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문 (金剛門)
불교 사찰 입구의 일주문 다음에 있는 문으로,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한다.
천왕문과 함께 사찰에 들어갈 때 불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낸다는 의미를 갖는 장소이다.
흔히 인왕상이라 불리는 두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어 인왕문(仁王門)이라고도 한다.

금강역사란 본래 어원적으로 볼 때 금강저를 손에 쥔 자라는 뜻으로
금강저는 지혜의 무기이며 번뇌를 부수는 보리심의 상징이다.
이중 오른쪽을 지키는 역사가 나라연금강이고, 왼쪽을 지키고 있는 역사가 밀적금강이다.
'밀적'은 자취를 드러내지 않음이고, '나라연'은 힘이 몹시 세다는 의미이다.
두 분 모두 원래 인도에서 신으로 받들어 모셔지던 존재였는데
석가모니 부처님 말씀에 감동해 부처님의 문지기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함.
이들은 상체를 벗고 손에는 금강저를 들고서 아주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불법을 훼방하는 삿된 세력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 좌측 밀적금강 (密跡金剛)
'훔' 하면서 입을 다물고 있음 (훔금강역사)
언제나 부처님에게 바짝 붙어 보호하면서 부처님의 비밀한 사적(事迹)을 들으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밀적이라고 한다.
언제나 드러나지 않게 묵묵히 삼보와 도량의 호법을 실천하는 보살행을 펼치는 불보살의 화신으로서의 상징적 형상.
'훔' - 모든 것의 소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상징 - 다소 방어적인 모습으로 묘사
▒ 우측 나라연금강 (那羅延金剛)
입을 '아'하고 벌린 모습 (아금강역사)
천상계의 역사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가 된다고 한다.
'아' - 태어남, 시작을 상징 - 다소 진취적인 모습으로 묘사
'아(Ah)'는 산스크리트어의 첫글자로서 시작을 뜻하며, '훔(Hum)'은 끝글자로서 마지막을 뜻한다.
이 '아'와 '훔'을 합치면, 우주 만물의 처음이자 마지막을 상징하는 진언 '옴(Om)'이라는 소리가 된다고 하며
이 '옴'은 모든 진언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신성한 음절이라 한다.
이들의 머리 뒤에는 커다란 원형의 두광(頭光)이 있다.
이는 이들이 단순히 힘센 이가 아니라 신성한 지혜를 고루 갖추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깨지지 않는 금강석과 같은 마음을 내어서 사찰로 들어가는 사람마다 다시 한 번 부처님의 지혜를 배우기를 서원하고
가정으로 돌아갈 때는 보살도를 실천하는 보현행원이 깨어지지 않게 마음에 새겨 발원하는 곳이 바로 금강문이다.
※ 왜 만들어지게 됐는지?
<근본비나야잡사경>에 의하면, 급고독장자가 기원정사를 세워 채화로서 장엄하려고 석가모니 부처님께 물었을 때,
석가모니 부처님이 '문의 양쪽에 집장(執杖)의 야차(夜叉)를 만들라'고 하신 것에 유래한 것이다.
<오분율> '모든 부처님이 계신 곳에는 항상 오백의 금강신이 부처님을 호위하며 모신다'
<화엄경> '부처님이 계신 곳이면 어디든지 몸을 나타내어 항상 외호한다'
이에 따라 사찰에서는 불법을 지키는 신으로서 금강역사상을 안치하고 있다.
※ 역사적 변천과정
그 기원은 원래 고대 인도에서 문을 지키는 신인 야차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조형은 기원전 2세기 인도 바르후트나 산치탑문에서 시작되어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의 운강, 용문, 돈황 등 여러 석굴사원에 나타난다. 고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로 본래 인도 귀족의 의상을 착용하고 있었지만 중국으로 전해질 무렵에는 완전히 서역풍(西域風)의 갑옷으로 갈아입게 되었으며, 그 얼굴 모습도 분노하는 모습의 험악한 인상으로 굳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주변 여건과 무관하지 않다. 서역이란 오늘날의 중앙아시아를 말한다. 지금이야 현대식 도로가 뚫려 있기는 하지만, 세계의 지붕이라 하는 파미르 고원에서 발원하는 큰 산들이 솟아 있는 데다가 타르 사막이 펼쳐지는 등 척박한 자연 조건으로 사람들의 접근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 곳이다. 옛날 현장 스님이 이곳을 지날 때, 귀신 소리가 귀전을 때리며 곳곳에 인골이 나뒹군다고 했을 정도니, 그 살벌하고도 무시무시한 풍광을 짐작할 만하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죽음보다 무서운 악조건을 퇴치하는 강력한 무인의 모습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우리 나라 금강역사상의 특징은 중국 및 일본의 것과는 달리 무섭다기보다는 악의 없는 순진성을 읽을 수 있다는 데 있으며, 석굴암 입구의 금강역사상이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 그 수효에 대해서
원래 금강역사는 단 한 분뿐이었고 한다. 심지어 우에무라는 금강역사에 밀적금강과 나라연금강이 있다는 오해를 하지 말기 바란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하나에서 다(多)로 증식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 가장 타당한 해석은 본래 한 분이었던 금강역사가 점차 석가모니 이외에 제불보살로부터 일반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수호 영역을 확대한 결과라는 것이다. 여기서 본래 하나였던 금강역사가 그 자재한 동적 작용으로 인하여 수를 증식하여 아형과 음형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금강과 역사, 밀적금강과 나라연금강이라는 각각 다른 인물로 묘사될 수 있었다는 개연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입모양에 관해서
대개의 경우, 나라연금강을 입을 벌린 아금강역사, 밀적금강을 훔금강역사로 설명하는데
이와 반대로, 밀적금강을 아금강역사로, 나라연금강을 훔금강역사로 설명하기도 한다.


※ [인왕, 금강역사] 불법의 수문신장 http://cafe.daum.net/santam/IZ0A/61
[동영상 보기]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jszRAqAah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