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과 分派이야기』
상임고문 素林 濟東
우리 안동김 씨는 너 나 할 것 없이 자타(自他)가 모두 인정하는 명문갑족(名門甲族)이다.
그렇다면 “나는 안동김 씨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이 속해 있는 파(派)를 분명히 분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하며 남에게도 알릴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 김씨는 몇몇 파로 갈라져 있는지도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다.
일부 예외(例外)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족보상 원칙으로는 15세(世)를 기준하여 하한선(下限線)으로 했으며
너무 그 아래로 세분(細分)을 하면 일가 일족 간의 정분이 소원하게 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15세에서의 분파(分派)도 후손이 번성하기 때문에 그어 놓은 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어쩌다가 일가가 된다고 하는 사람과 통성명(通姓名)을 할라치면
“나는 태사공파(太師公派)요”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태사공이란 우리 안동김씨의 시조(始祖)를 지칭하는 호칭이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또 한 마디 부언한다면 구안동김 씨(舊安東金氏)와
우리 즉 신안동김 씨(新安東金氏)와의 구분도 할 줄 알아야 한다.
한갓 노파심에서 적어 두는 것이니 종인 여러분의 이해를 바라면서 하는 말이니 양해하시기를 바란다.
여기 파멸을 거론함에 있어 필자는 몇 가지 원칙 아래 여러 종인들께서 이해하기 쉽도록 적어 보련다.
1. 족보에 기록된 서열에 따른다.
2. 많이 일컬어지는 파병은 굵은 글자(고딕)로 표시한다.
3. 자손이 없고 이름만 남은 파명
4. 옛 파병에서 명칭을 바꿔 고친 파명
5. 아직도 족보에 누보(漏譜)된 파명 등등을 감안하면서 적어 보았다.
10세(世) 판관공계권파(判官公係權派)에서 시작되는 분파(分派)
11세(世)에서
감찰공영전파(監察公永銓派)
진사공영균파(進士公永勻派)
부사공영추파(府使公永錘派)
장령공영수파(掌令公永銖派)로 분파된다.
여기서 감찰공파는
12세에서
학생공호파(學生公琥派)와
장사랑공환파(將仕郞公瓛派)
15세에서
진사공홍파(進士公弘派)
진사공등파(進士公登派)
구애공응파(龜厓公譍派)로 분파됐는데
구애공파 예보에는 감찰공원파(監察公元派)로 기재됐으며 파계(派系)를 이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1세인
진사공영균파(進士公永勻派)와
부사공영추파(府使公永錘派)는 모두 하계(下系)에서 더 분파되지 않고 그대로를 호칭하고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부사공파를 수원부사를 지낸 연유로 수원공파(水原公派)로 호칭되기도 한다.
같은 세수(世數)인 장령공영수파(掌令公永銖派)에 있어서는 이 파면은 잘 호칭되지 않고,
그 아래의 12세 및 14세, 15세의 분파명이 많이 호칭되고 있다.
즉 12세는
삼당공영파(三塘公瑛派)
서윤공번파(庶尹公璠派)
진사 공순파(進士公珣派)의 3형제의 파 분류를 하였다.
첫째, 삼당공파는
14세에
증승지공규보파(贈承旨公奎報派)에 이어
15세에
승희랑극파(承議郞克派)
증승지공태파(贈承旨公兌派)
춘당공원파(春塘公元派)의 3형제파를 이루고,
또 14세에
목사공성보파(牧使公星報派) 및
봉사공지효파(奉事公至孝派)
통훈공정보파(通訓公政報派)가 있다.
둘째, 서윤공파는 15세 선에서
문정공상 헌 파(文正公尙憲派=일명淸陰公派)
휴암공상준파(休庵公尙寯派)
문충공상용파(文忠公尙容派=일명仙源公派)
부사공상관파(府使公尙寬派=일명 長湍公派)
부윤공상복파(府尹公尙宓派=일명廣州公派)로 분파되고,
14세에
학생공선효파(學生公善孝派=일명 公派)로 호칭되고 있다.
부언하거늘 서윤공파는 우리 안동김 씨를 크게 빛나게 한 일족으로서 열다섯 분의 정승, 세 분의 왕비,
두 분의 나라님 사위를 비롯한 고위 고관 석학들을 많이 배출하여 안동김 씨의 위상을 드높인 일파라 하겠다.
셋째, 진사공파는 3파를 이루었는데
13세에
사직령공생하파(社稷令公生河派)
눌재공생명파(訥齋公生溟派)를 이루었으며,
특별한 일파로는 20세 휘 달행(達行)을 파조(派祖)로 하는
원천공달행파(源泉公達行派)를 두었다.
이 파도 진사공파라는 것은 인정되나 진사공 이하 7대가 실전되고 없어
부득이한 조치로서 20세 원천공(源泉公)을 파조로 삼은 일파를 둔 것이다.
10세 정헌공계행파(定獻公係行派)에서 시작되는 분파(分派)
정헌공파는 일명 보백당공파(寶白堂公派)라 호칭되고 있다.
