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가까이에 있는 강화도는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정말 매력이 많은 곳이다. 그 매력을 찾아서 서서히 출발해 볼까요?
올림픽대로를 타고 김포공항 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김포, 강화로 진입하는 48번 국도도 있지만 352번 제방도로를 선택한다면 이번
여행이 조금은 순조롭지 않을까 생각된다. 단, 이번 여행은 역사 유적지를 찾아가는 것이라 아이들은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먼저 엄마 아빠가
미리 공부를 해간다면 조금은 만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강화대교를 지나서 바로 검문소가 보이는데 검문소를 끼고 좌회전 신호를
기다린다. 그리고 유턴하듯 좌회전을 하여 첫 번째 여행지인 강화역사관 앞에 차를 세운다. 미리 알고 갈 것은 요즘 강화역사관이 유물재배치로 인해
공사를 하고 있어 휴관 중이기 때문에 무료로 입장을 할 수 있지만 강화역사관 내부는 볼 수 없고 갑곶돈대만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강화역사관 야외에는 총 67기의 강화비석군이 있는데 조선시대 때 선정을 베푼 유수, 판관, 군수 등의 영세불망비와 선정비, 그리고
자연보호의 일환으로 세운 금표 등이다. 또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해선망어선이 놓여있는데 이것은 고려시대부터 전래된 물고기 운반선의 한 변형으로
출현시기는 확실치 않고 그저 조선조 후기로 추측할 뿐이며 이 배는 일명 멍텅구리배로 불리운다. 이 배는 한국형 고유 어선으로 현대화 추세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며 실물을 원형 그대로 복원해 놓은 전시물이다. 다음은 갑곶돈대로 올라보자. 갑곶돈대는 고려 조정이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몽고와 줄기차게 싸울 때의 외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였다.
돈대 안에는 조선시대의 대포인 불랑기, 소포, 홍이포가 전시되어 있다. 불랑기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널리 사용된 화승포로서 다섯 개에서
아홉 개의 자포(子砲)를 결합하여 연속으로 사격을 할 수 있는 꽤 발달된 화기이다. 소포는 길이가 약 119cm로 포구장전식 화포로
사정거리가 300m 정도로 우리나라 재래식 화포중 가장 발달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한다. 홍이포는 215cm의 길이로 꽤 큰 포이며 사정 거리가
약700m에 달하지만 포탄의 위력이 매우 약해 그 당시 서양 대포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포를 구경하고 난 후에는 이섭정으로
올라보자. 이섭정은 고려 때 몽고와의 협상에서 우리측이 이롭게 되기를 염원하며 지은 팔각정자였다. 하지만 무너진지 오래된 것을 1398(태조
7년)년 강화부사 이성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곳에 오르면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강화도를 감상할 수 있다. 여기까지 강화역사관과
갑곶돈대 구경을 마치고 다음은 해안순환도로를 따라 여행을 계속해볼까 한다. 해안순환도로는 강화역사관부터 광성보까지 약 9km의 구간이며
왕복2차선으로 시원스럽게 바다를 마주해 도는 새로운 도로이다.
돋보이는 것은 자전거 전용도로가 따로 있다는 것인데 조금 비좁긴
하지만 군데군데 쉴 공간도 있고 해서 나름대로 자전거 여행을 즐겨도 괜찮을 듯 싶다. 자전거는 강화역사관에 있는 대여소에서 빌릴 수 있다. 다음
여행지는 광성보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안해루이다. 울창한 나무들에 둘러싸인 안해루 왼쪽 옆으로는 광성돈대가
보인다. 돈대(墩臺)는 사전적인 의미로 '조금 높직한 평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해서 돈대에 석벽을 쌓고 조그만 문을를 만들어 대포를
배치하고 외세의 침략에 대응한 일종의 전투 요새이다. 안해루를 지나쳐 쭉쭉 뻗은 나무가 무성한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신미순의총'과
'쌍충비각'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미국의 아세아함대와 사투를 벌이던 어재연 장군과
휘하의 군사들이 장렬히 순국했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전적비와 무덤이다. 잠깐 여기서 신미양요와 병인양요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면
신미양요(辛未洋擾)는 미국이 1866년의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조선을 개항시키려고 무력 침투한 사건이다. 그리고 병인양요는 1866년(고종
3년)에 대원군의 천주교도 학살 및 탄압에 대항하여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침범한 사건으로 덕진진과 초지진이 큰 수모를 겪은 바 있다. 덕진진과
초지진은 다음 여행지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고...
