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斷想)
[오늘의 법구]
⊙ 고행의 가치는 미미하다
달이면 달마다 음식을 아껴 어리석은 사람이 고행하여도 그 사람은 부처님의 진리를 몰라 1/16의 가치조차 얻지 못한다.
從月至於月 愚者用飮食 彼不信於佛 十六不獲一 종월지어월 우자용음식 피불신어불 십육불획일
《법구경(法句經)》 『우암품(愚闇品)』
-----------------------------------------------------------------------------------------------------------------
이 법구는어리석은 수행자의 잘못된 고행을 경책하는 게송입니다.
진리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극단을 버려야 합니다. 두 가지 극단이란, 하나는 온갖 욕망(欲望)에 집착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고행(苦行)을 일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극단은 범부의 소행이어서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진리는 중도(中道)입니다. 중도는 정도(正道)이기 때문에 열반(涅槃)으로 가는 길입니다.
고행을 닦는 정신으로 지혜관찰(智慧觀察) 수행에 집중한다면 도과(道果)를 얻을 것이나 고행을 통하여 무엇을 얻으려 한다면 그 결과는 미미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잘 들으라. 비구들은 두 가지 극단으로 치우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두 가지 극단이란, 무엇인가? 하나는 육체의 본능이 요구하는대로 쾌락을 탐하는 길이요, 하나는 자신의 육체를 지나치게 학대하는 고행의 길이다."
부처님께서는 출가 직후 6년간 극심한 고행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몸만 쇠약해지고 깨달음은 얻지 못하 셨습니다. 이것이 고행의 한계입니다. 부처님의 고행 체험으로 인해, 극단적인 고행이 해탈의 길이 아님 을 직접 증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중도(中道), 즉 쾌락도 고행도 아닌 바른 길을 강조합니다.
음식이나 생활을 억지로 줄이고 몸을 괴롭히면서 그것을 수행이라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속에 바른 믿음[正信]과 지혜(智慧)가 없다면, 그것은 단순한 자학일 뿐입니다.
진정한 수행은 고행의 정도가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바른 길인 팔정도(八正道) 실천하며 지혜 를 닦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큰 노력을 기울여도 작은 깨달음조차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때때로 "나는 이렇게 힘들게 했다."라는 마음으로 수행이나 신행을 평가하려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는 노력의 양보다 방향을 묻습니다. 바른 길이 아닌 수행은 자기 만족이나 집착이 될 뿐, 참된 이익을 주지 못합니다. 따라서 불필요하게 몸을 괴롭히는 고행보다는, 매일 마음을 바르게 쓰고 자비와 지혜를 기르는 것이 훨씬 값진 수행이라 하겠습니다.
단지 몸을 괴롭힘은 지혜가 되지 않고
믿음 없는 고행은 쓸데없는 고통일 뿐.
바른 길 팔정도에서 참된 지혜 구해야 하리.
수행의 본질은 바른 믿음과 지혜이지, 겉모습의 고행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인식하면서 치우침 없는 지혜의 길 팔정도를 걸읍시다. _()_
여기서 <부처님의 고행>에 대하여 간단히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6년 고행은 쓸데없는 헛수고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당시의 고행주의 사상계는 고행을 통하 여 생천(生天)한다는 절대적 믿음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고행은 가장 극심한 것이어서 일찍이 없었던 것이라 고행주의자에게 경각심을 주었고 그들의 주장을 낱낱이 설파(說破)하셨던 것입니다.
체험하지 않고 이론으로만 주장하셨다면 그들을 논파(論破)하실 수 없으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한편으로는 부처님의 고행은 외도들의 주장을 혁파하시는 방편이었다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_()_
언제나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 자애와 연민, 복과 지혜를 닦아 통찰지를 갖추 고 정리를 따라 정심정행하며, 맑고 향기로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
첫댓글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