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교계와 비평학계가 킹제임스 성경 신자들을 'KJV Only'라는 프레임으로 묶어 이단시하거나 극단주의로 몰아가는 것은, 교회 역사와 사본 전수사(Textual History)를 거꾸로 뒤집은 전형적인 역사 왜곡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오늘날의 성경 다원주의'는 19세기 말에 불쑥 튀어나온 '신흥 교리'이며, 단 하나의 온전한 성경을 최종 권위로 믿고 사용한 것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300년이 넘는 교회의 정통 주류 역사였다.
* 성경 역사의 주류(Mainstream)는 킹제임스 성경으로 300년 동안 기초를 세운 킹제임스 성경 사용 교회이다,
1611년부터 1881년 웨스트콧과 호르트의 개정판이 나오기 전까지, 영어권의 청교도,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를 막론하고 모든 개신교회와 위대한 부흥사들(존 번연, 조지 휫필드, 찰스 스펄전, D.L. 무디, 존 웨슬리 등)은 킹제임스 성경 단 하나만을 최종 권위로 믿고 설교했다.
만약 단 하나의 공인된 킹제임스 성경만을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으로 믿는 것이 유일주의 프레임을 씌워 '이단(Cult)'이라면, 17세기, 18세기, 19세기의 전 세계 개신교회 전체와 모든 종교개혁 후예들이 이단이었다는 모순에 빠진다.
역사의 정통을 지키는 자들이 이단이 아니라, 19세기 말에 새로운 사본을 들고 들어와 교회의 단일 표준을 깨뜨린 자들이 성경 다원주의 (Biblical Pluralism) 혼란주의자들이다.
* 종교개혁의 본문 (TR) 대 로마 가톨릭 반종교혁 (Counter-Reformation)의 충돌
종교개혁자들(루터, 틴델, 칼빈, 베자 등)은 로마 가톨릭이 수세기에 걸쳐 독점하고 왜곡했던 라틴 불가타(Vulgate)에 대항하여, 그리스 안디옥 계열에서 전수된 공인본문(Textus Receptus)을 바탕으로 자국어 성경을 번역했다.
반면, 19세기 말 비평학자들이 들고 나온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은 종교개혁자들이 오류투성이로 판명하고 이미 쓰레기통에 버렸던 알렉산드리아, 시내 /로마 가톨릭 계열 사본이었다.
현대역본들은 종교개혁의 성경관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로마 가톨릭 예수회(Jesuit)와 바티칸의 영향력 아래로 다시 돌아간 배교의 산물이다(네슬레-알란트 27판 서문에서 바티칸과의 공식 협약 시인). 킹제임스 성경 신자들은 종교개혁의 유산인 Sola Scriptura(오직 성경), 또는 초대교회부터 전통본문으로 이어온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 영적 열매(Fruit)의 역사적 검증 (마 7:16-20)
킹제임스 성경 300년의 열매: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세계 선교의 대폭발 (윌리엄 케리, 아도니람 저드슨, 허드슨 테일러 등).
1~2차 영적 대각성 운동과 수억 명의 회심.
성경의 무오성과 절대 권위에 대한 확고한 믿음 형성.
현대역본 100여 년의 열매:
신학적 자유주의, 종교다원주의, 성경 무오성 붕괴.
수백 종의 상업적 역본 난립으로 인한 교회의 분열과 극심한 혼란("어떤 번역이 맞느냐?"는 끝없는 회의론).
젊은 세대의 교회 이탈 및 교리적 영적 쇠퇴.
:예수님께서는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하셨다. 300년간 세계를 복음화한 역사적 열매를 맺은 성경을 믿는 자들을 이단이라 부르고, 교회를 쇠락으로 이끈 현대역본 비평학을 정통이라 부르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 19세기 독일 합리주의(Rationalism)와 진화론적 본문비평의 침투
역사적 배경:1881년 웨스트콧과 호르트가 개정 그리스어 본문을 만들 때 사용한 방법론은, 성경을 성령의 영감과 보존의 책으로 본 것이 아니라 일반 세속 고대 문서처럼 취급한 19세기 독일 합리주의 고등비평학과 다윈의 진화론적 문서 진화론이었다.
