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전국민학교 9
또 ‘불합격’이었다. 합격자를 알리는 공문에 내 이름이 없었으니까....
하늘이 노랗고, 가슴까지 떨리더라. 남이 볼까봐 얼른 감췄지. 자식들에게도 얼굴이 서지 않고 남부끄럽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공부한다고 유난을 떨었는데.... 할만큼 했다고 자부했었는데.... 계절제 대학원에 입학한 선생님은 벌써 2학년이 되었는데, 나는 이름도 못 올렸다. ‘나한텐 도저히 불가능한 건가 ? 괜히 시작했나 ?’ 자괴감이 심각하게 엄습해 왔다. 한 일주일을 숨어서 지내듯 했다. 남들이 모르기만 바랬지.
그러면서 ‘할 만큼 했으니 이제 포기하자’는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그래. 원없이 했다. 이젠 끝내자’ 마음먹게 되었지.
그러나 비밀은 없는 법. 서서히 알려지게 되었고, 위로의 말도 건네지더라.
“이선생. 술이나 한 잔 하러 가자” 가장 친하게 지내던 백선생과 몇몇이 학교 근처 술집으로 갔다. 한 잔, 두 잔 술로 마음을 달래갔지.
한 참 분위기가 무르익는데 교감선생님이 어디서 드셨는지 얼근하신 채 끼어드셨다. 그 당시 동대전은 복수교감인 학교였다. 그 중에 한 분이 퇴근 후에 학교 근처 술집을 배회하시면서 선생님들 술자리를 찾아 전전하시는 습관을 갖고 계셨다. 술이 취하시면 빈정거림이 심하셔서 술자리를 흔들어 놓으시기 일수라 그렇게 반가우신 분은 아니셨지. 그날도 술자리를 몇 번 오간 뒤라 주사가 심하셨었다. 몇 번을 참다가 내가 “교감선생님 많이 취하셨어요. 이제 그만 드시지요” 했네. “뭐, 임마”하시더니 나를 노려보시더라. 그 후 얼글에 비웃음을 지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새끼. 그러니까 교원대를 두 번이나 떨어졌지” 그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순간 머리에서 불기둥이 솓구치더라. 내 안색을 보고 동료들이 긴장할 정도로.... 나는 간신히 참았다가 “아니. 교감선생님 제가 공부하는 데 뭐래도 도와주신 거 있으세요 ?” 쏘아붙였지.
“뭐 새끼야. 건방진 게. 그러니까 교원대 두 번이나 떠어졌어. 임마”하시더라.
나는 화가 끝까지 솓구쳤지. 당장 일어설 참이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 챈 동료선생님이 “교감선생님 제가 댁에 모셔다 드릴 게요”하더니 안 간다고 버티시는 교감선생님을 모시고 나갔다. 그 후 분을 삭이느라 한참을 더 들이 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화산이 폭발하듯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동료들과 함께 술집 문을 열고 나서는데 교감선생님께서 문 앞에 떡하니 버티고 계시네. 나를 기다리고 계신 거다. 모두가 깜짝 놀랬지.
그 때 또 한 번 내 던지신다. “새끼. 교원대를 두 번이나 떨어진 새끼가....”
그 순간 내가 모든 이성을 잃었었다.
손을 뻗어 교감선생님 따귀를 올려 친 것이다. 교감선생님께서 저만큼 나가떨어진 모습이 눈에 보이는 순간 내 머리는 깜깜해졌다. 백선생이 나를 끌어안으며 말리는 동안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아하 이 거 큰일 났구나. 너무 큰 잘못을 저질렀다. 이 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선배님을 깎듯이 모셔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 온 난데....’ 생각만 되씹어 지더라. ‘내 잘못을 빌어야지. 무릎 꿇고 빌어야지’ 생각하고 눈을 떴는데 교감선생님께서 사라지고 없으시더라.
“건표야. 집에 가자” 백선생이 간곡히 말했다. “아냐. 내 잘못을 빌어야 돼”
“이미 가셨는데 어떻게 빌어. 내일 학교에서 해” “아냐. 이 근처 술집에 계실 거야. 너는 먼저 집에 가” 혼자서 이집 저집 술집마다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몇 번째 집이었던가. 호프집에 들어서니 선생님들 서너 분과 교감선생님이 계셨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지
“교감선생님 잘못했습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여러 번 머리를 조아렸었다. 선생님들이 일으켜 세우고, 말리고, 화해시켜서 간신히 마무리는 됐다. 그 자리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왜 이리 처량한지....
가로등도 세상 모두가 나를 비웃는 것처럼 보이더라.
“야 건표야 안 되겠다. 이대로 끝내서는 창피해서 안 되겠다. 다시 시작하자”
그러나 견뎌내야 할 앞 길을 생각하면....
그래도 그 덕분에 던져두었던 책도 다시 집어들게 되었고, 얼마동안 잃어버렸던 책상에 붙어있는 버릇을 되찾게 되었지.
지금 생각하면 일생일대의 전화위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