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에서 희망을 캐고 계시는 목사님 안녕하시죠.
평택은 완연한 겨울입니다.
저도 두툼한 파카를 꺼내 입었습니다.
더운 나라에서 건강에 유의하시고 평안하세요.
샬롬!
희망의 3부 능선
하나.
어릴 때는 엄마만큼 자라고 싶었다.
부엌 문지방에 올라 까치발을 해도 넘볼 수 없었던 엄마의 키.
난공불락과 같았던 엄마의 키는 중학교에 진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더 이상 비교대상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이 들면 세월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말한다.
어릴 때는 10km로 달리던 세월이, 20km, 30km, 40km로 달리다가 급기야 70, 80km로 달리면서 부터는 눈썹이 휘날리기 시작한다고 한다.
바야흐로 입시의 계절이다.
참으로 빠른 시간의 흐름이다.
내가 맡은 중3 학생들은 9월부터 자율형 사립고 시험을 치르더니 어제는 특성화고등학교(옛 전문계 또는 실업계) 원서접수 마감을 하였다.
점수가 낮은 아이들에게 특성화고 진학은 희망의 3부 능선을 오르는 것과 같다.
평택시는 비평준화 지역이라 학교마다 신입생 유치를 위한 마케팅도 치열하고, 입시 방법도 다양한 편이다.
특성화고등학교는 동일계 진학의 이점과 대기업 생산직 취업률을 가지고 마케팅을 한다.
평택지역 인근에는 동일공고, 청담고가 특성화고등학교이고, 송탄에는 은혜고에 두 개 학과, 진위고에 2개 학과, 안중의 안중고에 2개 학과, 여학교인 평택여고에 두 개 학과가 있다.
고덕면의 한국관광고등학교와 안중읍의 안일물류고등학교는 특성화고등학교이기는 하지만 예상 점수가 높거나 학과의 장점이 적어서 기피하는 편이다.
도토리 키재기같은 학교들이고 그래서 내신점수가 낮은 아이들이 진학을 희망하지만 특성화고등학교에는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
몇 년 전 컴퓨터 관련학과가 대 유행을 할 때는 청담고등학교가 맹위를 떨쳤다.
특히나 청담고는 경기도교육감지정 특성화고등학교로 지정되면서 학비가 면제되어 진학희망 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동일공고도 경기도교육감지정 특성화고등학교로 지정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점수가 대폭 올라간 것이다.
점수가 올라가면 최저 내신을 받은 아이들이 진학할 학교가 없어진다.
취업난이 거듭되면서 자동차학과나 토목, 건축처럼 좀 힘들더라도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있는 학과에 대한 선호도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동일공고에서는 컴퓨터 관련 학과인 전자계산기학과의 커트라인이 급전직하하고, 자동차과의 점수가 더폭 상승한 것, 취업이 수월한 정보전자과가 인기를 얻은 것도 이와 같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청담고는 평택지역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톱클래스를 형성하였던 네트워크 디자인학과의 인기가 급전직하하였다.
최근에는 기존 학과를 복지과, 영어과 등으로 전환하였지만 옛 영광(?)은 쉽게 회복되지 않을 전망이다.
둘.
우리 학급에서는 6명의 학생이 특성화고등학교 원서를 냈다.
앞으로 수원으로 이사 갈 예정인 창이는 수원공고, 준이, 덕이, 환이는 동일공고 그리고 동일공고를 희망했지만 점수에 밀렸던 명이와 민이는 청담고에 진학한다.
진즉 합덕마이스터고에 합격한 훈이까지 합하면 모두 7명이 된다.
팽성읍에 거주하는 엽이는 특성화고를 희망했지만 점수가 낮은 데다, 아버지가 평택시내에 있는 고등학교가 아니면 진학시키지 않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인문계로 방향을 선회했다.
내신점수 100점인 혁이는 관내에 있는 모든 특성화고등학교에 원서를 쓸 수 없어 진학을 포기하였다.
