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우일 화백)
“그림은 제 삶의 전부입니다”
박우일 화백
-어떻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요?
어려서는 의사를 꿈꾸기도 하고, 엔지니어를 생각해 보기도 했으나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미술실기대회에서 인정을 받게 되면서 ‘미술’이라는 긴 여정을 걷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지방이었기 때문에 미술 학원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미술을 하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환경이었지만 다행히 입학한 고등학교에는 미술반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선배들에게 소묘나 수채화를 배우며 본격적으로 실력을 갈고 닦았습니다. 하지만 생계유지가 우선이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나는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습니다.
졸업 후 한동안 일을 하러 다녔고 나름대로 돈을 모아 땅도 사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조금 여유가 생기고 난 후였습니다. 대학에 대한 뜻을 세운 후 나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하고 입학을 위한준비도 할 겸 고3 입시생을 대상으로 미술을 가르쳤습니다. 가르치던 학생 3명 모두가 대학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고 나 자신에 대한 가능성도 확인했습니다. 대학 진학에 대한 다짐도 다시 다지면서 9년 만에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 소개하자면.
나는 미술교육과를 전공했습니다. 내가 다녔던 과는 엄연히 말하자면 화가를 양성하기보다는 미술교사를 양성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졸업 즈음엔 자연스레 중등임용고사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노력이 수석 합격이라는 결실을 맺었고 미술교사가 되었습니다.
기나긴 준비 과정 치고 나의 교사 생활은 길지 못했습니다.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뉴욕은 최대 미술시장의 중심지 중 하나입니다.
그 수많은 갤러리들을 다니며 생각의 틀을 깨는 작품들을 정말 많이도 보았습니다. 그 중 (유리공예가 아닌)유리조각이 내 눈을 끌었지만 비용적, 거리상, 환경적 제약 때문에 결국 배우지는 못했지만 뉴욕에서 서양화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귀국 후 어떻게 생활하고 계셨나요?
기나긴 이민생활 후 한국에 영구 귀국하였습니다. 돌아와 보니 가까운 지인들이 학생들을 가르쳐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전국 13 개 대학을 다니며 학생들에게 시각예술 관련한 다양한 과목들을 가르쳤습니다.
나이가 드니 지인들이 한둘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내 강의시간도 줄어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늘어난 여유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는 나에게 다시 한 번 화가에 대한 꿈을 불어 넣어준 것은 딸입니다.
자식들이 모두 해외에서 생활하는데 남은 딸도 유학을 가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대전 모 대학에서 토익 토플 강의를 하며 바쁘게 지내던 와중에도 한국에 남겨질 내가 마음에 쓰였는지 딸은 내 생일 선물로 전시장 계약을 해주었습니다. 그때가 계기가 되어 나는 서울, 대전, 전주, 익산, 그리고 내 고향인 서천에서 다수의 전시를 하며 다시 꿈을 꾸고 그림을 그리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4월 29일부터 5월 5일까지 대전 이공갤러리(관장 전형원)의 주선으로 초대전을 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뷰티라이프에 연재도 하셨는데...
2003년 8월에 책을 낸 적이 있는데 이는 독자들이 인물 그리기를 체계적이고 알기 쉽게 숙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책을 낸 것을 계기로 뷰티계를 선도하는 일등 매거진인 뷰티라이프와 깊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해당 저서의 글들을 발췌, 보완하여 장장 36개월 동안 글을 연재하였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완근 국장의 고마운 배려 덕분이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많을 것 같습니다.
미술에 뜻을 가졌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미술교사에서 이민 그리고 미술 강사 등 많은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그 길이 평탄했다 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림을 그리며 전국에서 작품 발표를 할 수 있는 이 일은 그 무엇보다 보람이 가득한 일입니다. 관람객들이 나의 작품을 보며 만족감을 느낄 때의 그 감정은 이루 말 할 수 없으며, 그것이 미술의 진정한 의미가 정립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에 뉴욕의 유명한 온라인 옥션회사 Paddle8에 참여할 수 있어서 기쁘고 보람찼습니다. 무슨 일이든 다 마찬가지겠지만, 작품을 열심히 하니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 커다란 쾌감으로 다가옵니다.
앞으로도 끝까지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의 상황이 좋아지면 뉴욕에서도 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만들고 싶습니다. 또한 새로운 저서를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으니 기대 바랍니다.
<뷰티라이프> 2021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