현대역본 비평학의 뿌리는 성경적 신앙이 아니라 '인본주의 철학'과 '학문적 교만'이다.
성경 신자들은 성경의 자체 증언(시 12:6-7, 마 24:35, 벧전 1:23-25)에 기록된 하나님의 초자연적 보존 섭리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며,
비평학자들은 끊임없이 변하는 인간의 '학술적 가설'을 하나님 말씀 위에 올려둔 자들이다.
*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 ‘단일 표준’이 낳은 300년의 폭발적 부흥
1611년부터 19세기 말까지는 교회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선교와 부흥의 황금기(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였다.
말씀에 대한 절대적 확신의 시기였다, 당시 성도들과 사역자들은 "어느 사본이 맞느냐", "이 구절은 원본에 없다"는 식의 회의론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손에 쥔 성경이 100%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파했다.
열매로 입증된 역사이다
조지 휫필드와 존 웨슬리의 영적 대각성
찰스 스펄전의 강단 사역과 D.L. 무디의 대규모 회심 운동
윌리엄 케리, 허드슨 테일러, 아도니람 저드슨으로 이어진 세계 선교의 개척
이 모든 역사는 현대역본이 아니라 오직 킹제임스 성경 단 하나만을 최종 권위로 믿고 선포했을 때 일어난 역사적 열매였다.
당시에는 온 교회가 예외 없이 , 오늘날 프레임을 씌운 어휘가 그 당시에는 실제 'KJV Only'의 터 위에 서 있었다
* 반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의 역공: 공인본문 해체 작전
로마 가톨릭(예수회)은 종교개혁자들의 손에 들린 Sola Scriptura(오직 성경)와 안디옥 계열의 공인본문(Textus Receptus)을 무너뜨리지 않고는 개신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드린 전략 --> 교황의 권위를 대체한 '성경의 절대 권위'를 허물기 위해, 가톨릭 서고에 잠자고 있던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과 19세기에 극적으로 부각된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을 학계의 중심 무대로 끌어올렸다.
학술적 침투---> 1881년 웨스트콧과 호르트를 시작으로 19세기 독일 합리주의 사본학을 장악한 비평학계는 "더 오래된 사본이 발견되었으니 종교개혁 성경은 불완전하다"는 프레임을 교회 안에 성공적으로 주입시켰다.
그 결과, 종교개혁의 본문은 '후대의 불완전한 비잔틴 텍스트'로 격하되었고, 가톨릭 알렉산드리아 사본이 '최고(Oldest and Best)의 본문'으로 둔갑하여 개신교 강단을 잠식했다.
* 절대 표준'에서 '소비자 중심의 상대주의'로의 전락
현대역본들이 교계의 거대 자본(대형 출판사들) 및 학술 권력과 결탁하면서 교회의 영적 지형은 급변했다.
수십 종의 현대역본이 쏟아져 나오면서 성경은 "하나님이 보존하신 단 하나의 절대 진리"에서 "각자 취향과 이해도에 따라 골라 읽는 상품"으로 전락했다.
종교 다원주의는 성경 다원주의다 ----> 원래 주류였던 '단일 성경 신앙'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향해, 다역본 시장을 형성한 다수파가 도리어 "왜 너희만 옳다고 하느냐", "편협한 문자주의자들"이라며 'KJV Only'라는 배타적 낙인을 찍어 고립시켰다.
* 겉모습은 약하고 작게 보이겠지만,,
눈에 보이는 교계의 교세로만 보면 KJV 성경신자들의 자리가 좁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성경이 경고한 마지막 때의 배교(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의 미지근함과 상대주의)속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타협하지 않는 남은 자들(Remnant):역사 속에서 다수파가 언제나 진리 편에 섰던 적은 없다. 종교개혁 당시에도 공인본문을 붙든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이라는 거대한 다수 권력 앞에서 극소수에 불과했다.
진리의 보존:수억 명을 구원했던 300년의 부흥 역사는 지워질 수 없는 역사적 실체이며, 현대 비평학의 파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대로(시 12:6-7) 말씀을 순수하게 지키는 성경 신자들의 계보를 이어가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