한마디로 특성화고(실업계)를 쓸 수 없어 미달되는 인문계고로 진학해야 하는 경우다.
키도 작고 지병도 있어 아이들과 쉽게 어우러지지 못하는 혁이에게 특성화고 진학은 또 다른 꿈일 수 있다.
그렇다고 절망하지도 않는다.
혁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를 이어 도배사가 되는 것이 꿈이기 때문이다.
조금 슬프지만 혁이의 부모도 아이가 무사히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까지 졸업시키는 것이 목표다.
셋.
특성화고 입시의 하이라이트는 원서마감일이다.
통상 특성화고는 탈락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관내 중학교와 긴밀하게 연락하여 탈락선에 들어간 학생들의 명단을 해당 학교에 통보하여 대처하게 한다.
그러다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점수에 따라 긴박한 상하이동이 이뤄진다.
아이들이 이동하는 모습은 흡사 주식시장 변동 폭과 같다.
진학문제를 담당하는 조선생은 특성화고등학교와 연락하여 정보를 얻어내고, 얻어낸 정보를 각 반 담임들에게 전달하면, 담임들은 해당 학생들을 불러내서 상황을 설명하고 좀 더 낮은 학과로 조정하거나 심지어 학교를 바꾸기도 한다.
105점을 받은 6반의 민이는 어느 학교든지 특성화고로 진학시키려는 담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교에서 퇴짜를 맞았다.
1학년 때 내가 담임했던 8반의 현이는 0.3점 차이로 원하던 학과를 바꿔야 했다.
우리 반 민이는 점수가 높은 학생이 지원을 포기하는 바람에 0.8점 차이로 합격하는 영광을 누렸다.
작년 청담고에서는 커트라인 1점 안에 13명의 아이들이 포진하여 치열하게 경쟁하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그 가운데 3명만 합격했으니 0.1점도 안 되는 점수 차로 명암이 엇갈린 것이다.
특성화고에 탈락한 아이들은 `12월 17일에 있을 인문계 진학을 타진해야 한다.
점수가 낮은 아이들의 꿈은 올 해 신설되는 비전동의 비전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다.
헌데 그놈의 비전고등학교마저도 진학희망자가 몰려 커트라인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
우리 반에도 120점대 후반, 130점대의 학생들이 즐비한데, 그 아이들을 어쩌나.
그나마 합격으로 희망의 3부 능선에 오른 아이들은 다행이지만, 공부 좀 못한다고 집시처럼 이리 저리 떠돌아야 하는 그 아이들이 안쓰럽다.
그들은 대부분 무산자(無産者)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2012.11.23)
첫댓글 건강하시죠? 저 이제 100% 순수한 unemployee입니다... 선생님 글 읽는동안 마음이 짠 허네요. 그래서 국가가 교육허고 보건복지는 100% 책임을 져야합니다. 프랑스처럼 대학까지는 아니더라도...고등학교까지는...더 이상 애들한테 점수로 줄서게 하지 말고요...학교안에서 적성검사, 희망사항등으로 직업교육, 인성교육을 해나가야 할텐데요...
시험보느라 고생 많았죠. 저도 10여 년 전에 학위논문 쓴다고 눈이 나빠지고나서는 금세 노안까지 오더군요. 이제 몸을 아끼며 살아야 할 나인가 봅니다. 고등학교까지무상교육도 중요하지만 우선 평택지역 고교 평준화부터 되었으면 좋겠어요.
남의 일들처럼 생각하는데 실은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나누어야할 심각한 문제이지요. 얼마든지 행복할 우리 아이들 어리석은 어른들이 꽃도 피어보기도전에 시들게하는 천민 자본주의, 우리들의 자화상 이네요. 불상한 우리 애들. 그래도 희망은 있읍니다. 우리 김해규 선생닌 같은 분들이 있는한. 계속 고민 합시다. 반갑습니다. 또 들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