음으로
반주를 합니다. 시조창에서도 남창의 조로 악보는 표기되어 있는데, 이것을 여창으로 할때는 조를 옮겨서
반주를 합니다. 이것은 눈으로 글짜를 본뒤에 머리속에서 한번의 음정변화를 거쳐서 악기로 연주하는
흡사 번역이나 통역같은 역활을 우리의 뇌가 하도록 훈련하면 쉽게 가능합니다.
그런데, 오음약보는 궁이란 음정을 기준으로 상1, 상2, 상3, 상4, 상5, 밑으로 하1,하2,하3,하4,하5 로
되어 있어서 궁의 음정을 즉 율명을 적어두고 그것의 표기를 다른 음정으로 정해주면 오음약보의
악보는 그대로 있어도 궁의 음정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사용하는 음들이 바뀐다는 것은 흡사
오선보에서 조표를 바꿔주는 모습과 비슷하게 작용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런형태의 오음약보식의 악보는 세조때부터 이왕직아악부 전까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즉, 그 옛날의 궁중의 악사들은 세습으로 부모님이 악사이면 악기를 어릴때 안하다가도
임금의 교지를 받으면 그날부로 악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집중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문음악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음약보를 사용해도 크게 문제가 없었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전문인들이 전문적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특징이 존재하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 형태가 한일합방으로 국권의 상실은 곧 궁중의 모든 식솔들이 민간으로 빠져나가게 되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그 중의 한가지는 음악분야는 아니지만 궁중에서 궁중요리를 하는 요리사가
민간에 나와서 궁중요리집을 차려서 엄청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금 원서동 끝자락까지 올라가면 궁중요리연구원이 있습니다.
그 이후 궁중의 요리는 민간에 소개되었던것 같습니다.
그 옛날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민가에서는 궁궐의 법도를 따라 할 수가 없었죠.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로 궁중악사들이 대부분이 사라진후 이왕직 아악부에서는 궁중음악의 보존을
위해서 정간보에 율명을 적어서 사용하는 현재와 같은 정간보 악보를 채택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오음약보가 이조가 능할 수 있는 잇점이 있지만 상당히 복잡합니다.
그래서, 새로 모집한 아악생들에게는 한가지 조만을 가르치는 방식이 도입되지 않았나 저는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황태중임남, 궁상각치우란 말이 곧 음악을 가르치는 용어를 대변하는
율명들로까지 사용된듯합니다.
그런데, 일본으로 부터 국권이 회복된후에도 훨씬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 옛날의 궁중악사의
공부방식을 회복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향악 7조(또는 8조)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최대한 국악의 원형을 보전하고 있는 국립국악원의 연주되는 곡들을 제가 살펴본바로는
4가지 조를 사용하는것으로 파악됩니다.
황태중임남: 유초신지곡
중임무황태: 중광지곡
임남황태고 : 군악
남응태고유(황태중임남 음정으로 된 악보를 가지고 황=C , 즉 C황으로 보게되는데 C=남려 즉 첫음이 남려가
되는 조이므로 실음은 남응태고유 란 음정을 사용합니다.)
이상이 제가 살펴본 정악과 정가에 사용되는 음계들입니다.
다만, 죽헌 김기수 선생님께서 창작하신 고가신조 (옛날 노래를 새로운 곡조를 지어 부른 노래)악보에는 77곡이
수록이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정확하게 총 8가지 조의 노래가 존재합니다.
앞의 4조외에
무황협중임
태고임남응
협중이무황
고유남응대
나= 중려, 임종, 남려, 무역, 황종, 태주, 협종, 고선 을 첫음으로 시작하여 2, 3, 2,2 즉 평조음계로
구성된 조를 표시하는 말입니다. (치조=평조=솔라도레미 순서의 음간격으로 이루어진 조로 보시면 됩니다.)
제가 지금 가곡강습에 사용하고 있는 조는 총 8가지 입니다.
특히 산천어의 자작곡은 총 12가지 조의 음정으로 성악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주일에 1시간반이란 제한된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기초 음정훈련에서 가곡훈련까지
저는 1시간반이 시작하면 금새 지나가 버립니다.
4기부터는 강습때 새롭게 제가 엮은 교재를 배포하여 수업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8가지 조로 구성된 노래곡을 실제 여러가지 대금, 단소, 소금으로 연주가능한 음역대의
조를 모두 악보를 정간보로 만들어서 악보를 교재에 실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은 바로 향악 8조 아리랑을 탄생하게 하였습니다.
지금 저와같이 매주 수업시간에 음정훈련용으로 또 발성을 하기 전에 워밍업용으로
아리랑을 5가지 정도의 조로만 반주에 맞춰 노래합니다. 이때 주로 소금을 사용하는데
소금이란 악기는 바로 향악기의 하나로 신라 삼현 삼죽의 한개에 드는 악기로
이 소금으로 아리랑을 연주해 보면 총 8가지 조의 반주가 가능합니다.
저는 아리랑을 반주하면서 바로 우리 향악은 8가지 조를 주로 사용하는 습관이 있었음을
체험하였습니다. 그중에도 몇가지 조로 반주되는것이 주로 사람들이 애용하는 조입니다.