정헌공의 아들 5형제 즉
11세에서
참봉공극인파(參奉公克仁派)
진사공극의 파(進士公克義派)
생원골극례파(生員公克禮派)
학생공극지파(學生公克智派)
군수공극신파(郡守公克信派=일명 文川公派라고도 함)로 파는 나누고 있으나
대내외적으로는 통틀어 정헌공파 또는 보백당공파로만 통칭되고 있다.
9세
어담공삼익파(漁潭公三益派)
이 파는 삼근(三近) 삼익(三益) 삼우(三友)의 3형제 중 둘째인데 자손이 번성하지 못한 탓으로 분파하지 않고
어담공파로만 호칭되고 있는 편이다.
9세 휘 삼우(三友)의 아들
10세에서
계공랑맹구파(啓功郞孟龜派)
중파(仲派)
숙파(叔派)
등암공계구파(藤庵公季龜派)로 분파(分派)
계공랑 파는
12세에서
참봉공시좌파(叅奉公時佐派)
참봉공시량파(叅奉公時亮派)
생원공시우파(生員公時佑派)로 분파되고
계공랑공의 둘째 아들
11세
생원공이려파(生員公以礪派)를 이루었다.
중파(仲派) 파조는 휘 중구(仲龜)이고
숙파(叔派) 파조는 휘 숙고(叔龜)인데
모두 후사(後嗣)가 없고 파명(派名)만 남아있는 현실이다.
등암공파는 13세에서
습도공엄파(習讀公淹派)
첨사공온파(僉使公溫派)
강재홍낙파(恒齋公洛派)
낙와공치림파(樂窩公致林派=옛 족보에는 목사공파로 호칭됨)로
나누어지나 통상은 등암공파로만 일컬어지고 있다.
7세
참봉공언적파(參奉公彦迪派)에서 시작된 분파
참봉공파에서는 15세에서 14세 휘 존수(存水) 계통에서
15세에서
별장공홍파(別將公洪派)
국헌공준파(菊軒公浚派=옛 족보에는學生公派로 기록됨)
학생공수정파(學生公遂晶派)로 분파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참봉공파로 통칭되고 있다.
단일파(單一派)로 내려오는 여러 파(派)
7세 현감공지철파(縣監公之哲派)
6세 호장공처상파(戶長公處商派)
6세 사 헌공원수파(司憲公元水派)
5세 사과공열파(司果公烈派) 등이 있다.
이 파들은 파조(派祖) 위의 상계(上系)는 모두 실전(失傳)되어 알 길이 없으며,
단일파로서 족보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
아직도 누보(漏譜)된 일족 예의소승공생파(禮儀少丞公生派)가 있다
예의소승공 휘 생(生)은
8세에 해당되며 가장 근자에 나온 1984년의 제7간 갑자보(甲子譜)에 이르기까지 아주 누보되어 왔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향후 대동보편찬사업이 진행될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입보 되어야 할 것이다.
10세인
판관공용파(判官公龍派) 및 시중공학파(侍中公鶴派)
이 2개 파는
2세
여기(呂基)
여중(呂重) 두 형제분 중 계씨(季氏=동생)인
선군공여중파(選軍公呂重派)에서 시작되어
6세에서
판관공용파(判官公龍派)
시중공학파(侍中公鶴派) 두 갈래로 나누어져 내려오고 있다.
판관공파는 그리 번성한 편이 아니나 시중공파는 매우 번족이며 많은 사연을 지니고 내려오는 파이다.
시중공파 파조이신 사 중공께서 고려 충렬왕(忠烈王 : 1275~1308) 때 좌시중(左侍中)이었다.
국사(國使)로서 원(元) 나라에 갔었는데 사신들의 석차(席次)를 정함에 있어 고려사신의 자리를 오랑캐들 아래로
배정함에 강력히 항의했다가 원나라 황제의 노여움을 샀다.
원나라 황제는 고려왕에게 시중공의 엄벌을 요구해 왔다.
즉 시중공을 사형으로 다스리라는 것.
이에 고려 왕은 도리어 충신을 잃을 수 없다면서 진(秦)씨로 성을 고치게 하고
강원도 삼척(三陟)의 깊은 산골에 숨어 살게 했다.
이래서 시중공 후손들이 생명을 이어왔고 조선조 순조(純祖) 때 이르러 나라님께 간곡히 호소하여 비로소
진 씨(秦氏)에서 김 씨(金氏)로 성씨를 되찾게 되었다.
그래서 시중공파를 별칭 복성파(復姓派)라고도 일컫는다.
왜 하필이면 김(金)을 진(秦)으로 변성시켰을까?
김(金) 자의 맨 아래의 (一) 자획에다 (二) 자획을 합쳐서 (三) 자획으로 만들어
김(金) 자란 본성을 잃지 않도록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직도 오늘날에 김 씨로 환원되지 못하고 진 씨(秦氏)로만 살고 있으며 환원하고 싶어
무한 애쓰고 있어 법이 허용하지 않고 있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출처] 안동김문연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