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번 강릉을 들렀지만 선교장을 찾은 건 처음 입니다. 한국이 낳은 대표적 유학자 이 율곡 선생의 명성이 너무 큰 탓에
오죽헌은 많은 사람들이 찾곤 하지만 상대적으로 선교장은 홀대 받아 왔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우선 놀라운 것은 서울서
멀리 떨어진 지방 도시에 이렇게 제대로 격식을 갖춘 대가가 존재 한다는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 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호화롭거나 규모가 큰 건물을 짓기가 어려운 사회 구조 였습니다. 우선 선비 들은 검소하고 소박한 것에 가치를 두었고 사
치 스러운 것에는 천박 하다고 여겨 기피 했던 것 입니다. 사치는 규탄의 대상이 되던 사회가 조선 사회 입니다.
법적인 제한도 제대로 된 민간 건물의 건축을 막아 왔습니다. 우선 민간인은 99 칸을 넘는 집을 지을수 없었습니다. 기둥도
둥근것을 쓰지 못하게 하고, 고가 건축 금지법이라 하여 높이도 상당히 제한을 가해, 오늘날 남아 있는 한옥들을 보면 거의
처마가 머리에 닿을 듯 낮습니다. 궁궐과 절을 제외한 민간은 단청도 엄격히 막아 오히려 단아한 한옥을 탄생 시킨 셈이긴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남아 있는 제대로 된 한옥들은 대부분 조선 중기 이후 사회 질서가 약간 무너지고 새로운 경제 계층
의 탄생과도 관련이 있을 겁니다. 신흥 부자나 아니면 은퇴하고 낙향한 거물급 선비들의 집이라 보시면 될거 같습니다.
영남이나 호남 지방엘 가면 한옥들을 많이 볼수 있습니다. 대게 중앙에서 세력을 떨치던 재상들이 은퇴후 지은 집들 입니다.
강릉은 약간 의외 이긴 한데 자세히 보면 많은 옛 한옥들이 보입니다. 선교장은 전주에서 이주한 분이 지은 집이라 합니다
한옥들을 보면 약간 덜 가다듬고 자연미를 살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에를 들자면 주춧돌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자연석을 쓴
다거나 기둥이나 서까래 등은 자연목 그대로 곡선재를 쓴다던가가 그것 입니다. 상대적으로 덜 인위적 이라고 할 수 있지요,
대신 주변과의 조화에 많은 정성을 들였습니다. 지붕의 곡선도 정해진 규칙 보다는 주변 산야 와의 조화를 따졌지요,
반가는 사용 주체에 따른 구획을 엄격히 적용 합니다. 남자 들의 생활공간, 여자들의 생활공간, 일꾼들의 생활공간, 출가전
딸들의 생활 공간을 따로 두기도 합니다. 구획을 하다보니 집안 에도 많은 문들이 존재 합니다. 대문을 제외한 이런 문들은
대부분 작고 아담 합니다. 완전 차단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상징적 의미의 문 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담을 보
면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듭니다. 높지도 않고 위압적이지 않습니다. 문이나 담이나 서로 지켜야할 선을 보여준다는 의미로 보
이기도 합니다. 연기 배출이라는 단순한 기능을 부여 받은 굴뚝들도 아름다운 조형의 한 몫을 당당히 합니다.
물을 집안으로 끌어 드린다는 건 쉬운일이 아닙니다. 물을 찾아 개울가에 건물을 짓기도 합니다. 자연 개울의 흐름을 잠시 머
믈게 하고 즐기는 멋을 부리기도 합니다. 선교장 배다리 마을 이라 고운 한글로 불리기도 합니다. 선교장은 과감히 연못을 두
어 물을 가까이 합니다. 그것도 한 곳이 아닌 두곳 씩이나,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 라는 동양 사상에 따라 사각의 연못 에는
연꽃들이 자태를 뽑내고 있습니다. 물가에 정자를 지어 차를 마시는 낭만과 여유도 있습니다. 사실 개인이 이런 정도의 생활
은 사치라고 볼수도 있겠지요, 조금 생각을 바꾸어 봅니다. 이런 멋진 집을 후세에 남긴 선비의 품격을 생각해 봅니다.
선교장 안내도 입니다.
* 몇편의 영화를 찍은 장소로 기념물이 입구에 있습니다.
* 단아한 일주문 입니다. 월하문, 연못가 찻집에 어룰리는 이름 이네요,
* 선교장 본채는 아니지만 정갈한 모습의 한옥 입니다.
* 본채의 전경 입니다. 겹쳐서 보이는 지붕의 선이 주변 산세와 너무도 잘 어울립니다.
* 별채들도 한옥으로의 품격이 드러나 보입니다.
* 작은 연못 입니다. 찻집에 연이은 연못은 규모가 큽니다. 이건 작고 아담 합니다. 땅은 네모라는 의미를 충실히 따랐습니다.