하지만, 저는 계속적으로 정가의 반주를 8가지 조로 확대하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한가지 발전은 석암 정경태 선생님께서 새로 만드신 석암제 시조창보를 현재 전국의
시우회원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 인지 총 12가지의 조로된 청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목소리가 좋은 분외에 할아버지 할머니 층들도 시조창을 하기 위해서는
남자= 중려, 여자=청황종이란 청만을 고집할 수 없고 따라서
12율을 시조창의 첫음으로 모두 사용하여 모든 사람들이 시조청을 마음데로 편한데로
잡아서 부를수 있도록 하였다는 점입니다.
이에 저는 12가지 청으로의 시조창 반주를 위해서 다년간 연구한 결과
황종=E, 황종=Eb 으로 된 두가지 음정을 가진 대금을 가지고 12가지 청의 반주를 다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대부분, 시조청에 맞춰서 대금을 따로 제작해서 사용하다 보니 변율로 인하여
시조창의 반주외에는 아리랑같은 노래조차도 반주하기엔 부적절한 악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악기를 임의 제작하시는 분들의 전문지식의 한계로 인한것이라 추측이 됩니다.
아무튼, 국악원 악사들은 석암제 반주에 큰 관심은 없습니다.
국악원의 정가를 하시는 단원분들은 다 목청이 좋아서 국악원의 다소높은 음정에 맞춰서
노래를 잘 하셔서 별로 청을 낮출이유가 없겠지요. 못한다는 뜻는 절대 아닙니다.
필요성에 따라서는 얼마던지 할 수 있지만 지금 그런 필요를 못 느끼는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대부분 일반인들 즉 아마추어 가객들이 배우시는 분들이라 항상 그런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조에 대한 연구를 더 하는 이유도 있고, 또 향악의 결정판인 가곡과 가사, 시조를
더 향악답게 또 원형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 노력을 계속해 나가려고 합니다.
더 아이러니 한점은 국악과 과정중에 이조에 대한 교육과정은 전혀 부재 합니다.
중광지곡을 이조하면 유초신지곡이 되는데....
그럼 중광지곡에서 한음씩 조를 옮기면 중광지곡 버젼은 8가지가 나올수 있습니다.
물론 이론상으로 그러하고 악기가 좀 바쳐주지 않는점도 있고 ...여러가지 이유는 있지만
원하면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저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량단소로는 유초신지곡과 여타 모든 대금곡들과 같이 합주가 가능합니다.
고선이란 음정과 남려한 음정을 위한 별도 구멍을 뚫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단소란 악기로 4가지 조를 반주가 가능하고 연주역시 가능합니다.
12율의 음정을 다 사용하지 않고 항상 사용하던 조로만 연주를 하다가
막상 다른 조의 음악을 연주할려면 음정이 잘 안 잡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12가지는 아니더라도 8가지 정도의 조를 연습해 두면 대부분 음악이
실제 연주되는 범주는 그 범위안이라 보면 됩니다.
중광지곡을 한 음정 올려서 임남황태고 의 음정으로 이루어진 조로
상령산을 불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그 음악은 무엇이라고 칭해야 할까요?
중광지곡+
중광지곡에서 한음정 올려 연주하는곡이어서요
아무튼 중광지곡이란 음악도 조선후기에 변주곡의 형태로 변화를 거듭나서 완성된 음악이란 점을
생각해 봐야 할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음악의 원형을 보존하지만, 또 다른 시도 역시 우리 향악 8조 안에서 자유롭게
시도해 보는 노력역시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향약은 7조 또는 8조로 연주를 했다는 사실만이라도
국악인들은 알아야 할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증거는 바로 정가반에서 수업에서 실제 체험이 매주 가능합니다.
8조의 또다른 장점은 고음이 잘 안나오는 분에게 가곡을 가르칠때 음정을 낮게 잡아서
훈련을 시작하여 점차 고음으로 옮겨오게 되면 목에 무리도 안가고 노래를 자연스럽게 잘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는 점입니다.
황종=Eb은 상당히 높은 음정입니다.
그러나 황종=Ab 에서 Bb, C, D로 점차 올려가면서 연습후 Eb으로 가게 하면
쉽게 일반인들도 전문가들의 다년간 훈련된 음정의 높이에 접근이 가능할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신체 장애인들도 많지만, 우리주위에는 음정이란 말에 민감한 장애를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나는 음치라고 단정하면서 노래를 쉽게 접할려고 안하시는 분들...
그러나, 실제는 음치는 극치 드물고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요즘같이 의족도 나오는 시대에 왜 음정을 잘 못 맞추는 일로 고민하나요?
충분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방문하여 훈련을 받아 보면 가능합니다.
음이 높거나 낮으면 자신의 높이에 맞는 음정으로 노래하면 됩니다.
꼭 국악원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정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습니다.
기악의 경우에는 입김만 힘껏불면 되지만, 목소리는 다양한 음정의 그대로 한번만에 구현이
가능한 분들도 있지만, 절대 고음불가 , 또는 절대 저음불가 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분들의 구제는 바로 향약 8조를 부흥함으로써 얻게 되는 부산물이라 생각됩니다.
더불어 저처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수업하는 분들은 배워야 할 팁(Tip) 으로생각되기도 합니다.
참고 논문: 악학궤범의 향악칠조 연구 --남상숙교수님 (한국종합예술원 겸임교수, 원광대 겸임교수)
향악에는 7가지 조가 있다는 것은 상기의 논문으로 세상에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향악 7조의 이론을 언급하기 보다는 실제 정가 교육에 창의적으로 적용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환으로 어린이날 한가한 시간을 잡아서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논문식으로 정확한 근거를 일일이 제시하지 않고 이야기 식으로 서술적으로 글을 적어서 다소 혼란한
점이 있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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