계속해서 전적비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시원스레 탁 트인 바다와 용두돈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용두돈대는 강화해협을 지키던 천연
요새로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던 현장이며 1977년 성벽을
복원하였고 두 개의 포대와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의 전면 글씨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고 후면의 비문은 이은상이 짓고
글씨는 김충현이 썼다고 한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그리 푸른 물빛은 아니지만 옛 선조들의 치열한 싸움의 결과로 지금은 그래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자, 그럼 좀 전에 그냥 지나쳤던 안해루를 통해 들어서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 아이들은 그저 두 팔을 번쩍 들고 신나게 달릴 수 있는 광활한 공원 같은 곳인데 먹을 것을 준비 해 간다면 이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맛난 음식을 먹어도 좋다. 좀 쌀쌀한 날씨이긴 하지만... 광성보를 나와서 직진을 하면 다음 여행지인 덕진진과 초지진을 갈 수 있다. 먼저
덕진진으로 들어서면 매표소를 지나 공조루(控潮樓)이다. 공조루를 지나 걸어 들어가면 10개의 대포가 설치된 남장포대이다. 이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유수 윤이제가 돈대를 쌓아 방비하였는데 강화에 있는 9개의 포대중 하나이다.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덕진돈대와 함께 미·아세아 함대에 맹렬한 포격을 가하였지만 병기의 열세로 패하고 말았다. 이때 성첩과 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으며 1977년에
복원하고 조선시대의 홍이 포도 만들어 설치해 두었다. 이 포대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 덕진돈대인데 북쪽에는 광성보, 남쪽에는 초지진, 중간에
위치한 이 돈대는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이기도 하다.
또한 병인양요(1866년) 때 양헌수 장군의 부대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하였고 신미양요(1871년)에는 미국 함대와 치열한 포격전을 펼치기도 하였던 곳이지만 지금이 이 돈대에 올라 내려다보는 경치는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다음은 돈대의 마지막 여행지인 초지진이다. 이곳은 다른 돈대에 비해 걷는 시간이나 볼거리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초지진 내에 있는 홍이포는 진품이라 하는데 눈으로 식별하기에는 다른 돈대의 설치물과 비슷해 보인다. 이 초지진은 1656년(효종 7년)
강화유수 홍중보가 처음 설치하였고 그 후로도 몇 차례의 교전이 펼쳐져 돈(墩)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73년 초지돈만
복원하였다. 그때의 치열했던 흔적을 성벽 옆으로 힘겨운 병사모양 서 있는 노송이 말해주고 있는데 병인양요(1866년), 신미양요(1871년),
운양호사건(1875년) 등 온갖 시련을 겪어냈듯 그저 묵묵히 남아있을 뿐이다.
이렇게 해서 다소 지루했던 역사 유적지 여행은 끝을 내고 강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전등사로 발길을 돌려본다. 초지진을 나와 전등사로
향하는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 멋지거나 아름답지는 않다. 하지만 유명한 사찰이니 만큼 이번 여행지의 종착지로 정했다.
먼저 전등사로
가는 길은 몇 곳이 있는데 남문을 통하거나 동문을 통하거나 전등사에 도착하게 된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리는 건 어느 유명 사찰을 가보아도 왜
그리 음식점들이 즐비 한지... 전등사 역시 그러하다. 문을 일단 들어서야 만이 비로소 속세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이야 여름의 울창한 삼림이나 멋진 단풍도 다 지고 없지만 호젓한 길을 따라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삼랑성으로 에워싸여 있는
전등사는 나이 많은 느티나무가 특히 많다. 삼랑성(三郞城)은 사적 제 130호로 성의 축조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단군(檀君)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로 삼랑산성(三郞山城) 혹은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 불리운다. 성곽의 축성 구조로 볼 때 잡석으로 축조되었고 삼국시대의 석성구조를
보여주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보수를 한 흔적과 조선시대에 중수가 이루어지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다
동문을 들어서면 병인양요 당시에
프랑스군에 승리한 양헌수 승전비를 맨 처음 볼 수 있고 길을 따라 들어가면 느티나무 두 그루와 전통찻집인 다래헌이 반긴다. 이곳에서 잠시 목을
축이는 것도 참 운치있을 듯하다. 전등사는 신라의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했다고 구전되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고 고려 원종 7년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眞宗寺)라 불리었으나 고려 충렬왕의 원비인 정화공주가 이 절에 옥등(玉橙)을 헌납하면서 전등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전등사 대조루(對潮樓)로 머리를 조아리고 들어서면 잘 생긴 대웅보전과 마주치게 된다. 전등사 대조루는 창건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다만 삼량문에 의하면 조선 영조 25년(1749) 총섭(주지) 초윤 등이 개건하였고 헌종 7년(1841) 총섭 연흥 등이 중수하여
1916년에 다시 수리하고 1932년 사찰 안의 건물들을 중수하면서 이 누각도 중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누각 안에는 기념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어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다 대조루를 마주하고 서 있는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제178호)은 1916 년 수리 시에
발견된 양간록에 의해 창건 연대가 밝혀지는데 선조 38년(1605) 일부 불타버렸고 다시 광해군 6년 (1614)에 불이나 모두 타버린 것을
다음해인 1615년 공사를 시작해 광해군 13년(1621) 거의 완공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대웅보전 네 귀퉁이에는 나녀상이 있어 눈길을
끄는데 여기에는 서글픈 사랑에 대한 전설이 깃들여 있다. 옛날 전등사 대웅전 건립에 참여한 도편수는 사랑하던 여인과 공사가 끝나면 살림을 차릴
결심이었지만 채 공사가 끝나기도 전에 변심한 여인은 그를 떠나고 말았다. 한동안 실의에 빠진 도편수는 대웅보전 공사를 마무리 짓고 그 여인의
나녀상을 조각해 무거운 지붕을 떠받들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나녀상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생각을 해야할지...