* 솟을 대문이 돋 보이는 본채가 아름다운 지붕선을 자랑 합니다. 연못엔 연들이 무성 하네요,
* 아마도 본채와는 다른 인척들의 가옥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본채를 마주한 좌측에 있는 건물들 입니다. 우물도 보입니다.
* 뒷 산과 너무도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한옥의 백미는 지붕선과 주변과의 조화 입니다.
* 원래 사대부들의 방안은 정갈 해야 합니다. 잡다한 장식은 배제된 단순미가 산뜻 합니다.
* 나무를 쪼개 기와 대신 사용한 집 입니다. 용도는 모르겠네요, 원래 있었던 집인지도 모호 합니다.
* 부자집 답게 곳간도 상당 합니다. 설명문 입니다.
* 선교장의 위엄을 나타내는 곳간 입니다. 예전에는 거의 자급 자족이라 쌓아놓을 창고가 필수였을 겁니다.
* 행랑채에 연결된 쪽 문 입니다,
* 행랑채에 대한 설명문 입니다.
* 우측에 연이는 건물이 행랑채 입니다. 요즘 시각에서 보면 방들이 작지만 예전에는 잠만 자는 공간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 중사랑채 전경 입니다. 차양이 약간 어색 합니다. 것도 당시엔 신식 구조 였을 겁니다.
*중사랑 설명문 입니다.
* 중사랑채에 부속된 방들 입니다. 신분에 따라 적절히 방을 배분 했을거라 생각 됩니다.
* 고택 체험 프로그램에 따라 외부인들이 체험 숙박들을 하더군요, 중사랑 본채를 도서관으로 꾸며 사용 중 입니다.
* 냉장고가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현대인들의 불편을 고려하여 배치 한듯 합니다.
* 솟을 대문 입니다. 초헌을 탄 대감의 머리가 닿지않게 대문을 높이고, 문턱을 없에 바퀴가 걸리지 않게 한 구조 입니다.
* 한옥들은 공간이 구획되고 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서로의 공간은 존중 한다는 뜻의 문일 겁니다.
* 같은 집 안인데도 반드시 문으로 구획 합니다.
* 보십시요, 옆 담이라야 사실 상징적인 높이 입니다. 물리적 구획이 아닌 정서적 구획 이라 생각 됩니다.
* 동별당의 설명문 입니다.
* 동 별당 입니다. 집안 행사에 모임 장소 입니다. 문들은 걷어서 처마밑에 걸겠지요,
* 동별당의 부속 방들 입니다.
* 부엌 입니다. 부엌위는 대게 다락 입니다.
* 부엌 입니다. 솥단지 들이 걸려 있네요, 다락은 방에서 사용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 아마 사당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대게 뒤편 조용한 곳에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습니다.
* 대가집 답게 장독들이 가지런 합니다. 그 많은 식솔들 먹이려면 만만치 않겠지요,
* 내외 구별이 엄격 하던 시절엔 부부간의 합방도 은밀하게 이뤄졌습니다. 부부간을 이어주는 뒷길이 있었습니다.(여길까요?)
* 한옥의 멋을 한껏 자랑하는 누마루 입니다. 창들을 걷어 처마에 걸면 그데로 누각이 되는 셈 입니다.
* 별채 입니다. 대게 별채는 과년한 딸이나 여인네들의 처소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문고리 장식 입니다. 고리옆 문살은 촘촘 합니다. 손 넣어 문 열지 못하게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 큰 규모의 가옥은 난방이 어렵습니다. 일단 방마다 아궁이가 있어야 하니까요, 아궁이가 재미 있네요,
* 이것도 아궁이 입니다. 불때는 입장에선 바람을 피한 이런곳이 아늑 하겠지요,
* 초당 입니다. 옛날에는 궁궐에도 일부러 초당을 짓곤 했습니다. 서민들의 삶을 이해 한다는 차원에서..
* 차를 마시고 시도 짓고 하던 공간 입니다. 선교장에서 제일 멋진 곳 입니다.
* 연못 중앙에는 작은 동산이 있고 소나무 몇그루가 있습니다. 멋진 다리가 놓여 있어 더욱 운치가 있습니다.
* 어떻습니까? 정자와 연못과 소나무 동산, 백일홍이 활짝 피어 정말 환상적인 풍경 입니다,
* 이곳은 무슨 용도인지 나도 궁금 했지만 암튼 작지만 소박한 미를 간직하고 있더군요,
* 연못가 찻집의 굴뚝 입니다. 예술 입니다.
* 연못 풍경 입니다.그야 말로 선경 입니다.
* 잘 보셨습니까? 선교장을 소개 하는 사진들 카페에 종종 보이더군요, 나름데로 사진 기술이 뛰어난 작품도 보입니다
하지만 소운이 정성껏 찍고 열심히 소개 합니다. 한옥의 백미 배다리 마을, 즐감 하시길 바랍니다.
- 소 운 -
첫댓글 소운 선생께서 글과 사진을 잘 올리셨네요. 대단한 실력입니다.
정갈한 느낌으로 감상하였습니다. 감사. ~~