대조루 옆으로 있는
범종(보물 제393호)은 중국 북송의 철종 소성 4년(1097, 고려 숙종 2년)에 회주 수무현 백암산 숭명사에서 주조된 철제종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개성 연복사 동종과 유사하며 우리나라에서 중국의 철제종이 보물로 지정된 유일한 종이다. 모양도 독특하고 오래된 흔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 앞으로 있는 느티나무는 수령이 400년이나 지났으며 높이 30m, 둘레 3.6m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대웅보전
옆으로는 약사여래를 봉안한 약사전(藥師殿, 보물 제179호), 명부전, 삼성각, 적묵당, 향로전, 강설당 등과 많은 탱화 등 법화경 104매와
목판 등도 전등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시간이 나면 동막해수욕장의 해변을 걷는 낭만도 즐겨볼 만하고 장화리의 낙조를
감상하는 것도 좋 을 듯 싶다.
교통 정보
▶ 승용차편 강화로 가려면 우선 김포, 강화 방면으로 가는 48번
국도를 이용하는 방법과 352번 제방도로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검문소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린다. 유턴을 하듯 좌회전하여 해안순환도로와 강화역사관으로 진입하는 길이 나오는데 강화역사관을 먼저 들르기 위해 표지판을 보고
강화역사관 쪽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강화역사관 주차장에서 해안순환도로로 나오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광성보까지 갈 수 있다. 강화역사관에서
광성보까지 약 9km의 구간으로 바다를 마주하며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도 좋다.
광성보를 빠져나와 덕진진으로 가려면 직진 길을 택해
가다가 사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약 5분 정도 달리면 된다. 그리고 초지진으로 가려면 덕진진을 나와서 다시 좌회전, 계속
직진하다보면 전등사로 향하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직진하면 길 왼편으로 바로 초지진이다. 강화역사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모두 입장료
외에 주차료는 무료이다. 다음 전등사로 가려면 초지진에서 차를 돌려 나오다가 초지진으로 들어가는 길에 보았던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계속
입간판을 보고 달리면 전등사 주차장까지 도착하게 된다. 이번 여행지들 모두 표지판이 잘 되어있고 단순한 길이어서 쉬엄쉬엄 드라이브를 즐겨도
좋을 듯 싶다.
▶ 대중교통 대중교통은 신촌 시외버스터미널(02-324-0611)에서 아침 5시 40분부터 저녁 9시
40분까지 10분 간격으로 다니는 강화행 버스(약 1시간 10분 소요)를 타고 강화 시외버스 터미널(032-934-3447)에서 하차한다.
그리고 이번 여행지를 찾아갈 때에는 군내버스를 타는 것보다 전적지 순환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 전적지 순환버스는 강화터미널에서
출발하며 오전 6시 40분부터 오후 6시 40분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다.
▶ 음식 정보 강화역사관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더러미뱀장어타운이 있는데 장어구이나 매운탕 종류가 먹을 만하다. 그리고 초지진 부근에 몇몇 음식점들이 있지만 가격이 조금
비싼편이고 전등사 동문 주차장 부근에 음식점들이 즐비하며 남문 쪽으로도 음식점들이 꽤 있다.
▶ 숙박 정보 강화도는 서울에서
약 1시간 30분 거리이기 때문에 당일로 여행을 할 수 있지만 굳이 숙박시설을 이용해야 한다면 광성보 근처에 있는 모텔이나 강화 시내, 그리고
전등사 부근에 강화가족호텔과 몇몇 숙박시설이 있다.
▶ 강화역사관 휴관일 : 2000년 11월 10일부터 2001년 2월
10일까지(예정) 입장료 : 개인 (어른 1,300원, 청소년·어린이 700원) 단체 (어른 900원, 청소년·어린이 600원)
전화 : (032)933-2178 자전거 대여료 : 2,000원(1시간)
▶ 광성보 입장료 : 개인 (어른
1,100원, 청소년·어린이 700원) 단체 (어른 900원, 청소년·어린이 600원) 전화 : (032)937-4488
▶ 덕진진 입장료 : 개인 (어른 700원, 청소년·어린이 500원) 단체 (어른 600원, 청소년·어린이 400원)
전화 : (032)937-4588
▶ 초지진 입장료 : 개인 (어른 700원, 청소년·어린이 500원) 단체
(어른 600원, 청소년·어린이 400원) 전화 : (032)937-4388
▶ 전등사 입장료 : 개인 (어른
1,800원, 청소년 1,300원, 어린이 1,000원) 단체 (어른 1,600원, 청소년 1,100원, 어린이 700원) 관람시간
: 오전 5시부터 오후 8시 (동·하절기에는 변경될 수 있음) 주차료 : 대형 4,000원, 소형 2,000원 전화 :
(032)937-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